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은 선악을 불문하고 법정이나 의회, 논쟁 등에서 승리를 얻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던 소피스트의 교육에 대한 풍자다. 그들은 종래의 모든 고정 관념을 문답에 의해 검토한 다음, 이를 바로잡고 자기의 관찰과 추리에 의해 그 가치를 확인하려고 했다. 소크라테스가 하는 방식은 외면적으로는 소피스트의 그것과 비슷했다. 추한 얼굴, 누더기를 걸치고 맨발로 돌아다니는 그는 참으로 희극에 어울리는 기인(奇人)이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하필이면 이 대철인을 소피스트의 대표자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므로 극중에 등장한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추구하여 사물의 절대 가치를 인식하려는 대철학자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새>는 언뜻 보아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일관되어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여기서 고전극의 특징인 정치적인 풍자를 엿보게 된다. 무기력한 인간이 새의 왕을 찾아가서 공중에다 새의 제국을 세워 천상천하에 군림하려고 하는 것은, 당시 세파에 시달리던 아테네 시민에 대한 아이러니컬한 풍자다.
당시에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인한 많은 인적ㆍ물적 손실을 감수해 왔다. 그러다가 기원전 421년에 평화 조약을 맺고 한동안 평화가 계속되었으나 선동 정치가들은 감언이설로 민중을 현혹시켜 사욕을 채우기에 바빴다. 특히 동서에 군림하는 대제국을 꿈꾸던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 민중을 설득하여 기원전 415년 시켈리아 원정을 위해 대함대를 파견했다가 참패하고 만다. 이때부터 아테네의 국운은 내리막 길을 걷게 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좌절과 불안에 떠는 시민들을 기발한 공상과 아름다운 환상으로 위로하는 한편, 자신의 우국 충정을 표현하고 세태의 폐습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