신간 전자책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도서정보 : 정희진, 권김현영, 루인, 한채윤 | 2023-07-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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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 고발을 어떻게 사회 변화로 이끌 것인가?
한국 사회 강간 문화를 낱낱이 해부하는 페미니즘의 언어

“여성이 자신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터져버릴 것”이라는 한 페미니스트 시인의 말은 이제 누구도 반박할 수 없으리라.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특정 집단 내 성차별 · 성폭력을 고발하는 ‘○○계 내 여성혐오/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지구적 차원에서 벌어진 ‘미투’ 운동을 거치며 한국 사회는 말하기 시작한 여성들로 인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는 여전히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 인생을 걸어야 한다. ‘꽃뱀’이라는 비난과 무고죄와 명예 훼손의 협박에 시달리며 ‘무결한’ 피해자임을 입증해야 한다. 일반적인 폭력 사건과 달리 유독 성폭력 사건에서만 피해와 가해라는 말이 쉽게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가? 무엇이 성폭력인가? ‘2차 가해’의 기준은 무엇인가? 누가 판단하는가? 성폭력 문제에서 페미니즘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성 문화(性文化) 연구 모임 ‘도란스’의 세 번째 책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은 성차별 · 성폭력 문제에 관한 주된 쟁점들을 ‘피해’와 ‘가해’ 개념을 중심에 두고 들여다본다. 페미니즘은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자는 사상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그 이상이다. 강간과 섹스를 구분하지 못하고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강간 문화를 드러내는 것, 성폭력은 ‘누구’ 혹은 ‘무엇’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폭력’의 문제임을 밝히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의 목표이자 이 책의 목표이다.

피해자가 직접 나와 말해야만 하는 상황은 그 자체로 비상사태이며,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로 직접 이야기할 때에야 비로소 변하는 것이 있다는 점에서 피해자의 직접행동주의는 매우 힘이 세지만, 그만큼 당사자에게 커다란 부담을 안겨준다. 모든 피해가 공론장에서 잘 이야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침묵도 더는 답이 아니다.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줄 각오를 하라.”는 말을 농담이랍시고 던진 정치인은 성희롱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 말을 직접 들었던,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대학생들은 정작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다. 당시 한 기자는 나에게 대학생들이 기자를 지망하면서도 용감하게 나서지 않았다며 기자로서 이들의 자질을 의심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피해자를 비난하고 고립시키는 기제는 이토록 다양하다.
- <성폭력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의 문제>(25쪽)

분명한 것은 한 가지다. 거듭 강조하건대, 피해는 그 자체로 진실이 아니라 투쟁으로 획득되는 개념이며, 이 과정이 바로 페미니즘이라는 사실이다. 사회적 약자가 겪은 피해가 그대로 인정된다면 유토피아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지 않다. 누가 사회적 약자이며 무엇이 피해인지, 이 문제에 관한 복잡한 논쟁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남성들은 피해 의식마저 남성 문화의 일부로 ‘소유’하고 있다. 가해자의 피해 의식, 피해자의 죄의식은 우리 사회에서 흔한 일이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가장 급진적이고 ‘선진적인’ 정치일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은 비정치적으로 간주되어 왔거나 비가시화되었던 피해를 드러내고, 가해와 피해를 둘러싼 갈등, 곧 사회 정의의 중요한 의제를 제기한다. - <피해자 정체성의 정치와 페미니즘>(210~211쪽)

들불처럼 일어난 피해 고발의 목소리가
혁명적 변화로 이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2018년 1월, 한 여성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고발 이후 한국 사회에 ‘미투(#MeToo, 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문화예술계, 법조계, 정치계, 학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에서 피해 고발이 이어졌다. 그런데 검찰 내 성추행 고발 직후 한 남성 시사평론가가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 일을 다루면서 “한국에는 미투 운동 같은 게 없었죠?”라고 말해 거센 비난이 일었다. 많은 여성들이 그가 “(지적으로) 게으르고” “오만하다”며 분노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발과 공론화 움직임이 계속 이어졌음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 2003년부터 매년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진행하는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 2009년 배우 장자연 씨가 남긴 유서, 2016년 5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이후 강남역에 붙은 수많은 포스트잇, 2016년 10월 인터넷상에서 일어난 ‘#○○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2017년 11월 한샘 사내 성폭행 피해자의 고발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말하기는 계속되어 왔고 실제로 크고 작은 법적,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한국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미투’가 있었다.
그런데 성폭력이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된 일이 이렇게 많았는데도 어째서 여전히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일까? 지금 이 폭발적인 ‘미투’ 운동을 근본적인 사회 변화로 이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과정에서 페미니즘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은 2018년 상반기 한국 사회를 뿌리째 흔들고 있는 이 뜨겁고 민감한 사안을 더 깊이, 더 멀리 보려 한다. 이 책은 유례없는 페미니즘의 대중화 시대를 맞아 성차별 ․ 성폭력 문제에 대한 관심을 일상의 정치로 지속시키기 위해 “미투 운동 이후”를 생각한다.
특히 ‘2차 가해’라는 용어와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개념이 오용되고 남용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권김현영)와 “모든 여성은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여성 우선’을 외치는 페미니즘 일부의 ‘정체성의 정치’가 야기할 수 있는 폐해를 성찰한다(정희진).


<성폭력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의 문제>(권김현영)는 성폭력 피해자의 직접행동을 통해 여성의 목소리가 가시화되기 시작한 현실과, 피해자의 ‘말하기’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을 짚어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필자는 성폭력이 본질적으로 이성애 중심주의와 젠더 권력의 문제임을 드러내고, 성차별 ․ 성폭력 문제의 밑바탕에 뿌리 깊은 ‘강간 문화’가 있음을 여러 사례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나아가,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진행된 반(反)성폭력 운동을 돌아보며 지속 가능한 운동으로 나아가는 데 무엇이 부족했는지, 무엇을 더 사유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예를 들어,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등장한 ‘2차 가해’라는 용어와 ‘피해자 중심주의’ 담론이 오히려 피해자를 소외시키고 연대자와 지지자들을 위축시키는 한계를 드러냈음을 지적한다.

<문단 내 성폭력, 연대를 다시 생각한다>는 ‘문단 내 성폭력’ 고발자를 지지하고 연대해 온 ‘<참고문헌 없음> 준비팀’이 쓴, 현재 진행 중인 고투의 기록이다. 이 글에는 피해 고발이 공론화된 이후 현실에서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과 피해자를 지지하기 위해 모인 연대자들에게 일어난 일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없음>은 문단 내 성폭력에 대한 증언과 지지의 말들을 모아 책을 출간하고, 펀딩을 통해 피해자들을 법률적 ․ 의료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연대자의 자격, 지지와 연대의 방식 등을 두고 숱한 논란이 벌어져 프로젝트가 좌초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이 글은 연대자의 위치를 끝까지 질문해본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토론과 고민 끝에 내놓은 것이다.

<소수자는 피해자인가: 커밍아웃, 아웃팅, 커버링>(한채윤)은 성소수자의 ‘커밍아웃’을 용기 있는 행동으로 칭송하고 ‘아웃팅’을 끔찍한 범죄로 보는 시각에, 소수자를 ‘피해자’의 위치에 가두고 길들이려는 의도가 숨어 있음을 밝힌다. 필자는 먼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커밍아웃’과 “ㅇㅇ는 동성애자다”라고 폭로하는 ‘아웃팅’이 사회에 등장하게 된 과정을 살피면서 두 개념에 관한 상식을 뒤집는다. ‘커밍아웃’을 당당함과 용기의 표식으로 여기는 사회에서는 ‘아웃팅’이 범죄가 되고,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너무 드러내지 말고 살아가라는 사회적 압력(‘커버링’)의 요구에 저항하기 어려워진다. 이렇게 되면 정작 동성애자의 삶을 억압하는 사회의 문제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만다.

<피해자 유발론과 게이/트랜스 패닉 방어>(루인)는 한국 최초로 ‘패닉 방어’를 단행본에서 다룬다. 이 글은 ‘피해’와 ‘가해’라는 문제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요구하는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패닉 방어’란 게이 혹은 트랜스젠더를 살해한 가해자가 법정에서 자신의 범죄 행위를 변명할 때 사용하는 전략이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성별 정체성 혹은 성 정체성을 알게 되어 충격을 받아 우발적으로 살인을 한 것이므로 자신의 행위는 ‘패닉’의 결과로 일어난 ‘정당방위’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피해’와 ‘가해’의 관계를 뒤섞는 ‘피해자 유발론’은 여성혐오나 성폭력 사건에서 자주 등장하는 페미니즘의 오랜 의제이다.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니니까, 야한 옷을 입고 다니니까 성폭력이 일어난다.” “여성이 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과도하게 권리만 주장해서 남성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 같은 식이다.

<피해자 정체성의 정치와 페미니즘>(정희진)은 ‘피해자’로서 여성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여성 운동의 한계를 밝히고 타자와 연대하는 페미니즘을 제안한다. 페미니즘의 대중화 이후 놀랄 만한 현상이 나타났다. 피해 여성들의 현실에 우선 주목해야 한다며 “여성 우선”의 정치를 주장하는 여성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렇게 “여성 우선”을 주장하는 페미니즘은 일명 ‘터프(TERF, 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라고 불린다. 쉽게 말하면 트랜스젠더 여성(특히 mtf, 즉 남성에서 여성으로)을 배제한 페미니즘이다. 그러나 과연 누가 ‘진정한’ 여성인가? 가장 심각한 피해는 누가 정하는가? 우선순위는 사회 정의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필자는 정체성의 근거가 피해에 머무르게 되면, 여성들은 고통을 경쟁하고 피해를 자원으로 삼는, 남성 사회가 원하는 성 역할 수행 주체가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침묵이 목소리가 되어 나올 때
- <성폭력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의 문제>

성폭력 피해자가 직접 자신의 피해 경험을 말하는 일이 확실히 늘어났다. 특히 인터넷이라는 물적 조건과 소셜네트워크(SNS)라는 뉴미디어를 기반 삼아, 인터넷 의사소통에 능숙한 여성 대중이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직접행동에 나서면서 변화가 본격화되었다. 그렇다면 피해 경험을 쉽게 말할 수 없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상황이 나아진 것일까? 하지만 “피해자의 용기 있는 직접행동으로 인해 겨우 변화의 가능성이 열려도, 그 이후에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가해자들이 피해 사실의 진위 여부를 의심하는 여론을 만드는 데 성공하거나, 연이은 폭로로 인해 피로감만 쌓이고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 글에서 권김현영은 성폭력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성폭력을 ‘피해자’와 ‘가해자’만 관련되는 ‘협의의 당사자성’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되며,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강간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필자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성폭력 피해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들을 것인가?”

‘2차 피해’란 무엇인가
성폭력 2차 피해는 성폭력 문제를 여타의 폭력과 구분해주는 핵심적인 문제다. ‘2차’라는 뜻의 ‘second’는 ‘social’과 혼용된다. 성폭력 2차 피해는 다른 말로 ‘사회적 강간(social rape)’이라고 불린다. …… 피해자가 의료 조치 과정에서 적절한 배려와 설명을 듣지 못하고 “몸을 함부로 굴렸다”는 말을 듣거나, 언론이 사실 관계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가해자 입장만을 전달해 피해자를 사실상 꽃뱀 취급 하거나, 선정적인 표현으로 사건 자체의 초점을 흐리게 하는 것 역시 모두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의 산물이다. 즉, 2차 피해란 1차 피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성차별주의와 잘못된 성 통념으로 인해 피해자가 마주하게 되는 부당한 일을 총칭한다. (31, 33쪽)

성폭력은 성별 권력의 문제다
성폭력은 이성애 중심주의의 문제이자 성별 권력 관계의 문제이다. 남자도 성폭력을 당한다거나, 성희롱은 권력 관계의 문제라는 말로는 성폭력이 왜 성별 간 권력의 문제이며, 이성애 중심주의의 문제인지를 설명할 수 없다. 이는 남자는 피해자가 될 수 없다거나 여자는 가해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이런 사건들은 문화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남자와 남자 사이에 일어난 성폭력 사건에 대해 “피해자가 피해를 당할 만했다.”고 비난하는 문화는 없다. 여자 직장 상사의 성적 괴롭힘을 고발한 남자 직원은 남성성에 대한 고투와 낙인이 있을지언정 “큰일 하는 여자가 그럴 수도 있지.”라는 식의 이야기를 듣지는 않는다. (33~34쪽)

왜 여전히 피해자는 말하기 어려운가?
성폭력을 당해도 그것이 성폭력인지 몰랐거나, 성폭력이라고 말하지 못했던 시대에는 피해를 피해라고 ‘말하는 행위’ 자체가 ‘피해가 있었다’는 발견의 맥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말하기의 조건이 변화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말할 권리가 ‘민주화’되고, 말하는 주체가 필요에 따라 익명으로 감춰질 수 있는 조건의 변화는 말할 수 없었던 상황일 때보다 말하는 주체에게 ‘정당화의 의무’를 더욱 엄격하게 부과한다. 순결 신화의 규범적 힘은 약화된 반면, 남성 사회의 꽃뱀 공포는 더욱 강화되었다. 왜 지금 말하는지, 다른 목적은 없는지, 당시에 말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경찰에 가지 않고 여론의 힘을 빌리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피해자의 증언이 믿을 만한 것인지 등을 가려내려는 여론의 검증은 예전보다 혹독하다. (49쪽)

“강간은 섹스가 아니다” -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강간 문화’
강간 문화란, 남성에게 성적 공격성을 장려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지지하여 성적 폭력을 정상적인 것으로 생각하도록 하는 일련의 신념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미국의 소년 문화에서 강간은 정상적인 소년이라면 흔히 겪는 성장담으로 격려되어 왔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디시인사이드의 대학 갤러리에서는 “전쟁 나면 〇〇학과의 ××를 강간하고 싶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게시판 문화는 대학 내 익명 게시판과 단체 채팅방으로 이어졌다. ‘강간’이 남자끼리 즐기는 짜릿한 놀이 문화의 일종으로 ‘정상화’된 것이다. …… 강간 문화는 강간에 성공할 수 있는 전략을 계속 퍼뜨리며, 섹스와 강간을 본질적으로 유사한 것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강간 문화에 너무나 익숙한 남성들은 ‘강간 문화’라는 언급 자체가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고 남성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라며 항의한다. (58, 59쪽)

법과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성폭력 관련 법 제도를 제정하고 실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이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순결 신화와 강간 문화가 강력하게 결합해 있는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강간 피해자가 될 수 ‘없다’. 피해자가 술을 마셨거나, 밤늦게 다녔거나, 가해자와 아는 사이였거나, 사적 공간에 드나드는 것을 허용했다면 말이다.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자신의 행동에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내가 거기를 왜 갔을까, … 왜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상대의 말을 믿었을까.) 성폭력 피해를 고소하지 않는다. 당사자 간의 법적 분쟁을 넘어서, 무엇이 왜 문제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27~28쪽)

‘2차 피해’라는 말과 ‘2차 가해’라는 말
‘2차 가해’는 점차 ‘2차 피해’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2차 피해를 입었다.”고 말하는 대신, “2차 가해자는 〇〇〇.”라고 말했다. 이 두 가지 표현은 전혀 다른 효과를 생산한다. 전자는 2차 피해라는 용어에 내포된 개념과 사례에 집중하게 하고, 후자는 누가 가해자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 즉, 2차 가해라는 말은 가해를 저지른 행위자 자체에 주목하게 만든다. 앞서 설명한 대로 민주노총처럼 공동체의 규약에 대한 충성도(?)가 높거나 구성원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이라면 2차 가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규제 효과가 있다. 토론을 하는 것보다 ‘확실’하다. 하지만 그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조직이라면 ‘2차 가해’라고 언급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그런 곳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그들끼리의 결속력을 더욱 끈끈하게 하며 피해자를 고립시켰다. (42쪽)

피해자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 것인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속해 있다고 생각했던 사회를 다시 생각해야 하고, 그 목소리를 통해 알게 되는 것에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사회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채무자의 독촉처럼 취급하면, 아무도 그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물론 여전히 많은 피해자는 말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말을 의무로 생각하자는 것은 말하지 않기로 한 이들에게 부담을 주자는 게 아니다. 말하는 것이 더는 무엇인가를 각오해야만 하는 일이 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70쪽)

‘말하기’ 이후, 연대와 책임에 대하여
- <문단 내 성폭력, 연대를 다시 생각한다>

2016년 가을, SNS에서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일어났다. 한 사람의 피해 고발 글을 읽은 또 다른 피해자가 용기를 내어 자신의 경험을 공론화하는 일이 이어졌다. 10여 명의 남성 소설가, 시인이 가해자로 지목되었다. 언론은 문단 내 성폭력 사태를 비중 있게 보도했고, 문예지들은 처음으로 이 주제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그런데 용기를 낸 피해자들은 ‘말하기’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고발 직후 ‘자숙’을 말하던 가해자들은 곧 서로 연대했고 가해 사실 인정을 번복했다. 가해자들은 본격적인 ‘반격(backlash)’을 시작해 피해 고발자들을 명예 훼손으로 고소했다. ‘피해자’가 ‘가해자’라고 불리며 비난받고, ‘가해자’가 ‘피해자’로 위로받는 일이 벌어졌다. 피해자들은 피해를 알리고 나서 상상도 못했던 싸움을 해야 했다.
이 글은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모인 <참고문헌 없음> 준비팀의 기록이다. 성폭력을 비롯한 각종 비리가 아무렇지 않게 발생하고 은폐될 수 있는 ‘문단’이라는 가부장적 사회의 구조, 그런 사회에서 남성 권력이 폭력을 통해 실행되고 정당화되는 과정, 피해를 공론화한 뒤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 피해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결성된 ‘<참고문헌 없음> 준비팀’의 활동과 그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 등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문단’이라는 가부장적 사회
회사나 학교 등의 조직이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성폭력 상담소 같은 기구를 만들어 온 것과 달리, 이러한 해결 기구가 없는 문단의 기괴한 구조가 그 민낯을 드러낸 것이 바로 ‘문단 내 성폭력 고발 운동’이다.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신고할 곳이 문단 내부에 없으니, 피해자들은 매번 개인으로서 법적 투쟁을 했고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후 무사히 문단에 복귀해 왔다. 피해자는 문학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삭제된 여성 문인들을 암암리 모르지 않기에, 피해자들은 더더욱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81쪽)

논란의 한가운데에서
<참고문헌 없음>은 문단 내 성폭력 발화, 싸움, 연대의 기록이자 피해 고발자를 지지하는 프로젝트로 기획되었다. 피해 고발자의 증언 글, 여성 작가들의 자기 성찰의 글을 한데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하면서, 그 수익금을 피해 고발자들의 법률 비용과 의료비 지원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 펀딩을 시작한 지 2주 후, 프로젝트는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SNS에서 ‘E’가 문제를 제기하면서부터였다. E는 5년 전 데이트 폭력 가해자로 출판사 봄알람(텀블벅 펀딩 진행과 단행본 제작 및 출간을 맡은 출판사)의 구성원을 지목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봄알람 구성원은 <참고문헌 없음> 프로젝트에서 하차했다. 피해자에게 사과를 했고 피해자가 요구한 사항들을 이행했다. 관심이 뜨거웠던 만큼 논란과 비난도 뜨거웠다. (87, 90쪽)

연대자의 자격
우리(준비팀)는 ‘무결’한 사람들의 운동으로 이 운동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문단이라는 네트워크 안에 함께 있었던 작가로서, 성찰을 하고 자기 자신부터 변화해야 한다는 책임을 통감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함께하는 여성 문인’ 명단이 공개되었을 때, “명단에 왜 저 사람의 이름이 있는지” 그 자격을 따지는 제보가 이어졌다. 준비팀은 명단 참여 여부에 대한 결정권이 없었다. 이 프로젝트 참여 여부는 자발성에 맡기겠다는 원칙을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왜 명단에 있는가, 저 사람은 왜 명단에 없는가. 한 치의 흠결도 없는 도덕적 순결함을 스스로 입증하기 위해 우리가 모인 것이 아니었음에도, 이 프로젝트 참여자에 대한 가혹한 도덕적 검열이 계속되었다. (97~98쪽)

연대와 책임
봄알람 구성원은 퀴어 담론의 피해와 가해에 대한 인식의 부재 속에서 고통받았다. 흡사 연좌제처럼 봄알람 출판사 전체가 가해자로 지목되었으며,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이자 파트너였던 준비팀도 가해자라는 프레임에 함께 갇히게 되었다. 가해자 프레임 속에서 준비팀의 모든 조치와 행위와 입장은 반성 없는 폭력 행위이거나 자기 합리화, 혹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행위로 취급되었다. 연대자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었다. 우리는 ‘누가 가해자인가’보다는, ‘무엇이 폭력인가’를 질문했어야 했다. 2차 가해에 대해 발언할 때에도 무엇이 성폭력 피해를 의심하게 하고 성폭력 고발을 어렵게 하는지를 질문했어야 했다. (108~109쪽)

공론장으로서 SNS를 생각하다
트위터 공론장에는 누구에게나 발언권이 주어진다는 장점이 있었던 반면, 치명적인 약점도 있었다. 반복적으로 발언하며 발화를 독점하는 사람들이 부각되는 반면,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들의 의견은 유령처럼 지워지고 말았다. 입장문과 사과문이 빠르게 오가는 공론장 특유의 속도 때문에 침착함과 신중함이 배제되는 경우도 있으며 섬세한 논의가 어려워지는 경우도 발생했다. 가장 중요한 목적을 망각할 위험도 컸다. 성폭력 없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모두의 목적이 희미해지도록 모두가 방치한 셈이 되었다. (113~114쪽)

‘가련한’ 약자, ‘순결한’ 피해자이기를 거부한다
- <소수자는 피해자인가: 커밍아웃, 아웃팅, 커버링>

소수자는 사회의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약자이자 피해자인가? 왜 사회는 소수자가 당당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지배 규범에 거슬리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소수자는 어떻게 세상에 맞서야 하는가?
‘커밍아웃’을 개인의 용감한 결단으로 만들수록 우리는 사회를 변화시킬 기회를 놓치게 된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동성애자임이 폭로되는 ‘아웃팅’은 분명 두려운 일이지만 이런 ‘아웃팅’을 방지하려고 애쓸수록 동성애자의 존재는 더 ‘위험’해진다. 동성애자라고 너무 유난 떨지만 않는다면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약속하는 ‘커버링’은 교묘하게 동성애자를 사회에 적합한 인간으로 길들인다. 한채윤은 이 글에서 ‘커밍아웃’, ‘아웃팅’, ‘커버링’ 문제를 통해 동성애자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순적 상황을 분석해보려 한다. 또 낙인찍힌 자들에게 더 빨리 솔직하게 말하라고 요구하기 전에, 말하면 제대로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는 사회적 성찰을 요구한다.

