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가지 결정

함규진 | 페이퍼로드 | 2008년 08월 15일 |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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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종종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든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니 자신의 인생을 판가름한 중요한 결정이었던 그 결정의 시점으로 되돌아가, 자신의 선택을 바꿔보고 싶은 느낌 때문이다. 다소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만약 다른 결정을 내렸더라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결정은 분명히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역사에도 그렇듯 큰 흐름을 바꾸는 결정이 있지 않을까?

가령 한글이 창제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의 문화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지 않았더라면, 고려왕조는 이어졌을까? 조선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우리 역사는 어떤 모습으로 전개되었을까? 나당동맹이 없었다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이 책은 이처럼 한국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역사적 결정들을 순위와 함께 시대순으로 소개한다. 가급적 해당 결정을 내리는 주체와 반대 세력 사이의 갈등과 고뇌를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이 책의 개정증보판이 10년 쯤 뒤에 쓰여진다면, 그때는 어떤 결정들이 추가될까? 한미 FTA? 쇠고기 수입? 대운하? 그리고 그때는 지금보다 더 긍정과 자랑에 차서 책을 엮게 될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것이다. 더 나은 한국을 만드느냐, 마느냐의 역사적 결정은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의 맨 처음 전공은 법학이었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해서 교수님께 “학문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기초적인 교양과 지식을 쌓으려면 어떤 책부터 읽으면 좋을까요?”하는 질문을 드리자 “법대에 들어왔으면 사법고시에 필요한 책만 봐라. 그것 말고는 볼 책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 후로 왠지 법학 공부에 정이 붙지 않았던 저자는 대학도 학과도 바꾸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새로이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대학을 다시 바꾸지 않았으나 전공은 자꾸 바꾸었다. 처음엔 행정학과로 입학했으나, 대학원은 정외과로 갔다. 정외과에서도 정치사상을 택했고, 다시 그 중에서도 동양 및 한국정치사상에 중점을 두기 시작해서 결국 박사학위까지 받고 현재 성균관대학교 국가경영전략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다.

‘밥학과’라 불리는 법학과를 버리고 점점 돈이 안 되는 학과로 발을 들이게 된 ‘바보’라고 농을 치는 저자이지만 그 기간 동안 ‘역사와 그 속의 인간’이라는 한 우물을 파온 그의 저력은 그러한 겸손한 표현이 무색하도록 말과 글에 면면히 드러난다. 언제나 바뀌는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을 바꾸고 마침내는 그 사람들에 의해 바뀌어 버리는 힘인 사상과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매혹된 그는, 앞으로도 계속 사상, 역사, 그리고 사람이라는 주제를 탐구하고 분석하는 ‘바보짓’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따금 그 결과물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 나갈 것이다.

지은 책에 『다시 쓰는 간신열전』, 『역사법정』, 『세상을 움직인 명문vs명문』이 있고, 논문에는 「예의 정치적 의미」, 「유교문화와 자본주의적 경제발전」, 「정약용 정치사상의 재조명」등이 있다. 『히틀러는 왜 세계정복에 실패했는가』, 『록펠러 가의 사람들』, 『마키아벨리』, 『팔레스타인』등의 번역서도 다수 있다.

목차소개

책머리에

제1부 고대
001_위만의 쿠데타(BC 194년) 최초의 쿠데타: 신화의 시대는 끝나고
002_고구려 불교 승인(372년‘) 불국토’로 가는 길
003_고구려의 중원 정벌(395년) 대륙을 달리다
004_평양 천도(427년) 한반도와 만주 동시 경영의 계기
■ 한국사 깊이 읽기_수도를 바꾼다, 시대를 바꾼다-천도
005_웅진 천도(475년) 백제의 멸망을 막은 결단
006_진흥왕의 성왕 배신과 한강 유역 진출(553년) 진흥왕이 북한산에서 본 것은
007_선덕여왕 즉위(632년) 모란꽃 그림에는 피의 향기가
008_연개소문의 쿠데타(642년) 고구려의 혼을 살린다?
009_나당동맹(648년) 한반도의 운명을 가른 역사적 결정
010_소정방의 신라군사 처벌에 반발한 김유신(660년) 나당전쟁의 실마리
011_원효의 당 유학 포기(661년) 해골 물에서 얻은 것은
012_남건의 남생에 대한 반란(666년) 고구려의 멸망을 불러온 형제 간 싸움
013_경덕왕의 중국화 정책(757년) 동방예의지국으로의 첫걸음
014_장보고 암살(846년) 스러진 해상왕의 꿈

