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그 사람과 함께 벚꽃을 보고 싶다.”
벚꽃 흩날리는 계절
조금 서투른 남자와 여자의 일곱 가지 사랑 이야기
벚꽃을 모티브로,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연결되는 순간을
선명하게 그려낸 벚꽃 테마 소설
독특하고 감각적인 문장으로, 상실에 익숙한 청춘, 타인과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치하야 아카네의 『벚꽃이 피었다』가 출간됐다.
벚꽃은 봄의 전령이다. 봄이 찾아올 무렵, 벚꽃이 피기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벚꽃과 함께 사랑을 떠올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벚꽃이 피었다』는 눈처럼 흩날리는 벚꽃의 계절에 자신의 사랑을 떠올려볼 수 있는 벚꽃 테마 소설이다. 벚꽃을 모티브로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이어지는 순간을 선명하게 그려낸 이 소설집에는, 외롭고 서투른 남녀의 깨져버린 사랑을 그린 슬픈 밤 벚꽃의 이야기, 사람의 마음을 먹어 그 사람의 마음을 자유롭게 해준다는 여우 이야기, 푸른 벚꽃의 문신을 필사적으로 찾는 여자의 이야기, 죽은 할머니의 집 벚나무 그루터기에 등장하는 소녀 유령의 이야기 등 아름답고 쓸쓸한 일곱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조용하게 집중시키는 이야기 속에 일곱 가지 벚꽃의 풍경, 일곱 가지 마음의 표정이 선연하다.
벚꽃은 아름답지만 쓸쓸하다. 쓸쓸하지만 찬란하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그렇다.
『벚꽃이 피었다』에는 저마다의 상처로 인해 타인과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비밀처럼 상처를 간직한 채, 혼자만의 고요함 속으로 빠져들어 그 안에서 평온함을 느낀다. 누군가 외롭지 않으냐고 물으면, 고요하다고 대답할 것만 같다. 이야기의 무대로 자주 등장하는 장소가 미술관, 자료관, 절 등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래전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미술관에서 일하는 여자는 ‘생활이 없는’ 미술관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사람이 통과해 가는 곳이라는 게 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도, 누구 하나 이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나는 오래된 건물과 전시품들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건조한 시간에 조용히 묻힌다.” (「봄, 여우에 홀리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한 청년은 대학의 학술 자료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곳 자료실의 공통점은 “정리된 죽음의 냄새가 떠다닌다는 것”이다. (「등」)
정물적인 장소를 마음의 평화의 장소로 선택하고 살아가는 이들은 타인과 관계 맺기를 두려워한다. “나는 두렵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허락하거나 기대거나 끌리는 것이 두렵다. 멋대로 나를 해석하거나 나에게 환멸을 느끼거나 나를 싫어하거나 나를 배신하는 것이 두렵다.” (「봄, 여우에 홀리다」) 그들은 마음을 흔드는 봄을 외면하려 하고, 봄의 상징인 벚꽃을 싫어한다. “벚꽃이란 거, 좀 교활하지 않나요?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지면서 사람들을 다 홀리잖아요.” (「꽃보라」)
