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그리고 인간의 미래
“알파고 이후 우리는
또 어떤 놀라운 사건과 마주하게 될까?”
내일의 한국 사회를 좌우할 새로운 질서에 대한 최고 전문가들의 분석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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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먼, 인공지능, 가상현실, 지식혁명…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로 다가올 기술은 무엇인가?
미래는 얼마만큼 열려 있고 또 닫혀 있는가? 이는 미래학자나 과학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화두다. 2016년 들어 특정 사건을 계기로 미래 문제는 사회 전반의 비상한 관심사가 됐다. 그것은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에서 드러난 인공지능의 성능과 새로운 경제 시스템 출현을 예고하는 4차 산업혁명의 선언이다. 알파고와 4차 산업혁명은 별개의 장소에서 전혀 다른 목적으로 기획됐다. 그러나 두 사건은 실제로 깊은 연관성을 갖고 우리를 미래로 이끌어간다.
대체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알파고 이후 우리는 또 어떤 놀라운 사건을 경험하게 될까? 《미래는 더 나아질 것인가》는 이런 시대의 부름에 응하기 위해 28명의 각계 전문가들이 생각을 모은 책이다. 과학기술과 사회 시스템 사이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연구기관인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미래연구센터가 기획을 맡았다.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를 필두로 과학, 공학, 법학, 의학, 철학, 경영학 등 각 분야 최전선에 선 연구자들의 날카로운 분석과 전망 그리고 전문 연구원들의 생동감 넘치는 현장 이야기가 결합되어 탄생했다. 이들은 모두 국내외 학계를 주도해왔고 활발한 연구로 각자의 분야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통찰을 줄 수 있는 최고 멘토들이다.
저자들은 한국 상황에서 보다 심도 있게 살펴봐야 할 미래 이슈로 포스트휴먼 플랫폼, 인공지능, 가상현실, 지식혁명, 재난 대응, 기술혁신 등 여섯 가지를 선정한 다음 각 주제에 대해 최신 동향과 미래 전망, 사회적 해석을 내놓았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연구자들이 내다본 미래는 여러 갈래로 흩어지고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저자들은 우리가 경험하게 될 과학기술의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고 또 서로 공명하며 미래에 대한 제언을 내놓는다.
미래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바꾸고자 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동반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내일의 한국 사회를 지배할 새로운 질서에 대한 최고 전문가들의 통찰력 넘치는 분석과 전망을 담은 이 책은, 우리가 꿈꾸는 가치 있는 미래를 위해 지금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죽지 않는 인간 포스트휴먼, 장식물이 되어가는 몸
2016년 초에 열린 다보스포럼은 모바일인터넷, 인공지능과 기계학습, 사물인터넷 등이 기존 생산 시스템과 결합해 새로운 산업혁명을 유도할 것이라 전망했다. 4차 산업혁명이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인간의 시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릴 것이다. 이른바 포스트휴먼(post-human) 시대가 시작된다. 포스트휴먼은 미래에 나타날 영생하는 새로운 인간을 말한다. 이 시점이 되면 인간은 더 이상 늙지도 죽지도 않으며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는다.
포스트휴먼은 증강된 성능과 최적화된 물질적 토대로 인간의 몸을 대체하며 생명을 연장하고 심지어는 영생을 얻는다. 포스트휴먼에게 인간 몸 자체는 존재 기반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인공 생명의 외부를 둘러싼 껍질이나 한낱 장식물에 불과하다. 인간의 몸은 여러 가지 다른 물질이나 모습으로 대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는, 이처럼 과학과 기술을 통해 정신적·육체적 능력을 개선하는 트랜스휴머니즘이 사회의 발전 방향을 주도한다면 포스트휴먼이 도래하기도 전에 일자리를 잃고 권태에 빠져 중독자로 전락한 인간이 사회를 붕괴시키는 역설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이런 위험에 대비하려면 포스트휴먼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일 없는 미래와 슈퍼스타 경제의 출현
인공지능이 주체가 되는 4차 산업혁명은 한편으로는 기존 일자리를 파괴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조업 분야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보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마치 산업혁명이 농업 분야 일자리를 대대적으로 파괴했음에도 공장 노동자와 사무직 관리자라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나준호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특히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고도의 역량을 갖춘 지적 자본가 그리고 인공지능과 로봇을 소유한 물적 자본가를 중심으로 한 소위 ‘슈퍼스타 경제(superstar economy)’의 출현이 예고된다고 말한다. 슈퍼스타 경제에서는 문화예술, 스포츠 분야처럼 극소수의 재능 있는 엘리트가 큰 보상을 받고 절대 다수는 평균 또는 그 이하의 소득을 얻는다. 이들 슈퍼스타가 천문학적 규모의 부를 축적한 뒤 다양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소비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새로운 서비스 산업의 출현을 촉발할 것이다.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인공지능 개발에는 인간이 서로에게 요구하는 서비스조차 로봇이나 가상현실로 대체하려는 목적도 내포되어 있다. 인간은 백화점 안내, 노인 간호, 심지어 섹스까지 인공지능이 담당하는 미래를 열고자 한다. 일본에서 이미 시판되고 있는 감정 인식 로봇 페퍼(Pepper)가 그 증거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어 미래의 어느 시점에 완성된다면 인간은 모두 필요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요컨대 인간이 할 일은 없는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고도의 기술이 문명 재난의 원인
자연 재난에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과학기술 장치들이 오히려 문명 재난을 일으키는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런 과학기술의 역설은 재난에 대해 인간보다 민감하게 위험을 감지하고 인간보다 지능적으로 대처하는 스마트 시스템이나,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을 만물인터넷으로 연결하는 총체적 디지털화에 그 원인이 있다.
