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위기는 왜 반복되는가? 공정한 사회를 향한 새로운 질서는 무엇인가?
‘위기학자’ 스티글리츠가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를 침체에 빠뜨렸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큰 충격이었다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는 안도감도 잠시, 다시금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더디고 힘겹게 경기 회복의 길을 걷고 있는 유럽은 물론, 빠르게 위기 이전의 성장세를 회복했다고 하는 아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침체의 늪을 벗어났다는 한국에서도 불안의 목소리가 크다. 국가부채가 최근 몇 년간 크게 늘어났고, 가계부채 역시 위험한 수준이라는 연구기관의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또한 국내 주요 기업들의 실적이 발표되면서 외형적인 매출 신장의 이면에 수익성은 감소했다는 분석이 위기감을 한층 키우고 있다. 최근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글로벌 환율 전쟁의 여파로 경영 리스크가 커지면서 기업들은 위기관리에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얼마 전 뉴욕 세계 비즈니스포럼에서 연준과 유럽중앙은행의 긴축정책이 더블딥을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발언이 세계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퍼 이코노미스트’라는 별명이 붙은 스티글리츠는 ‘끝나지 않은 추락(원제 Freefall, 조지프 E. 스티글리츠 지음, 장경덕 옮김, 21세기북스)’에서 이 발언을 좀 더 구체화시켜 보여주면서 세계경제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미국 경제가 아직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유럽발 대침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글로벌 통화전쟁을 예견했던 스티글리츠는 이 책에서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글로벌 금융위기의 뿌리를 정확히 짚어내고 오바마 정부의 경기부양조치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금융계에 휘둘려 단기적인 부양책과 은행구제정책을 펼친 오바마 정부의 초기 대응을 부시의 정책과 다를 바 없다며 근본적인 개혁을 촉구한다. 무분별한 금융규제 완화를 위기의 최대 원인으로 꼽은 스티글리츠의 분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위기를 초래한 금융계는 어떤 이유로 그와 같은 행동을 했는지, 그들의 행동을 허용한 규제당국은 어떤 특수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는지 분석한다. 나아가 잘못된 정책을 낳았던 주류 경제학 이론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온갖 이해관계와 사상, 이념이 얽힌 복합적인 문제라고 해석한 저자는 위기의 심층원인이 글로벌통화·금융시스템의 근본적인 결함에 있다고 결론짓는다.
금융위기의 뿌리를 낱낱이 파헤친 스티글리츠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모조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처방을 제시한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금융시스템의 개혁을 주장하고, 새로운 글로벌 준비통화를 포함한 세계금융통화체제의 개혁을 제안한다. 공정하고 균형적인 사회를 위해 그가 제시한 방안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몇 가지 이슈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미국 정부와 국제기구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그가 거듭 주장했던 금융시스템의 개혁과 세계경제의 지속적인 번영을 위한 국제 공조는 G20 정상회의의 핵심의제이며, 스티글리츠가 제안한 글로벌 준비통화 시스템은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치열한 논쟁거리인 통화전쟁에 대한 해법이다.
더 나은 자본주의와 금융시스템을 위한 스티글리츠 개혁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독자들은 이론과 역사, 실천에 모두 해박한 경제학자의 눈으로 본 세계경제와 금융을 관통하는 거대한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또한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세계 경제동향에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는 우리가 장기적인 번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사회가 양극화되고 불신이 넘쳐난다는 점에서 미국과 우리나라는 유사한 점이 있다. 스티글리츠가 제안한, 공정하며 치우치지 않은 시스템은 그래서 우리에게 더욱 필요하다.
세계경제는 다시 아래로 곤두박질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릴 것인가
스티글리츠는 글로벌위기를 전환점으로 정책과 사상에서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그것은 그저 정치사회적으로 편리한 길이 아니라 세계인의 삶을 향상시키고, 또 다른 위기를 방지하며, 진정한 혁신을 앞당길 수 있는 변화를 뜻한다. 스티글리츠는 위기를 겪은 뒤 분명히 달라진 새로운 자본주의질서를 이해해야 하고,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금융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21세기의 혁신적인 경제에서 정부는 앞으로 더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실업이나 장애 등 개인에게 닥치는 위험에 대한 사회적 보호망을 제공하고, 시장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혁신을 촉진해야 하며, 기업과 금융계의 착취를 방지해야 한다. 글로벌 관점에서는 국제적 차원의 금융규제가 가능한 공정하고 새로운 글로벌 준비제도를 구성해야 한다. 새로운 글로벌 준비통화가 통용된다면, 글로벌 총수요는 늘어나고 세계경제가 한층 튼튼해질 것이다. 이와 함께 국제적인 법질서를 강화하고 세계경제의 균형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위기 이후 현재까지 미국과 세계의 행보는 걱정스러운 점이 있다. 미국 정부의 경기부양 조치가 최악은 아니었지만, 최선과도 거리가 멀었다. 2010년 7월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금융개혁법은 예상보다는 강력한 규제를 포함하고 있었지만, 은행이 피해갈 수 있는 여러 면제조항도 가지고 있었다. 위기 이후 지금까지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개혁 역시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그리스 위기에서 시작해 유럽 전반에 불어닥친 재정 위기는 한층 심각하다. 스티글리츠는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글로벌 총수요는 줄고 성장은 느려져 심지어 더블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번의 글로벌 경제침체가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제 유럽에서 시작된 새로운 위기가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21세기의 첫 10년이 잃어버린 10년으로 치부되는 현재 미국과 유럽, 또 세계는 어둠에 싸여 있다. 새로운 침체의 먹구름이 다가오는 지금,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하느냐에 따라서 세계는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과거의 위기를 불러온 수많은 문제들이 계속 지속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큰 위기가 닥쳐올 수도 있다. 인류의 번영을 향한 기회의 창은 닫혀버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