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다운 나라에서 살고 싶다!”
특혜국가에서 공정국가로, 부패 기득권세력에서 국민에게로
불공정, 불평등, 부조리, 특혜가 사라진
상식과 정의의 시대를 여는 길
“지대추구로 가장 많이 썩게 되는 곳은 정치고,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곳은 민주주의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컬럼비아대학 경제학 교수)
2016년 박근혜 게이트를 지나며 우리는 불공정, 부조리, 불평등으로 일궈온 우리 정치와 사회의 뒷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러한 사회와 나라를 언제까지 자조와 회피만으로 방치할 것인가. 제대로 된 적폐청산을 위해, 지대추구 행위, 승자독식, 연고주의로 대표되는 해묵은 폐단에 대해 점검하고 제대로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정의를 묻다》는 적폐청산을 완수하기 위해 우리가 수술해야 하는 정확한 환부를 가리키기 위한 ‘적폐청산 가이드’다.
《이방인의 사회학》《부자는 어떻게 가난을 만드는가》를 통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사회상과 부조리를 해부하고 분석해온 사회학자 김광기는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박근혜 게이트가 가능했던 우리나라, 이러한 ‘특혜국가’의 뿌리를 지대추구 행위, 승자독식, 연고주의에서 찾는다. 《대한민국의 정의를 묻다》는 그동안 재벌과 언론 등 부패한 기득권 세력과 거대권력이 담합해 묻어버린 대한민국의 정의를 다시 묻는다. 이어 불공정과 불평등과 부조리의 근원을 묻고 다시 새로운 공정국가로 나아가자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제목이다.
우리 사회의 불공정, 부조리, 그리고 불평등의 근원에 대한 지적은 어쩌면 그리 거창하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면 누구나 쉽게 관찰할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에서 불공정과 불평등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더 늦기 전에 헬조선을 벗어나려면, 탈출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변혁해야 한다. 실행하기 전 현실을 되짚고 원인과 결과를 확실히 알아볼수록 승률도 올라간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를 취임사로 내걸며 투명성을 강조한 새로운 정부와 함께, 우리가 지향하는 진정한 대한민국의 정의를 더 늦기 전 함께 다시 세워야 할 최적의 시기다.
사회학자의 예리한 시각으로 해부한 박근혜 게이트와 그 배경,
대한민국 적폐청산의 목적과 방향
“삼성계열사 사장이 독일까지 오가며 박근혜·최순실과 뇌물을 주고받는 사악한 뒷거래를 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 청와대 경제수석이라는 정부 고위인사들이 뒤치다꺼리를 했다. 국민의 피 같은 돈이 모인 국민연금에는 수천억 원대의 피해를 입히면서 말이다. 이재용이 뇌물 성격으로 박근혜와 최순실에 쏟아부은 돈은 440억 원 정도, 그러나 국민은 수천억 원대의 피해를 입었고 반면 이재용은 약 3조 원의 이득을 봤다.”
―노컷뉴스, 2017. 1. 14.(129쪽~130쪽)
저자는 박근혜·최순실 정권과, 그에 빌붙은 재벌을 조폭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지대추구와 승자독식을 위해 야비하고 치사하게, 폭력적으로,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각종 연고를 동원해 이익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파’를 형성하고, 공식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무시하고 ‘비선’과 ‘대포’를 통해 은밀히 일한다는 점도 같다. 조폭들에게는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이 곧 선이며, 정의이며, 법이다.
지대추구 행위란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부당하게 이익을 편취하는 것이다. 일종의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행위다. 시세차익을 노린 부동산투기 등이 대표적이다. 정상적인 노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투기라는 방식을 통해 부당하고 과다한 이득을 보는 행위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게서 보듯 뇌물을 통한 경영권 승계와 지배, 그리고 세금탈루 등을 통한 이익추구도 포함된다. 즉 정경유착은 지대추구 행위의 전형적 예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공정한 게임 같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게임에서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승자독식이다. 처음 승리한 자들이 계속해서 승리할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처음 패한 자들은 이후 게임에서도 계속해서 패할 수밖에 없는 게임. 따라서 불공정한 게임이다. 승자독식은 그런 불공정한 경쟁의 분배체계를 뜻한다. 경쟁에는 모두 참여하지만 출발부터 불공정한 상태에서 모든 결실은 승자에게만 주어지도록 미리 짜인 판이다.