벽장 속에 누가 살고 있는가
커밍아웃은 단순히 개인의 사생활과 은밀한 비밀을 밝힌다는 의미가 아니다. 커밍아웃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어떻게 일그러져 있는지 그 숨겨진 구조를 밝히는 단어다. …… 동성애자가 우리 주변에 평범한 이웃으로, 가족으로, 친구와 동료로 존재한다는 것, 이 세상은 이성애자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은 일급 비밀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동질감으로 사회 공동의 규범과 성 역할을 만들어놓았기에 비밀은 늘 위태위태하다. 즉, 커밍아웃은 벽장에서 나와 내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129, 132쪽)

커밍아웃에 필요한 건 용기가 아니다
내가 커밍아웃 후 관계가 어그러진다면 그들이 커밍아웃을 받아들이는 데 실패한 것이지, 나의 커밍아웃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피해를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할 때 우리는 개인이 감당할 몫과 나를 포함하여 사회가 감당할 몫이 따로 있음을 알아야 하고, 동시에 그 각각의 몫의 경계를 구분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커밍아웃 후 집에서 쫓겨나거나 주변의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거나 해고나 사퇴 권유와 같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개인이 겪는 실패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만들어내는 공동의 실패다. 피해를 입은 이들 곁에 서서 함께 싸워 나갈 이들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 공동의 실패를 줄이기 위해서이다. (135~136쪽)

‘아웃팅은 범죄’라는 인식
커밍아웃이든 아웃팅이든 드러나는 것은 ‘존재’라는 점을 떠올려보자. 커밍아웃이 우리 존재를 억누르는 벽장의 차별적인 구조를 밝히는 것, 숨겨야만 한다고 강요받는 낙인을 오히려 드러내어 자유를 얻는 전략임을 상기할 때 아웃팅 역시 마찬가지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커밍아웃을 원하지 않는 세상이라면 아웃팅 역시 원하지 않을 것이다. …… 아웃팅으로 인해 발생하는 범죄를 막아야 하는데 ‘아웃팅은 범죄다’라는 슬로건은 아웃팅 자체를 범죄시하는 결과를 낳았다. 아웃팅을 ‘당했다’는 말은 곧 피해자가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뜻이 되었고, 아웃팅을 ‘시켰다’는 말은 가해자를 지목하는 일이 되었다. (138, 139쪽)

커버링, 티 내지 말라는 가장 교묘한 억압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퀴어 퍼레이드 참가자들의 노출이 심하다는) 비난은 성적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도 똑같이 나온다. 사회를 잘 설득해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 참가자들 때문에 성적소수자 전체가 욕을 먹는다고 비난한다. 건전한 축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은 한 가지를 놓치고 있다. 동성애자가 아무리 단정한 옷차림을 한다고 해도 건전한 존재로 칭송받는 일은 결코 생기지 않는다. 건전이라는 잣대가 이미 이성 간의 사랑, 결혼, 성생활로 짜여 있기 때문에 동성애자인 채로는 건전한 존재가 될 수 없다. 그걸 알면서도 동성애를 혐오하는 이들이 동성애자에게 ‘건전’을 권장하는 이유는 이성애자와 유사해지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게 만들 수는 있기 때문이다. (152쪽)

‘순결한’ 피해자의 위치를 거부하며
이성애자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이성애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며, 이성애자 중심의 질서를 지키면서 그 안에서 동성애자의 자리를 만들자고 하는 모든 요청들을 거부해야 한다. 같아지는 것을 선택하는 대신, 무리 없이 섞이고 어울리는 것을 선택하는 대신 남들과 ‘다른’ 나로서 살아야 한다. 다르다는 ‘티’를 일부러 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티’가 저절로 나는 것이다. 우리는 순응하라고, 적당히 넘어가라고, 너무 유난 떨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아야 한다. 한 점 부끄럼 없고 당당하고 무결해야만 인정받는 피해자, 상처받아 웅크린 가련한 약자, 주류의 배려와 관용을 기다리는 소수자로서의 위치를 거부해야 한다. (155쪽)

어떤 폭력의 이유
- <피해자 유발론과 게이/트랜스 패닉 방어>

2010년 5월 말, 대구에서 트랜스여성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많은 언론은 가해자가 “(4년여 전 알게 된) 자신의 교제 상대가 트렌스젠더인 사실을 뒤늦게 알고 격분해 살해”했으며 “성별을 알 수 있는 접촉은 갖지 않아 상대방이 여장 남성인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며 가해자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다. 가해자가 내세운 논리는 전형적인 ‘트랜스 패닉 방어’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루인은 이 글에서 게이 혹은 트랜스젠더를 살해한 가해자가 법정에서 자신의 범죄를 변명할 때 사용하는 전략인 ‘패닉 방어’를 다룬다. ‘패닉 방어’는 혐오 폭력과 혐오가 발생하는 구조 등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진다. 어떤 사람이 게이 혹은 트랜스젠더라고 먼저 밝히지 않은 것이 상대에게 심각한 충격을 안겨주고 그리하여 구타, 감금 혹은 살해를 유발할 정도의 ‘잘못’인 것일까? 피해자가 사라지면 혐오도 사라지거나, 피해자가 자신의 특정한 속성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한다면 혐오가 발생하지 않을까? 한편, ‘패닉 방어’에 관한 이러한 질문들은 페미니즘의 오랜 의제인 ‘피해자 유발론’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피해자 유발론은 피해와 가해의 관계를 교묘하게 뒤섞는다.

혐오 폭력,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피해자 유발론’
‘피해자 유발론’은 여성 혐오나 성폭력을 둘러싼 의제에서 특히 많이 거론된다. 예를 들면 “여학생의 학교 성적이 좋아 남학생의 손해가 크다.” “여성이 짧은 치마를 입고 밤늦은 시간에 돌아다녀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다.” 같은 식이다. 이것은 가해자 자신의 범죄 사실, 혹은 특정 집단의 무능력 따위를 그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그 타인으로 인해 ‘내’가 부당한 일을 겪고 있다는 인식이다. …… 페미니즘의 오랜 반(反)성폭력 운동은 피해자 유발론이 가해자를 옹호함으로써 사회의 통치 체제(가부장제)를 보호하는 방식이라는 점을 계속해서 지적했다. (161, 162쪽)

“나는 게이와 섹스를 할 수 없어.” - 이성애-남성성과 ‘게이 패닉 방어’
재판정에서 게이 패닉 방어 논리를 펼치는 가해자들 역시 바로 지배 규범적 남성성을 중시하고 강요하는 정서를 공유하고 있으며 그래서 호모포비아를 동원해 자신을 방어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게이 남성이 자신에게 접근한 것은 자신의 남성성을 위협하는 행위이자 자신이 게이로 오해받을 수 있게 하는 행위이기에 가해자 중 한 명은 피해자를 살해한 후 “나는 게이와 섹스를 할 수 없어.”라고 외쳤다고 한다. …… 이성애자 남성성을 남성의 유일한 남성성 실천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태도가 없다면 패닉 방어 전략은 재판 과정에서 수용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애당초 전략으로 채택되기 어렵다. (168, 169쪽)

“나야말로 진짜 피해자” - ‘트랜스 패닉 방어’와 기만의 논리
트랜스 패닉 방어는 가해자 남성이 연애나 성관계의 대상으로 ‘여성’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그 여성이 태어날 때 남성으로 지정받았으며 음경 형태의 외부 성기가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패닉 상태에서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살해했다는 주장이다. …… 트랜스 패닉 방어 전략은 외모를 통해 타인의 섹스(혹은 외부 성기 형태)와 젠더(혹은 겉으로 인지되는 이원 젠더 범주)를 즉시 그리고 어떤 실수 없이 파악할 수 있으며 이 둘은 언제나 등치한다는 이성애-이원 젠더 규범을 위반하는 것이 바로 기만이라고 주장한다. …… 여기서 mtf/트랜스여성을 살해한 많은 가해자가 사실은 “나야말로 기만당하고 사기당한 진짜 피해자”라고 주장할 수 있다. (174, 177, 178쪽)

가해자에게 유리한 사회
패닉 방어 혹은 피해자 유발론은 피해자를 처벌하고 가해자를 구제하며 가해자에게 유리한 사회를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특히 패닉 방어와 피해자 유발론은 가해자를 피해자로 만들고, 살인 사건의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어 가해와 피해의 관계를 뒤섞는다. 무엇이 가해이고 무엇이 피해일까? 사회적 인식에 따라 살인 사건의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무고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살인이라는 중범죄를 저지르도록 유도한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가해와 피해는 단순한 구도가 아니라 매우 복잡한 역학 관계에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가해와 피해를 뒤섞는 작업이 가해자 개인의 일탈적 혹은 지능적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지배 규범, 피해자를 향한 사회적 비난과 부정적 인식이 공모해 철저하게 규범적 과정을 통해 성립한다는 점이다. (199~200쪽)

‘사회 정의’로서 페미니즘을 생각하다
- <피해자 정체성의 정치와 페미니즘>

페미니즘은 언제나 연대의 정치였다. 그런데 이 연대의 정치를 부정하는 페미니즘이 등장했다. 이들은 피해 여성의 현실에 우선 주목해야 한다며 “여성 우선”의 정치를 주장한다. 오랜 시간 동안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의 사회 운동에서 늘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받으며 ‘나중’으로 미뤄졌다. 정희진은 “여성 우선”을 주장하며 자신 외의 다른 여성들에게는 “나중에”를 외치는 여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누가 ‘진정한’ 여성인가? 가장 심각한 ‘피해’는 누가 정하는가? 여성의 정체성을 ‘피해자’로 한정하는 페미니즘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정희진은 이 글에서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피해’, ‘피해자’, ‘정체성의 정치’ 개념을 여성주의 시각에서 들여다본다. 그리하여 “모든 여성은 피해자”라고 강조하는 것은 가부장제가 원하는 여성의 성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여성주의에 불리한 전략임을 밝힌다. 나아가, ‘여성 우선’을 주장하는 페미니즘이 타자와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공감과 연대에 토대를 둔 ‘사회 정의’로서 페미니즘을 제안한다.

‘피해’는 자명한 사실이 아니라 경합하는 정치의 산물이다
인류 역사상 사회적 약자에게 정의로운 사회는 존재하지 않았다. 가해와 피해는 일상이지만, 자신을 가해자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피해는 저절로 자명한 사실이 되지 않는다. 모두가 합의하는 피해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 피해는 인정 투쟁, 집단 행동, 사회 운동, 여성주의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실천을 통해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해 가는 과정이 요구된다. 누군가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저절로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미 가부장제 사회나 자본주의 사회는 존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피해자 되기’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로서 위치성을 끊임없이 되돌아본다는 뜻이다. (208, 211쪽)

정체성의 정치로서 페미니즘
정체성의 정치로서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적인 보편성에 차이를 제기함으로써, ‘인간=남성’이 아님을 주장한 급진적인 정치였고 현재도 그러하다. 여성이 여성에게 동일시하는 문화가 없었을 때, 여성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정체성의 정치는 억압받는 개인이 억압받는 약자의 집단에 자신을 ‘소속’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일종의 정치적 귀향으로서 ‘노예’에게도 집이 있다는 (잠시지만) ‘안도의 정치’인 것이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사회적 약자의 정체성이 기존의 자본주의 사회나 가부장제 사회와는 다른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의 정체성은 국가를 중심으로 정치를 사유하지 않으면서도 사회를 민주화하는 과정을 낳는다. (216쪽)

‘피해’를 여성의 본질로 받아들인다는 것
삶도, 투쟁도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성은 남성과의 차이를 깨달은 ‘다음 날’ 여성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이때 차이와 이로 인한 문제를 남성적인 방식으로 봉합하기 시작하면, 정체성의 정치는 타락하기 시작한다. 여성 정체성의 정치가 빠지기 쉬운 함정에 걸려든다면, 즉 피해는 여성의 본질이며 여성은 피해자로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여성은 또다시 보편성(uni-versal)으로 묶이게 된다. 이것이 페미니즘 사상사에서 ‘백인 중산층 페미니즘’이 그토록 비판받았던 이유이다. (218쪽)

모든 여성은 ‘여성’으로서 동일한가?
여성들은 당연히 동일하지 않다. ‘우리’는 여성인 동시에 인간임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경우에는 여성이기보다는 흑인이거나 노인이거나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젠더 시스템은 1) 개인을 남녀로 분리하고 2) 남성과 여성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하며 3) 같은 성별끼리는 같은 속성(남성성, 여성성)을 공유한다는 규범을 전제한다. 이것은 차별을 위해 차이를 만드는 것이며, 가부장제가 인간을 필사적으로 남녀로 구별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저항하는 페미니즘은 여성들 사이의 다름과 같음을 논의한다. “차별은 나쁘다. 하지만 차이는 인정되어야 한다. 다양성이 중요하다.”라는 평등주의는 차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차이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차별이라는 점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215쪽)

타자와 연대할 것인가, ‘피해자’가 될 것인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은 피해자일 때만 주체가 된다. 여성은 피해자 정체성에 매력과 유혹을 느낀다. ‘피해자다움’은 가부장제가 원하는 여성의 중요한 성 역할이다. 물론, 피해자화는 여성의 불가피한 생존 전략이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여성은 피해자성을 자원으로 삼거나 그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다. 여성이 타자화, 피해자화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이제까지 온존한 생존이 가능했을까. …… 그렇지만 피해자성을 중심에 둔 페미니즘은 타자와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인간 고통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보고, 나의 고통을 타인이 빼앗아 간다고 생각한다. 남성은 ‘권리’를, 여성은 ‘고통’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때 사회적 약자에게 주어진 ‘선택’은 두 가지이다. 타자와 연대할 것인가, 아니면 지배 세력이 원하는 피해자가 될 것인가. (224~225쪽)

구매가격 : 8,780 원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도서정보 : 권김현영, 루인, 엄기호, 정희진, 준우, 한채윤 | 2023-07-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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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다움’에 대한 강박에 쫓기며
여성 혐오로 불안을 달래는
한국적 남성성에 대한 전방위적 탐구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은 ‘보편’이자 유일한 ‘인간’이다. 남성성은 여성성을 비하함으로써 성립된다. “계집애 같다” “너 게이냐?” 같은 말이 남자들 사이에서 욕으로 쓰이는 것은 여성이나 퀴어가 남성성이 없거나 부족한, 열등한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진정한 남자로 인정받으려면 남자다운 몸, 남자다운 성격, 남자다운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 그 남자다움의 신화가 깨지고 있다. 혼자 가정을 책임지는 가부장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많은 젊은 남자들이 역차별의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일베’나 남초 커뮤니티에서 사이버 마초로 변신해 현실과 멀어지고 있다. 전통적인 남성의 역할은 할 수 없거나 하고 싶지 않지만 전통적인 지위는 유지해야겠다는 비합리적 사고. 이런 어긋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가부장 없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주의에 필요한 새로운 전략은 무엇인가?

성 문화 연구 모임 ‘도란스’의 두 번째 책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에는 각기 다양한 지적 배경에서 당대 한국 남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공하는 여섯 편의 글이 실려 있다. 필자들은 한국 남성의 현재를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남성다운 몸 ․ 심리 ․ 문화는 현실이 아닌 규범이자 신화임을 밝힌다. 일제 강점기 이광수와 김유정과 이상 같은 남성 작가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식민지 남성성’의 기원을 확인하고, 그동안 남성성의 목록에서 지워졌던 레즈비언과 트랜스남성(female-to-male)의 남성성을 분석함으로써 기존의 남자다움의 규범을 해체하고 동시에 남성성에 대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남성성의 위기와 가부장제의 쇠퇴에 관한 담론은 페미니즘의 주요 관심사이다.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적 경제 위기가 심화된 결과, 근대적 남성성의 핵심인 생계 부양자로서 남성의 역할은 불가능해졌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중산층을 포함한 대부분의 가정 경제는 외벌이로 지탱할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고개 숙인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며 자란 아들들은 이제 더는 여자를 먹여 살리는 것을 남자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사회가 원하는 성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여전히 남성으로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는 남성으로서 성 역할이 점점 불가능해졌는데도 남성으로서 지위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한국 남성의 현재를 다각도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이 책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젠더 연구로서 남성성을 분석하는 인식론과 방법론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 책의 필자들은 남성성과 관련한 신체, 심리, 문화는 실재가 아니라 규범이자 신화라고 본다. 또한 페미니즘이 여성을 여자다움에서 벗어나도록 하여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게 하는 이론이라면, 남성 역시 남자다움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사상이며 그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데 동의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기존의 남자다움의 규범을 해체하는 동시에, 남성성에 대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고자 했다.
- <들어가는 글>(권김현영) 중에서

‘한국 남자’는 어쩌다 욕설이 되었나?
― ‘남자의 위기’ 담론과 ‘남자다운 남자’의 허상을 넘어,
한국의 지배적 남성 문화를 분석하는 새로운 인식론과 방법론

인류 역사상 남성은 언제나 인간 보편이자 ‘일반’이었고 여성은 항상 보편의 ‘특수’로 존재해 왔다. 여성은 ‘여비서’ ‘여교사’ ‘여기자’처럼 ‘여성’이라는 특수의 위치를 드러내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남성은 노동자, 시민, 유권자, 청년으로 불리며 보편을 대표해 왔다. 보편이 아니기 때문에 잊히고 묻힌 여성의 목소리를 복원하고 재해석하는 것이 여성성 연구의 한 방식이라면, 남성성 연구는 이와 다른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는 바로 그러한 남성성 연구, 특히 한국 남성성 연구의 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책이다. 권김현영, 루인, 엄기호, 정희진, 준우, 한채윤 6명의 필자들은 역사와 문화를 넘나들고, 문학과 철학, 인류학을 바탕 삼아, 한국적 남성성의 기원에서부터 오늘날 전통적 남성성과 변화한 현실 사이에서 분열하는 남성들의 모습까지 한국 남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한다. 나아가 보편이 아닌 차이로서 ‘남성성들’의 목록을 다시 설정하고자 한다.

<한국 남성의 식민성과 여성주의 이론>(정희진)은 이른바 ‘남자답지 못한 남자’가 여성을 더욱 억압하는 종속적(주변적) 남성성, ‘식민지 남성성’에 대한 시론이다. 여기서 정희진은 먼저 근대 자유주의부터 후기 구조주의까지 ‘남성성’을 분석하는 기존 여성주의 이론들을 명쾌하게 정리한다. 그리고 이러한 서구의 이론으로는 한국적 남성성을 제대로 해명할 수 없음을 지적하면서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시대 정신’이자 문화 권력으로서 ‘식민지 남성성’에 주목한다.
한국의 지배적 남성 문화의 성격을 ‘식민지 남성성’으로 규정하는 정희진의 글에 이어 권김현영은 <근대 전환기 한국의 남성성>에서 바로 그 ‘식민지 남성성’의 역사적 기원과 구체적인 내용을 밝힌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근대 전환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조선에 남성과 여성에 대한 성별 이분법적 담론이 등장한 배경과, 근대적 의미의 보편적 개인이 될 수 없었던 식민지 남성의 위치를 고찰한다.
<남성 신체의 근대적 발명>(루인)은 세계사와 20세기 한국사를 넘나들며 ‘남자다운 몸’, 즉 음경을 중심으로 한 신체적 ‘남성성’의 규범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한 ‘근대 남성 신체 발명기’이다. 한국의 경우, 특히 1960년대 이후 박정희 정권의 산업 발전과 군국주의 기획의 일환으로서 ‘남성성’이 관리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것은 징병 신체 검사의 항목들과 트랜스젠더퀴어에 대한 억압에서 잘 드러난다.
<보편성의 정치와 한국의 남성성>(엄기호)은 신자유주의 이후 새롭게 등장한 한국적 남성성의 양상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분석한다. 성차별적 현실에 맞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여성들에게 남자도 피해자라며 항변하고 스스로 ‘찌질함’을 내세우는 젊은 남성들이 나타났고, 그러자 이들을 비판하며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남성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이성애 제도와 여자의 남성성>(한채윤)과 <트랜스남성은 어떻게 한국 남자가 되는가>(준우)는 흔히 남성성이 없거나 부족한 존재로 여겨지는 레즈비언과 트랜스남성의 남성성 문제를 분석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남성성’의 실체를 거꾸로 재구성하게 도와준다. 한채윤은 풍부한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삼아 레즈비언에 대한 편견(“레즈비언은 남자를 혐오하거나 선망해서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핵심에 남성성은 남자만 소유한다는 관념이 있음을 논리적으로 규명한다. 한채윤의 글이 ‘여자의 남성성’을 설명한다면, 준우의 글은 ‘평범한 남자’가 되고 싶어 하는 트랜스남성의 욕망을 분석한다. 특히, 준우의 글은 다섯 명의 트랜스남성들과 심층 면접 인터뷰를 통해 당사자의 언어를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 남성의 식민성과 여성주의 이론
- 정치적 제도로서 ‘남성성’과 한국의 남성성에 대하여

남자는 어떻게 ‘남자다움’이라는 속성, ‘남성성’을 체화할까? 한국 남성과 미국 남성의 ‘남성성’은 같을까, 다를까? 다르다면 왜, 어떻게 다를까?
이 글에서 정희진은 권력 관계이자 정치적 제도로서 ‘남성성’의 의미를 살피고 서구 여성주의 이론의 남성성 연구 역사를 간결하게 정리한다. 그에 따르면, 서구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존 여성주의 이론으로는 식민 지배를 겪은 한국의 남성성을 제대로 규명할 수 없다. 자신을 ‘강대국 남성’과 ‘한국 여성’에게 동시에 당하는 이중의 피해자로 여기는 ‘식민지 남성성’에 대한 고찰 없이는, 성 평등을 두고 한국 남성들이 보이는 전반적인 문화 지체 현상과 온라인의 혐오 문화를 제대로 분석하고 논의할 수 없다.

‘남성다움’, ‘여성다움’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말할 것도 없이 남성다움, 여성다움이라고 생각하는 인간 속성(‘합리적인’, ‘감성적인’…)은 동일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성별을 불문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남성다움/여성다움이라는 표현을 수시로 사용하지만, 그런 현실은 없다. 실재냐 부재냐의 문제가 아니라 유동적이고 임의적이라는 의미다. …… 여성주의는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의 위계와 차별을 주로 비판하지만 이는 비장애인, 성인, 이성애자에게만 적용되는 특권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장애인이나 노인에게 성별성은 정상성을 향한 욕망일 수 있다. 최근에는 분리 설치된 경우가 많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장애인 화장실은 남녀 공용이 많았다. 이는 성별 구분을 전제로 하는 사회에서 장애인은 성별이 구분되지 않는 ‘인간에 미달하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43~44쪽)

‘남성의 위기’와 ‘여성 상위’라는 거짓말
어느 시대나 지배적 남성성의 핵심 요소는 앞 시대의 남성성과 겹치거나 재구성되고 재결합된 인용의 결과들이다. 남성 권력은 남성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진단하고 정의를 내리며 경계를 만드는 힘(boundary setting)을 의미한다. 각각의 남성성들은 상호 배반하거나 불일치하고 양립하지 못하는 것들이 모순적인 짝을 이룬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남성성의 변화나 대체가 남성 권력의 쇠퇴나 변질은 아니라는 점이다. 어느 시대에나 출몰하는 ‘남성의 위기’ 담론은 바로 이러한 다양한 남성성 중 하나가 다른 남성성으로 교체될 때 나타나는 남성 문화의 반응인데, 젠더 이분법에서는 이를 ‘여성 지위 향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생산 양식의 변화에 따른 남성 내부의 차이로 ‘대세’ 남성성의 이미지가 바뀐 것인데, 남성 사회는 이를 ‘여성 상위’라고 주장한다. (48쪽)

남성도 피해자일까?
가부장제 사회에서 강한 남성은 ‘조작된 이미지’이므로 남성도 피해자일까? 요점은 피해자냐 피해자가 아니냐가 아니다. 남성들은 계급과 상관없이 자신의 문제점에 대한 변명과 해결의 논리가 있다. 괴로운 일상의 원인은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남성 때문인데, 여성들에게 문제를 전가한다. 개인적으로 문제가 생길 때는 남성 연대를 활용한다. …… 남성은 자신도 남성성의 피해자라고 주장하지만, 그리고 그러한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만, 스스로 남성 문화를 바꾸는 사회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은 서구의 경우 극소수이고 한국에는 없다. (55, 56쪽)

식민지 남성성 – 강대국 콤플렉스와 자국 여성 착취
한국 남성은 역사상 한 번도 외세와의 관계에서 한국 여성을 보호한 적이 없다. 더 중요한 문제는 자신이 소유한 여자를 적에게 빼앗긴 자존심의 상처를 다시 한국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나 구타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혹은 한국 여성에게 이러한 자신을 위로해주어야 한다고 강요한다.(많은 ‘군 위안부’ 여성들이 일제의 만행‘보다’ 해방 후 귀국하여 당한 가족 내 따돌림과 남편의 구타가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한다.) …… 식민지 남성성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성별과 정체성 등 존재의 모든 이슈를 강대국과의 관계로만 환원하는 논리다. 미국을 대타자(the Other)로 설정하고 자신의 모든 문제는 그들 때문이라는 전가와 투사의 메커니즘이다. 따라서 한국 남성은 미국 남성과 한국 여성에게 ‘당하는’ 이중의 피해자다. (63, 64쪽)

근대 전환기 한국의 남성성
- 제국주의 남성성과 식민지 남성성의 위치

권김현영에 따르면, 오늘날 한국 남성의 ‘남성성’은 근대 전환기부터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형성되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근대 전환기에 남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남자다움이란 결국 ‘어떤 남자와 동일시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런데 식민지 조선의 남성들에게는 동일시할 만한 대상이 없었다. ‘조국’이 사라졌으므로 본받을 ‘아버지’도 없었고, 그렇다고 스스로 새로운 근대 국가 건설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리하여 식민지 남성들은 피지배 상황에 놓인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제국 일본의 남성성에 자신을 동일시하려고 시도하거나, 식민 지배 상황을 안정화하려는 제국 남성들과 공모해 일본 여성과 혼인을 꿈꾸거나, 식민지 조선 여성에게 기생해 살아가면서 그러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 권김현영은 이광수 · 채만식 · 이상 · 김유정 등 식민지 조선 문인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식민지 남성성의 형성 과정을 들여다본다.

