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남자’를 꿈꾸는 임태희, 그가 궁금하다
3선 국회의원, 고용노동부장관 그리고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임태희. 행정고시를 패스한 후 재무경제부처 관료로 재직하다가 2000년에 16대 국회의원이 되면서 정치에 입문한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조율 능력을 바탕으로 왕성한 활동이력을 보였다.
이런 연유로 정치인으로서 공직자로서 그의 대외적인 모습은 이미 언론과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편이다. 그러나 그의 내면이나 사생활 등 개인적인 모습은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다. 이는 공과 사를 철저히 나누어 생활해온 그의 원칙 때문이기도 하고,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삼가는 그의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고용노동부장관 시절에 점심시간을 이용해 딸의 결혼식을 치르고 들어오는 바람에 부처직원조차도 그 사실을 몰랐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얼마 전에 대선 예비후보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한다. 좀 더 쉬운 길도 있고 안전하게 돌아가는 길도 있을 텐데, 왜 곧바로 이런 길을 선택했을까?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 앞서,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인간 임태희의 진솔한 모습이 새삼 궁금해진다.
28년간 그의 곁을 조용히 지키며 동고동락해온 그의 아내가 남편에 대해 쓴 이 책은 이런 호기심과 궁금증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나보다 내 옆 사람이 나에 대해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더구나 대외적인 활동이나 정치에 대한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의 성장기와 청춘 시절, 가족 이야기, 결혼 이후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가정 안에서 보여준 소소한 모습들을 담고 있으니, 그동안 아무에게도 알져지지 않았던 자연인 임태희를 가감 없이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인간 임태희의 진솔한 모습을 담은 25가지 이야기
결혼반지에 얽힌 비화
넉넉지 않은 평범한 농촌 가정의 장남으로서 행정고시 합격 후 공군장교로 군 복무를 하다가 현재의 아내를 만난 임태희. 그가 아내와의 첫 데이트 장소로 데려간 곳은 우아한 레스토랑이 아니라 올망졸망한 식당이 즐비한 명동의 먹자골목. 일이 되려고 했던지 신붓감은 이런 남자가 가식이 없어 보여 좋았다. 결혼식 날 아무런 장식 없는 소박한 금반지를 끼워주며 그가 한 약속은 “살면서 5년마다 더 좋은 반지를 해주겠다”는 것. 그러나 그는 정확하게 5년 후 단 한 번 약속을 지켰을 뿐, 대개는 일로 바쁜 그 때문에 그들의 결혼기념일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너무도 똑같은 평범한 하루였다.
알고 보면 스포츠 맨, 임태희. 유도선수가 될 뻔했다
초등학교 시절, 또래들에 비해 키도 작고 몸집도 작았던 소년 임태희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체력을 키우는 일에 집중했다. 당시 왕복 12킬로미터에 달하는 통학거리를 발목에서 종아리까지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며 체력단련을 했다. 또한 집 한쪽에 모래주머니를 매달아놓고 주먹 단련도 하여,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만능 스포츠맨이 되어있었다. 뛰어난 운동감각과 체격으로 유도부 선배들의 눈에 띈 그는 유도부에 뽑혀 한때 운동을 하기도 했었다. 고1 첫 시험에서 반 46등을 한 그는 공부를 하겠다며 유도를 그만둘 의사를 밝혔고, 3주에 걸친 선배들의 회유와 매, 기합 등에도 굽히지 않아서 겨우 놓여났다고 한다.
공군장교 후보생 임태희. 5시간 동안 엎드려뻗쳐 벌을 받은 이유
1982년, 공군사관후보생이던 그는 남다른 리더십으로 당시 후보생들 사이에서 명예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장교 임관을 한 달 앞두고 훈련과정에서 후보생과 구대장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는데, 그때 한 후보생에게 가해진 신체 가혹행위로 후보생들이 구대장의 사과를 요구하며 농성을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구대장들은 명예위원장 임태희를 불러 엎드려뻗쳐를 시키고는 농성을 해산시킬 것을 요구했으나 그는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없이는 해산할 수 없다’며 5시간을 버텼고, 결국 그 뜻을 관철시켰다.