연고주의란 학연, 지연, 혈연 등 모든 연줄을 의미한다. 그 연줄에 따라 각종 이득이 나뉜다. 연줄을 통한 이익에 탐닉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다른 무엇보다 연줄을 신뢰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통해 모든 일을 해결하려 한다. 고용, 승진, 인사이동, 심지어 사법처리까지 연줄을 통해 해결하려 들면, 그 사회의 공식적인 체계는 와해된다. 이런 사회에서 이득을 보는 집단은 강한 연줄을 배경으로 가진 사람들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득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오로지 사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공적인 권력을 악용해 수많은 이권사업을 펼쳤고, 최고 재벌인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은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최순실에게 사적인 뇌물을 제공한다. 그 대가로 국민연금의 찬성이라는 혜택을 받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등을 합병, 경영권 승계의 첫 단계를 무사히 완료했다. 그러나 정의를 지키고자 한 언론,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노력에 의해 꼭두각시 대통령은 사상 최초로 탄핵되었고 글로벌 대기업 삼성은 79년 만에 처음으로 총수가 구속되었다.
재벌이야말로 불공정, 부정의(불의), 부조리, 그리고 불평등을 낳은 탐욕의 원흉이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재벌 총수 일가들은 비상장주식 취득, 일감 몰아주기, 인수 및 합병 등 불법, 위법, 탈법을 일삼는다. 그러는 동안 정치권력은 그들을 방치하거나 적극 보호했다. 모종의 대가가 오간 결과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갔다. 재벌은 자유시장경제를 주창하지만, 실은 그들만의 이권을 낳도록 설계된 불투명한 시장을 선호한다. 재벌이 그들의 인맥을 요직에 꽂아 지대를 독식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들고, 모든 것을 재벌에 유리하도록 운용하는 행위를 ‘규제포획’이라고 한다. 김앤장 관련 인사들이 정부와 재벌에 포진해 있다는 자체가 규제포획이며, 불공정의 시작이다. 국정농단은 바로 이러한 ‘승자독식’을 추구한 결과다.
저자는 적폐청산을 위해 재벌개혁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총수와 고위 임원들의 등기가 반드시 필요하며, 지배구조는 단순화하고 경영권 세습은 근절되어야 한다. 재벌은 주력사업에 집중해야 한다. 기업 간 내부거래를 법으로 금지하고, 편법증여, 일감 몰아주기, 합병으로 얻은 이득도 세금으로 거둬들여야 한다. 법인세율을 상향하고 경제검찰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제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의 이익은 공적이익과 관련지어 추구되어야만 한다. 즉, 재벌기업의 이익은 사회 전체적인 이익에 배치되어서는 안 된다. 기업은 한 경제 사회의 소비로 인해 유지되고 발전하기 때문이다.
의심하지 않고 권력을 내맡긴 채, 정부에 아첨하는 언론에 속아 ‘심리적 문맹’에 빠져버린 국민 또한 적폐청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의는 감시자에 의해 항상 점검되어야 마땅하나, 우리 국민의 감시 기능은 고장났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나라는 특혜국가가 되었고 정의는 증발되었다. 우리는 그저 눈앞에 펼쳐지는 작은 이익에 만족하며 소시민으로 살아온 게 아닐까. 심지어 때로는 저도 모르게 사회 전체에 만연한 지대추구 행위와 승자독식 그리고 연고주의에 함께 올라타 일상의 사욕을 탐한 것은 아닐까.
저자는 우리 일상까지, 우리 안의 적폐까지 대대적으로 청소할 시점이라고 역설한다. 국민 또한 잘못을 깨닫고 대대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때, 진정한 적폐청산이 가능할 것이다.
불공정, 부조리, 그리고 불평등은 단지 부패 기득권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도 오랜 세월 지속되다 보니 일종의 학습효과가 되어 우리나라 국민의 일상에, 우리의 문화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평범한 이들의 삶 속에서도 그 적폐들은 쉽사리 목도된다. 가만히 생각해보자. 우리 삶 속의 이 적폐들을 청산하지 않고서 부패 기득권세력만 일소한다고 해서, 우리를 좀먹고 괴롭히는 그 적폐들을 완전히 청산할 수 있을까?
―[다소 긴 서론]순실증을 앓는 그대에게(29쪽)에서
지대추구 행위, 승자독식, 연고주의가 낳은 불평등 —
특혜국가에서 공정국가로 가는 길을 막는 폐단을 해부하다
박근혜가 획기적인 규제완화로 들고 나온 것이 바로 규제청정구역법(규제프리존법)이다.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78개의 규제를 완화하는 법이다. 그런데 이법의 전담기관이 바로 재벌 대기업이 각 지역마다 하나씩 맡고 있는 ‘창조경제혁신센터’이기에, 일종의 재벌특혜법이다.