근대 전환기 식민지 남자들의 처지
식민지 조선의 소년, 청년, 혹은 ‘모던보이’들에게 남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모던보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하다시피 식민지 조선 남자라는 위치는 조선의 아버지들과의 단절과 함께 근대 문물을 가져온 제국의 남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각되고 각인되었다. 귀족의 기사도를 승계하면서도 그것을 부르주아지의 규범 속에 다시 새겨 넣는 과정을 거쳐 아버지-아들 간의 적대적 동일시와 승화를 이루어냈던 서구와는 달리, 식민지 조선의 남성성은 어떤 것도 승계할 수 없고 어떤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78쪽)

1920년대 식민지 남자에게서 2017년 ‘한국 남자’를 보다
김유정은 1928년 일개 학생 신분으로 당대의 스타였던 박녹주를 일방적으로 쫓아다니는 기행을 일삼는다. 해방 후 결성한 여성국악동호회의 초대 회장이기도 했던 박녹주는 당시를 회상하며 김유정의 구애 사건이 이상스러우리만큼 자세하게 장안에 요란히 퍼졌다며 의아해하는데, 그가 밝힌 김유정의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신이 무슨 상감이나 된 듯이 그렇게 고고한 척하는 거요. 보료 위에 버티고 앉아서 나를 마치 어린애 취급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하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당신을 사랑할 것이오. 당신이 이 사랑을 버린다면 내 손에 죽을 줄 아시오…….” …… 내내 섹스를 졸라대다가 끝내 거절하면 저주를 퍼붓고야 마는 ‘한국 남자’에 대한 ‘고발’들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모습이다. (88, 89쪽)

“아아 님은 갔습니다” - 제국의 남성 앞에서 ‘여성’의 위치에 선 남자들
식민지 남성성은 여성의 위치를 타자화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여성의 위치를 점유하여 자신의 위치를 피해자로 정한 후, 피식민지 여자들을 피식민지 남자들을 위한 ‘자원’으로 만든다. 한국의 식민지 남성성은 피해자이자 약자로서 위치를 점유하며 자신을 ‘여자만도 못한 존재’라고 자기 비하를 일삼는 습관이 있다. 여자에게 기생한다며 처지를 비관하는 피식민지 남자는 남자가 아닌 자, 즉 여자가 된다. 이때 이중으로 비하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여자이다. 여자의 목소리를 빌려 “아아 님은 갔습니다.”라고 노래하면서 식민 상황에 놓인 남성들의 곤경을 숨기는 모습은 식민지 남성성의 핵심적 표상이다. 식민지 남성성은 자신을 여성화함으로써 식민주의자 남자들과의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점을 부인하고, 여성이라는 정체성 자체를 결핍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95, 96쪽)

남성 신체의 근대적 발명
- 외과 의학과 군대를 통한 ‘남성’ 몸 만들기

루인의 글은 근대적 남성 신체가 발명되어 온 과정을 세계사와 한국적 적용이라는 차원에서 두루 살핀다. 이를 위해 먼저 근대 유럽에서 외과 의료 기술을 통해 ‘남성성’이 구성되는 과정을 살피고, 음경과 ‘남성 몸 되기’의 관계를 인터섹스의 경험을 중심으로 탐구한다. 인터섹스는 의료 규범상 여자의 몸이나 남자의 몸에 부합하지 않거나, ‘여성의 생물학적 특질’과 ‘남성의 생물학적 특질’이 섞여 있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명칭이다.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병역을 위한 신체 검사가 ‘남성 몸 만들기’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것이 ‘남성성’을 구성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인한다.

보편이 된 백인 남성의 몸과 열등한 몸의 발명
(젠더화된) 인종 발명과 인종 간 해부학적 차이의 발명은 19세기 초반과 중반 아프리카 부시족 여성을 우리에 가두고 전시한 사건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흑인을 비롯한 비(非)백인을 노예로 매매하고 비백인이나 장애인과 같이 백인 남성과 ‘다른’ 몸을 쇼 무대에 올려 전시하던 그 시기에, 부시족 여성은 현생 인류로 진화하기 이전 단계의 인류로 전시되었다. 유럽인은 이 여성을 비유럽 지역의 ‘기이함’, ‘낯섦’, ‘미개함’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 차이를 발명하고 증명하기 위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의료 사기는 인종 차이를 해부학적 ․ 과학적 사실로 만드는 데 공헌했다. 기준과 규범은 백인 남성의 몸이(었으)며, 그 외의 몸은 과학적으로 ‘다른’, 열등한 몸이 되었다. (119쪽)

외부 성기로 증명하는 ‘남성의 몸’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 의료 기술, 의학의 기준을 통과한다. 흔히 진짜 여성 혹은 남성이라 불리는 젠더 범주 역시 출생 당시 의사의 승인을 거쳐 여성이나 남성으로 지정된다. 때로 인터섹스로 인지된다고 해도 서둘러 여성 아니면 남성으로 지정되고 그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해진다. 그러니 의료 기술 기획을 통과하지 않는 섹스-젠더는 없으며 외과 기술로 가공되지 않는 인간은 없다. ‘내’가 외과 기술을 거치지 않은 ‘남성’이라면 이 말은 신생아일 때 의사가 ‘나’의 외부 성기 형태를 힐끗 본 다음 적절한 크기라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즉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남성’(혹은 젠더)이란 의학이 보증하는 남성인 동시에 생물학이나 의학을 통해 제대로 확인/검사하지 않은 남성/몸이다. (134, 135쪽)

군사 정권의 ‘국민’ 관리, 그리고 남성성
(박정희 군사 정권) 체제의 또 다른 주요 목적은 남성성 관리였다. 군인인 남성을 만들기 위한 기획의 일환으로 주민 등록 제도를 시행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구체적으로 어떤 몸을 군인으로 승인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즉 어떤 몸이 국민국가를 대표할 수 있고 근대적 남성성을 재현할 수 있는지 가려야 했다. 주민 등록상 남성으로 분류되는 이들 모두가 군대에 가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제한된 이들만 군대에 간다. 즉 남성 내에선 특권층에서 배제되지만 남성/비남성 위계에선 특권적 지위에 있는 남성이 군대에 간다. 군 입대는 특권층은 아니지만 비남성도 아닌 위치의 남성을 표지하는 방식이다. (140~141쪽)

보편성의 정치와 한국의 남성성
- ‘루저’와 ‘남성 페미니스트’의 탄생

2016년, 폭력과 살인으로 이어지는 여성 혐오에 맞서 20~30대 여성들이 공론의 장에 나서자, 남자도 피해자라고 항변하는 남성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이 ‘찌질하다’고 고백하면서 이제 남자는 기득권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 남성들을 비판하는 또 다른 젊은 남성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면서 인권이라는 보편의 언어로 ‘찌질한 남성들’을 비판했다. 엄기호는 ‘찌질한 남성’과 ‘페미니스트 남성’ 둘 다 이전 세대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이라는 데 주목하고 두 남성성의 등장 배경과 의미를 탐구한다.

기득권자 대 피해자
과거라면 자신이 찌질하다는 것을 감추려 하거나 찌질함마저 남성다움(manliness)의 일부로 과시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찌질함을 남성다움의 일부로 과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이 시대의 보편적 남성성(masculinity)이라고 정의하며 자기 이야기를 한다. …… 이들이 남성은 이제 기득권자가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은 자신들의 ‘경험’에 근거한 ‘사실’이다. 그리고 과거의 남자라면 자기가 여자에 비해 손해를 본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남성다움을 훼손하는 것이라 감추겠지만 자신들은 더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 식으로 남성다움을 과시하는 것은 아무런 실익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 이들은 과거의 남성 기득권자 마초와 동일하지 않은 존재다. (157~159쪽)


평등의 문 앞에서 엎어지다 - ‘찌질이’라는 속물
연애든 결혼이든, 그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은 이미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임계치를 넘어섰다. 나누지 않는다면 관계는 유지될 수 없으며, 관계를 유지하려 하는 한 그 당사자들은 끊임없이 계산하고 배분하고 함께 짊어지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나약하고 힘과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인정이 남성들의 세계에서는 남성성의 거세, 혹은 수치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들은 머뭇거리고 웅얼거리고 투덜거리거나 ‘거래’를 요구 ― 내가 모든 여행 경비를 제공했으니 당일에 올라가자고 말하지 말라는 식으로 경제와 섹스를 교환할 것을 요구하는, 지루할 정도로 전통적인 방식 말이다. ― 하는 것으로 만회하려다가 찌질이로 낙인찍히고 만다. (171쪽)

‘페미니스트 남성’들에게 묻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선언하는 남성들이 있다. 이들은 국민국가의 틀에 갇혀 특수성을 강조하는 모든 언어를 야만적이고 후진적인 것이라 공략하면서 낙후시키려 한다. 흥미롭게도 ‘피해자’ 남성들의 언어가 ‘자기 연민’적이라면 이들의 언어는 ‘자기 확신’적이다. 이들이 이렇게 자기 확신을 할 수 있는 것은 페미니즘이 사회적 약자의 언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보편적 언어이기 때문이다. 즉, 보편성에 대한 확신이다. …… 정희진과 권김현영에 따르면 여성주의는 남성들이 독점한 보편성의 언어에 저항하며 지식의 맥락성과 국지성을 강조한다.(물론 이때의 맥락성과 국지성은 국민국가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위치에 대한 강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의 여성주의는 보편과 쉽게 화해할 수 없다. 보편의 헤게모니와 당파성을 질문하는 것이 여성주의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183, 184쪽)

이성애 제도와 여자의 남성성
- 레즈비언의 ‘남성성’은 가능한가

한채윤의 글은 레즈비언의 남성성에 주목하여 남성성의 개념을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본다.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레즈비언은 남성 혐오증이 있어서 남자 대신 여자를 사귀는 여성이거나, 남자를 강하게 선망하여 남자 흉내를 내며 다른 여자와 사귀는 여자라는 인식이 강하다. 즉, “정상적인 여자라면 당연히 이성애를 하는데, 레즈비언은 남자를 혐오하고 선망하는 삐뚤어진 욕망으로 인해 본능을 거스르는 존재”라는 것이다. 한채윤은 레즈비언의 남성성 분석을 통해 이성애 성 규범에 포섭되지 않는 여성이 존재할 수 있으며, 여자에게도 남성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남성성의 확장을 시도한다.

남성에 대한 혐오와 선망이라는 착각
레즈비언이 남성성을 모방하거나 혐오한다는 분석에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깔려 있다. 첫째, 원래 여자에게 남성성은 없다. 남성성은 남자만의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남성성이 없는 여성은 바로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해 본능적으로 남자에게 끌린다. …… 그런데 선입견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질문해보면 비논리적인 면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여자에게는 남성성이 정말 없을까? 아니면 없어야만 하는 것일까? 만약 어떤 여자에게 남자만큼의 남성성이 있다면 그 여자는 여자가 아닌가? 여자는 왜 굳이 남성성의 결핍을 메꾸려고 하는가? (188~189쪽)

부치와 트랜스남성의 남성성
남성성은 생물학적 성별에 부착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서 만들어지는 개념이다. 자신이 남자로 태어났거나, 자신의 성별을 남성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남성성이 저절로 내면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다. 부치(butch)와 트랜스남성은 남성성이 얼마나 쉽게 복제 가능하고, 변용 가능한지, 그래서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되며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생물학적 남성이 아니어도 남성성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은 섹스와 젠더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199쪽)

여자와 남자, 동성애와 이성애… 모든 이분법을 넘어
우리는 여자와 남자는 서로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런 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 동성애 역시 이성애와 다를 바 없는 사랑이라도 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성애를 일컬어 동성애와 다를 바 없는 사랑이라고 하지 않는다.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에게 동성애도 정상임을 설명하려고 이성애와 동성애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순간, 이성애는 아무런 검토나 증명 과정 없이 ‘정상’이 된다. 그래서 동성애와 이성애의 유사함이 강조될수록 오히려 동성애자의 실체는 희미해지는 것이다. …… 차별은 차이로 인해 자연 발생 하는 것이 아니며, 평등은 그 차이에 대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해석에서만 실현 가능하다. (209, 210쪽)

적정량의 남성성은 얼마만큼인가?
남성성과 이성애를 동일시하는 이성애자 남성들은 레즈비언을 남성성이 과잉된 여성으로, 게이를 남성성이 결여된 존재로 다룬다. 그렇다면 과잉이나 결여가 아닌 ‘적정량’의 남성성이란 과연 얼마만큼일까? 왜 남성성은 이토록 쉽게 과잉되거나 결여될 수 있는가? 게이 커플의 사랑을 아름답게 그린 드라마를 보고 자신의 아들이 게이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이성애자 부모’들은 왜 그런 걱정에 사로잡힐까? 이성애는 자연의 질서이고 남성성은 타고난 것이라 확신하면서도 왜 그토록 쉽게 허물어질까 봐 두려워하는 것일까? (212쪽)

트랜스남성은
어떻게 한국 남자가 되는가
- 트랜스남성의 ‘보통 남자’ 되기

준우의 글은 트랜스 남성 다섯 명을 직접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트랜스남성의 남성성을 고찰한 것이다. 필자는, ‘여성으로 살았던’ 경험을 가진 트랜스남성들 중에 한국 보통 남성들의 남성성, 이른바 ‘한남’의 남성성과 거의 다를 바 없는 마초 같은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많은 것에 의문을 품고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인터뷰에 따르면, 트랜스남성들은 한국 사회에서 남자로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특별함, 즉 차이를 지우고 ‘보통 남자’로서 확인받고자 한다. 그렇다면, 트랜스남성들이 지향하는 ‘평범한 남자’란 대체 누구인가? 트랜스남성들의 욕망과 남성성의 수행 과정을 통해 ‘평범한 한국 남자’, 보편을 대표하고 여자보다 우월하다고 간주되는 남성성의 정체가 드러난다.


‘남성 되기’의 전제 조건 - ‘여성’의 흔적 지우기
트랜스남성은 남에게서든 자기 자신에게서든 끊임없이 “너 여자 아냐?”라고 의심하는 질문에 그렇지 않음을 입증해야 하는 삶을 산다. 트랜스남성은 여성이었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지 자신을 더욱 엄격히 검열한다. 이들은 어린 시절에 여성으로 양육된 경험이나 여학교에 다닌 경험 등 ‘여성으로 살았던 경험’을 전부 부정하지 않는다. 사실, 그 경험은 완전히 버리고 싶더라도 끝내 버리지 못하는 무언가로 남는다. 여성으로 살았던 과거를 간직한 채, 현재의 자신을 다른 남자들 사이에서 튀지 않고 평범하게 보일 남성으로 정체화하기 위해 애쓰는 점이 트랜스남성성의 큰 특징이다.
(218~219쪽)

남성 간 유대 관계에서 ‘남성 되기’
인철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숙소에서 공동 생활을 한다. 그에게 회사 기숙사는 남성성을 재사회화하기 좋은 공간이다. …… 자위 경험 공유, 성적 능력 과시, 여성의 대상화 등은 남성 집단을 끈끈하게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남성끼리 나누는 ‘몇 명과 자봤다’, ‘하룻밤에 몇 번을 사정했다’, ‘내 물건은 크고 굵어서 상대 여자가 힘들어 죽는다’ 따위의 말 상당수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다. …… 트랜스남성들은 페니스가 없다는 것을 집단 내 위계에 소속됨으로써 보상받는다. 위계 서열에 소속되는 것은 업무 능력을 향상시키고 인맥을 유지하는 중요한 생존 수단이 됨과 동시에, 남성 중심 사회를 유지하고 구성하는 데 기여하는 일원의 자격, 즉 평범한 성인 남성의 위치라는 사회적 남근인 지배적 남성성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223, 224쪽)

낭만이자 권력인 남성의 ‘몸’
이상적인 남성성은 정치적 맥락을 포함하는 개념이며, 사회적 담론이 변하면서 계속 바뀐다. 그래서 남성성은 그 누구도 100퍼센트 이행할 수 없다. 그렇지만 열등한 위치에 있는 남성 집단일수록 더 강하게 이상적이고 규범적인 남성의 이미지를 획득하고 실천하기를 열망한다. 이때 남성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지를 판별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몸이 규범에 적합한지, 즉 얼마나 남자다운 몸을 갖추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따라서 다수의 트랜스남성은 몸의 상태가 규범적 남성의 이미지, 즉 보통 남성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남성 되기의 척도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들은 의료적 조치(호르몬 투여, 가슴 제거 수술, 생식 능력 제거, 페니스와 고환의 외형을 만드는 수술 등)를 통한 트랜지션(transition) 과정을 선택한다. (2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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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수기

도서정보 : 백신애 | 2023-07-0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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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 연재됨 (1938년).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하고 온 남편은 주의자가 되어 가정을 돌보지 않다가 어떤 여성과 바람이 난다. 화자인 아내는 이중적인 남편의 행태에 분노하며 하나님께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고통에 찬 가정생활을 버릴 수 없는 주인공의 분노와 한이 잘 표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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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 이효석 | 2023-07-0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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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슴을 살다가 주인의 오해를 사 쫓겨난 중실은 산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벌을 치고 노루를 잡으며 만족한 생활을 하는 중실은 이제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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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지

도서정보 : 김유정 | 2023-07-0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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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일보』(1935. 3. 2–9)

꽁보와 더팔이는 잠채(潛採)꾼으로, 금전판 등을 떠돌면서 살아간다. 꽁보는 동료와의 싸움에서 죽을 뻔한 자기를 구해준 더펄이와 의형제 같은 사이이다. 하지만 결국 이들은 발견한 금 앞에서 서로를 불신하고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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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와 살육

도서정보 : 최서해 | 2023-07-0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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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는 어머니와 처자식을 부양하면서 극도로 빈궁하게 살아간다. 산후풍에 시달리는 아내를 보다못한 경수는 최의사에게 사정하여 아내가 침을 맞게 하지만, 의사는 혹독한 대가를 요구한다. 그나마 약국 주인 박주사는 약도 지어주지 않는다. 극도의 빈궁에 몰린 경수는 결국 가족을 몰살하고 밖으로 뛰쳐나와 닥치는 대로 살인을 저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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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정원

도서정보 : 서영채 | 2023-06-2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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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고 존경스러운 것을 사랑하는 것은 쉽고도 쉬운 일이다.
경멸의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사랑, 진짜 윤리이다.”

인간과 문학과 시대를 거듭 끌어안는 우정으로서의 문학-장(場)

문학평론가 서영채의 네번째 평론집 『우정의 정원』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2012년 세번째 평론집 『미메시스의 힘』 이후 꼬박 10년 만의 신작 평론집이다. 한국문학장의 든든한 버팀목과 같은 존재이자, 다정한 목소리로 인문학의 세계로 인도하는 길잡이이기도 한 평론가 서영채. 그가 앞장서서 불을 밝히고 또 헤쳐 나간 문학의 궤적이 동시대 한국문학의 이정표가 된다는 사실은 이제 자명해 보이기까지 한다. 논리는 가볍게, 느낌은 단단하게, 문장은 부드럽게. 과연 ‘서영채라는 수사학’이라고 명명해도 좋을 그의 특장의 글쓰기는 문학을 닮아 그리고 글쓴이를 닮아 여전히 품이 넓고 나긋나긋하다.
이번 책의 제목 ‘우정의 정원’은 에피큐리언들의 공동체를 지칭하는 ‘케포이필리아(Kepoi-philia)’에서 왔다. 이는 “낙천적인 유물론자들의 생활공간”이자, 이곳에서의 우정은 “함께 농사지으며 지식을 몸으로 탐구하는 공동체의 공기”(517쪽)를 뜻한다. 그의 표현을 빌려 “한 발 더 나아가자면” 지난 30여 년간 서영채가 만들고 쓴 수많은 ‘지음’ 속에서 만난 이들이 모두 우정의 상대였음을, 그들과 만나 함께 축성해나간 장(場)의 또다른 이름이 바로 정원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잎과 가지가 무성한 아름드리 거목에서부터 연둣빛 잎을 피우기 시작한 어린나무에 이르기까지. 서영채가 10년에 걸쳐 가꾼 이 우정의 정원 속에는 고유한 아름다움을 제각기 품은 문학의 결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편지 말미에, 제게 주신 우정이라는 단어가 감사했습니다.
곰곰이 헤아려보니, 우정 옆에 있게 될 단어들이 제법 소복하더군요. 친구, 벗, 동료, 동지. 그러니까, 같이 노는 사람, 마음을 나누는 사람, 일을 함께하는 사람,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네요.
에피큐리언들의 공동체 ‘케포이필리아’, ‘우정의 정원’은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낙천적인 유물론자들의 생활공간이죠. 여기에서 우정은, 함께 농사지으며 지식을 몸으로 탐구하는 공동체의 공기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몸은 비록 시장에 있으나 마음으로 마시는 공기는 그 들녘의 것입니다. 우정이라는 단어가 문학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순간입니다. _「우정의 정원」(본문 중에서)

“역사가 공동체적 기억의 기록이라면, 문학은 한 공동체의 마음의 기록이다.”

