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소녀 마리는 여름방학을 일주일 남겨두고 온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는다. 버스 터미널에서 주인 녹음기를 들고 할아버지네 댁에서 보내는 여름방학을 그리고 있다.
[본문]
“더워 죽겠는데 차는 무슨 차.”
조부가 인상을 찌푸렸다. 마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조부의 맞은편에 앉아 차 한 모금 마실 뿐이었다. 조부가 차를 싫어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또 여름날에 따뜻한 물을 마셔야 하니 곤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잡생각이 많이 나서 안 마시련다.”
추운 겨울 날 이곳을 찾은 부모가 따뜻한 차를 내밀자, 조부가 했던 이야기다. 조부는 끓는 물에 우러나는 차를 싫어했다. 원래부터 끓인 차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리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조모는 손발이 차가운 편이었다. 때문에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생강차를 매번 마셨다. 혼자 마시면 맛이 없다며 항상 남편에게까지 권하는 조모였다. 그 알싸한 생강차를 마신 뒤 박하 맛 사탕을 먹던 조모를 보며 그게 뭐가 쓰냐며 핀잔을 주던 조부였다. 그것은 마리가 중학교 때 있던 일이었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마리는 그해 겨울이 참 추웠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중학교 1학년 겨울 그 어느 날, 조부는 끓인 차를 먹지 않았다. 그날은 조모가 돌아가신지 딱 1년이 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