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을 바라보는 두 개의 사랑 그리고 한명의 여인
누군가를 한없이 보고 싶고, 누군가와 마주보며 이야기를 하고 싶고,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싶고, 마냥 같이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람들은 이런 감정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버린다. 하지만 그 사랑이라는 매듭도 시간이 지나면 저마다 다르게 느끼는 사랑의 무게에, 각각 자신들만의 사랑의 정의를 만들며 풀려버린다. 그리고 각각 이런 사랑, 저런 사랑들을 만들어 나간다.
여기 이런 사랑이 있다. 다른 곳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일편단심 민들레처럼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사랑이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작고 여린 그녀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그녀를 지키는 이런 사랑이 있다.
이런 사랑도 있다. 역시나 다른 곳을 바라보지 않는 민들레처럼 한 여자만을 괴롭히며 자신을 사랑하라고 강요하는 사랑이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린 그녀를 망가뜨리며 자신의 여자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한 이런 사랑이 있다.
서로 다른 정의를 가진, 완전히 다른 곳을 바라보는 두 개의 사랑 가운데에는 단 한명의 여인, 시영이 있다. 극과 극으로 마구 얽혀버린 두 사랑의 실타래에 상처받은 그녀는 이 매듭을 풀 수 있을까.
한날, 한시에 태어난 두 소녀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
어디에서 무슨 일이 생기든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치 않는다는 세일러문이라는 별명을 가진 소녀, 한나라. 그녀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건강함으로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대 고등학교를 휘어잡는다. 1대 100이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거칠 것이 없는 그녀는 학교에서는 이미 전설적인 존재이다.
다른 아이들이 밖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때도 누워 있어야 했고, 아파야 했던 소녀, 한누리. 그녀는 항상 주위에 누군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보호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다른 이들 또한 그녀를 감싸주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했기에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그녀는 항상 연약한 존재이다.
한날, 한시에 하나의 자궁에서 세상을 향해 뛰쳐나온 두 아이지만 이렇게 다르게 자란 그들에게 어느 날 한 남자가 다가온다. 누리를 시영이라 부르며 살갑게 다가오는 그 남자와 같이 지내며 상상하지도 못했던 자신들의 전생을 알아버린 누리와 나라는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쌍둥이로 태어난 두 소녀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 과연 그들은 받아들일 것인가, 운명을 뛰어 넘어설 것인가.
판타지와 로맨스의 적절한 조화
최진숙 작가의 령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누리나라’는 전작인 ‘도화령’에 비하면 로맨스적인 요소가 짙어졌다. 도화령에서의 로맨스가 전체적인 스토리를 부드럽게 흐르도록 해주는 기름칠의 역할을 했다면 누리나라의 로맨스는 이야기를 앞에서 끌어나가는 중심축의 역할을 한다.
이렇게 로맨스가 짙어지면 판타지적인 요소를 잃을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으나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감정표현으로 로맨스적인 부분을 살리고, 악귀와의 싸움에 여러 가지 갈등요소를 포함시키며 판타지적인 부분도 소홀히 하지 않아 판타지와 로맨스를 적절하게 조화시킨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악귀와 주인공이 대결하는 장면에서는 이것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잘 보여준다.
도화령이 조금은 색다른 판타지 소설을 보여줬다면 누리나라 역시 도화령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판타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판타지와 로맨스를 같이 즐기고 싶은가? 그런 독자들에게 추천하고픈 책, 바로 《령-누리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