논리는 가볍게, 느낌은 단단하게, 문장은 부드럽게
날카로움보다 더욱 깊이 파고드는 부드러움의 힘

『우정의 정원』은 총 4부로 구성되었다.
이 책의 1부는 세계문학-고전의 가치를 조망하는 작업을 시작으로, 이 책에서도 가장 힘있고 야심찬 글로 채웠다. 「1990년대, 시민의 문학」은 ‘형용사-문학’, 즉 “문학이라는 단어를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로 사유하는 것” “중요한 것은 문학이 아니라 문학적인 것”(47쪽)이라는 서영채의 문학관을 집약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장이다. 더불어 「충동의 윤리」는 김윤식이라는 한국문학사의 한 문제적 인물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분석하는 동시에 헌사로까지 뻗어나가는 역작이다. ‘쓰기-기계’에서 ‘실패한 헤겔주의자’로 가닿는 김윤식에 관한 이 깊이 있는 분석은 평론가 서영채가 오랜 시간 천착해온 ‘윤리’와도 감동적으로 연결된다.
2부는 섬세한 수사학자로서의 면모를 만끽해볼 수 있는 글들로 채워졌다. 특히 「2019년 가을, 은희경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플라톤을 경유해 은희경의 데뷔작인 『새의 선물』에서부터 근작 『빛의 과거』까지를 분석해내는 촘촘한 작가론이다. “수사학은 을들의 것”이라는, “절대적 힘을 가진 존재의 화법은 단순할 수밖에 없”(본문 중에서)다는 그의 문장-분석은 지금의 현실과 공명하는 것은 물론 문학의 존재 이유와도 이어지는 듯하다.

문학이 문학으로 자명해지는 순간, 테두리가 쳐지고 특정되는 순간, 문학적인 것은 휘발해버립니다. 고리타분해지고 진부해지는 것이지요. (…) 경계를 넘어 유동하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우리의 앎과 마음, 공감과 느낌의 영역을 넓히고 깊게 할 수 있다면, 그런 것이야말로 우리가 기려야 할 가치로서의 문학이겠지요. 그런 걸 일컬어 문학적인 것이라고, 액체 문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_「1990년대, 시민의 문학」(본문 중에서)

3부는 최은영, 백수린, 이승우, 이문구 등의 작품론에 할애했다. 특히 「순하고 맑은 서사의 힘」 「신진기예 백수린의 작가적 가능성」은 현재 한국문학장의 최전선에 위치한 두 작가(최은영, 백수린)의 첫 단행본 해설로 먼저 선보인 글이다. 더불어 「이문구, 고유명사 문학」은 이제는 전설이 된 작가의 업적을 기리는 작품론이다. “집합적인 일반명사로서의 문학이 아니라 고유명사로서의 문학” “소설과 시와 희곡과 산문 등을 모두 빼내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어떤 것으로서의 문학” “구체적 장르나 작품들이 들어서게 될 어떤 원초적인 자리로서의 문학”(365쪽)으로 정의한 ‘고유명사 문학’은 이문구의 작품을 설명하는 문장인 동시에 작가들이 닿고자 하는 또는 닿아야 할 지향점을 제시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4부는 「텍스트의 귀환」 「국학 이후의 한국문학사와 세계문학」을 필두로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을 그려보게 하는 글들이 자리했다. 끝으로 이 책의 표제작인 「우정의 정원」을 배치했다. 「우정의 정원」은 젊은 비평가인 양순모와 함께 주고받은 서신으로, ‘과도한 환대는 물론 부러 박대도 없는’ 우정의 정원을 형상화한 글쓰기에 다름 아니다. 함께 쓴 「1990년대, 시민의 문학」이자 그것의 후속으로도 읽히는 이 서신은 서영채 문학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자리에 모인, 이번 네번째 평론집을 갈무리하는 글로 전혀 아쉬움이 없다.

구매가격 : 17,500 원

범도 1

도서정보 : 방현석 | 2023-06-19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시대의 절망을 저격한 조선 최고의 스나이퍼, 홍범도
그와 함께한 포수들의 격렬하고 뜨거웠던 항일 무장투쟁의 대서사시

집필부터 탈고까지 10년
신동엽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수상 작가 방현석 필생의 역작

홍범도를 위대한 장군으로 그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나는 홍범도를 통해 한 시대의 가치가 어떻게 새롭게 출현하고, 그 가치가 어떻게 낡은 가치를 돌파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지를 알고 싶었다. _‘작가의 말’에서

6월 7일, 문학동네가 대한독립군을 이끈 홍범도의 생애와 일제에 맞선 포수들의 항일 무장투쟁을 다룬 장편소설 『범도』를 펴낸다. 6월 7일은 1920년, 3·1운동 이후 대한독립군이 일본군과 처음으로 맞붙은 대규모 전투이자 독립군이 대승을 거둔 ‘봉오동 전투’의 개전일이다. 『범도』는 신동엽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방현석이 다년간의 취재와 자료 조사를 거쳐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집필한 필생의 역작으로, 홍범도가 산짐승을 사냥하는 포수로서 산야를 떠돌다 항일 운동에 투신하여 각종 인간군상을 만나며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홍범도를 위대한 장군으로 그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라는 작가의 말대로 『범도』에는 영웅 홍범도가 아닌 엄혹한 시대에 웃고 울고 사랑하고 갈망하며 자신만의 신념을 품고 살아간 한 인간의 삶이 담겨 있다. 또한 『범도』는 홍범도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항일 무장투쟁이라는 큰 조류를 함께 만들어나간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속에는 영웅적인 면모를 보인 사람도, 비겁했던 사람도, 거대한 파도 속에서도 자신만의 삶을 지켜낸 사람도 있다. 그래서 방현석이 펼쳐 보이는 이 이야기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각각의 시대에는 각각의 어려움이 있다. 『범도』가 던지는, ‘삶 속에서 어떤 가치를 수호하며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은, 그들이 만든 지금의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독립군을 이끈 홍범도가 중앙아시아로 강제 추방당해 카자흐스탄의 한 도시에서 극장 수위로 일하다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해방 2년 전인 1943년 머나먼 타국에서 세상을 떠난 홍범도의 유해는 2021년 8월 15일 우리나라로 봉환되었다. 의병으로 활동하다 일제에 강제 해산을 당한 뒤 연해주와 만주를 떠돌며 군수품을 마련해 이윽고 대한독립군으로서 싸운 홍범도는 또 한번 이국을 떠돌다 마침내 귀환한 셈이다. 그 누구보다 온몸으로 한 시대를 살아낸 홍범도의 파란만장한 여정, 그와 함께 싸운 포수들의 항일 무장투쟁의 대서사시가 『범도』에서 장대하게 펼쳐진다.

“우리는 낫과 죽창을 들고 일어났던 농민군과 다르오.
하인을 데리고 다니며 행세하던 양반들의 의병과도 전혀 다르오.
가진 총알의 숫자만큼 적을 잡는 것이 바로 우리 포수들이오.”
_본문에서

범을 사냥하던 포수에서 조선 독립군 장군으로
총 한 자루로 외세에 맞선 홍범도의 불꽃같은 생애

대한독립운동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었다. 3·1 만세운동과 같은 비폭력 저항운동, 그리고 총을 들고 일제와 싸운 무장투쟁. 홍범도는 무장투쟁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조국을 되찾으려 했던 인물이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겨 군대가 해산된 후 조선에서 총을 가진 유일한 집단은 바로 짐승을 사냥하는 포수들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포수로 자라 범을 사냥하는 포수로 전국에 이름을 떨칠 정도의 명사수였던 홍범도는 동료의 가족들이 일본군에 몰살당하는 참상을 목격한 뒤 홀로 일본군과 싸우기 시작하고, 후에는 그를 따르는 포수들을 규합해 항일연합포연대를 구성한다. 『범도』는 그들이 일본군과 싸우다 강제로 해산당해 만주와 연해주를 떠돌고, 이후에 돌아와 대한독립군이 되어 다시 일본군과 봉오동에서 대격돌하는 순간까지를 그린다.
『범도』는 처음부터 대의를 품고 분연히 일어난 영웅이 아닌, 순진무구한 소년 사냥꾼에서 시대의 격랑에 휘말리며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홍범도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시대상을 관통하며 나아간다. 먹고살기 위해 군영에 들어가고,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동료를 위해 홀로 일본군에 복수를 감행하고, 일제의 강제 해산 명령에 궁핍한 신세가 되어 광야를 헤매는 그의 모습은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영웅과 다르다. 『범도』는 그래서 어쩌면 평범했던 한 사람이 시대 속에서 어떻게 신념을 갖게 되고 그것을 지켜나가기 위해 무엇과 싸워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혼자였던 한 소년은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차이경, 군영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남창일, 연모하고 존경했던 백무아, 전설적인 저격수 진포 등과 함께하며 비로소 ‘홍범도’가 된다.
하나 강조하고 싶은 사실은 이 책이 소설이라는 것이다. 『범도』는 역사를 바탕으로 하지만 단지 역사 속 인물의 활약을 나열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방현석은 전란의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치열했던 삶의 모습을 우리 눈앞에 생생히 그려낸다. 그래서 우리는 한반도를 비롯해 만주와 연해주를 종횡무진하는 홍범도의 궤적을 통해 당시 민중들의 삶과 거대한 독립운동의 물결을 총체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방현석이 되살려낸 개성 강한 인물들이 펼쳐 보이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강력한 읽는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이처럼 마치 한 시기를 함께 살아낸 듯 이야기에 빠져들고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소설만이 줄 수 있는 귀한 경험일 것이다.

구매가격 : 14,000 원

범도 2

도서정보 : 방현석 | 2023-06-19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시대의 절망을 저격한 조선 최고의 스나이퍼, 홍범도
그와 함께한 포수들의 격렬하고 뜨거웠던 항일 무장투쟁의 대서사시

집필부터 탈고까지 10년
신동엽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수상 작가 방현석 필생의 역작

홍범도를 위대한 장군으로 그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나는 홍범도를 통해 한 시대의 가치가 어떻게 새롭게 출현하고, 그 가치가 어떻게 낡은 가치를 돌파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지를 알고 싶었다. _‘작가의 말’에서

6월 7일, 문학동네가 대한독립군을 이끈 홍범도의 생애와 일제에 맞선 포수들의 항일 무장투쟁을 다룬 장편소설 『범도』를 펴낸다. 6월 7일은 1920년, 3·1운동 이후 대한독립군이 일본군과 처음으로 맞붙은 대규모 전투이자 독립군이 대승을 거둔 ‘봉오동 전투’의 개전일이다. 『범도』는 신동엽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방현석이 다년간의 취재와 자료 조사를 거쳐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집필한 필생의 역작으로, 홍범도가 산짐승을 사냥하는 포수로서 산야를 떠돌다 항일 운동에 투신하여 각종 인간군상을 만나며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홍범도를 위대한 장군으로 그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라는 작가의 말대로 『범도』에는 영웅 홍범도가 아닌 엄혹한 시대에 웃고 울고 사랑하고 갈망하며 자신만의 신념을 품고 살아간 한 인간의 삶이 담겨 있다. 또한 『범도』는 홍범도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항일 무장투쟁이라는 큰 조류를 함께 만들어나간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속에는 영웅적인 면모를 보인 사람도, 비겁했던 사람도, 거대한 파도 속에서도 자신만의 삶을 지켜낸 사람도 있다. 그래서 방현석이 펼쳐 보이는 이 이야기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각각의 시대에는 각각의 어려움이 있다. 『범도』가 던지는, ‘삶 속에서 어떤 가치를 수호하며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은, 그들이 만든 지금의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독립군을 이끈 홍범도가 중앙아시아로 강제 추방당해 카자흐스탄의 한 도시에서 극장 수위로 일하다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해방 2년 전인 1943년 머나먼 타국에서 세상을 떠난 홍범도의 유해는 2021년 8월 15일 우리나라로 봉환되었다. 의병으로 활동하다 일제에 강제 해산을 당한 뒤 연해주와 만주를 떠돌며 군수품을 마련해 이윽고 대한독립군으로서 싸운 홍범도는 또 한번 이국을 떠돌다 마침내 귀환한 셈이다. 그 누구보다 온몸으로 한 시대를 살아낸 홍범도의 파란만장한 여정, 그와 함께 싸운 포수들의 항일 무장투쟁의 대서사시가 『범도』에서 장대하게 펼쳐진다.

“우리는 낫과 죽창을 들고 일어났던 농민군과 다르오.
하인을 데리고 다니며 행세하던 양반들의 의병과도 전혀 다르오.
가진 총알의 숫자만큼 적을 잡는 것이 바로 우리 포수들이오.”
_본문에서

범을 사냥하던 포수에서 조선 독립군 장군으로
총 한 자루로 외세에 맞선 홍범도의 불꽃같은 생애

대한독립운동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었다. 3·1 만세운동과 같은 비폭력 저항운동, 그리고 총을 들고 일제와 싸운 무장투쟁. 홍범도는 무장투쟁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조국을 되찾으려 했던 인물이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겨 군대가 해산된 후 조선에서 총을 가진 유일한 집단은 바로 짐승을 사냥하는 포수들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포수로 자라 범을 사냥하는 포수로 전국에 이름을 떨칠 정도의 명사수였던 홍범도는 동료의 가족들이 일본군에 몰살당하는 참상을 목격한 뒤 홀로 일본군과 싸우기 시작하고, 후에는 그를 따르는 포수들을 규합해 항일연합포연대를 구성한다. 『범도』는 그들이 일본군과 싸우다 강제로 해산당해 만주와 연해주를 떠돌고, 이후에 돌아와 대한독립군이 되어 다시 일본군과 봉오동에서 대격돌하는 순간까지를 그린다.
『범도』는 처음부터 대의를 품고 분연히 일어난 영웅이 아닌, 순진무구한 소년 사냥꾼에서 시대의 격랑에 휘말리며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홍범도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시대상을 관통하며 나아간다. 먹고살기 위해 군영에 들어가고,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동료를 위해 홀로 일본군에 복수를 감행하고, 일제의 강제 해산 명령에 궁핍한 신세가 되어 광야를 헤매는 그의 모습은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영웅과 다르다. 『범도』는 그래서 어쩌면 평범했던 한 사람이 시대 속에서 어떻게 신념을 갖게 되고 그것을 지켜나가기 위해 무엇과 싸워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혼자였던 한 소년은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차이경, 군영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남창일, 연모하고 존경했던 백무아, 전설적인 저격수 진포 등과 함께하며 비로소 ‘홍범도’가 된다.
하나 강조하고 싶은 사실은 이 책이 소설이라는 것이다. 『범도』는 역사를 바탕으로 하지만 단지 역사 속 인물의 활약을 나열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방현석은 전란의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치열했던 삶의 모습을 우리 눈앞에 생생히 그려낸다. 그래서 우리는 한반도를 비롯해 만주와 연해주를 종횡무진하는 홍범도의 궤적을 통해 당시 민중들의 삶과 거대한 독립운동의 물결을 총체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방현석이 되살려낸 개성 강한 인물들이 펼쳐 보이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강력한 읽는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이처럼 마치 한 시기를 함께 살아낸 듯 이야기에 빠져들고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소설만이 줄 수 있는 귀한 경험일 것이다.

구매가격 : 14,000 원

우리는 사랑을 발명한다

도서정보 : 김건형 | 2023-06-2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우리는 우리가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될 것이다.
더 재미있고 즐거운 언어로.”

한국문학 비평장의 게임 체인저, 김건형 첫 평론집!

문학평론가 김건형의 첫 평론집 『우리는 사랑을 발명한다』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2018년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비평활동을 시작한 지 5년 만의 첫 책이다. “이 글에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 이 글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역사적인 무엇인가가 있다고 믿기로 한 필자만이 내뿜는 에너지가 가득”(문학평론가 권희철)하다는 심사평에 값하듯, 『우리는 사랑을 발명한다』에는 왕성한 에너지와 파괴력 있는 문제작들로 넘실거린다. 그의 등단작 「2018, 퀴어 전사-前史・戰史・戰士」의 첫 문장, “한국문학은 어떤 결절점을 맞고 있는 것 같다”는 당시 한국문학장의 정확한 진단이자, 돌이켜보면 한국문학 비평장에 결절점을 창출하는 전회의 예언으로도 작용했다.
시대의 한 응답으로 당도한 ‘작품’에 정교하면서도 방대하고, 유연하면서도 힘있는 ‘비평’으로 화답하는 것은 물론, 비평 그 자체를 재정의하고 창안하는 김건형. 나아가, 차라리 사랑과 비평을 발명하는 이러한 김건형의 수행(遂行/修行)은 한국문학의 위기(로 운위되는 어떤 증상)를 매번 활기로 되돌려준다. 퀴어 페미니즘 비평으로 하여금, 때로는 준엄한 법정(court)을 열고, 때로는 역동적인 경기장(court)을 만들어 보이는 김건형의 글쓰기는 “‘문학평론’이라는, 이미 글자 생김새부터 고리타분한 모종의 글쓰기가 때로는 꽤 흥미롭고 역동적인 게임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문학평론가 오혜진)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우리’가 정치적인 주권 권력을 담고 있다면 정확히 바로 그 때문에 다른 권력을 생산하도록 (재)배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다른 당위와 다른 소속감을 생산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 우리라는 주체를 재배치하지 않고는 읽을 수 없는 문장을 만들고 싶었다. ‘우리는 사랑을 발명한다’라는 이 책의 제목은 여기에서 시작했다. 누가 우리인지, 발명해야 할 사랑은 무엇인지, 우리가 사랑할 대상과 방법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저 분석하고 해명하기보다는 수행하고 선언하고 싶었다. _「책머리에」에서


“이제 우리 차례다. 그가 멈춘 곳에서 우리는 시작하고,
우리가 놓친 곳에서 그는 출발한다.” _오혜진(문학평론가)

곤혹을 매혹으로 전유하는 퀴어링(queering)의 쓰기
퀴어 페미니즘 비평이 선보이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사랑법과 해석의 도구”

『우리는 사랑을 발명한다』는 총 4부로 구성되었다.
1부 ‘페미니즘 독자와 퀴어 비평이 지금’은 퀴어 문학사와 페미니즘 문학장/담론장에 대한 논의를 다룬 글들을 모아두었다. 「2018, 퀴어 전사-前史・戰史・戰士」는 1990년대 초부터 201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한국 퀴어 문학이 어떤 식으로 쓰이고, 해석되고, 유통되고, 변화되는지를 면밀히 분석한 한국 퀴어 문학의 ‘작은 역사’이자 ‘지도’를 그려낸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한국 퀴어 문학과 비평의 한 이정표가 된 이 글은 “퀴어와 여성의 정치적 역학이 필연적인 독해의 지평이 되었음”을 “퀴어 서사가 재현을 문제삼을 때 자신의 언어 역시 문제적임을 고려해야 할 국면”(52쪽)이 왔음을 미리감치 예고하기도 했다. 「소설의 젠더와 그 비평 도구들이 지금」은 작금의 패권적 문학(성)을 심문하고 “누구에게 무용/유용한지 의심하는 문학, 재현(비평)하는 자의 위치/권력을 다시 문제삼는 문학, 교양을 교양하는 문학”(62쪽)을 함께 도모할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
2부 ‘퀴어 서사의 미학과 테크놀로지’에는 작가론과 작품론을 통해 동시대 한국 퀴어 소설의 서사적, 장르적 고유성을 담아낼 독해 도구들을 개발하고자 하는 글을 담았다. 「‘퀴어 신파’는 왜 안 돼?」에서는 박상영의 소설을 경유하여 ‘이성애 규범적 리얼리즘 미학의 목표’의 허위를 낱낱이 버르집으며 특정한 문학성이 감춰온 젠더적 인식틀을 폭로한다. 「한국 퀴어 소설에 나타난 자기 반영적 서술 전략」에서는 자기 반영적 텍스트들의 미학적 기획을 분석하며 소설가 화자-‘나’의 수행성에 대해 모색하는 동시에 구체적인 퀴어 미학과 새로운 독해 도구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어떤 경험/재현을 선택하여 역사화하거나 미학화하는 일 자체는 비평의 과업이지만, 그러한 기획이 당대 문학/인간에게 미치는 정치적 수행성은 언제나 고려되고 갱신되어야 한다. ‘완벽한 여성성’이나 ‘완전한 퀴어성’이라는 것을 상정할 수 없다면, 문학이 어떤 경험을 미학적 원리로 세우는 일 역시 항상 임의적이고 임시적이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퀴어의 유동적인 ‘되기’를 본래적 문학성이나 시적 언어 본연의 기능과 유비하는 최근의 비평 역시 같은 위험을 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문학성을 세우기 위해서 여성적/퀴어적 범주를 도입하는 것보다는, 구체적인 텍스트와 현실의 존재들을 향해 한 발자국 나아가는 비평이 더 절실하지 않을까. 나는 그것이 지금 비평이 처한 곤혹이자 비평을 쓰는 매혹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_「비평의 젠더와 그 사적 패턴들이 지금」(본문 중에서)

3부 ‘혐오의 공간학과 사랑의 정치학’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정동이 되어버린 혐오의 현황을 짚고, 여성혐오와 계급적 불화를 다룬 소설에 담긴 감정 정치를 읽어낸다. 특히 「우리는 어디서든 길을 열지. 집게 손의 나라에서」는 ‘올바르고 중립적인 페미니즘’의 요구, 유독 퀴어 페미니즘 작품에 한해 “사상・사조 자체의 실패로 신속히 추상화하여 연대책임을 묻는” 현상에 대해 다루며 “초대장을 하필이면 어떤 퀴어에게 즐겨 발송하는 어떤 문학장에게 문제를 반송”(「지금, 인간에 대해 말할 때 일어나는 일」)하는 작업을 기민하게 수행한다. 더불어 독자들은 한국사회와 문학 속에서 무시로 발견되는 각종 혐오의 정동과 백래시가 재생산과 돌봄의 문제로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사실을 3부의 글을 통해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4부 ‘한국적 남성성의 감성 형식과 퀴어한 상상력’은 한국적 남성성이 구축하려는 자기 동일시의 윤리와 서사 미학을 퀴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젠더적, 퀴어적으로 전유하려는 시도를 모아두었다. 문학작품에서뿐만 아니라 영화 <기생충>을 통해 “스스로 박해받는 위치에 두려는 근래의 남성적 담론”(「혐오스러운 남성 신체라는 새로운 가부장의 등장과 계급 재현의 젠더 정치」)의 흔적을 읽어내고, 새로운 전략을 선취하려는 남성 주체에 대해 비평적으로 접근한다. 「한국 게이 로맨스 장르의 서사 구조」 역시 김건형의 집요함과 야심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BL 드라마 속에서 발견되는 ‘돌보는 게이’를 통해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이성애 가족 중심적 관계성과 그에 기초한 남성 젠더 모델을 해체하기 위한 정동”의 밑절미를 발견하고자 한다.

구매가격 : 17,500 원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문학동네시인선195)

도서정보 : 백은선 | 2023-06-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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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대가 없이 사랑해줄 수는 없어요?”

