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나라는 부자이고, 다른 나라는 가난한가?
경제 발전, 그 선도와 추격의 역사
"왜 어떤 나라는 부자이고 다른 나라는 가난한가." 이것이 경제사의 근본 질문이자 연구 대상이다. 이 책은 여기서 갈라져 나온 두 가지 질문, 즉 "왜 산업혁명은 하필 다른 곳이 아닌 영국에서 일어났는가", "다른 선진국들은 어떻게 영국을 따라잡고 심지어 추월했는가"에 대한 답이다. 저자는 지난 500년간 세계 각국의 임금과 생활수준, 주요 산물의 가격 등을 비교하면서 역사의 분기점은 어디에 있는지, 부국의 기회를 잡은 국가들의 공통점은 무엇인지, 무엇이 현재의 불평등의 기원이 되었는지를 파헤친다. 또 제국주의의 여명기에서 시작해 일본의 거품 경제와 중국굴기에 이르는 세계 경제의 격동을 지리, 세계화 기술 변화, 경제 정책, 제도의 상호작용으로 다채롭게 풀어낸다.
특히 기술 진보, 정부 정책과 세계화 등을 성장의 요인으로 종합적으로 제시하면서, 기술 진보를 생산 요소의 상대가격에 기초하여 내생적으로 이해하고 경제성장에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주장은 경제성장에서 제도와 자유로운 시장의 역할을 중시하는 주류 경제학의 시각과는 다른 새로운 통찰을 보여준다.
500년 역사를 넘나드는 담대한 질문과 해답
저자는 1500년 이후의 세계경제사를 중상주의 시기, 추격기, 빅푸시(Big Push) 산업화 시기로 구분한다. 그리고 각 시기마다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추적한다. 1500년에서 1800년까지의 중상주의 시기는 대항해로 촉발된 식민지와 세계 경제, 산업혁명기를 가리킨다. 추격의 시기는 19세기 들어 유럽과 미국이 영국을 추격하기 시작한 시기, 빅푸시 산업화 시기는 20세기 들어 소련, 중국 그리고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선진국을 따라잡은 시기다.
저자는 이 방대한 기간의 자료들을 바탕으로 똑같은 식민지 역사를 겪은 아메리카 북부와 남부는 왜 다른 길을 걸었는지, 비슷한 계획 경제를 추구한 소련과 중국은 역시 왜 다른 역사를 가지게 되었는지, 아프리카 대륙이나 인도 등은 왜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등 굵직한 역사적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영국의 높은 임금이 산업혁명을 만들었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눈부신 발전이었다. 산업혁명 기간에 전 세계 제조업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퍼센트에서 23퍼센트로 높아졌고, 아시아의 제조업을 황폐화할 만큼 위력적이었다. 저자는 하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원인으로 "높은 임금"을 꼽는다. 노동비용이 비쌌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로 노동을 대체할 필요가 있었고, 그렇게 등장한 증기기관이 당시의 방적, 방직 산업에 혁신을 몰고왔다고 말한다. 반대로 식민지 국가에서는 노동비용이 쌌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인센티브가 적었고, 영국과 면직 산업 경쟁에서 도태된 인도 등은 세계화되는 경제 구조 안에서 농산물의 생산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발전을 이끈 표준 모델: 철도, 관세, 은행, 학교
이 책에는 표준 모델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즉 산업화 과정에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취한 정책이 있다는 것이다. 19세기 들어 영국을 무섭게 추격한 독일 그리고 20세기를 지배한 미국, 또 일본이나 중국 등의 발전을 가능케 한 공통 요소들이다. 저자는 표준 모델로 네 가지를 꼽는다. 철도, 관세, 은행, 학교다. 철도는 한 국가의 시장을 전국 단위로 통합하는 데 기여했고, 관세는 성장이 궤도에 들어설 때까지 자국 시장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은행은 산업자본에 자금을 댐으로써 혁신에 투자하는 역할을 했고, 읽고 쓰고 계산하는 능력을 갖춘 노동자들이 더 높은 임금을 받자 교육의 수요가 생겼고 대중 교육으로 이 수요를 뒷받침했다. 저자는 이 네 가지 요소가 맞물리면서 기술 발전을 촉진해 소득이 증가하는 선순환의 궤도에 올라섰다고 본다.
후발 주자들의 반격, 정부 주도의 빅푸시
선진국이 선순환 궤도에 들어서서 안정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후발 주자는 획기적인 경제성장 없이는 이들을 추격하기가 불가능하다. 저자는 20세기 들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몇몇 국가에서도 역시 공통점을 찾아낸다. 바로 정부가 주도하는 빅푸시 산업화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생산할 공장도 없고, 여기 쓰이는 철을 생산할 제철소도 없다. 제철소를 가동할 발전소도 없다. 자동차의 수요가 얼마나 될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수요도 공급도 없다. 이때 정부가 나선다. 수요가 생긴다는 "믿음"으로 자동차 공장을 짓고, 자동차 공장이 건설되면 수요가 생긴다는 "믿음"으로 제철소를 건설하는 식이다. 정부가 수요와 공급에 개입해 이를테면 "보증인"이 되어 건설을 촉진한다. 즉 경제 발전의 인센티브가 시장이 아니라 정부에게서 주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중국이 빅푸시 산업화로 현재의 지위에 올라섰다고 말한다. 그리고 중국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발전을 지속한다면, 콜럼버스와 바스코 다 가마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 즉 이 책에서 말하는 대분기가 일어나기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 세계경제는 거대한 순환을 마칠 것이라고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