―[Chapter 06]정치개혁(169쪽)에서
대표적인 규제완화 정책인 박근혜 표 규제청정구역법의 뒤에는, 최순실, 차은택, 전경련이 있었다. 그 법의 전담기관이 창조경제혁신센터이고 그 추진단 공동단장은 전경련의 이승철 부회장과 최순실의 행동대장 차은택이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정경유착이자 친재벌 규제완화 조치이며 사익추구와 정경유착의 전형적인 예다. 우리나라 정부는 이제껏 규제 대상에게는 규제 완화를, 규제 완화 대상에게는 오히려 규제를 가하며 반민주적이고 차별적인 행태를 저질렀다. 중소기업과 일반 국민에게는 규제를, 재벌 대기업에게는 규제완화를 적용해온 것이다. 뇌물이나 연고에 의한 연줄이 동원되면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대기업들의 대관(對官)팀, 전직관료 출신의 사외이사 등이 정부와 국회를 공략한다. 관피아, 정피아 등 패거리집단 문화도 청산해야 할 적폐다. 중앙부처의 산하 기관 662개를 조사한 결과 2014년 11월 현재 관피아가 무려 1218명이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민간부문과 행정관청 사이 유착의 고리로 작용한다. 2200여 명의 검사와 7000여 명의 수사관으로 구성된 검찰 또한 거대권력이다. 그러나 그 권한과 힘을 원칙대로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입신양명, 조직, 그리고 강자들의 이익 수호를 위해 사용하니 문제다. 삼성과 같은 재벌은 또한 이를 악용해 지대를 취한다.
삼성은 해마다 검찰과 법원의 인사철이 돌아오면 촉각을 곤두세운다. 퇴직한 판·검사들을 고문이나 법무팀 소속 변호사로 모시기 위해서다. 삼성에서 직접 영입하지 않을 경우, 어떤 로펌에 가든 아니면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내든 대형사건을 맡기면서 공을 들인다. 즉 ‘삼성표 감동 서비스’요 ‘관리’다. 이것은 전관예우다.
―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인용(213~214쪽)에서
교육 불평등 또한 간과할 문제가 아니다. 과거와는 달리 요즘 서울대 합격은 아파트 가격순이다. 서울대 합격자 수가 28명으로 가장 많은 강남구의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307만 원으로, 그 수가 적은 은평구 등 7개 구 평균인 236만 원의 고작 1.3배 수준이라고 한다. 서울대 출신이 특혜를 누리는 만큼 다른 대학 졸업장을 가진 자들과, 아예 대학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이들이 피해를 본다. 이미 불평등, 불공정, 부조리한 출발이다. 저자는 경쟁 타파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잔인무도한 경쟁하에서는 승자독식이 정당화되고, 교육이 지대(불로소득)로 변한다. 서울대의 지대를 삭제하려면 교육에서 ‘경쟁’을 과감히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이며 가장 심각한 불평등은 소득불평등이다. 우리나라는 상위 1% 내 전문직이나 자영업자들이 소득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아, 고소득자들의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건희가 삼성전자로부터 받은 연간 보수는 0원이다. 그러나 2016년, 삼성전자로부터 배당금을 1371억 원이나 받았다. 그의 아들 이재용의 연봉 또한 단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 2016년 10월 전까지는 비등기임원이어서 보수 공개 의무 대상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5억 원 이상 고액연봉을 받는 등기임원까지 보수를 공개해야 하는 자본시장통합법을 악용한 것이다.
“상위 1%의 1인당 불로소득은 노동자가 월급을 받아 남은 돈(2015년 기준, 연 1050만 원)을 무려 318년 동안 꼬박 모아야 하는 돈이다. 죽었다 깨어나도 월급쟁이가 생활하고 남은 여윳돈을 저축해도, 상위1%가 불로소득으로 챙긴 돈을 따라잡기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경향신문, 2017, 3. 30(300쪽)
부동산으로 인한 불로소득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불평등 요소다. 땅값이 오르면 집값이 상승하고, 세입자가 물어야 할 임차료도 상승한다. 1988년도에서 2016년까지 서울 강남권(강남·서초·송파구) 아파트 값은 임금상승치의 43배, 비강남권은 19배 올랐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는 게 차라리 이득이라는 의미다. 10년 전인 2008년 기준 우리나라 땅을 팔아 캐나다 땅을 사면 무려 6번이나 살 수 있고, 프랑스를 9번 살 수 있다고 한다. 캐나다는 남한 면적의 100배, 프랑스는 5배인데도 말이다. 박근혜의 삼성동 집은 1990년 매입 당시 10억 원이었는데, 2017년 약 68억 원에 매각되어 27년 만에 58억 원의 불로소득이 발생했다. 최순실의 신사동 빌딩은 1988년 매입 당시 12억 6000만 원이었는데, 현재 150억 원으로 추정되어 29년 만에 무려 137억 4000만 원의 시세차익이 발생했다. 우리나라 국민 중 부동산 보유자는 31.7%, 나머지 국민 68.3%는 땅이 한 평도 없다.