제2부 고려시대
015_왕건의 궁예 축출과 고려 건국(918년) 준비된 쿠데타: 승자가 쓴 역사
016_왕건의 대신라 햇볕정책(918년) 평화적 통일을 위한 결단
017_신검의 쿠데타(935년) 후백제의 멸망을 부른 아들의 반역
018_노비안검법 실시(956년) 최초의 민권 개혁?
019_과거제 도입(958년) 900년간 이어온‘인재 등용의 혁명’
020_시무28조 채택(982년) 유교국가로의 길
021_서희의 강동 6주 획득(993년) 한국사 최고의 협상
022_서경 천도 무산과 묘청의 난(1135년) 서경에 심은 황제의 꿈
023_무신의 난(1170년) 피가 피를 부르는 폭압의 시대
024_고려 고종의 강화도 천도(1232년) 국난 극복을 위해? 정권 연장을 위해!
025_팔만대장경 조판(1237년) 한국사의 불가사의
026_원종의 쿠빌라이칸 접견(1260년) 강화도에서 나와 팍스 몽골리카로
027_삼별초항쟁(1270년) 최초의 민중운동?
028_일연의 삼국유사(1285년경) 또 하나의 역사
029_안향의 성리학 수입(1288년) 거대한 뿌리 심겨지다
030_이제현의 입성책동 반대운동(1323년) 홀로 나라를 지키다
031_공민왕의 반원정책(1352년) 익숙한 것에서의 결별
032_문익점의 목화 수입(1363년) 널리 세상을 따뜻하게 하다
033_공민왕 시해(1374년) 고려 부흥의 꿈은 저물고
034_정도전과 이성계의 만남(1383년) 개인과 개인의 만남? 문과 무의 동맹!
035_위화도 회군(1388년)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 한국사 깊이 읽기_한국사의 정치폭력
036_개혁세력의 토지 개혁 추진(1390년) 회귀형 개혁

제3부 조선시대
037_한양 천도(1394년) 한강으로 물갈이 가자
038_이방원의 1차 왕자의 난(1398년) 이방원 vs 정도전
039_조선왕조실록 편찬 결정(1409년) 실록 편찬 결정을 둘러싼 갈등
040_양녕 아닌 세종에 왕위 계승(1418년) 조선은 어떤 국가여야 하는가?
041_대마도 정벌(1419년) 왜구의 본거지를 쳐라
042_세종의 공법 개혁 및 후퇴(1430년) 국민투표로도 부족했던 개혁 기반
043_4군 6진 개척(1433년) 한반도 강역의 완성
044_세종의 갑인자 주조(1434년) 위대한 금속활자, 그러나
045_세종의 숙신옹주 친영 결정 (1435년‘) 시집살이’의 기원
046_한글 창제(1443년) 글 또한 만 백성이 공유할 권리가 있다
■ 한국사 깊이 읽기_창조와 발명
047_계유정난(1453년) 수양대군 vs 김종서
048_조광조의 소격서 혁파(1518년) 무엇이 미신인가?
049_조광조 일파 제거(1519년) 젊은이들의 좌절
050_이순신, 전라좌수사로 임명되다(1591년) 임진왜란을 막아낸 인사행정
051_신립의 탄금대 선택(1592년) 피할 수 있었던 패배
052_고경명의 금산 선택(1592년) 한양으로? 고향으로?
053_여진족의 원군 제의를 조선정부가 거절(1592년) 병자호란의 불씨를 남기다
054_동의보감 편찬 결정(1596년) 독자적 의학체계를 구축하다
055_쇄환사 파견(1607년) 다시 내민 화해의 손
056_광해군의 대동법 실시(1608년) 200년이 걸린 개혁
057_이수광의 서양문물 소개(1614년) 매우 귀중한‘주워들은 이야기’
058_광해군, 후금에 국서 전달하다(1622년) 고독한 결단은 배신을 부르고
059_인조반정(1623년) 조선은 오랑캐 나라가 아니다?
■ 한국사 깊이 읽기_명분이냐? 실리냐?
060_안용복의 독도 수호(1696년) 홀로 국토를 지키다
061_이승훈의 천주교회 창설(1784년) 취사선택의 실패
062_신해통공(1791년) 왕의 필요와 백성의 필요
063_정조, 사망 직전 김조순에게 앞날을 부탁하다(1800년) 세도정치의 문을 열다
064_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제작(1861년) 한평생 걸려 정리한 한반도의 모든 것