만물인터넷으로 구현되는 초연결사회는 그것을 능가하는 안전관리 시스템의 구축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가중된다. 게다가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전면적으로 퍼져나갈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디지털 산불(digital wildfire)’이란 이런 위험을 경고하는 새로운 용어다. 전대욱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만일 미래에 모든 것을 광속으로 연결하는 만물인터넷이 완성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오류가 확산되는 ‘디지털 산불’의 위험이 상존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고도로 정교한 과학기술 장치들은 그 복잡성 때문에 오히려 재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과학기술의 역설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만물인터넷에서만 우려되는 일이 아니다. 이런 위험은 이미 원자력발전소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는 수백만 개의 부품과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전선과 배관, 수만 개의 용접 지점과 밸브 등이 이상 없이 작동해야 하는 고도로 복잡한 시스템이다. 이들 시설과 부품을 완벽하게 점검하고 안전성을 확인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노후화될수록 그 위험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과학기술의 선용과 가상현실
과학기술의 발전만으로는 우리가 꿈꾸는 가치 있는 미래를 열 수 없다. 가치 있는 미래는 과학기술발전 그 자체가 아니라 과학기술을 선용하는 사회에서 만들어진다. 사회 구성원이 고통을 받는 사회에서는 과학기술이 선용될 수 없다. 그런 잠재적 위험이 내재된 대표적인 기술이 최근 엄청난 경제적 부가가치를 생산할 것으로 주목받고 있는 가상현실이다. 가상현실의 열렬한 옹호자였던 컴퓨터공학자 재론 래니어(Jaron Lanier)는 가상현실에 몰입한 이유를 묻자 우울하고 비참한 자신의 현실을 잊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래니어의 고백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진단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빈부격차, 경쟁 심화, 청년 실업, 노후 빈곤, 양극화, 자살률 1위 등의 키워드가 지배하는 매우 우울한 상태다. 청년들은 이런 현실을 ‘헬조선’이라고 칭하며 비관하고 있다. 여러 가지 경제지표를 근거로 우리 사회가 헬조선이 아니라는 반박도 가능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의 사회 현실이 청년들을 비탄에 빠지게 한다는 사실이다. 최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가상현실 기술은 래니어의 사례처럼 악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진단한다. 만일 가상현실이 청년들에게 환영을 심어줌으로써 현실의 우울감을 달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사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마약이 진통제로 선용될 수도 있지만 현실 문제에서 도피하는 환각제로 악용되는 것과 같다.
일부 철학자들은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가 없다고 주장하며 가상현실에 몰입하는 삶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상현실은 인간의 탄생과 죽음이 일어나는 실존적 삶의 현장이 아니다. 모순으로 가득한 실존적 사회에서 구성원이 이를 개선할 의지를 포기한 채 가상현실로 도피한다면, 실존적 현실은 더욱더 비극적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가치 있는 미래를 향한 제언
결국 우리가 꿈꾸는 가치 있는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구성원의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것이 바로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저자들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서로 공명을 일으키며 주장하는, 미래를 향한 제언이다.
어떤 저자는 복잡계 이론으로 생태계를 조명하여 구성원의 자발적·민주적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생태적 질서는 생태계 내부에서 살아가는 독립적인 활동 주체들이 분산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다양성이 핵심이다. 따라서 복잡계 사회에서 다양한 행위 주체 간의 적절한 관계망 구축, 신뢰와 규범 형성 같은 사회적 자본 축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또 어떤 저자는 과학기술에 내재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새로운 재난 대응 패러다임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재난 대응 패러다임은 전문가 지식의 한계와 구성원 지식의 유용성을 인식하는 ‘겸허의 기술’에 기반한다.
저자들은 미래로 가는 역사의 행로는 과학기술 혁신만으로는 열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과학기술의 발전에 집착하는 혁신은 미래의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것. 가치 있는 미래로 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동력 확보가 필수적이며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기 위한 혁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 기획 과정에서 발상의 전환이 따라야 한다. 지금처럼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시장 수요를 만들어내고 이를 활용해 자본을 축적한 뒤, 그때 발생하는 부작용은 부수적 과제로 생각하는 정책 기획에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나아가 이런 제도가 시장에서 지속될 수 있는 시장 메커니즘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혁신의 첫걸음을 통해 우리는 가치 있는 미래로 향하는 길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