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9 민주혁명 세대의 긍지 속에 30대로 들어서며 만해 한용운ㆍ단재 신채호와의 만남은 나에게 세계관의 주춧돌이 되었다. ≪천추의열 윤봉길≫을 쓰고 나서 ≪문숙공 윤관 장군≫ 작업으로 40대를 맞으며 역사관 정립의 문턱에 겨우 들어설 수 있었다.마침내 역사 허무주의 극복이라는 관문을 넘어선 것만으로 득의의 연대기를 내재화하는 과정에서 문학과 역사의 날선 갈등이 뜻밖에도 섣부른 가치관을 거의 모두 초토화하는 위기를 실감케 하였다.그리고 시신詩神 뮤즈가 가위 눌린 채 인고의 세월 20여 년이 덧없는 성벽처럼 가로막혀 있었는데 역사적 이성을 변증과정으로 승화하며 ≪윤관 장군과 북벌≫로 다시 정리하는 가운데 문학의 역사적 활로가 다소 열리게 되었다. 1980년도 초판본, 이듬해 재판본에 이어 21년 만의 이 작업은 문숙공과의 3차 격투이나, 분량이 3할선으로 축약되면서 내용이 보다 선명하고 명쾌해진 인상이다.그러함에도 역사의 신 클리오는 호흡 조절로 뮤즈와의 공존과 화해를 새삼 손짓한다. 수용하지 아니할 수 없는 철 늦은 명제다. 다만 역사학계의 정답이 아직 미비한 현시점에서 문중사학의 과장벽만은 나름대로 정화되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