사랑을 위한 기초, 세계를 건축하는 행위로서의 시
인간의 세계로 내려온 천사들이 부르는 처절하고 다정한 노래

제11회 문지문학상 수상작 「비밀과 질문 비밀과 질문」 수록

2012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한 이후 첫 시집 『가능세계』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 『도움받는 기분』까지 펴내는 시집마다 한국 시의 가장 내밀한 고백이 되어온 백은선의 네번째 시집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이 출간되었다. 지금 여기의 시단에서 ‘백은선 마니아’들이 유독 존재감을 지니는 이유는 백은선의 시가 읽는 이의 마음을 깊게 찔러 고유한 일기를 끄집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시집의 제목은 상자를 열지 않겠다는 의지와 함께 상자를 바라보고 의식하는 눈을 암시한다. 그런 상자 안에 담긴 것은 홀로 직면하기에 버거운 것일 테다. 이를테면 세상의 기준에 위축되어 상자에 담길 정도로 옹송그려진 자신, 그리고 연모하는 이를 향한 섬세하고 상처받기 쉬운 사랑의 마음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보는 것이야말로 영속되는 괴로움을 해체하는 시작이며, 사랑하는 이에게 나아가는 첫걸음이 된다는 것이 백은선의 시가 알려주는 진실이다. “새로운 심장의 발명”(이원)이라는 평을 이끈 문지문학상 수상작들이 수록된 이 시집에서 독자는 사랑을 위한 기초이자 세계를 건축하는 행위로서 백은선의 다정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커다란 기차를 생각했어 기차를 끌어당기는 은빛 선로에 대해 생각했어 그 안에 가득찬 빼곡한 숨을 숨찬 주문을 들으며 들으며 귓속으로 쏟아지는 계속되는 것을 영원히 끝나지 않는 순환의 지독함과 아름다움을 액자 속에 걸려 천 년 동안 서서히 밝아지는 동시에 스러지는 이미지를 떠올렸어 그것을 온전한 절망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은 없기에 책 속에 머리를 박고 활자를 중얼거리며 기차가 달리는 리듬으로 한 문단 한 문단 달리고 달리며 비밀과 질문 비밀과 질문 출렁이는 물속을 들여다보려 애를 썼고 아무리 애를 써도 보이지 않는 심장처럼 물은 검기만 했고 숨찬 내일 무한을 잠시 엿본 것만 같다고 꽃이 꽃꽃꽃꽃 달리고 달이 달달달달 떨리고 숲이 숲숲숲숲 웃어대는 리듬 속에서 숨찬 내일 두 손을 휘저으며 끝없이 두 손을 휘저으며 이렇게 시끄러운 밤 어떻게 너는 꿈을 꾸고 잠을 자는가 그것이 정말인가 무엇을 향하는지도 모르고 삿대질을 하며 울던 줄곧 가지고 다닌 두 손

손목을 은빛 선로 위에 둔 채 기다리고 있다 기적이 가까워지기를
_「비밀과 질문 비밀과 질문」 부분

시를 읽으며 자신의 언어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은 어떤 이들인가. “나는 눈을 뜨는 순간 빛의 세계에서 탈락했”(「비신비」)다고 느끼며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줄 순 없으니 차라리 스스로를 숨기고 싶은 이들(“빛나는 것은/ 전부 두 손 안에 있는데// 어째서 자꾸만 숨기고 싶어지는 걸까”(「형상기억합금」)). “한 대 맞고 웃는 일은 너무 쉽다”(「엔젤: 러브레터」)고, “아무리 많은 고통도 현재의 방패가 되어주진 않는다”(「섭(攝)」)며 지나온 생이 자신에게 남겨놓은 상처와 이물감을 실감하는 이들. “이토록 많은 시공간 속에 살아 있었다는 게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게 끔찍해서 눈물이 날 거 같았다”(「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고 말하는, 감정에 젖어들 때에도 그것을 설명할 언어를 찾느라 눈물이 멎는 이들이다. 백은선은 고통의 전문가라고 할 만큼 삶이 야기하는 괴로움과 아픔에 집중하면서도, 고통의 조건과 인간의 기저를 명징하게 꿰뚫어본다. 하지만 백은선의 관찰이 말뿐인 허울에 그치지 않는 것은 그가 바라보고 말해보는 행위로 자족하지 않은 채, 운명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언제나 인간보다 거대한 운명이 기차가 되어 자신을 집어삼킬 듯이 다가온다면, 선로 위에 자신의 손목을 내어주리라 결심한다. 그럴 때 운명과 자신은 서로가 서로를 선택하는 관계가 될 터이므로.

우린 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지. 사랑이 아닌 것도. 손이 바빠 머리가 멍해질 때까지. 우물거리며 고기와 와인을 먹고 커피를 마셨지. 나는 너희와 함께 있을 때 가장 똑똑해진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장면들을 돌려보며 팝콘처럼 터지는 웃음, 열매처럼 뚝 떨어지는 눈물. 계속해봐! 더 해봐! 서로의 등을 밀며 기차는 달린다. 너는 빨강 너는 초록 나는 검정. 모든 게 멋지고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나의 옷을 돌려 입으며, 나는 가끔 무한히 길어질 수 있을 것 같아. 말하려는 순간 딸꾹질이 시작된다.
_「만나서 시쓰기」 부분

실로 백은선의 시는 더이상 구원과 낭만을 믿지 않게 되어 “날개를 접고 내려앉은”(「진실은 구체적이다」) 천사들이 가장 낮고 단단한 지면에서 발을 내딛는 행위이다. 그 천사들은 익숙한 신의 사랑이 아니라 어설픈 인간의 다정을 부단히 반복한다. 파토스 가득한 어조, 자유롭고 아름다운 비약, 솔직한 내면의 고백 등 백은선에 뒤따르는 수식어들이 있지만, 그 사이에서 백은선의 다정은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물론 백은선은 손쉬운 다정을 믿지 않는다. “달라진 건 하나도 없는데 갑자기 다정해지는 게 있나요?”(「앙망」) “사람이 이 이상 다정할 수 있어? 묻지만 단 한 번도 원한 적 없어요”(「픽션다이어리」). 그러나 “마음이라는 이 좆같고 애매한 말!”(「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이라고 외치며 세계와 자신을 똑바로 들여다보려는 이가 꺼내는 마음에는 진실이 담겨 있기에 진심이라고 이르게 된다.
백은선의 시가 솔직하다면 그가 정직하기 때문이다. 올곧게 사랑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아무 대가 없이 사랑해줄 수는 없어요?”(「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묻는 백은선의 질문은 사랑에 주저하는 이들의 폐부를 찌르면서도, 사랑하는 이에게 건넬 편지지가 되어준다. 글씨를 연습하듯 백은선의 문장을 따라 쓰는 동안, 읽는 이는 백은선의 다정을 자기에게 옮겨담게 될 것이다. 그 다정은 곧, 사랑 앞에서 자신을 허무는 자세이자, 시야를 좁혀 사랑하는 이를 그대로 바라보는 눈맞춤이고, 사랑을 소중히 대하는 태도이며, 사랑만 있다면 신이 없는 세상도 괜찮다는 의연한 믿음이리라.

백은선의 시가 반드시 우리 앞을 가로막는 한계를 뛰어넘고 초월하게 하는 물리적인 날개가 되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때로는 시를 읽고 마음이 북받쳐 뛰어오르고도 장대에 걸려 철푸덕 넘어져 이가 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미래와 가능성, 무한이라는 단어가 지긋지긋해서 아무런 말도 듣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땐 의심과 번복을 꼬리에 주렁주렁 달고도 이어지는 백은선의 다정을 생각해보자. 그 언어가 어떻게 우리에게 계속하고 반복할 수 있는 의지와 연습이 되어주는지를. 문학이 삶을 닮고, 삶이 문학을 닮아가는 우리는 만나서 시를 쓸 수만 있다면 어디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것이 내가 백은선에게 배운 시이자, 백은선의 시를 읽은 이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말,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고픈 삶의 태도였다.
_편집자의 말 「다정한 시」 부분*

* 백은선 시인과 담당 편집자가 시집의 편집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동안, 수록 시들에 대한 이해가 서로 크게 겹치고 있다는 생각이 감돌았고, 보통의 시집 말미에 해설이나 발문을 싣는 것과 달리 시인이 편집자의 목소리가 들어가길 요청해 ‘편집자의 말’이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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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문학동네시인선192)

도서정보 : 김상혁 | 2023-06-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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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이 이야기를 들을 만큼은 사랑이 남아 있나요?”
삶을 닮은 이야기, 사랑을 품은 시

사람의 내면이 가진 다종다양한 무늬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시인 김상혁의 네번째 시집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가 문학동네시인선 192번으로 출간되었다.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제목이 김상혁의 시가 내포하는 아이러니를 미리부터 암시한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면서도 홀로 자유로울 자신을 생각하거나, 친지의 죽음을 앞두고 그의 실책이 먼저 떠오르는 이들이 있다. 이때 제목은 세파에 닳을 대로 닳아 놀랍고 새로울 일이 없다는 건조한 심상을 뜻한다. 하지만 회의와 무감함에 시달리는 이가 정작 꺼내는 말이 상대방의 안녕을 바라는 염려라는 데서 시는 한층 아이러니의 농도를 높인다. 사람의 심오하고 두터운 이면을 어루만지는 그의 아이러니는 다면적인 존재로서의 사람을 고스란히 긍정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삶이 초래하는 불안과 이별에도 결코 굽히지 않는 위로이자, 사람에 대한 사랑이 된다.
김상혁의 시는 산뜻하고 귀여운 미소인 동시에 서늘하고 저릿하게 폐부를 찌르는 칼끝이다. 아이가 “‘사랑’까지 쓰고서 글씨 오른편 여백이 부족하면 나머지를 왼편에다 적어버”(「불확실한 인간」)린 ‘합니다사랑’이라든지, “세상에 유령이 없다면 슬플 것이다”(「유령이 없다면 슬프다」)라는 말을 듣고 실실거리는 유령처럼 술술 스며드는 김상혁의 시는 존재들의 만남이 자아내는 놀랍고 기쁜 우연을 맛보게 한다.

“그 팔은, 어찌된 일입니까?” 팔은 인생의 은유 같다.
이에 선천적으로 사지가 짧은 외국인 남성이 라디오에서 말하길, “그날 내가 십 센티미터만 손을 더 뻗을 수 있었더라면 국경을 넘다 카고 트럭 밑으로 굴러떨어진 딸애를 붙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자식이란 부모가 떼어내기도 마음껏 놀리기도 어려운 수족에 불과하다, 아이가 자립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같은 생각만 든다. 쫓기고 붙잡히고 영 헤어지고 총 맞는 사람들 얘기는 신경도 못 썼다. 잠깐의 침묵 속에서 남성이 훌쩍거리기 시작했을 때 라디오 진행자가 이르길, “방금 동시통역사의 실수로 ‘팔’이라 물어야 할 것을 ‘딸’로 잘못 전달했다. 그래서 딸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그는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어차피 자신의 짧은 팔에 관해 다른 할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_「팔과 딸」 전문

하지만 사람은 국경을 넘다 딸을 잃어버린 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어린 자식이란 부모가 떼어내기도 마음껏 놀리기도 어려운 수족에 불과하다, 아이가 자립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같은 생각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가까운 사람의 일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죽음을 앞둔 동생도 결국엔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밀려나고 만다”며, 심지어 “어머니가 최고로 불쌍히 여긴 사람이 실은 어머니 자신이라는 것”을 꿰뚫어보는 시선은 스산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가 어린 아들을 잃었다는 사실은 더없는 진실이다”(「엄마의 독」)라고 말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외국인 남성의 이야기를 옮겨 적는 시인은 사람의 복잡다단한 면모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다.

무시로 그는 나의 생활을 침범할 것이다
그러고는 곧 일어선다 우정에는 피로가 없다는 듯이
어느 영화에서 본 크루즈 여행, 어느 잡지에서 찾은 술집
그런 자리에서 나는 그를 위하여
그는 나를 위하여 미래가 무슨 대수냐 말해줄 텐데
우정에는 끝도 공포도 없다는 듯이
눈보라를 걸어도 좋다는 듯이
_「한겨울 진정한 친구는 어디에 있나」 부분

복잡다단한 사람들은 주춤거린다. “사랑이 충만했으나 실은 어둡고 조용한 그의 방을 떠나지 못하”(「사랑이 충만했으나」)는 이들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서도 실천에는 서투르다. 하지만 그럼에도 끊기지 않는 염려와 “침범”을 시인은 주목한다. 직선으로 곧장 뻗는 사랑이 아니라 복잡하게 주변을 오갈지라도 계속해서 내딛는 걸음에는 얼마나 진심이 담겨 있는지. 마음 둘 곳 없이 뿔뿔이 흩어져 “너무 아플 때는 몸이 마음을 지켜주지 못했다/ 이곳은 도시도 집도 인간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느끼는 화자들은 그러나 “내가 친구를 원하고/ 친구가 나를 원하는 그 시간에/ 우리가 그것을 좋아했으면 좋겠다”(「좋은 것」)고 말하고,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못하는 이들에게 “방을 나오면 언제나 사랑받을 거라는 사실”(「동생 동물 2」)을 속삭인다. 방 밖으로 나서서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과 마주하게 하고, 방안에서 나오지 못하는 이들을 기다릴 수 있게도 하는 의지의 북돋움, 그것이 바로 김상혁의 시가 가진 힘이다.

오래전에 죽은 할머니가 어디 산책하고 돌아온 것처럼 현관문 열고 들어올 때 죽도록 소리를 지를지 그녀를 안아줄지는 오로지 당신의 선택

더 오래전에 죽은 할아버지 위독하니 무슨 병원 찾아가 손 한번 잡아주라 그녀가 조심스레 부탁할 때
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릴지
이 불길한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랄지는 또 당신의 선택

(……)

그러다 화구 속에서나 뜨거워 잠에서 깰지 아니면 사는 동안 무슨 이야기라도 될지
하여튼 할머니 할아버지는 있던 데로 돌아갔고
바람 부는 거리로 나온 당신이 과연 어떤 영혼을 눈 비비게 만드는 먼지가 되느냐
_「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 부분

그러므로 김상혁의 시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 사람을 향해 열려 있다. 김상혁의 “이야기는 듣는 사람을 자기 사연 말하게 하는 힘”이 있어 읽는 이가 “이야기를 타고 들어가 시 속에”(유희경, 발문에서) 살게 하기 때문이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이 아이러니한 자신의 마음에 할말을 잃어버린 사람, 하지만 사랑하는 이에게만은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가능성」)고 일러주고 싶은 사람에게 시는 자신을 대변하는 문장이 되어줄 것이다. 그때 또다시 시집의 제목은 “우리 둘”이 슬플 것도, 기쁠 것도 없는 미래를 그럼에도 함께 살아갈 것이라는 예언이 된다.
이 사랑 가득한 시집을 펼치기 전에 독자에게는 딱 한 가지 준비운동이 요청된다. “적어도 이 이야기를 들을 만큼은 사랑이 남아 있나요?”(「첫 소설」)라고 자문하기. 하지만 설령 사랑이 남아 있지 않다고 느끼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도 잊고 있던 사랑을 김상혁의 시가 일깨워줄 테니. 읽는 이는 그에게 하나의 ‘작은 집’이 되어주는 이 시집을 그저 평온히 즐기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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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적 낙관

도서정보 : 김금희 | 2023-06-1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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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일상을 돌보고 싶어지는 가뿐한 전환의 감각!

모든 존재의 진정한 안녕을 비는 소설가
김금희의 식물 산문 출간

일상의 순간에서 길어올린 깊은 통찰과 산뜻한 위트로 인간 내면의 지형도를 섬세하게 그려온 작가 김금희의 두번째 산문집 『식물적 낙관』이 출간되었다. 2020년 여름부터 2022년 겨울까지 한겨레 ESC에 ‘식물 하는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에세이에 더해, 당시에는 아직 연약해서 꺼내놓기 쉽지 않았던 작가 자신의 내면을 지긋이 응시하는 미발표 원고들을 담았다. 김금희의 발코니 정원에 찾아온 연약하고도 강인한 식물들을 통한 깨달음의 기록이자, 식물을 매개로 만난 다정한 사람들과 만들어낸 환한 순간들의 기록이기도 한 이 책은 작가가 식물과 더불어 살아가며 통과하는 사계절의 풍경을 따라간다. 그 풍경의 변화에 따른 마음의 굴곡 또한 김금희 산문만의 아릿하고도 부드러운 필치로 그려진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 책이 ‘소설가의 식물 산문’이라는 점이다. 일찍이 버지니아 울프, 헤르만 헤세와 같은 대문호들이 찬미한 바 있는 식물이라는 존재를 지금 김금희가 사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첫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2020)의 첫머리에 “글을 쓰지 않을 때면 으레 발코니에 나가” 식물을 돌보다 문득 “절박하게 하네, (…) 싸우듯이 하네”(서문 「안팎의 말들」)라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고 쓴 작가는 그뒤 3년간 모은 산문을 묶은 『식물적 낙관』에서 “돌아보면 내가 식물에 빠져든 시기는 마음이 힘들었던 때와 거의 비슷했다”(서문 「식물 하는 마음」)고 고백한다. 지난 3년 내내 지속된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시련, 공교롭게 맞물린 개인적인 상실과 삶의 부산물 같은 고민들을 겪으며 작가는 식물이 지닌 오묘한 치유의 에너지에 이끌렸을까.
이제 『식물적 낙관』에 이르러 김금희는 더이상 식물을 절박하게 대하지 않는다. 김금희의 소설이 삶을 향해 드러내는 특유의 온화하고 담대한 시선은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이해에서 비롯되는바, 작가는 산문에서도 식물이 지닌 생명력과 특질을 명확히 관찰하고 이해해나가며 식물들의 느긋한 낙관의 자세를 받아들인다. 화분에 심긴 채 작가의 발코니에서 살아가는 실내 식물들은 함께 사는 인간이 현실적인 문제들로 고뇌하느라 여력이 없는 동안 척박한 환경에 놓이기도 하지만, 외부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생장만을 도모하면서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착실히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복잡다단한 인간사에 초연한 채, 무언가를 해치는 일 없이, 각자의 본능적인 삶의 실천만을 이어가는 식물들이 이룩한 발코니 속 별세계를 묘사하는 김금희의 산문들을 읽다보면 어느새 주어진 현실을 단순하게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 자체를 삶의 명확한 목표로 재설정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삶 이외의 다른 선택지를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는 이러한 가뿐한 전환을 통해 일상을 보다 너그럽게 바라볼 때 찾아오는 삶에 대한 효능감. 그것이 바로 ‘식물적 낙관’의 감각이다.


인간과 함께 계절을 순환하는 존재들이 선사하는
아름답고 느긋한 낙관의 에너지

네 개의 부로 구성된 이 산문집의 리듬은 계절의 느슨한 순환을 닮았다. 명확히 구획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의 흐름과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풍경의 변화가 편편의 글 사이에서 감지된다.
1부 ‘여름 정원에서 만나면’에는 작가의 발코니에 서식하는 식물들이 더위와 습한 대기를 통과하며 보여주는 혹독하고도 왕성한 성장기가 그려진다. 인위적으로 개입하기보다 식물들이 원하는 만큼 무성해지면서 자유분방한 성장을 즐기도록 하는 이 발코니에서는 김금희와 식물들 간의 꾸밈없는 대화가 이루어진다. 어쩌면 인간의 역할은 여름을 앓는 존재들을 지켜보며 함께 앓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역설적으로 안도감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생명에 대한 든든한 믿음을 안겨준다.
2부 ‘이별은 선선한 바람처럼’에는 가을바람과 함께 환기되는 상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산문이 묶였다. 작가가 반려견과 반려식물들을 떠나보낸 후 무너졌던 마음을 다독여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과정이 눈부시다. 하나의 식물이 지닌 삶의 무게를 헤아리고, 살아 있는 존재들이 보이는 변화의 기척에 경탄하며, 작가는 예비되어 있는 또다른 상실을 마주할 힘을 마련한다. 첫 산문집에서 소설로 다 할 수 없었던 내밀한 고백을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주었던 김금희가 ‘나’에서 출발하는 글쓰기를 지나 식물을 경유하는 글쓰기를 통해 낯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내는 싱그러운 여정이 펼쳐진다.
3부 ‘겨울은 녹록하게’에는 성장을 잠시 멈추고 나중을 기약하며 거센 추위를 견딜 힘을 비축하는 식물들의 모습이 따스한 시선으로 묘사된다. 생의 사이클 하나를 완주해낸 뒤, 한 해 동안 이루어낸 변화를 축하하고 남은 아쉬움을 뒤로하며 스스로를 격려하는 모습은 식물과 인간이 다르지 않다. 기온의 변화에 따라 식물이 보내는 신호를 기민하게 살피며 화분들에 더욱 따뜻한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때를 기다리는 작가의 모습에서는 생명을 지닌 모든 것을 향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4부 ‘그런 나무가 되었다’에는 긴 겨울의 끝에 당도한 봄날 다시금 몸을 꿈질거리기 시작하는 식물들의 밝은 기운이 담겼다. 김금희가 묘사하는 연둣빛 봄 풍경은 그 자체로 희망차다. 어느덧 연한 햇빛을 받으며 넘실거리는 나뭇잎들로 가득찬 창밖, 메말랐던 식물들이 가지에 조그맣게 핀 여린 잎으로 보내는 생존의 기척 등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도 어딘가 지난 계절들과는 달라진 듯하다. 4부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깊은 숲을 응시하는 동안 아픈 감정들은 발화되는 대신 다시 내면으로 스며들고, 그 과정을 오롯이 느끼며 작가는 식물과 교류하는 동안 더욱 단단해진 자신을 확인한다.

구매가격 : 11,600 원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문학동네시인선194)

도서정보 : 황인찬 | 2023-06-2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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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도 사랑도 그렇게 근거 없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명명됨에서 비롯되는 마음들
불합리한 세계 속에서도 근거 없이 지속되는 사랑
황인찬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서정

제66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이미지 사진」 수록

“예술적인 다양한 방법론을 지워버리는 방법론을 지닌 희귀한 시인”(김행숙)이라는 평과 함께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로 한국 시단에 새로운 언어를 선물한 황인찬. 이후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 등을 통해 그 누구와도 다른 감각으로 한국 시를 대표하는 목소리가 된 황인찬의 신작 시집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시들이 전부 미쳤구나 싶게 근사하다”(황인숙)라는 평을 이끌어낼 만큼 탁월한 감각으로 빛나는 현대문학상 수상작 「이미지 사진」을 포함해 64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일상적 제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화詩化하는 황인찬은 우리 주변에 놓인 사물이나 사건들을 보고 섣불리 안다고 말하지 않고, 쉽사리 단정하지 않은 채, 그 모르겠는 것들에 신중하게 하나둘 이름을 부여하(기를 시도하)는 방식으로 시를 써나간다. 그는 ‘이게 내 마음이다’라고 말하는 대신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라고 말한다. ‘사랑이다’라고 말하는 대신에 그는 “그걸 사랑이라 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것도 없겠습니다”(「없는 저녁」)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빛의 언어로 충만한 황인찬의 시에는 명백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름답지 않지 않은 역설적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그의 시는 전승민 평론가의 말처럼 “사실상 그것이 품고 있는 서정을 내파하는 시인의 메타적인 자의식과 재현이 침투된 ‘새로운 서정시’”(해설에서)라 할 만하다. 시를 읽는 우리는 황인찬이 그려 보이는 세계의 모습을 보며 자주 혼란에 빠질 것이다. 마치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놀라는 순간에도// 그 여름은 뭐였을까, 자꾸 생각하게 되”(「인화」)는 시인처럼, 우리 또한 그의 시에서 느낀 아름다움은, 그리고 마음들은 무엇이었을지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황인찬에게 시를 쓰는 일은 결국 커다란 의미에서의 이름 붙이기일지도 모르겠다. 현상과 사물을 바라보며 그것에 시라는 언어로 이름을 붙이는 일. 세계는 그에게 해석하는 곳이 아니라 인식하는 곳, 명명하는 곳인 셈이다. 그래서 그는 “말하게 되는 순간에”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재인식을 통해 우리의 경험은 실체로서 재생성되는 것이다.
그의 시에는 빛과 사진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것도 그러한 재인식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의 시에서 빛과 초록, 여름과 기쁨 등 찬란한 것들은 대부분 과거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 이 시집의 문을 여는 첫 시 「당신에게 이 말을 전함」을 보자.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하자/ 학교에서 봐”가 전문인 이 짧은 시는 이 시집 전체의 정서를 예고하고 있다. 그의 시에서 ‘학교’는 주로 공간이 아니라 시간으로서 존재하는데, 그래서 그는 ‘학교’라는 단어를 통해 한순간에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과거 속 ‘내일’ 이전의 어떤 시간으로 우리를 소환한다. 이 시의 전문을 우리도 한 번쯤은, 어쩌면 무수히 많이 발화했을 것이므로,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그 시간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시집을 읽다보면 우리는 황인찬의 시에서 학교란 단지 아스라한 빛으로 감싸인 노스탤지어의 공간이 아니라 기쁨과 아픔이 모두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시인은 그러한 공간을 그 모습 그대로 그리는 대신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일련의 시들을 통해 폭력과 사랑이 공존하는 그 공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인식한다. “당신의 시에는 현실이 없군요/ 현실에는 당신이 없는데요//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흰 빛뿐이지만/ 그 이상이 없다는 것은 이미 알지만”(「왼쪽은 창문 오른쪽은 문」)과 같은 부분에서 느껴지는 전환의 노력을 통해 ‘폭력 (그리고) 사랑’은 ‘폭력 (그럼에도) 사랑’에 가깝게 실체화된다.
그렇다면 시인은 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대신 그것을 재실체화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의 개별적 의지가 아니라 그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는 곳이어서가 아닐까. 그것은 그의 재인식 작업의 대상이 학교에서 세계로 확장되는 것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황인찬의 시 속에서 화자의 경험은 여러 방식으로 재인식되는데, 그 과정을 통해 실체화되는 것은 주로 기쁨, 사랑, 아름다움 등이다. 그의 그러한 재인식은 인간에게 친절하지 않은 세계를 그럼에도 사랑하기 위한 ‘능동적 체념’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나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것도 없겠습니다”라는 화자의 말은 기쁨과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한 일종의 다짐이 된다. 세계가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닌,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또는 사랑하기로 해서 사랑하는 것. 자신이 속한 세계에 자신의 방식으로 이름을 붙이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로서의 다짐.
어쩌면 우리가 시를 읽는 이유는, 황인찬의 시를 읽는 이유는 그것일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세계를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인식하고 실체화하기 위해. 그리고 아름다운 것들에서 서정을 발견해내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부조리 속에서도 서정을 발견해내는 황인찬이라는 필터를 통해 세계를 한 번쯤 바라보기 위해. 시인은 이 시집에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라는 제목을 붙임으로써 시 속에 그러한 자신의 마음을 담았다. 이 시집을 집어들기로 하는 것도 일종의 다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다짐을 통해 우리의 세계는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다.

