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실주의의 대표 주자라고 일컬어지며, 1850년 8월 5일, 2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870년 보불 전쟁이 일어나자 입대해서 노르망디 지방에서 전쟁을 체험했으며, 1871년에 제대하고, 이듬해 파리로 건너가 해군본부에 취직한 한편 시와 소설을 창작했다. 그의 문단 데뷔는 화려했다. 1880년에 「비곗덩어리」를 발표하자, 플로베르는 이 작품을 '후세에 남을 걸작'이라고 격찬했다. 이어 발표한「여자의 일생」에 대해 톨스토이는「레 미제라블」아래 최고의 명작이라는 찬사를 바쳤다. 그 뒤「벨아미」를 비롯하여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난 양의 작품을 발표했지만, 한편으로 그는 젊었을 때부터 끊임없이 무서운 병과 싸워야 했다. 실명과 탈모는 점점 온몸에 번져 신경 이상으로 이어졌고, 1892년, 자살을 기도한 뒤 정신 벼원에 입원했다. 결국 그는 이듬해 그곳에서 42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모파상의 모든 작품은 그의 세계과 내지 인생관을 반영한다. 그의 작품 경향은 초기의 통렬한 풍자, 그리고 감상과 연민, 이어 개인적인 불안과 공포로 이어진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의 작품에 흐르는 것은 구원 없는 페시미즘이다. 즉 모파상의 문학에는 결정론적인 인간관에서 오는 염세주의가 짙게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