그도 실패의 쓴 잔을 마셔봤다, 청춘의 방황과 고민의 시간들
시골 학교에서 우등생 소리를 듣던 그였지만 당시에도 시골과 도시 학교의 실력 격차가 컸던 탓에 그는 서울의 전기 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했다. 대학입시에서 또 한 번 고배를 마시고 재수 끝에 대학에 들어갔다. 경제적 후진국이던 한국을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나라, 세계무대에서 당당하게 우뚝 설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꿈으로 경영학을 선택했다. 졸업 후 글로벌한 경제 감각을 키우겠다는 꿈으로 외환은행에 입사했지만, 여행비 환전은 물론이고 토플시험 응시료까지 심사를 거쳐 송금할 정도로 외환사정이 좋지 않던 당시였기에 외국 은행이나 국제 금융기구의 인사를 상대할 때마다 경제적 약소국의 서러운 처지가 뼛속까지 실감이 났다. 1980년 5월 온 나라가 아슬아슬한 불안감으로 가득하던 그때, ‘이런 때일수록 우리 같은 사람이 공무원이 돼서 사회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친구의 말에 자극을 받고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 6개월 만에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인생항로의 큰 변화를 맞이했다.
‘하루라도 빨리 귀국하고 싶습니다’ IMF 금융위기 당시의 절박했던 마음
바쁜 공무원 생활을 잠시 내려놓고 2년 예정으로 영국 옥스퍼드대학 객원연구원으로 떠난 그는 귀국 6개월을 남겨놓고 고국의 IMF 금융위기 소식을 접한다. 비록 연수중이었지만 현직 경제관리의 신분으로 문제 해결에 보탬이 안 되고 외국에 있는 것 자체가 불편하고 괴로웠던 그는 소속부처 상급자에게 편지를 하여 당초 명령보다 조기 귀국할 수 있도록 조치해달라고 청하였다. 곧바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청와대에서 새로 구성한 금융 태스크포스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구조조정 등 산적한 과제들을 처리하느라 연일 밤샘을 해야 했지만, 몸보다 마음이 더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공무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라는 갈등도 컸다. 외환위기의 난국 속에서 그는 인생행로를 바꾸기 위해 또다시 새로운 결심을 한다. 뭔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현실 속으로 파고드는 정치를 해야겠다고. 19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일단락 짓고 새내기 정치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빈집에서 홀로 김범수의 ‘보고 싶다’를 열창하는 남자, 편지 쓰는 남자, 요리 하는 남자
이 책에는 그간 한 번도 알려지지 않았던 임태희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이 등장한다. 대학 신입생 시절, 마음의 방황으로 갈등을 겪던 그는 불교서적을 탐독하며 마음을 다스렸고, 특히 당시에 읽은 서산대사의 입적시는 지금까지도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구절’로 남아있다.
그의 애창곡은 ‘회심곡’이다. 집안 어른들 생신 등으로 축가를 부를 기회가 있으면 10분이 넘는 이 노래를 불러 주위 사람들은 당황시키고는 하는데, 최근에는 김범수의 ‘보고 싶다’, 박정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등 새로운 레퍼토리를 추가했다.
그는 또한 편지 쓰는 남자이다. 대학과 군대 시절, 동생이나 친구들과 사흘이 멀다 하고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특히 책에 수록된 남동생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가 얼마나 자상하고 따뜻한 감성을 지닌 남자인지 느끼게 한다. 이외에도 그가 집안에서 요리하는 모습, 딸과 쇼핑하는 모습, 초등학교 시절의 일화, 부부 이야기, 가족 이야기 등 다채로운 일화들이 많이 나온다.
글의 주인공 임태희는 “아내의 글 속에서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기도 하고 멋쩍기도 하다”며, 그래도 아내가 정리하려고 꺼내놓은 옛 사진과 물건들, 노트를 보다가 지난 추억을 떠올리는 일은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하였다.
30여 년간의 공직자 생활과 정치인 생활을 마감하고 초심으로 돌아와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선 임태희, 그의 인간적인 면과 진솔한 모습이 이 책에 빼곡히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