구매가격 : 8,400 원

계간 문학동네 2023년 여름 통권 115호

도서정보 : 문학동네편집부 | 2023-06-2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문학동네』는 문학동네에서 펴내는 계간지다.

통권 115호 2023년 여름호

주간 오은교
편집위원 강지희 권희철 김건형 인아영

구매가격 : 7,500 원

남극곰 1

도서정보 : 김남중 글, 홍선주 그림 | 2023-06-23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이번에는 북극이다!
우리 동화의 공간을 확장하는 김남중 작가의 모험 서사
도시와 극지를, 과거와 오늘을
이어 달리는 사상 초유의 프로젝트

40만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전국에 자전거 여행 열풍을 일으켰던 『불량한 자전거 여행』, 국내 최초 대하 역사 동화 시리즈 『나는 바람이다』 등 역동적이고 대담한 스케일의 이야기로 어린이들의 시야를 활짝 열어젖히는 동화작가 김남중의 신작 동화가 출간되었다. 육지로, 바다로, 산으로 거침없이 향하던 그의 발걸음이 이제 극지에까지 닿았다.
6학년 여름방학 우연히, 혹은 운명적으로 북극에 발을 디디게 된 주인공 은우가 극비 프로젝트 ‘북극 열차’의 마지막 탐험대원으로 합류하면서 펼치는 모험은 100여 년 전 극지탐험가 로알 아문센의 일화, 그리고 오늘날 전 지구적 문제인 기후 위기와 맞물리며 어느 한 장면도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한다. 끝없이 펼쳐진 얼음 벌판 위에서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은우의 모험을 따라가다 보면, 도시의 일상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복잡하고 다양하고 기이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을 만나게 된다.


100년 동안 역사 속에 묻혀 버린 도전
북극곰과 북극 해빙이 사라지기 전
그 도전을 반드시 끝맺어야 하는 자들

갈수록 더워지는 이상기후로 서울의 아파트 화단에서 작은 바나나 한 송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은우는 야생동물 사진작가인 엄마가 북극에 출장 간 동안 키워 낸 바나나를 자랑할 생각에 들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실종 소식을 접하고, 은우는 엄마가 살아 있다는 희망 하나로 아빠와 북극행을 결심한다. 특전사 출신의 엄마는 3천 미터 하늘에서도 웃으며 고공낙하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하와이를 거쳐 알래스카에 발을 디딘 은우와 아빠. 사람 하나 없이 바람만 부는 마을은 여름인데도 춥게만 느껴진다. 은우는 아빠 모르게 엄마와 같이 실종된 현지 가이드의 집을 찾아갔다가 가이드의 손자 미카를 만난다. 북극 환경이 익숙해 보이는 미카와 은우는 실종된 엄마와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북극해로 나아간다. 목숨 걸고 몸싸움을 하는 야생의 북극곰들, 그리고 북극에서는 마주칠 수 없는 뜻밖의 존재에 시선을 빼앗긴 순간 두 아이는 어디론가 납치되고, 그곳에서 엄마, 할아버지와 재회하는 동시에 눈으로 보아도 믿기지 않는 것들을 목격한다.
곧 이 비밀 기지를 지휘하는 척과 그의 대원이 하나둘 등장하면서 ‘북극 열차’ 프로젝트의 실체가 드러난다. 로알 아문센이 북극점 최초 도달을 위해 비밀리에 시도했다 실패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북극곰 썰매 작전이 당시 곰 조련사였던 비에른의 후손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었던 것. 은우가 마지막 대원으로 탑승하며 북극 열차는 모든 출발 준비를 마친다.

“사람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북극점에 도달했어요. 썰매로, 비행기로, 열기구로, 오토바이로, 스노모빌로, 심지어 스키를 신고 걸어서 간 사람도 있어요. 그렇지만 북극곰이 끄는 열차로 도전한 사람은 없어요. 위대한 아문센의 도전이 우리 식으로 완성되는 거예요.” _본문 중에서

“지구온난화 때문에 우리가 알던 북극의 얼음은 머지않아 사라집니다. 지금 당장이 아니면 영원히 불가능해요.” _본문 중에서

아슬아슬 무모해 보이는 북극 열차는 여러 사람들의 기대와 우려를 실은 채 거칠고 새하얀 북극을 밤낮없이 달린다. 하루는 녹은 팥빙수 같은, 하루는 꽁꽁 얼어붙은 아이스바 같은 얼음길을 달리며 은우는 탐험대원들과도 북극곰들과도 조금씩 교감해 나간다. 미끄러운 경사 길에서는 북극곰들과 함께 힘을 합쳐 썰매를 끌고, 지구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 낯선 별자리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진짜 탐험대원’이 되어 간다. 하지만 북극열차는 북극점을 눈앞에 두고 생각지 못한 벽에 부딪히는데…….


세계 최초의 ‘남극곰’은 탄생할 수 있을까?
아니, 탄생해도 되는 걸까?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숙제, 누군가에게는 최종 목적을 위한 디딤돌, 누군가에게는 탈출을 위한 동행이었던 북극점 도달. 그러나 은우는 북극 열차 뒤에 가려진 척의 진짜 계획을 알게 된다. 작전명은 ‘노아의 방주’, 북극곰들을 남극으로 보내 최초의 ‘남극곰’을 만드는 것. 멸종 위기에 처한 북극곰과 망가져 가는 북극을 살리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랐던 인물들은 결국 팽팽히 맞선다. 세상에 없던 ‘남극곰’을 탄생시키려는 이들과 그 계획을 어떻게든 막으려는 이들이 대치하고, 여기에 은우네 일행의 탈출 계획까지 맞물리면서 긴장감은 한층 더 고조된다.

“나는 노아의 방주에 내 인생을 걸었어. 정말 북극을 위한다면 그쪽도 행동을 하지 그래? 입으로만 생색내지 말고 재산이나 목숨 같은 걸 좀 걸어 봐.”
VS
“자연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연결되어 있어. 거기에 사람이 끼어들면 더 엉망이 돼. 우리가 지구에서 만든 문제는 우리가 지구에서 해결해야지.”


오늘의 북극을 배경으로 한 도시 아이의 모험이
우리에게 건네는 무궁무진한 질문

여행보다 피시방 게임이 좋고, 도전보다 편안함을 추구하던 은우에게 북극에서의 사건들은 강렬한 인생 경험이 된다. 광활한 자연 속에서, 함께하는 이들에게서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 은우는 점점 대담해지고, 스스로를 넘어 사방의 존재에게로 시선을 넓혀 나간다. 얼음평원에서 마지막 곰과 단둘이 오로라를 만나는 순간은 은우가 이루어 낸 성장만큼 눈부시고 경이롭기 그지없다. 집과 학교를 오가는 일상 속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겪으며 은우는 자신과 세상이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온몸으로 깨우친다.
이 이야기는 극지라는 낯선 공간, 기후위기라는 당면한 주제를 다루며 아이들의 모험 본능을 자극하는 동시에 함께 살아가기 위한 노력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북극곰과 북극의 현실을 두고 각자의 방향대로 치열하게 고민하는 인물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함께 힘을 모아 세상을 더 좋은 쪽으로 변하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마음 한편에 심길 것이다.


꼼꼼한 취재와 온몸의 경험으로 쓴 이야기
북극의 구석구석을 탐험해 보는 시간

김남중 작가는 집필 전 북극곰을 직접 만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에 탑승했다. 치밀한 사전조사와 함께 북극해의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실제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남극곰』에 온전히 담아냈다. 장면마다 북극의 현장감이 생생히 전해져 오는 이유이다. 김남중 작가의 꼼꼼한 취재력만큼 구체적인 묘사로 완성된 홍선주 화가의 그림은 단숨에 북극 한가운데로 우리를 데려간다. 인물과 인물 사이의 날카로운 긴장감은 물론, 얼음 평원을 내달리는 모험활극의 역동성, 알래스카 북극해의 풍랑을 실감 나게 담아내어 책장을 넘기다 보면 마치 또 하나의 탐험대원이 된 듯 북극의 구석구석을 함께 탐험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낮은 하늘과 푸른 바다 사이에 하얀 마침표 같던 그 북극곰이 내가 만난 첫 번째 야생 곰이었다. 그 뒤로 불곰을 만나러 사할린에 갔고, 반달곰을 보고 싶어 지리산에도 다녀왔다. 곰이 나오는 동화를 좀 더 써 보고 싶어서다. 곰이 우리에게 할 말이 있을 것 같아서다. 시간이 갈수록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가뭄도 홍수도 더위도 폭설도 심해지고 있다. 사람이야 스스로 만든 결과니 어쩔 수 없다 쳐도 왜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녹는지, 숲이 사라지는지, 먹이가 줄어드는지 곰들은 모를 것이다. 그 둥근 머리를 갸우뚱하다 주린 배를 깔고 조용히 눈을 감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곰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그때 내가 만났던 북극곰은 아직 살아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남극곰’ 시리즈를 썼다.”_작가의 말 중에서

구매가격 : 8,800 원

남극곰 2

도서정보 : 김남중 글, 홍선주 그림 | 2023-06-23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이번에는 북극이다!
우리 동화의 공간을 확장하는 김남중 작가의 모험 서사
도시와 극지를, 과거와 오늘을
이어 달리는 사상 초유의 프로젝트

40만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전국에 자전거 여행 열풍을 일으켰던 『불량한 자전거 여행』, 국내 최초 대하 역사 동화 시리즈 『나는 바람이다』 등 역동적이고 대담한 스케일의 이야기로 어린이들의 시야를 활짝 열어젖히는 동화작가 김남중의 신작 동화가 출간되었다. 육지로, 바다로, 산으로 거침없이 향하던 그의 발걸음이 이제 극지에까지 닿았다.
6학년 여름방학 우연히, 혹은 운명적으로 북극에 발을 디디게 된 주인공 은우가 극비 프로젝트 ‘북극 열차’의 마지막 탐험대원으로 합류하면서 펼치는 모험은 100여 년 전 극지탐험가 로알 아문센의 일화, 그리고 오늘날 전 지구적 문제인 기후 위기와 맞물리며 어느 한 장면도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한다. 끝없이 펼쳐진 얼음 벌판 위에서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은우의 모험을 따라가다 보면, 도시의 일상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복잡하고 다양하고 기이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을 만나게 된다.


100년 동안 역사 속에 묻혀 버린 도전
북극곰과 북극 해빙이 사라지기 전
그 도전을 반드시 끝맺어야 하는 자들

갈수록 더워지는 이상기후로 서울의 아파트 화단에서 작은 바나나 한 송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은우는 야생동물 사진작가인 엄마가 북극에 출장 간 동안 키워 낸 바나나를 자랑할 생각에 들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실종 소식을 접하고, 은우는 엄마가 살아 있다는 희망 하나로 아빠와 북극행을 결심한다. 특전사 출신의 엄마는 3천 미터 하늘에서도 웃으며 고공낙하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하와이를 거쳐 알래스카에 발을 디딘 은우와 아빠. 사람 하나 없이 바람만 부는 마을은 여름인데도 춥게만 느껴진다. 은우는 아빠 모르게 엄마와 같이 실종된 현지 가이드의 집을 찾아갔다가 가이드의 손자 미카를 만난다. 북극 환경이 익숙해 보이는 미카와 은우는 실종된 엄마와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북극해로 나아간다. 목숨 걸고 몸싸움을 하는 야생의 북극곰들, 그리고 북극에서는 마주칠 수 없는 뜻밖의 존재에 시선을 빼앗긴 순간 두 아이는 어디론가 납치되고, 그곳에서 엄마, 할아버지와 재회하는 동시에 눈으로 보아도 믿기지 않는 것들을 목격한다.
곧 이 비밀 기지를 지휘하는 척과 그의 대원이 하나둘 등장하면서 ‘북극 열차’ 프로젝트의 실체가 드러난다. 로알 아문센이 북극점 최초 도달을 위해 비밀리에 시도했다 실패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북극곰 썰매 작전이 당시 곰 조련사였던 비에른의 후손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었던 것. 은우가 마지막 대원으로 탑승하며 북극 열차는 모든 출발 준비를 마친다.

“사람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북극점에 도달했어요. 썰매로, 비행기로, 열기구로, 오토바이로, 스노모빌로, 심지어 스키를 신고 걸어서 간 사람도 있어요. 그렇지만 북극곰이 끄는 열차로 도전한 사람은 없어요. 위대한 아문센의 도전이 우리 식으로 완성되는 거예요.” _본문 중에서

“지구온난화 때문에 우리가 알던 북극의 얼음은 머지않아 사라집니다. 지금 당장이 아니면 영원히 불가능해요.” _본문 중에서

아슬아슬 무모해 보이는 북극 열차는 여러 사람들의 기대와 우려를 실은 채 거칠고 새하얀 북극을 밤낮없이 달린다. 하루는 녹은 팥빙수 같은, 하루는 꽁꽁 얼어붙은 아이스바 같은 얼음길을 달리며 은우는 탐험대원들과도 북극곰들과도 조금씩 교감해 나간다. 미끄러운 경사 길에서는 북극곰들과 함께 힘을 합쳐 썰매를 끌고, 지구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 낯선 별자리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진짜 탐험대원’이 되어 간다. 하지만 북극열차는 북극점을 눈앞에 두고 생각지 못한 벽에 부딪히는데…….


세계 최초의 ‘남극곰’은 탄생할 수 있을까?
아니, 탄생해도 되는 걸까?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숙제, 누군가에게는 최종 목적을 위한 디딤돌, 누군가에게는 탈출을 위한 동행이었던 북극점 도달. 그러나 은우는 북극 열차 뒤에 가려진 척의 진짜 계획을 알게 된다. 작전명은 ‘노아의 방주’, 북극곰들을 남극으로 보내 최초의 ‘남극곰’을 만드는 것. 멸종 위기에 처한 북극곰과 망가져 가는 북극을 살리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랐던 인물들은 결국 팽팽히 맞선다. 세상에 없던 ‘남극곰’을 탄생시키려는 이들과 그 계획을 어떻게든 막으려는 이들이 대치하고, 여기에 은우네 일행의 탈출 계획까지 맞물리면서 긴장감은 한층 더 고조된다.

“나는 노아의 방주에 내 인생을 걸었어. 정말 북극을 위한다면 그쪽도 행동을 하지 그래? 입으로만 생색내지 말고 재산이나 목숨 같은 걸 좀 걸어 봐.”
VS
“자연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연결되어 있어. 거기에 사람이 끼어들면 더 엉망이 돼. 우리가 지구에서 만든 문제는 우리가 지구에서 해결해야지.”


오늘의 북극을 배경으로 한 도시 아이의 모험이
우리에게 건네는 무궁무진한 질문

여행보다 피시방 게임이 좋고, 도전보다 편안함을 추구하던 은우에게 북극에서의 사건들은 강렬한 인생 경험이 된다. 광활한 자연 속에서, 함께하는 이들에게서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 은우는 점점 대담해지고, 스스로를 넘어 사방의 존재에게로 시선을 넓혀 나간다. 얼음평원에서 마지막 곰과 단둘이 오로라를 만나는 순간은 은우가 이루어 낸 성장만큼 눈부시고 경이롭기 그지없다. 집과 학교를 오가는 일상 속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겪으며 은우는 자신과 세상이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온몸으로 깨우친다.
이 이야기는 극지라는 낯선 공간, 기후위기라는 당면한 주제를 다루며 아이들의 모험 본능을 자극하는 동시에 함께 살아가기 위한 노력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북극곰과 북극의 현실을 두고 각자의 방향대로 치열하게 고민하는 인물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함께 힘을 모아 세상을 더 좋은 쪽으로 변하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마음 한편에 심길 것이다.


꼼꼼한 취재와 온몸의 경험으로 쓴 이야기
북극의 구석구석을 탐험해 보는 시간

김남중 작가는 집필 전 북극곰을 직접 만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에 탑승했다. 치밀한 사전조사와 함께 북극해의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실제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남극곰』에 온전히 담아냈다. 장면마다 북극의 현장감이 생생히 전해져 오는 이유이다. 김남중 작가의 꼼꼼한 취재력만큼 구체적인 묘사로 완성된 홍선주 화가의 그림은 단숨에 북극 한가운데로 우리를 데려간다. 인물과 인물 사이의 날카로운 긴장감은 물론, 얼음 평원을 내달리는 모험활극의 역동성, 알래스카 북극해의 풍랑을 실감 나게 담아내어 책장을 넘기다 보면 마치 또 하나의 탐험대원이 된 듯 북극의 구석구석을 함께 탐험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낮은 하늘과 푸른 바다 사이에 하얀 마침표 같던 그 북극곰이 내가 만난 첫 번째 야생 곰이었다. 그 뒤로 불곰을 만나러 사할린에 갔고, 반달곰을 보고 싶어 지리산에도 다녀왔다. 곰이 나오는 동화를 좀 더 써 보고 싶어서다. 곰이 우리에게 할 말이 있을 것 같아서다. 시간이 갈수록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가뭄도 홍수도 더위도 폭설도 심해지고 있다. 사람이야 스스로 만든 결과니 어쩔 수 없다 쳐도 왜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녹는지, 숲이 사라지는지, 먹이가 줄어드는지 곰들은 모를 것이다. 그 둥근 머리를 갸우뚱하다 주린 배를 깔고 조용히 눈을 감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곰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그때 내가 만났던 북극곰은 아직 살아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남극곰’ 시리즈를 썼다.”_작가의 말 중에서

구매가격 : 8,800 원

3인의 명탐정

도서정보 : 레오 부르스 | 2023-06-2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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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놈의 밀실 사건이로군.”
복선과 치밀한 플롯, 교묘한 미스디렉션과 깜짝 결말까지
고전 미스터리를 가장 충실히 패러디한 명작, 국내 첫 출간!

서스턴 저택의 주말 파티에 초대를 받은 타운젠드와 손님들은 탐정소설에 대해 한바탕 토론을 벌인다. 그런데 밤이 깊고 모임이 막을 내릴 무렵,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밀실 살인 사건이 실제로 눈앞에서 발생한다!
혼란에 빠진 저택을 찾아온 세 명의 명탐정들은 각각 개성 넘치는 방식으로 사건 조사를 시작한다. 가까이서 수사 과정을 직접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타운젠드는 마치 왓슨 박사가 된 기분에 흥분해버리고 마는데……. 과연 세 명탐정 중 누가 진상을 밝혀낼 수 있을까?

영국 미스터리의 황금시대가 완전히 무르익은 시기 활발하게 활동한 작가 레오 브루스의 『3인의 명탐정』이 처음으로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3인의 명탐정』은 브루스의 탐정소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 복선과 치밀한 플롯, 교묘한 미스디렉션,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을 한자리에 모아두고 범행의 과정과 범인의 정체를 밝히는 깜짝 결말 등, 이미 잘 알려진 고전 추리소설에서 익숙하게 만날 수 있는 요소들이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다. 레오 브루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장르 법칙을 능숙하게 활용한 유머 감각을 십분 발휘해 기존의 클리셰를 비틀면서 유쾌한 반전으로 독자를 이끈다.
고전 미스터리의 풍요 속에 차려진 패러디 성찬
『3인의 명탐정』에서 화자인 타운젠드는 지인인 서스턴 박사의 주말 파티에 초대를 받아 그의 저택을 방문한다. 그런데 밤이 깊어 파티가 마무리될 무렵, 갑작스레 서스턴 부인이 자택에서 살해당하며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사건이 경찰에 알려지기 무섭게 서스턴 저택으로 속속 모여든 세 명의 명탐정은 제각기 개성 있는 방법으로 사건을 조사하고 추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타운젠드는 그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며 의문을 가지기도 하고, 그들에 천재성에 감탄하기도 하며, 때로는 의외의 모습에 실망한다.
이 사건에서 등장하는 세 명의 명탐정은 영미 추리소설 황금기의 유명 탐정들을 패러디한 인물로, 각각 도러시 세이어스의 ‘피터 윔지 경’, 애거사 크리스티의 ‘에르퀼 푸아로’, G. K. 체스터턴의 ‘브라운 신부’를 원본으로 삼고 있다. 레오 브루스는 그들의 외모만이 아니라 말투, 행동, 사고방식과 관심사, 그로부터 비롯하는 추리 방식까지 원본을 훌륭하게 모방해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해결했던 사건을 연상시키는 대화가 삽입되는 등, 세 명탐정과 친숙한 독자일수록 웃음을 터뜨릴 만한 재미 요소가 배가된다.
작중 등장하는 밀실 트릭에 대한 추론과, 추리 과정에서 드러나는 장르에 대한 작가의 심도 있는 이해도 주목할 만하다. 레오 브루스가 추리소설 작가로서 활동하던 때는 이미 영국의 미스터리 소설의 형식이 거의 완성된 시기로, 『철교 살인 사건』의 로널드 녹스가 만든 ‘녹스의 탐정소설 10계’나 S. S. 밴 다인의 ‘탐정소설 작법 20법칙’처럼 정통 추리소설이 갖추어야 할 규칙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레오 브루스는 화자 타운젠드의 입을 빌려서‘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범인 찾기’에 경도된 당시의 미스터리 장르에서 발견되는 맹점과 습관적으로 사용되는 장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등, 곳곳에서 미스터리에 대한 깊은 애정과 고찰의 흔적이 드러난다.
엘릭시르의‘미스터리 책장’ 시리즈
이번에 출간된 레오 브루스의 『3인의 명탐정』은 ‘미스터리 책장’시리즈의 36번째 작품이다.
2012년 첫 출간된 ‘미스터리 책장’은 전 세계 미스터리 거장의 주옥같은 명작을 담은 미스터리 소설 전집이다. 이전까지 일서 중역과 축약본으로밖에 읽을 수 없었던 전설의 미스터리, 미처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을 믿을 수 있는 전문 번역가의 번역과 멋진 장정으로 새롭게 선보였다. 본격 미스터리, 하드보일드, 서스펜스, 스릴러, 유머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와 다채로운 걸작을 국내 독자에게 소개할 수 있도록 힘써왔다.
지난해 ‘미스터리 책장’은 새로운 판형과 디자인으로 리부트되었다. 엘릭시르는 미스터리 초심자부터 장르 문법에 익숙한 마니아까지 각자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골라 펼쳐볼 수 있도록, 앞으로도 다채로운 미스터리 걸작을 국내 독자에게 소개해나갈 예정이다.

