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제1부 고대
001_위만의 쿠데타(BC 194년) 최초의 쿠데타: 신화의 시대는 끝나고
002_고구려 불교 승인(372년‘) 불국토’로 가는 길
003_고구려의 중원 정벌(395년) 대륙을 달리다
004_평양 천도(427년) 한반도와 만주 동시 경영의 계기
■ 한국사 깊이 읽기_수도를 바꾼다, 시대를 바꾼다-천도
005_웅진 천도(475년) 백제의 멸망을 막은 결단
006_진흥왕의 성왕 배신과 한강 유역 진출(553년) 진흥왕이 북한산에서 본 것은
007_선덕여왕 즉위(632년) 모란꽃 그림에는 피의 향기가
008_연개소문의 쿠데타(642년) 고구려의 혼을 살린다?
009_나당동맹(648년) 한반도의 운명을 가른 역사적 결정
010_소정방의 신라군사 처벌에 반발한 김유신(660년) 나당전쟁의 실마리
011_원효의 당 유학 포기(661년) 해골 물에서 얻은 것은
012_남건의 남생에 대한 반란(666년) 고구려의 멸망을 불러온 형제 간 싸움
013_경덕왕의 중국화 정책(757년) 동방예의지국으로의 첫걸음
014_장보고 암살(846년) 스러진 해상왕의 꿈
제2부 고려시대
015_왕건의 궁예 축출과 고려 건국(918년) 준비된 쿠데타: 승자가 쓴 역사
016_왕건의 대신라 햇볕정책(918년) 평화적 통일을 위한 결단
017_신검의 쿠데타(935년) 후백제의 멸망을 부른 아들의 반역
018_노비안검법 실시(956년) 최초의 민권 개혁?
019_과거제 도입(958년) 900년간 이어온‘인재 등용의 혁명’
020_시무28조 채택(982년) 유교국가로의 길
021_서희의 강동 6주 획득(993년) 한국사 최고의 협상
022_서경 천도 무산과 묘청의 난(1135년) 서경에 심은 황제의 꿈
023_무신의 난(1170년) 피가 피를 부르는 폭압의 시대
024_고려 고종의 강화도 천도(1232년) 국난 극복을 위해? 정권 연장을 위해!
025_팔만대장경 조판(1237년) 한국사의 불가사의
026_원종의 쿠빌라이칸 접견(1260년) 강화도에서 나와 팍스 몽골리카로
027_삼별초항쟁(1270년) 최초의 민중운동?
028_일연의 삼국유사(1285년경) 또 하나의 역사
029_안향의 성리학 수입(1288년) 거대한 뿌리 심겨지다
030_이제현의 입성책동 반대운동(1323년) 홀로 나라를 지키다
031_공민왕의 반원정책(1352년) 익숙한 것에서의 결별
032_문익점의 목화 수입(1363년) 널리 세상을 따뜻하게 하다
033_공민왕 시해(1374년) 고려 부흥의 꿈은 저물고
034_정도전과 이성계의 만남(1383년) 개인과 개인의 만남? 문과 무의 동맹!
035_위화도 회군(1388년)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 한국사 깊이 읽기_한국사의 정치폭력
036_개혁세력의 토지 개혁 추진(1390년) 회귀형 개혁
제3부 조선시대
037_한양 천도(1394년) 한강으로 물갈이 가자
038_이방원의 1차 왕자의 난(1398년) 이방원 vs 정도전
039_조선왕조실록 편찬 결정(1409년) 실록 편찬 결정을 둘러싼 갈등
040_양녕 아닌 세종에 왕위 계승(1418년) 조선은 어떤 국가여야 하는가?
041_대마도 정벌(1419년) 왜구의 본거지를 쳐라
042_세종의 공법 개혁 및 후퇴(1430년) 국민투표로도 부족했던 개혁 기반
043_4군 6진 개척(1433년) 한반도 강역의 완성
044_세종의 갑인자 주조(1434년) 위대한 금속활자, 그러나
045_세종의 숙신옹주 친영 결정 (1435년‘) 시집살이’의 기원
046_한글 창제(1443년) 글 또한 만 백성이 공유할 권리가 있다
■ 한국사 깊이 읽기_창조와 발명
047_계유정난(1453년) 수양대군 vs 김종서
048_조광조의 소격서 혁파(1518년) 무엇이 미신인가?
049_조광조 일파 제거(1519년) 젊은이들의 좌절
050_이순신, 전라좌수사로 임명되다(1591년) 임진왜란을 막아낸 인사행정
051_신립의 탄금대 선택(1592년) 피할 수 있었던 패배
052_고경명의 금산 선택(1592년) 한양으로? 고향으로?