얼핏 다르지만, 「엘릭시르」에 등장하는 여자 또한 이들과 다를 바 없다. 그녀는 타인을 자신의 마음대로 조종하고 “과거도 미래도 일상의 번잡한 고민도 없이 그저, 육체로만 존재하는 내가 되고 싶다”며 바에서 만나는 남자들과 의미 없는 만남을 이어간다. 마치 봄을 사는 것처럼 꾸민다. 그러나 이 인물 역시 마음의 뿌리는 미술관에서 일하는 여자와 다르지 않다. “육체로만 존재하는 나”란 “낡은 건물이나 전시품의 일부”가 되어 “건조한 시간에 조용히 파묻히는” 미술관 여자가 살아가는 방식,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무엇이든 마법처럼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사랑으로 달아오르는 마음도, 사랑 때문에 행복한 순간도 찰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금세 시들어버리는 벚꽃처럼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이제 다시는 사랑을 찾지 않으리라 결심한다. “벚꽃은 좀 별로에요. 예전에 벚꽃 꽃잎으로 목걸이를 만들었거든요? 실로 연결해서. 엄청 예뻤어요. 근데 하룻밤 지나고 보니 다 쪼그라들고 검어져서 더러운 양귀비 깻묵처럼 변해 있는 거예요. 사라지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이든 마법처럼, 사라지는 거구나. 부푼 마음도, 행복한 기분도 한순간에. 행복은 한순간이로구나.” _「꽃보라」
그러나 “건조한 시간에 파묻히는” 삶의 방식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그것이 그들이 진정 바라는 것일까? 불행을 치유하는 것은 희망뿐. 또다시 봄이 찾아와 벚꽃이 필 것이란 희망 없이 겨울을 견딜 수 있을까? 다시 사랑이 찾아오리란 희망 없이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치하야 아카네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어질 수는 있다. 아름다운 것, 다정한 것, 강렬한 것. 마음을 뒤흔드는 그런 것들을 접하면 사람의 마음은 한순간에 움직인다. 그럴 때에 교감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무척 행복한 일이다. 그 순간은 분명 그 사람을 지탱해줄 것이다.”
희망은, 지탱해줄 그 공감의 순간을 애써 찾아나가는 것. 그러므로 이 작품이 뿜어내는 세계에는 희망이 존재한다. 사람의 마음을 먹고산다는 현실에 없는 여우 이야기든, 누군가의 등에 새겨져 있었던 푸른 벚꽃의 문신을 필사적으로 찾는 여자의 이야기든, 외롭고 서툴렀던 남녀의 깨져버린 마음의 파편이 담긴 슬픈 밤 벚꽃의 이야기든, 벚나무 유령을 둘러싼 이루어지지 못했던 사랑의 이야기든, 모든 작품에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이어지는 찬란한 순간이 존재한다. 그 찬란한 순간이, 이 봄, 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의 작은 희망이 되어주기를.
“가스미의 후드에 들어 있던 벚꽃이 하늘하늘 떨어져 내린다. 마른 상처가 떨어져 나가듯이.”
수록 작품 소개
■ 봄, 여우에게 홀리다
나는 미술관에서 근무한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만난 초로의 남자가 그녀에게 말한다. 여우에게 마음이 먹히면 사람의 마음이 자유로워진다고.
■ 하얀 파편
벚꽃놀이 장소를 찾아보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비를 피하고 있는데 한 여자가 말을 걸어온다. 순간, 차가운 미소를 짓던 과거의 그 여자가 떠오른다. 다시 아픈 봄이 오고 만 것이다.
■ 첫 꽃
여배우 출신이라는 엄마는 내가 화려한 세계에서 주목받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나는 핑크색 벚꽃을 좋아하는 그런 엄마가 싫다. 하얀 ‘눈꽃’을 좋아하던 ‘깨끗한’ 아빠가 그립다. 꽃집의 그 언니가 좋은 것도 같은 이유이다.
■ 엘릭시르
나는 지금껏 남편의 죽은 아내의 대역에 불과했다. 남편을 배신하기 위해 바에서 만난 남자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버릴 뿐이라면 내게는 무엇이 남게 될까?
■ 꽃보라
국세청에서 일한다는 남자가 불현듯 나를 찾아와 그 여자, 유키에 대해 묻는다. 나와 유키의 관계는 무엇이었을까? ‘유키’는 그녀의 진짜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 등
나는 대학 자료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어느 날 어떤 여자로부터 푸른 벚꽃 문신이 새겨진 사람 가죽 표본을 보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오는데……
■ 벚나무의 비밀 색
나는 죽은 할머니의 집 마당 벚나무 그루터기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의 유령을 본다. 그 유령은 오직 내 눈에만 보인다. 어느 날 낯선 남자가 나타나 그 유령의 비밀에 대해 말하기 전까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