제4부 근·현대
065_경복궁 중건(1865년) 경복궁에 비친 낙조
066_대원군의 쇄국정책(1866년) 과거에 매달렸던 실용주의
067_강화도조약(1876년) 역시 믿을 수 없는 회담
068_갑신정변(1884년) 개혁의 쿠데타: 가장 짧은 쿠데타
069_동학농민운동(1894년) 자주를 외친 대중의 첫 목소리
070_신분제 철폐(1894년) 수천 년 동안의 사슬
■ 한국사 깊이 읽기_세상의 절반, 여성에 관한 한국사의 결정들
071_한글의 공식문자화(1894년) 450년 만의 햇볕
072_명성황후 시해(1895년) 누가 이 여인을 죽였는가?
073_독립협회와 독립신문(1896년) 개화와 친일 사이
074_메가타의 화폐 정리 사업(1904년) 103년 전의 IMF
075_이토 히로부미 암살(1909년) 하얼빈의 총성
076_33인의 독립 선언(1919년) 3.1운동의 불씨를 만든 명망가들의 선언
077_임정 수립(1919년‘) 임시’로 만든‘조국’
078_한반도 분할 점령(1945년) 전쟁의 불씨
079_반탁운동 결정(1945년) 엘리트의 기만
080_남북한 단독정부 수립(1948년) 찢겨진 산하
081_농지 개혁(1949년) 미흡한 새 세상
082_김구 암살(1949년) 거인의 죽음
083_반민특위 습격(1949년) 원죄의 씨를 뿌리다
084_한국전쟁(1950년) 한반도 냉전 심화의 결정적 계기
085_북한군의 3일 서울 지체(1950년) 전장의 안개에 싸여?
086_유엔의 한국전 개입 결정(1950년) 소련 안보리 불참의 의문
087_맥아더 해임(1951년) 맥아더, 누구를 위하여 전쟁하려 했나?
088_한미동맹(1953년) 이승만의 벼랑 끝 전술
089_4.19 교수 데모(1960년) 민중 승리의 결정적 계기가 되다
090_5.16(1961년) 후퇴란 없다?
091_베트남 파병(1964년) 동맹의 덫, 혹은 복음
092_한일회담(1965년) 한일관계, 숙제는 이어지고
093_경부고속도로 착공(1968년) 압축적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한 결정
094_한글 전용(1968년) 한글 vs 한자
095_10월 유신(1972년) 가지 않았어야 할 길
096_박정희 암살(1979년) 장기 독재시대, 20년 만에 막을 내리다
097_12.12(1979년) 악惡의 반복
098_광주민주화운동(1980년) 민주화운동의 위대한 기념비
099_올림픽 유치 성공(1981년) 벽을 넘어 한국을 세계에 알리다
100_이병철 반도체 생산 결정(1982년) 반도체 강국으로의 도약
101_6.10 수용한 6.29(1987년) 한국의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게 된 절반의 승리
102_후보 단일화 실패(1987년) 복마전을 열다
103_카터 방북(1994년) 현대 한국사 최고의 결정
104_IMF 구제금융 신청(1997년) 세계화의 덫
105_남북정상회담(2000년) 적대적 남북관계, 화해와 협력관계로 전환되다
■ 한국사 깊이 읽기_만남의 순간들
106_노무현 탄핵(2004년) 쿠데타인가? 정의 실현인가?
107_수도 이전 무산(2004년) 관습 헌법의 벽
108_부계성 강제조항 폐지(2005년) 동방예의지국은 없다
■ 한국사 깊이 읽기_가장 많은 한국사 중요 결정을 내린 사람은?

부록_한국사 40대 중요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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