구매가격 : 11,200 원

신의 숨겨진 얼굴

도서정보 : 후지사키 쇼 | 2023-06-3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제34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 수상작

“선생님이 살인을 저지르다니 말도 안 돼…….”
과연 그는 완벽한 교육자인가, 잔혹한 범죄자인가

신에 빗대어 이야기할 만큼 완벽한 교육자였던 쓰보이 세이조가 세상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의 애도 속에서 비통하게 이루어지던 장례식 경야. 동료 교사와 제자, 그의 연립주택에 세 들어 살던 세입자와 이웃 들은 고인을 추억하던 중에 그가 어마무시한 범죄자가 아닐지 의심하기 시작하는데……!
『살의의 대담』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한 후지사키 쇼의 데뷔작 『신의 숨겨진 얼굴』이 출간되었다. 제24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한 『신의 숨겨진 얼굴』은 마치 그림으로 그려낸 것같이 완벽해 보이는 교육자가 사망하면서 장례식 경야에서 그를 추억하던 조문객들이 실은 그가 범죄자가 아닐지 의심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미스터리 소설이다. 조문객 각각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는 인물의 모습을 엔터테인먼트적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예상치 못한 반전과 재미를 선보인다.

●그의 진정한 모습은……
마치 그림으로 그려낸 듯한 참교육자. 진정한 스승의 표상처럼 여겨지던 교육자 쓰보이 세이조.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장례식장에는 제자들을 비롯해 많은 수의 조문객이 찾아온다. 친자식만큼이나 자신이 가르치던 제자들에게도 열과 성을 다하던 그의 생전 모습을 조문객들은 슬픔을 억누르며 그와의 추억을 회상한다. 완벽한 교육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지만 좀처럼 따라주지 않는 학생 때문에 곤란을 겪었던 쓰보이의 딸 하루미, 쓰보이의 제자이자 하루미의 동급생으로, 쓰보이의 가르침 덕에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었다던 사이키, 쓰보이의 동료 교사로 그와 정반대의 교육관을 가지고 있지만 제법 친분을 유지하던 네기시, 쓰보이 옆집에 살면서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던 주부 고무라, 쓰보이의 제자이자 그가 운영하던 연립주택의 세입자로 학창 시절이나 졸업한 이후나 쓰보이에게 신세를 졌던 아유카와, 역시 연립주택의 세입자로 무명 개그맨인 데라시마 등, 가까웠던 조문객들의 과거 회상을 통해 그가 숨겨왔던 다양한 면모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우연의 일치로 치부했던, 혹은 그동안 몰랐던 사소한 연결점이 밝혀지면서, 쓰보이는 이내 교활한 이중인격자, 태연한 사이코패스, 냉혹한 살인마로 변모한다. 한번 뻗어나간 생각의 가지는 확장되어 걷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 영락없는 참교육자였던 쓰보이의 지난 모습들이 살인마의 모습을 숨기기 위한 가면이었다고 생각하면, 평소의 한없이 자상했던 모습만큼 충격은 배가된다. 과연 그는 진정 살인마인 것일까?

●한계점을 알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 소설
후지사키 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작가이다. 개그맨으로 활동하다가 요양사 자격을 취득하는가 하면,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소설을 집필해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하여 작가 데뷔를 이루어냈다. 『신의 숨겨진 얼굴』이 바로 그 작품이다. 사람의 이미지는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각도로 변화한다. 작가는 바로 이 점을 이용해 장례식장이라는 공간 속에서 일곱 명의 화자의 입을 빌려 고인인 쓰보이 세이조의 이미지를 쌓아 올렸다가 무너뜨리는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한다. 이제는 운명을 달리해 어떤 주장에도 반박할 수 없는 고인이기에, 조문객들의 주장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듯 한계점을 모르고 내달린다. 이들이 겪은 생생한 추억들은 이중 삼중의 반전을 선사하며 마지막에는 경악할 만한 진상을 쏟아낸다. 복선과 반전의 진수를 선사했던 『살의의 대담』처럼 『신의 숨겨진 얼굴』 역시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복선과, 차근차근 쌓아 올려진 이야기를 한 번에 무너뜨리는 반전들이 일품이다. 또한 자신의 독특한 이력을 『살의의 대담』에서 십분 활용했던 것처럼, 무명 개그맨으로 등장하는 데라시마 유라는 인물을 통해 실제 무명 개그맨의 일상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며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더할 나위 없이 인위적인 재미와 희열은 후지사키 쇼를 여타의 미스터리 작가들과 구분시킨다. 작정하고 철저히 흥미 본위의 엔터테인먼트적인 미스터리 소설을 집필하는 작가로서, 『신의 숨겨진 얼굴』과 『살의의 대담』을 통해 후지사키 쇼는 벌써 작품 활동에 있어서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매가격 : 10,500 원

해부학자 (세계문학전집 067)

도서정보 : 페데리코 안다아시 | 2023-06-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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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가장 오래된 강박관념인 여성의 쾌락을
은밀하게 해부한 작품.” _ 라우라 에스키벨

기발한 상상력과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아르헨티나 작가 페데리코 안다아시의 첫 장편소설이자 대표작으로, 실존 인물인 16세기 최고의 해부학자 마테오 콜롬보의 독특하면서도 위험한 ‘발견’을 그린 소설이다. 여성의 사랑과 쾌락을 지배하는 작은 신체기관인 클리토리스를 발견하게 된 과정과, 악마에게 힘을 실어주는 발견을 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에 회부된 해부학자의 이야기가 긴박감 있게 펼쳐진다. 안다아시는 해부학, 종교, 인문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통해 역사를 재해석, 재생산해내고, 해부학자의 발견을 ‘이단’으로 규정한 가톨릭 권력을 조롱함으로써 중세의 음울하고 폐쇄적인 도덕관념과 종교적 금기, 인간의 무지에 예리한 메스를 들이댄다. 이 작품은 1997년 스페인에서 출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3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올랐다.

여성의 몸에서 발견한 천국과 지옥의 열쇠,
위대한 ‘발견’인가, 불경스러운 ‘이단’인가?

소설은 “오, 나의 아메리카여, 나의 달콤한 신대륙이여!”라는 감탄문으로 시작된다. 해부학자 마테오 콜롬보는 자신이 발견한 실체를 성이 같은 탐험가가 찾아낸 ‘아메리카’에 비견했다. 탐험가의 ‘아메리카’에 비하면 해부학자의 아메리카는 한량없이 작고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지만 한층 도발적이다. 그것은 모든 남자가 한번쯤 꿈꾸는 것으로, 여자의 마음을 여는 마술의 열쇠이며 여성의 변덕스러운 의지를 정복하는 도구이다. 해부학자는 자신의 아메리카에 ‘비너스의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그것이 바로 ‘클리토리스’이다.
마테오 콜롬보의 발견은 두 여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가 흠모했던 베네치아의 고급 창녀 모나 소피아와의 만남을 계기로 여성의 마음을 얻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고, 성녀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정결하고 신심이 깊은 젊은 미망인 이네스 데 토레몰리노스의 몸에서 그 방법을 찾아냈다. 그녀의 두 다리 사이에서 여자의 사랑과 쾌락을 지배하는 작은 기관을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해부학자의 발견은 악마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가톨릭 신앙에 심각한 혼란을 가져올 수 있을 만한 대사건이었다. 결국 마테오 콜롬보는 이단죄, 위증죄, 신성모독죄, 미신 숭배죄, 악마 숭배죄로 종교재판에 회부된다.
『해부학자』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마테오 콜롬보의 발견과 그것을 기록한 책 『해부학에 관해』에 대한 교회의 격렬한 반응과 종교재판정에서 행한 마테오의 변론이다. 이 변론에서 안다아시는 르네상스 시대를 꿰뚫는 방대한 지식과 내공을 과감하게 선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체에 대한 인식과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음경에 대한 언급과 더불어 다양한 과학적 지식이 펼쳐지고, 여자의 육체에 대한 해부학적 설명이 형이상학적인 교리와 연결된다. 또한 마테오 콜롬보를 내세워 중세의 서슬 퍼런 종교 권력에 도전함으로써 가톨릭교회의 폐쇄적인 도덕관념과 비합리성, 인간의 무지를 조롱하기도 한다.

구매가격 : 7,400 원

인공호흡 (세계문학전집 045)

도서정보 : 리카르도 피글리아 | 2023-06-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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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를 잇는 아르헨티나 최고의 작가 리카르도 피글리아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아르헨티나 작가 리카르도 피글리아는 라틴아메리카에 불어온 거대한 역사적 변환 가운데서 작품 활동을 전개했다. 페론주의자였던 아버지로 인해 페론주의가 아르헨티나 사회에 남긴 깊은 상흔을 목격하며 성장했고,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1960년대에는 쿠바 혁명으로 라틴아메리카 전체가 변혁의 소용돌이로 휘말려 들어가던 때였다. 또한 1970~80년대에는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군사 정권의 독재 아래 신음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서 피글리아는 문학이 사회적 투쟁에 개입해야 한다는 동시대 작가들과는 달리, 문학의 자율성을 옹호하며 문학을 더 근원적으로 사유하고자 했다. 즉 문학을 통해 정치를 이야기하기보다는 문학 자체의 잠재력을 극대화시켜 광기의 시대에서 문학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과 나아갈 길을 모색했던 것이다.
피글리아 작품의 대부분은 아르헨티나와 유럽의 다양한 텍스트를 다른 각도에서 읽고 사용함으로써 전혀 다른 의미와 새로운 문학 형식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1975년 출간된 『가명』은 아르헨티나 소설가 로베르토 아를트의 미간행 원고를 둘러싼 문제를 풀어가면서 아를트 문학의 핵심 주제인 돈과 허구의 문제를 드러낸다. 아르헨티나 최대의 문학상인 플라네타상 수상작인 『타버린 돈』(1997)은 그리스 비극의 현대적 의미를 재발견함으로써, 신탁의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밝혀내는 작품이다.
이러한 문학 관점과 경향으로 리카르도 피글리아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충실한 계승자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보르헤스 이후로 한동안 잠잠하던 라틴아메리카 문학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새로운 대표 작가로 등극했다.

폭력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

『인공호흡』은 1977년에서 1979년 사이에 쓰여 198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간되었다. 이 시기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세력이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비도덕적인 인권 탄압 사건인 ‘추악한 전쟁’을 자행하던 때였다. 군사정권은 ‘좌익 게릴라 소탕’이라는 명분 아래 수만 명의 사람들을 소리 소문 없이 납치, 고문, 암살했으며, 정치 세력 탄압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내면에 숨은 저항의식까지 씻어버린다는 의도로 시민들의 정신적 영역까지 침범했다. 이에 따른 문화 말살 정책으로 각종 검열과 검문이 강화되어, 많은 지식인과 작가들은 해외 망명의 길을 택하거나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살벌한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내에 남아 있던 작가들은 목숨을 유지하면서 군부 독재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는데, 기존의 문학 형식과 언어를 해체하고, 과학소설·탐정소설·메타픽션 등 여러 장르를 차용하는 등 다양한 서술전략을 통해 작품 활동을 벌여나갔다. 이 시기에 발표된 『인공호흡』의 복잡하고 파편화된 구조 역시 군부의 혹독한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는 것이 당시 아르헨티나 비평계의 주류적 견해였다. 이 소설은 아르헨티나 작가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훌륭한 10대 소설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역사의 신음, 혹은 패배자들의 목소리

『인공호흡』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제1부는 주인공 에밀리오 렌시(이 사람은 피글리아의 대부분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로, 작가의 ‘알터 에고(alter ego)’의 역할을 한다)가 외삼촌인 마르셀로 마기의 삶에 얽힌 비밀을 소재로 한 첫 소설 『현실의 지루함』(1976)을 출간한 후, 렌시와 마기 사이에 이루어진 서신 교환으로 시작된다. 당시 변방인 콩코르디아에서 은거하던 마기는 19세기의 애국자인 엔리케 오소리오의 모순적인 삶을 재구성함으로써 역사적 진실을 밝혀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엔리케 오소리오는 19세기 아르헨티나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애국자였지만, 역사적 운명 탓에 ‘배신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던 인물이다. 마기는 오소리오의 삶에 “시대의 모든 역사적 진실이 압축”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불행과 오욕으로 점철된 그의 삶이 무엇을 드러내주는지” 포착하기 위해 그의 전기를 쓰고자 한다. 즉 그에게서 시대의 폭력에 저항하다 파멸을 맞은 자유 지식인의 운명을 보고, 그가 남긴 수수께끼 같은 족적을 풀어나감으로써 아르헨티나 역사를 재조명하려는 것이다.
1년 가까이 렌시와 편지를 교환하며 렌시에게 ‘역사적 시선’을 가질 것을 당부하던 마기는 자신의 장인이자 엔리케 오소리오의 손자인 루시아노 오소리오를 만나보라고 렌시에게 부탁한다. 상원의원이었던 루시아노 오소리오 역시 아르헨티나 역사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독립 혁명 기념식장에서 연설을 하던 중 괴한에게 저격을 당해 척추를 다치는 바람에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다. 마기에게 엔리케 오소리오의 원고 등 그가 남긴 족적을 전해주며 역사의 비밀을 밝히라고 한 사람이 바로 루시아노 오소리오이다. 작가는 전신마비 상태로 독방에 갇혀 환각 증세를 보이는 루시아노를 통해 폭력으로 사지가 절단된 아르헨티나의 현재를 암시하면서, 그의 환각적인 독백을 통해 ‘역사적 시선’이 어떤 것인지 드러낸다.
뒤이어 마기가 가지고 있는 엔리케 오소리오의 일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독재자인 로사스의 개인 비서로서 일하면서 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비밀 조직에 가담해 활동하다가 발각되어 망명길에 올랐던 엔리케는 뉴욕에 정착하여 ‘유토피아’에 관한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한다. 그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미지의 공간이 아니다. 그저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아득한 미래의 어느 날, 즉 1979년(이 시기는 렌시와 마기가 편지를 교환하는 시점과 일치한다)의 아르헨티나와 만나는 것이 올바른 유토피아적인 관점이라고 말한다. 그가 미래에 집착하는 것은 과거를 부정당하고 현재의 모든 가능성이 차단된 상황에서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유토피아 소설을 통해 그는 미래로 자신의 열망을 보내 미래를 재구성하려고 한다.
계속해서 신분을 알 수 없는 미래 시대의 사람들이 주고받은, 맥락이 닿지 않는 편지들이 모자이크 방식으로 이어진다. 가슴에 송신장치가 박혀 있어 계속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광경을 본다고 주장하는 여인의 편지, 오빠의 박사 학위 취득을 축하하는 여학생의 편지, 미사 도중에 강도를 당한 남자의 하소연, 엔리케 오소리오가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등이 나열된다. 여기에는 상원의원에게 조카가 찾아갈 거라고 알리는 마르셀로의 편지와 외삼촌에게 곧 찾아갈 것을 약속하는 렌시의 편지도 포함된다. 그러나 여기에 검열관으로 추정되는 아로세나라는 인물이 개입해 편지에 숨겨진 비밀 메시지를 판독해내려고 노력한다. 그의 등장은 세대를 거듭하도록 시대의 폭력(독재 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아르헨티나의 현실을 보여준다.

광기의 시대, 폭력의 사회를 향한 인공호흡

제1부를 통해 ‘역사적 시선’을 제시했다면, 작가는 제2부에서 ‘문학적 시선’으로 초점을 이동하여 현실과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는 문학의 잠재력을 이야기한다. 2부는 렌시가 마기를 만나기 위해 콩코르디아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외삼촌은 ‘부재’ 상태이며,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폴란드 망명자인 타르뎁스키가 마기를 대신하여 렌시를 맞는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아르헨티나 문학 전통과 유럽주의(유럽의 모델을 따라 아르헨티나 사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에 관해 긴 대화를 나눈다. 아르헨티나 작가 도밍고 사르미엔토의 『파쿤도』에서부터 시작되어 1880년대 ‘정통 유럽의 관점’을 표방하며 아르헨티나 문화계를 쥐락펴락했던 폴 그루사크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출발부터 잘못된 유럽주의가 아르헨티나 문학을 심각한 병폐에 빠뜨렸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올 것이라고 했던 마기가 도착하지 않는 가운데, 렌시와 타르뎁스키는 밤늦도록 대화를 나누는데, 타르뎁스키는 자신이 아르헨티나로 망명하는 계기가 되었던 우연한 발견, 즉 아돌프 히틀러와 카프카의 (가상적) 만남에 대해 이야기한다. 타르뎁스키는 케임브리지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총애를 받는 전도유망한 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도서관에서 사서의 착오로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받게 되었고 그 책의 주석을 통해 무명 화가이자 병역기피자였던 히틀러가 프라하에 숨어 있을 당시 아르코스 카페에 자주 들렀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 카페가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에도 언급된 것을 떠올린 타르뎁스키는 두 사람이 1910년 1월 프라하에서 조우했음을 알게 된다. 카프카는 당시 가진 것이라고는 ‘말과 계획’밖에 없던 히틀러에게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 하인들, 노예들의 절대적 주인, 즉 총통으로 군림하는 모습을 희미하게 엿볼 수 있었다고 일기에 고백했다.
타르뎁스키는 카프카의 『소송』에서 그려지는 공포의 세계가 아르코스 카페에서 만난 무명 화가 히틀러가 장차 하고자 했던 바를 그보다 앞서 예측한 것이라고 말하며, 카프카의 『소송』과 히틀러의 나치즘, 그리고 폭력에 신음하는 아르헨티나의 상황이 하나의 선 위에 놓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이는 카프카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던진 질문이기도 하고, 상원의원 루시아노 오소리오가 렌시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기도 하고, ‘추악한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아르헨티나인들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말이기도 하다. 작가 리카르도 피글리아 역시 작품을 통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렌시가 기다리는 외삼촌 마르셀로 마기는 결국 돌아오지 않은 채 ‘실종’되고, 마기가 하고자 했던 엔리케 오소리오에 대한 연구는 렌시의 몫으로 남겨진다. 엔리케 오소리오, 루시아노 오소리오, 마르셀로 마기는 ‘침묵’의 세계로 들어가는 한편,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기’, 즉 역사의 재구성을 통해 전신불수의 상태인 아르헨티나에 생명을 부여하는 ‘인공호흡’은 렌시에 의해 계속되는 것이다.

구매가격 : 9,100 원

단테 『신곡』 강의

도서정보 : 이마미치 도모노부 | 2023-06-2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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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고 집요했던 『신곡』 50년 공부의 결실,
1년 6개월에 걸친 품격 높은 강의와 질의응답
위대한 고전 단테의 『신곡』을 탐미한다!

제25회 마르코폴로상 수상작 (2003년)

단테 『신곡』을 향하는 최상의 가이드북
이 책은 난해한 고전을 강독하는데도 막힘없이 재밌고 자유로우면서도 매우 튼실하다. 서양 철학을 전공했고, 그리스·로마 문학과 가톨릭 신학을 오랜 시간 공부하고 연마했기에, 작은 용어 하나라도 시간의 축적 과정에서 파생되는 의미의 맥락을 짚은 다음 진도를 낸다. 이는 첫번째 강의에서부터 잘 보여준다. 저자는 『신곡』에 대한 본격적인 강의에 앞서, 왜 『신곡』을 읽어야 하는지 두 가지 의미인 고전Classic과 인문주의의 어원에 대해 파고든다. 이어 신앙과 동물벽화와 인간의 자각에 대해 논하면서 서양문화의 원류를 설명한 후 호메로스의 작품을 살핀다. ‘단테를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단테의 선구자이며 서양 서사시 최초의 거장인 호메로스’를 필히 거쳐야 하는 것이다. 이후 로마의 고전시인이자 단테가 존경했던 베르길리우스를 공부하고, 그다음으로 그리스도교의 문학적인 부분을 살펴본다. 『신곡』에 대한 본격적인 강의는 전체 15강 중 4강부터 시작하는데, 앞의 강의와 다를 바 없이 매우 섬세하고 꼼꼼하게 진행된다. 이 책의 역자가 후기에서 “한마디로 뿌리를 더듬은 다음 가지를 지나 마침내 천국이라는 꽃망울을 터뜨리는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하되 그것들의 전체적인 연관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하듯, 세부적인 부분을 다루면서도 전체의 그림을 동시에 보여주는 명강의다.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수준 높은 강연과 질의응답
저자는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탈리아 단테 학회의 주세페 반델 리가 교정한 이탈리아어 주해가 붙은 판본을 저본으로 삼으면서도, 다양한 일본어 번역본과 각국의 텍스트, 주석, 연구서 등을 두루 참조하면서 깊이 있는 강의를 진행했다. 질의응답에서 『신곡』에 대한 독법과 철학, 종교, 의미 등에 대한 수준 높은 대화들이 오가는데, 그 사이사이 번역본에 대한 자세한 특징과 차이를 설명하며 추천하는 대목들은 저자의 공부가 얼마나 깊은지와 더불어 번역 문화의 강국 일본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평생 서양 철학을 연구하면서도 50년 남짓 단테를 공부한 역량과 동서양의 문학에 대한 조예,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과 일상적 경험을 배합해 설명함으로써, 서양문화와 단테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위화감 없이 접근할 수 있다. 이는 흙과 풀과 나무와 숲 모두를 알고자 열심히 궁리한 연구자이면서도, 그것들을 하나로 엮는 천상 이야기꾼인 저자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구매가격 : 27,000 원

편집 후기

도서정보 : 오경철 | 2023-06-2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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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는 내가 무척 이상한 일을 하면서
먹고산다는 생각을 한다.
남이 쓴 글을 읽는 일, 그것이 내 직업인 것이다.”

책을 만드는 일은 직업일까, 사랑일까?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책과 관련된 모든 것에 엄격해진 사람의
어떤 정직한 사랑의 기운이 그의 글에는 있다.”
_신형철(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

“‘편집 후기’는 언어에 대한 집중과 헌신, 문학에 대한 애정과 이해로
조용히 술렁이는 그만의 문장으로 너무도 아름답게 도착했다.”
_정홍수(문학평론가, 강출판사 대표)


기어코 실패할 수밖에 없는 문학 편집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앞에는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다. 행복한 독자로 사는 길과 책을 업으로 삼는 길이다. 책에 푹 빠진 채 주변을 둘러볼 겨를도 없이 걷다보면 어느새 책이 업이 돼 있다. 이때부터는 재밌는 책을 읽어도 이전만큼 순수하게 즐길 수 없다. 당연한 수순인 듯 책을 만들게 된 저자는 애서가와 편집자의 삶에서 오는 괴리에 방황하며 고뇌한다. 저자는 편집자의 일을 한 문장으로 명쾌하게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이 책 한 권에 걸쳐 편집자라는 ‘이상한 일’을 설명해낸다. 책을 향한 지독한 사랑을 표출할 방법이 책을 만들고 책에 관해 쓰는 일뿐이었던 한 사람이 “책만은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글이다.


