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중에서>
사람이란 몇 십 년 살고 보면 감각이나 감성이 닳고 낡아 버려져서 아주 둔해지는 모양이다. 우선 미각만 하더라도 어릴 적엔 양념으로 든 파는 물론 미나리 같은 향기로운 나물도 냄새가 되려 고약해서 못 먹던 내가, 나이가 들면서 어느 새에 예사로 먹게 되었을 뿐 아니라, 요즘 와서는 봄철이 되어 아이들이 즐겨 먹는 칡이나 삘기 같은 것을 일부러 얻어 입에 넣고 씹어 볼라치면, 어릴 적에는 달고 향긋해서 즐겨 먹던 그것이 아주 싱겁고 맛없어 어떻게 이걸 먹었는가 싶어지는 것이다.
그것뿐이랴! 설날 같은 명절도 어릴 적에는 그렇게 기둘리고 즐겁던 것이, 이제 와서는 그런 기분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이 명절에 대한 무감각은 그 명절 고비에 당하는 살림살이의 쪼들림이라든지, 세월이 감으로써 나이가 드는 서글픔이라든지 그러한 데서 유래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같이 만사에 무사태평한 위인으로서는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것이라든지, 빚쟁이의 성화 따위로 서글픔이나 성가심은 좀체 느껴지지 않으니 그 때문에도 아닌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설 기분이 흐리멍덩한 이유는, 어쩌면 음력 과세와 양력 과세의 설날이 우리에게는 둘이나 있어 오히려 이것도 저것도 설 같지 않은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