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金時習. 1435.세종 17∼1493.3.30.성종 24)
조선 초기의 학자.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 서울 출생.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 고려(高麗) 때 시중(侍中) 태현(台鉉)의 후손, 일성(日省)의 아들.
5세 때 이미 [중용(中庸)] [대학(大學)]에 통하여 신동(神童)이라는 이름을 들었고, 집현전(集賢殿) 학사(學士) 최치운(崔致雲)이 그의 재주를 보고 경탄하여 이름을 시습(時習)이라 지어주었다.
1455년 21세 때 수양대군(首陽大君: 世祖)이 단종(端宗)을 쫓아내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문을 닫고 3일이나 통곡하였으며, 세상을 비관하여 책을 불사르고 중이 되어 설잠(雪岑)이라 호하고, 또는 청한자(淸寒子)ㆍ벽산(碧山)ㆍ동봉(東峰)ㆍ췌세옹(贅世翁)이라고도 하였다. 각지를 두루 방랑하면서 글을 지어 세상의 허무함을 읊었다. 47세인 성종(成宗) 때에 이르러 머리를 기르고 안씨의 딸을 맞아들여 아내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