어느 이름 없는 편집자의 체험 수기
이 책에 긴 추천사를 보내온 박혜진 문학평론가는 저자를 이렇게 소개한다. “여전히 ‘읽고’ 여전히 ‘듣고’ 이렇게 ‘쓰는’ 편집자”. 그리고 이 책에 대해서는 “가만히, 혼자서, 책 만드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기 좋은 책”이라고 말한다. 베테랑 편집자의 일상을 덤덤하게 담은 『편집 후기』를 읽으면서 떠올리게 될 장면은 이게 전부다. 가만히 혼자서, 읽고 듣고 쓰며 책을 만드는 어떤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면 숭고해 보이기까지 하다. 문학동네, 돌베개, 민음사 등의 출판사에서 출간된 수많은 책이 저자의 손을 거쳤지만, 담당 편집자의 이름을 기억하는 독자는 드물 것이다.

“책이라는 세상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보이는 것과 보이게 만드는 것. 편집은 보이지 않는 일이 아니라 보이게 만드는 일이다. 지금 나는 나의 사각지대를 사랑하고, 어떻게 하면 보여야 할 것을 잘 보이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고민한다.” _「추천의 글」

현직 편집자이기도 한 박혜진 평론가는 “편집은 보이지 않는 일이 아니라 보이게 만드는 일”이라고 말한다. 저자와 책의 뒤에 숨은 편집자들은 꽁꽁 숨을수록, 그리하여 저자와 책이 돋보일수록 소임을 다한 것이다. 남이 쓴 글을 읽으며 먹고사는 직업이란 얼마나 이상한가. 저자는 “책을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지긋지긋한 일이다. 그 지긋지긋함이 지긋지긋해서 나는 여러 번 일터를 떠났다”라며 편집 업무의 고충을 토로하지만, 여전히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언뜻 염세적인 것 같지만 그런 비관 속에서 엿보이는 창백한 열정들”이 가리키는 것은 책을 향한 불가피한 사랑, 오직 그것뿐이다. 책을 만드는 일은 녹록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이런 편집자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오늘도 손에 책을 쥔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데운다.


‘삶’이라는 책의 편집 후기

“정성을 다해 만든 책에 대해서는 편집자로서 작은 흔적을 남기고 싶기도 했다. 비록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언제가 되었든 그 책을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나만의 표식 같은 것을 내가 만든 책에 남겨두고 싶었다. 편집 후기라는 글이 내게는 그런 표식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_「편집 후기」

저자가 문학 편집자로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써 내려간 글들은, 편집자라는 삶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고 쓴 편집 후기 같다. 스스로 저자이자 편집자가 되어 오랜 시간 책을 만들며 보고 겪었던 일들을 엮은 것이다. 그렇게 저자의 삶은 “정성을 다해 만든 책”이, 이 책은 저자가 남긴 “작은 흔적”이 되었다. 삶 자체가 책으로 이루어진 듯한 저자는 스스로를 이렇게 설명하기도 한다. “나는 내가 읽은 책들 덕분에 편집자가 되었고 내가 읽는 책들과 책장에 나란히 꽂아둘 만한 책들을 만들었다.”

구체적인 출판의 현장을 담으며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책을 만드는 일이 숭고하지만은 않다는 진실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다른 모습에 실망하고, 출판계의 이해할 수 없는 관행이나 관습에 염증을 느끼고, 남들이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좌절하기도 한다. 저자가 실망하고 염증을 느끼고 좌절하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일 테다. 작가와 출판업과 자신을 사랑해서, 결국 이 모두를 이루고 있는 ‘책’을 사랑하기에 벌어진 일이다. 한편으로는 우울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이 이야기는 책에서 비롯된, 책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이 책을 만들면서 가장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부제가 ‘애서와 불화’였지만, ‘결국 책을 사랑하는 일’을 표지에 앉히게 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박혜진 문학평론가는 추천의 글에 “진실을 배울 기회는 사랑의 성공보다 사랑의 실패 속에 있다는 걸 안다”라고 적었다. ‘책만은 변함없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건네고 싶다. 이 사람의 아름다운 실패 속에 반짝이는 사랑 한 조각이 있노라며. 이 사랑만 있다면 책을 사랑하는 이들은 모두 연결될 수 있다. 저자가 내뿜는 사랑이 더 좋은 책을 만나게 해줄 것만 같다.

살아가는 일에서 그러하듯이 책을 만들면서도 걸핏하면 헤매고 길을 잃는다. (…) 그럴 때마다 내가 결국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동안 읽어온 책들과 앞으로 읽어갈 책들이다. 그 책들이야말로 편집자인 내게 변함없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편집자로서 나는 언제나 그 책들 사이에 있다. 나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다. 직업인으로서 나에 대해 이렇게 말할 때가 많지만 이 말은 애매모호하다. 사실 나는 내가 읽은 책을 거울삼아 내가 읽을 책을 만드는 사람이다. _「나는 언제나 그 책들 사이에 있다」

구매가격 : 11,500 원

바다에 빠진 소녀

도서정보 : 악시 오 | 2023-06-16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누구의 신부도 아닌 자여, 누가 당신을 선택했나요?”
“내가 날 선택했어요.”

미국 청소년들이 열광한 환상적인 판타지
고전 『심청전』을, 자신의 운명을 다시 쓰는 이야기

★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 2022 최고의 청소년 판타지 SF소설 후보
★ 2022 뉴욕공립도서관 최고의 책
★ 미국도서관협회 최고의 청소년 도서 TOP 10

굿리즈 리뷰 8,600개 · 미국 아마존 리뷰 2,900개 돌파
미국 독자들이 열광한 영어덜트 로맨스 판타지

미국이 주목하는 영어덜트 작가 악시 오의 장편소설, 『바다에 빠진 소녀』가 출간되었다.『바다에 빠진 소녀』는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이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뉴욕공립도서관 최고의 책으로 꼽혔으며 미국도서관협회 최고의 청소년 도서 TOP 10 안에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굿리즈 선정 최고의 청소년 판타지 SF소설 후보에 오른 동시에 해당 사이트에서 8,600개 이상, 미국 아마존에서 2,900개 이상의 리뷰를 받았다. 『김주니를 찾아서』의 작가 엘런 오는 “이 작품은 현대 독자들에게 『심청전』을 새롭게 각인시킨다. 악시 오가 만든 환상의 세계는 독특하고 매혹적이며, 나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을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다”라고 말했고, NPR은 “진심으로 사랑스러운, 흥미진진하고 낭만적인 로맨스 판타지”라는 평을 남겼다. “이 책의 모든 페이지를 사랑했다” “내가 읽은 최고의 책” 등, 수많은 독자들의 찬사와 빛나는 수상 이력은『바다에 빠진 소녀』가 작품성과 재미를 동시에 지닌 소설임을 방증한다.
『바다에 빠진 소녀』는 한국계 미국인 2세 악시 오가 고전소설 『심청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창조한 영어덜트 로맨스 판타지다. 심청 대신 용왕의 신부가 되길 선택한 ‘미나’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신, 용왕, 황제, 기린, 남기 등 제각각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과 속도감 넘치는 전개, 예상치 못한 반전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여성 영웅의 성장과 사랑을 그려낸다. 거기에 은장도, 비단 끈, 까치 설화 등 한국 문화를 모티프로 구축한 독특하고 탄탄한 세계관은 『바다에 빠진 소녀』만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악시 오는 어린 시절 독서를 하며 아시아계 주인공들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졌으며 “동양인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많아져야 동양인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라고 토로한 바 있다. 이러한 고민에 더해 청소년 문예 창작을 전공한 저자의 이력을 반영하듯 흡입력 있는 스토리텔링이 전개되는 『바다에 빠진 소녀』는 속도감 있는 문체와 생생한 묘사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누구의 신부도 아닌 자여, 누가 당신을 선택했나요?”
“내가 날 선택했어요.”
미나는 재앙으로부터 사랑하는 이들을 지킬 수 있을까

이야기는 바닷가 마을에서 시작된다. 매해 거대한 폭풍이 몰아쳐 바닷가 마을을 황폐하게 만들자 마을에서는 남은 식량과 영토를 놓고 전쟁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한때 인간들의 보호자였던 용왕이 이제 자신들을 지켜주지 않는다고, 그가 인간에게 분노했기 때문에 이 재앙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용왕의 신부’만이 용왕의 분노를 달랠 수 있다는 사제의 말에 따라 이들은 매년 열여덟 살 소녀 한 명을 뽑아 바다에 바친다. 그 소녀가 부디 ‘진정한 용왕의 신부’이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그해 용왕의 신부는 심청이었다. ‘미나’가 용왕의 신부를 자처하며 바다에 뛰어들기 전까지는.
바닷속 용왕의 나라, 이계理界로 들어간 평범한 소녀 미나. 그곳에서 미나는 예상과는 다르게 바닷가 마을 소년이라고 해도 될 만큼 앳된 모습의 용왕과 그를 지키는 연꽃 가문의 아름답고 강한 군주, ‘신’과 만난다. 미나는 용왕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저주에 걸려 잠에서 깨지 못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폭풍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인간인 미나는 신들의 세계에 오랫동안 머물 수 없으며, 용왕의 주위에는 그를 해치려 경쟁하는 용왕국의 다양한 가문들이 음모를 꾸미고 그의 암살을 시도한다. 과연 미나는 저주를 풀고 가족과 마을 사람들을 반복되는 폭풍으로부터 구할 수 있을까? 미나는 계속되는 위기 앞에서 자신이 심청만큼 아름답지도 특별하지도 않지만 내면의 용기와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마음, 그리고 할머니가 전해준 지혜를 등불삼아 자신을 단단히 무장한다.

나는 아름답지 않다. 손이 떨리는 걸 보니 그다지 용감한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이 순간 내 가슴속에는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따스함이 있다. 지금 나를 지탱하는 힘. 두렵지만 이것이 나의 선택이다.
나는 나 자신의 운명을 만드는 사람이다. (본문 중에서)

매력적인 조력자와 방해자들 사이에서
미나의 모험은 계속된다

『바다에 빠진 소녀』에는 인간을 비롯하여 혼령, 신god, 신화 속 동물 등 다양한 종과 개성 있고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주인공 ‘미나’는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는 대신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 적극적으로 행동하여 운명을 만들어가는 성장형 캐릭터다. 한편 남자주인공이기도 한 ‘신Shin’은 용왕국의 여덟 가문 중 연꽃 가문의 수장으로 소설의 초반부에서 용왕을 수호하기 위해 미나를 막아서는 방해자로서 등장한다.

“당신은 앞서 온 모든 신부들처럼 실패할 거야.”
나를 구하러 올 용은 없다. 붙잡고 있을 희망도 없다. 저 위 세상의 별처럼 빛을 잃어가고 있다.
“어쩔 수 없어.” 그가 시선을 피하며 말한다. “당신의 운명이니까.” (본문 중에서)

용왕의 저주를 풀고자 하는 미나의 결단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며 용왕을 지키기 위해 미나의 혼을 빼앗는 신은 그럼에도 의지를 꺾지 않는 미나에게 끌리게 되고, 미나는 비록 자신을 적대시하긴 했지만 신의 행동이 용왕을 지키려는 고결한 의도에서 비롯했음을 깨닫게 되면서 그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주인공의 방해자로 등장했던 인물이 주인공과 로맨스를 형성하면서 독자들은 이 서사에서 성장소설로서의 특징뿐 아니라 로맨스 장르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무엇보다 『바다에 빠진 소녀』에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진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신에게 빼앗긴 혼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미나를 도와준 나리는 홍수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뒤 용왕의 나라에서 호위 무사가 되었다. 뛰어난 무술과 미나에 대한 애정으로 미나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조력자로 활약하는 것이다. 또 한 사람은 미나 이전에 용왕국에 와 용왕의 신부가 된 혜리다. “사람들은 용왕님의 신부가 매년 똑같다고 말하지. 하지만 그들은 모두 각각 달랐어”라고 말하는 혜리를 통해 작가는 신부들이 단순히 제물이 아니라 저마다 개성과 용기, 희망과 목소리를 가진 ‘인간’임을 강조한다.

“당신은 모르겠죠. 신부들은 모두 자신만의 이유가 있어요. 그 이유가 당신이 바라는 것처럼 거창하지 않을지도 모르죠. 신부들의 희생으로 남은 가족들은 보살핌을 받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제공받아요. 신부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힘껏 모든 것을 했어요. 다른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걸 하기 위해 애썼다고요!”
신이 이마를 찌푸린다. “천천히 말해. 다 못 알아듣겠으니까.”
“당신이 뭔데 그 사람들의 희망을 함부로 재단하죠? 적어도 그들에겐 희망이 있어요. 당신은 뭘 가지고 있죠? 베어내는 검. 증오로 가득찬 말.” (본문 중에서)

미나의 또다른 조력자들도 이들 못지않게 흥미롭다. 할미탈을 쓴 탈Tal, 더벅머리 소년 다이, 갓난아이 미키 이 세 사람은 미나가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제시해주는 동시에 암살자들에게 쫓기는 미나를 도와 전투를 치르는 등 활약한다. 이들의 정체 또한 『바다에 빠진 소녀』를 읽어나가는 데 있어 반전의 재미를 더해줄 것이다.
이외에도 신을 보좌하는 남기와 기린, 미나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소년 모습의 용왕과 백 년 전 절벽에서 떨어져 사라진 황제, 죽음의 신이자 신의 오랜 지기인 시키 등 여러 개성적인 인물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이끈다. 고전 『심청전』의 전형적인 캐릭터와는 달리 『바다에 빠진 소녀』에는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쉰다.

구매가격 : 11,900 원

초인류

도서정보 : 김상균 | 2023-06-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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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RICEO 비즈니스북클럽 선정 도서
★ 베스트셀러 『메타버스』 김상균 교수 신작

“인공지능, 챗GPT, 양자 컴퓨팅,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2023년은 첨단 기술의 집약이 티핑포인트에 도달한 원년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구 역사상 최초로 스스로의 진화를 이끌고 있는
‘초인류’의 미래를 탐구하다
최근 들어 인공지능, 메타버스, 혼합현실 등 첨단 기술에 관한 관심이 유독 뜨겁다. 이들 기술은 이제 산업의 혁신을 넘어서서 인류의 육체와 정신을 진화시키는 단계에 이르렀다. 생명공학과 나노 기술은 인체의 기능을 증강시키고, 사물인터넷과 로봇은 인간 육체의 활동 범위와 기능을 증대시키고 있다. 또한 인류는 이제 인공지능을 스스로의 지능 확장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와 메타버스는 물리적 장벽과 거리를 초월하여 전에 없던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확장시킬 것이다. 이 같은 첨단 기술을 통해 자연적 한계를 뛰어넘고자 시도하는 인류에게는 과연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베스트셀러 『메타버스』로 대한민국에 ‘메타버스’ 열풍을 일으켰던 인지과학자 김상균 교수가 그에 대한 대답으로 신간 『초인류』를 발표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지 못할 직업은 무엇인가?”라는 단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된 이 책은 진화생물학, 인류학, 철학, 과학을 넘나들며 첨단 기술이 변화시킬 인류의 미래에 대해 생생한 그림을 보여준다. 인간 존재의 의미에서부터 감정과 욕망, 사회구조, 경제, 노동, 교육, 종교 등에 이르기까지 인간사의 전 영역을 차례차례 훑으며, 전혀 새로운 이 변화의 바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친절히 안내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가본 적 없는 미래를 회고하고 현재를 준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구매가격 : 13,500 원

콜드 리딩

도서정보 : 이시이 히로유키 | 2012-12-1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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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말을 무조건 믿고 따르게 만든다!
전세계 1%만이 사용해온 설득의 기술『콜드리딩』.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가장 예리하고 탁월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유명한 저자 이시이 히로유키가 모든 인간관계에서 곧장 사용할 수 있는 실전 화법 ‘콜드리딩’을 제시하였다. 저자는 ‘콜드리딩’을 익히게 되면 아주 쉽고 사소한 방법으로도 설득의 달인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늘 주눅 들거나 생면부지의 사람을 자주 마주하는 사람들을 위해 콜드리더가 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소개한다. 비즈니스, 영업, 서비스, 판매, 회의, 프레젠테이션, 취업, 면접, 연애, 동호회 등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모든 생활에 접목할 수 있는 콜드 리딩 실전 기술들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구매가격 : 13,000 원

누구도 나를 파괴할 수 없다

도서정보 : 데이비드 고긴스 | 2023-06-2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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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 500만 독자를 전율케 한 ‘레전드 멘탈’
데이비드 고긴스의 첫 책, 드디어 한국 상륙!
미국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 실, 육군 레인저 스쿨, 공군 전술 항공 통제반 훈련을 모두 완수한 세계 최강의 전사. 200km가 넘는 울트라 마라톤, 철인 3종 경기 등 극한의 레이스에 70회 이상 출전한 남자. 17시간 동안 턱걸이 4,030회를 달성하며 기네스 세계 기록을 세운 철인 중의 철인, 데이비드 고긴스. 그가 인생의 한계를 뛰어넘는 최강의 멘탈법을 쏟아부은 첫 책 『누구도 나를 파괴할 수 없다(Can’t Hurt Me)』가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

이 책의 영문판은 독립 출판으로 시작해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ㆍ아마존 1위를 달성했고, 정식 버전으로 출간된 뒤 25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국내에서도 자체 번역해 읽는 독자가 늘어갔고 그가 출연한 인터뷰 영상이 지속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에 힘입어 2023년 6월, 드디어 5년 만에 정식으로 한국의 독자들을 만나게 됐다.

어린 시절부터 끔찍한 인종차별과 학대, 가난과 장애에 시달렸던 저자는 136kg의 몸으로 무력하게 바퀴벌레 잡는 일을 하던 루저의 삶에서 벗어나 극한의 훈련을 통해 온몸이 부서지고 터지며 깨달은 인생의 법칙들을 생생히 전한다. 인간은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한 순간에도 60%의 잠재력을 더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절절히 보여주는 이 책은 그동안 목표를 너무 쉽게 포기하고 지금의 삶을 정당화해온 이들을 깨우는 가장 강력한 각성제가 될 것이다.

구매가격 : 13,500 원

요즘 팀장의 오답 노트

도서정보 : 서현직 | 2023-06-2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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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책은 ‘함께 일 잘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
P&G, 토스, 샌드박스네트워크, 마이리얼트립, 29CM까지
역동적인 조직을 두루 거친 마케터의 팀장 분투기!
★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
브런치스토리 연재 때부터 많은 직장인의 공감을 받은 〈어느 날 팀장이 되었다〉가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통해 단행본으로 탄생했다. 외국계 대기업 P&G에서 팀장을 시작해 여러 유니콘 스타트업 팀장을 거친 저자는 어느 날 갑자기 팀장이 되어 첫발을 내딛는 초보 팀장들을 위해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에 노하우를 엮어 책에 담았다.

어느 날 팀장이 된 초보 팀장에게는 잘해야 한다는 다짐조차 무색해진다. 우왕좌왕 위아래 눈치 보기 급급하고 임원과 협력 부서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다 보면 팀의 목표가 무엇이고 팀원에게 알맞은 업무가 무엇인지조차 깨닫기 어렵다. 하루아침에 팀원을 한 데 모아 우선순위 업무를 척척 해내고 성과를 내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다.

이 책은 이제 막 팀장이 된 초보 팀장, 팀장 연차는 높지만 여전히 고민이 많은 팀장을 위해 쓰였다. 저자가 고군분투하며 겪은 생생한 사례에 당장 조직에 접목할 수 있는 정리된 노하우는 팀장 역할의 관점을 완벽하게 바꿔줄 뿐만 아니라 언제 어떤 방법으로 누구에게 일을 맡겨 성과를 올릴 수 있는지 그 해답을 찾게 해준다.
작가정보

구매가격 : 12,600 원

이렇게 살면 큰일나는 줄 알았지

도서정보 : 신가영(리틀타네) | 2023-06-2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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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만 독자가 기다린 유튜버 〈리틀타네의 슬기로운 생활〉 에세이, 드디어 출간!
오늘의 행복을 찾아 도시에서 시골로 ‘나’를 옮겨심은
귀촌 유튜버 리틀타네의 우당퉁탕 호미질 라이프!
“취업, 연애, 결혼을 다 버리고 귀촌한 나, 그래도 후회는 없다!”
특유의 웃픈 인생철학으로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유튜버 〈리틀타네의 슬기로운 생활〉의 첫 책, 『이렇게 살면 큰일 나는 줄 알았지』가 출간되었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1년, 30대에 취업·연애·결혼을 모두 포기하고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쏟아 귀촌을 단행한 신출내기 귀촌인 리틀타네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알고리즘을 탔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대로 살고 싶은 이들에게 큰 공감을 샀다.
인생 2회 차를 의심하게 하는 리틀타네 특유의 깊이 있는 생각과 뼈를 때리는 촌철살인 문장들, 그리고 그의 동생 망고로아와 함께 그린 일러스트로 가득 채운 이번 에세이는 힘든 오늘 하루도 참 잘 견딘 당신에게 소신 있게 사는 인생의 즐거움과, 겁내지 않고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법을 유쾌하게 전한다. ‘넘어지면 쉬어가면 그만’이라는 그의 삶의 태도를 통해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행복해지는 법을 보여준다.

구매가격 : 11,800 원

필경사 바틀비

도서정보 : 허먼 멜빌 | 2023-07-0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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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왜 지금, 이 문장이 우리의 가슴을 두드리는가

직장인이라면 경험했을 것이다. 상사의 요구에 마음속으로부터 불끈 치밀어오르는 이 말을. “안 하는 편이 백 번 낫겠습니다” 혹은 “저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대부분 이 말을 삼킨다. 그래서 그랬을까. 이 책을 만들면서 바틀비의 말을 내심 응원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필경사 바틀비’는 왜 출근 3일째부터 고집스럽게 이 말을 반복하는 것일까.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이유를 파고든다. 소설은 “아 바틀비여, 아 인류여”로 끝을 맺는데, 이에 대한 해석은 소설이 쓰인 19세기 중반부터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분분하다. 베일에 싸인 바틀비의 삶의 궤적만큼이나 명쾌한 해석을 내리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외로워 보이는’ 바틀비

그렇지만 위의 문장이 가슴속으로 통째로 들어오면서 바틀비의 행위가 조금은 이해되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번 아웃’이 아니었을까. 결코 전달되지 못할 ‘죽은 편지들’(죽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수합하고 불태워야 했던 전의 직장, 법정의 언어들을 하루 종일 365일 베껴 써야 하는, 또 하나의 죽은 노동인 현 직장을, 생명 있는 사람이 어떻게 견뎌 낼 수 있겠는가. 그러니 바틀비는 “꼼짝 않고 가만히 있고 싶어요!”라고 절규했을 것이다.

「꼬끼오!」, 「총각들의 천국과 처녀들의 지옥」

흰눈을 맞으며 끊임없이 톱질하는 톱장이 메리머스크와 그의 황금빛 수탉의 이야기 「꼬끼오!」, 백지처럼 시들어가는 처녀들과 사치스러운 변호사들의 세계를 대비시킨 「총각들의 천국과 처녀들의 지옥」, 이 소설들에도 ‘노동’이 흐른다. 어떤 노동은 비참하지만, 돈으로 환산되어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을 거부한다. 바틀비와 메리머스크의 동질성이다. 반면에 폐에 켜켜이 쌓이는 분진을 의식하지 못하는 처녀들의 노동은 가엾다. 참담하다. 이처럼 멜빌은 자본주의가 무르익기 시작하는 19세기 미국 사회의 이면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조지 오웰’ 작품번역으로 정평이 난 박경서 교수가 공들여 번역했다.(2022년 작고)

구매가격 : 8,5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