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풍몽룡馮夢龍(1574~1646)
남직예南直? 장주현長洲縣(지금의 장쑤江蘇 성 쑤저우蘇州) 사람이다. 자는 유룡猶龍, 자유子猶 등이고, 호는 용자유龍子猶, 묵감재주인墨?齋主人 등이다. 양명학 좌파의 유명한 사상가 이탁오李卓吾의 학설에 심취하여 가식과 허례를 배척하면서 민간문학과 소설을 높이 평가했다. 과거에는 모두 낙방했고, 숭정崇禎 3년(1630)에야 공생貢生이 되었다. 벼슬은 수녕壽寧 지현知縣에 그쳤다. 명明이 망한 후 반청反淸 투쟁에 나섰지만 실패하고 울화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일설에는 청나라 군사에게 살해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풍몽룡은 학자, 소설가, 민간문학가로서는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그는 명말 민요를 채집하여 『괘지아?枝兒』와 『산가山歌』라는 민요집을 편찬했고, 『쌍웅기雙雄記』 『만사족萬事足』 등의 창작 극본을 남겼다. 또 『유세명언喩世明言』 『경세통언驚世通言』 『성세항언盛世恒言』이라는 백화소설집을 편찬했다. 흔히 ‘삼언三言’이라 불리는 이 소설집은 중국 고대 백화 단편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집이다. 그는 장편소설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증보삼수평요전增補三遂平妖傳』 『신열국지新列國志』 등을 개편하여 간행했고, 또 『춘추형고春秋衡庫』 『춘추별본대전春秋?本大全』 등의 저작을 남겼다. 특히 『춘추』에 대한 해박한 학식을 바탕으로 여소어余邵魚의 『열국지전』을 『신열국지』로 개편하여 이후 『열국지』가 『삼국지』와 더불어 중국 역사소설의 대표작이 되게 했다. 이밖에도 모사謀士들의 지혜를 정리한 『지낭智囊』과 역대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모은 『정사情史』도 간행했다.
정리자 채원방蔡元放
말릉?陵(지금의 장쑤江蘇 성 난징南京) 사람으로 본명은 오?, 자는 원방元放, 호는 야운주인野雲主人 또는 칠도몽부七都夢夫다. 생졸년은 미상이며, 청 건륭乾隆 연간을 전후하여 말릉 지역에서 활동한 민간문학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동주열국지』를 간행한 것 외에도 진침陳?의 『수호후전水滸後傳』에 평어評語를 단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채원방은 풍몽룡의 『신열국지』 108회본의 틀을 유지한채 『신열국지』의 오류를 고쳤으며, 본문의 취지와 맞지 않는 삽입 시 80여 수를 삭제했다. 또한 독자들을 위해 자신이 쓴 「서문序文」과 「독법讀法」을 소설 맨 앞에 배치해 넣었다. 뿐만 아니라 『동주열국지』 판본에는 채원방의 적절한 평어評語가 비주批注 형식으로 달려 있어서 독자들의 흥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동주열국지』가 나온 뒤 풍몽룡의 『신열국지』 판본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옮긴이 김영문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어려서 한문을 익혔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받고, 한국학술진흥재단 박사후과정에 선발되어 베이징대에서 유학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중한사전』을 교열했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에서 국내 최초로 『문선역주』(공역) 완역본을 출간했다. 경북대·대구대·서울대 등지에서 오랫동안 강의했다. 현재 인문학 연구서재 청청재靑靑齋 주인으로 중국 고전 번역 및 강의와 저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에서 지식인이 견지해야 할 올곧은 지성을 탐구하고 있다. 대표 저역서로 『노신의 문학과 사상』(공저) 『루쉰과 저우쭈어런』(공역, 문광부 추천도서) 『루쉰 시를 쓰다』(역주, 학술원 추천도서) 『내 사랑 샤에게』(번역) 『문선역주』(전10권, 공역) 『내 정신의 자서전』(번역) 『독재의 유혹』(번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