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침묵>은 베르너란 독일군 장교가 점령지인 프랑스에서 '멀리 있는 공주'를 사랑하듯 프랑스를 사랑하는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프랑스는 집요한 침묵으로 그를 거부하다가 마침내는 '흉한 마수에게 손을 내미는 미녀'처럼 그에게 마음이 끌리게 된다.
음악가이기도 한 베르너는 프랑스와 독일이 사랑하는 남녀와 같이 숭고하게 결합되기를 원하지만, 나치의 의도가 프랑스의 문명을 파괴하고 말살하려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환멸과 실망을 느끼면서 러시아 전선의 '지옥행(地獄行)'을 지원하여 떠나버린다.
독·불 협력의 새로운 질서란 대독 협력자(對獨協力者)의 양심적인 꿈이었으나, 실은 점령하의 시민에 대한 함정이었다. 이 작품은 그러한 이념을 깨뜨려 두 국민의 공동적인 적(敵)의 소재를 밝히고, 또한 선의의 인간 관계를 영원히 찢어버리는 전쟁의 비정함을 그리고 있다.
<그 날> <무력(無力)> <베르덩 인쇄소> 같은 작품에서도, 작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굽히지 않는 인간애와 불의에 대한 도전 그리고 최소한 인간이 지녀야 할 양심의 소리에 대해서 역설하고 있다. 우리의 도전은, 항거하기 힘든 어떤 힘이나 존재에의 도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양심에서의 도전이어야 함을 작가는 끈질기게 조명하고 있다.
역사가 같은 실수를 두 번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수치심을 느낄 줄 아는 지성의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야 하고, 강자(强者)는 그 소리치는 입을 '틀어막지 말아야' 한다.
그의 작품에는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외에 <별을 향한 행진> <밤의 무기> <눈과 빛> <비정의 눈물> <내 조국의 고통>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