053_여진족의 원군 제의를 조선정부가 거절(1592년) 병자호란의 불씨를 남기다
054_동의보감 편찬 결정(1596년) 독자적 의학체계를 구축하다
055_쇄환사 파견(1607년) 다시 내민 화해의 손
056_광해군의 대동법 실시(1608년) 200년이 걸린 개혁
057_이수광의 서양문물 소개(1614년) 매우 귀중한‘주워들은 이야기’
058_광해군, 후금에 국서 전달하다(1622년) 고독한 결단은 배신을 부르고
059_인조반정(1623년) 조선은 오랑캐 나라가 아니다?
■ 한국사 깊이 읽기_명분이냐? 실리냐?
060_안용복의 독도 수호(1696년) 홀로 국토를 지키다
061_이승훈의 천주교회 창설(1784년) 취사선택의 실패
062_신해통공(1791년) 왕의 필요와 백성의 필요
063_정조, 사망 직전 김조순에게 앞날을 부탁하다(1800년) 세도정치의 문을 열다
064_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제작(1861년) 한평생 걸려 정리한 한반도의 모든 것
제4부 근·현대
065_경복궁 중건(1865년) 경복궁에 비친 낙조
066_대원군의 쇄국정책(1866년) 과거에 매달렸던 실용주의
067_강화도조약(1876년) 역시 믿을 수 없는 회담
068_갑신정변(1884년) 개혁의 쿠데타: 가장 짧은 쿠데타
069_동학농민운동(1894년) 자주를 외친 대중의 첫 목소리
070_신분제 철폐(1894년) 수천 년 동안의 사슬
■ 한국사 깊이 읽기_세상의 절반, 여성에 관한 한국사의 결정들
071_한글의 공식문자화(1894년) 450년 만의 햇볕
072_명성황후 시해(1895년) 누가 이 여인을 죽였는가?
073_독립협회와 독립신문(1896년) 개화와 친일 사이
074_메가타의 화폐 정리 사업(1904년) 103년 전의 IMF
075_이토 히로부미 암살(1909년) 하얼빈의 총성
076_33인의 독립 선언(1919년) 3.1운동의 불씨를 만든 명망가들의 선언
077_임정 수립(1919년‘) 임시’로 만든‘조국’
078_한반도 분할 점령(1945년) 전쟁의 불씨
079_반탁운동 결정(1945년) 엘리트의 기만
080_남북한 단독정부 수립(1948년) 찢겨진 산하
081_농지 개혁(1949년) 미흡한 새 세상
082_김구 암살(1949년) 거인의 죽음
083_반민특위 습격(1949년) 원죄의 씨를 뿌리다
084_한국전쟁(1950년) 한반도 냉전 심화의 결정적 계기
085_북한군의 3일 서울 지체(1950년) 전장의 안개에 싸여?
086_유엔의 한국전 개입 결정(1950년) 소련 안보리 불참의 의문
087_맥아더 해임(1951년) 맥아더, 누구를 위하여 전쟁하려 했나?
088_한미동맹(1953년) 이승만의 벼랑 끝 전술
089_4.19 교수 데모(1960년) 민중 승리의 결정적 계기가 되다
090_5.16(1961년) 후퇴란 없다?
091_베트남 파병(1964년) 동맹의 덫, 혹은 복음
092_한일회담(1965년) 한일관계, 숙제는 이어지고
093_경부고속도로 착공(1968년) 압축적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한 결정
094_한글 전용(1968년) 한글 vs 한자
095_10월 유신(1972년) 가지 않았어야 할 길
096_박정희 암살(1979년) 장기 독재시대, 20년 만에 막을 내리다
097_12.12(1979년) 악惡의 반복
098_광주민주화운동(1980년) 민주화운동의 위대한 기념비
099_올림픽 유치 성공(1981년) 벽을 넘어 한국을 세계에 알리다
100_이병철 반도체 생산 결정(1982년) 반도체 강국으로의 도약
101_6.10 수용한 6.29(1987년) 한국의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게 된 절반의 승리
102_후보 단일화 실패(1987년) 복마전을 열다
103_카터 방북(1994년) 현대 한국사 최고의 결정
104_IMF 구제금융 신청(1997년) 세계화의 덫
105_남북정상회담(2000년) 적대적 남북관계, 화해와 협력관계로 전환되다
■ 한국사 깊이 읽기_만남의 순간들
106_노무현 탄핵(2004년) 쿠데타인가? 정의 실현인가?
107_수도 이전 무산(2004년) 관습 헌법의 벽
108_부계성 강제조항 폐지(2005년) 동방예의지국은 없다
■ 한국사 깊이 읽기_가장 많은 한국사 중요 결정을 내린 사람은?
부록_한국사 40대 중요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