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의 논문에서 나는 정지용 시의 감각적 특징에 착안하여 그의 시세계와 그의 시가 한국 시사에서 지니는 의미를 해명하려 하였다. 정지용에게 '감각'은 세계를 느끼는 고유의 방법이자 미적 형식의 원리이다. 단지 충동이나 말초적 반응, 또는 선언이나 주장으로 그치지 않는 '감각'을 통해 그가 어떻게 그때까지의 한국 시사를 한 발 앞질러 나가는지, 앞질러 가면서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보고 싶었다. 정지용 연구사에서 주로 논의되는 '전통성과 현대성', '모더니즘과 동양정신'의 테마 역시 '감각'을 중심으로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흔히 서구 모더니즘 수용의 증거나 서구적 근대추종의 태도로 이해되었던 초기 시와 그에 대한 반발 혹은 반성에서 비롯된 '동양정신에의 귀의'로 평가되었던 후기 시에도 그의 독특한 '감각'은 일관되고 있다. 그 일관성과 변화의 흐름 속에는 한국 현대시가 짊어질 수밖에 없었던 힘겨운 숙제와 모순된 특징이 가로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2부에서는 개별 논문 4편의 글을 모았다. 앞의 두 편에서는 좀더 다른 시각, 또는 흔히 주목하지 않았던 대상을 통해 정지용 문학의 세계에 접근하려 하였다. 시간의 식을 통한 접근이 정지용 시가 지닌 현대성을 또 다른 시각으로 해명한다면, 산문에 대한 고찰은 그의 문학적 시도와 좌절과 성과를 또 다른 의미로 보충해줄 것이다. 뒤의 두 편에서는 정지용 문학의 좌표를 그와 연관된 당대의 관계망 속에서 그려보려 하였다. 이병기·이태준 등의 문장과 문학인, 그리고 김기림·김영랑·백석 등의 30년대 시인과의 관련 속에서 그의 시세계를 해명한 것은 이러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로 다른 시간, 다른 지점에서 씌어졌지만, 이 책에 흐르고 있는 주요한 문제의식은 전통과 현대의 습합 지점, 혹은 하나의 대상, 관념이 이중적 가치를 표상할 수 있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미적인 것'의 추구가 지니는 의미에 관한 것이다. '미적인 것'이 '조선적인 것'과 결합하면서 빚어내는 다양한 스타일, 시간의식을 통해서 본 미와 현실의 관계, 그리고 일반적으로 '미적인 것'이 정지용의 시에서 독특하게 발현된 '감각'에 대한 고찰은 이러한 관심에서 기인한다. 이 책에서 기울인 노력이 '미적인 것'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과 온당한 평가를 이끌어내고 궁극적으로 한국시의 현대성을 규명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연구자로서 더없이 보람된 일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