부동산 불패신화가 있는 이유다. 열심히 일하고 성실히 저축한들, 부동산을 사서 가만히 앉아 버는 떼돈에 비할 수 없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만든 주범은 부동산을 통한 지대추구의 기획자들과 협업자들이다. 부동산으로 인한 불로소득 추구가 만연하면 근로의욕이 상실되고, 저축의 무용성, 과시소비, 그리고 상대적 박탈감과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을 낳는다. 불로소득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가 쉽지 않다면, 중과세를 통해 환수해야 한다. 부동산 세제 개혁 또한 더는 미룰 수 없는 절실한 문제다.
지금 여기, 대한민국의 정의(正義)를 다시 묻는다 —
우리 안의 적폐청산이 공정국가의 근본이다
롤즈의 정의관은 매우 단순하다. 먼저, 평등보다는 자유가 더 우선해야 한다. 만일 사회에 불평등이 존재해야 한다면, 그 사회에서 가장 불우한 이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불평등해야 한다. 그리고 불평등은 특정 개인에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직책과 직위에 부여되어야 하며, 그 점유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결론]대한민국의 정의를 다시 묻는다(315쪽)에서
경제학자 밀라노비치는 소득불평등은 “중산층의 공동화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공동화 현상까지 가속화”한다고 했다. 중산층의 공동화는 곧 중산층의 소멸을 의미한다. 중산층이 소멸하면 곧 민주주의도 소멸한다. 민주주의의 전달자와 담지자(膽智者)는 부자와 권력자가 아니라 중산층, 곧 일반 국민이자 서민이기 때문이다. 촛불 혁명은 중산층이, 일반 공중(the public)이 이뤄낸 역사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중산층이, 서민이, 일반 국민이 만들어낸 것이다. 민주주의는 이들에 의해서만 작동되고 유지될 수 있다.
특혜국가를 철저히 허물고 법과 원칙이 바로 선, 상식적인 정의가 구현되는 공정국가를 세우려면, 용서와 관용도 엄정한 처벌과 철저한 반성 후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즉 박근혜와 이재용 등을 정식 유죄판결을 통해 반드시 단죄해야 하며, 사면할 경우 정경유착의 고리는 결코 끊지 못할 것이다. 국정농단을 저지른 무리들의 국내외 은닉재산에 대한 환수 조치, 박근혜 게이트의 부역자들에 대한 발본색원, 세월호 사태의 진상 규명을 위한 제2특조위와 특검 가동도 잊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검찰과 사법부 개혁을 단행하고 정부 고위관료에 사기업과 대형로펌의 외부 인사가 유입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연줄을 통한 인맥 동원으로 공직사회와 정치권을 부정부패로 이끄는 원천인, 재벌대기업체의 대관업무도 원천 금지해야 한다. 토지보유세 강화 등으로 부동산 불로소득 문제를 해결하는 등 소득과 부의 불평등 해소, 언론과 교육개혁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사회학자 밀스는 언론에 의해 의식을 잠식당한 무리를 ‘대중(the mass)’,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공중(the public)’이라 했다. 언론은 정치권력과 재벌권력이 장악하려 애쓰는 가장 중요한 권력 수단이다. 언론을 통해 순종하는 대중을 만들어놓고, 정치·재벌·언론권력은 지대를 추구한다. 공중을 압살하고 절대 국민을 대중으로 만들어버리고 이익을 추구했던 언론은 분명 박근혜와 공범이며, 우리가 청산해야 할 적폐다. 대중에서 공중으로, 기성 언론에만 맡기지 말고 여론 형성에 적극 참여해 주체자로 거듭나야 한다.
“무한경쟁이 주는 잔인한 쾌락 대신 지금까지 거의 잊혀 있던 공동 목적을 위한 공생공락, 친목, 협력의 기쁨을 되살리고 재발견하자.”
―지그문트 바우만(사회학자), 243쪽
저자는 특히 재벌개혁, 교육개혁 차원에서 경쟁의 폐해를 강조한다. 기업의 목적이 사회 전체 이익, 즉 공익과 배치되지 않는 수준으로 발전하려면 경쟁이 최고라는 생각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경쟁이 최고 수익을 창출하고, 경쟁이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그래서 경쟁이 사회 전체에도 득이 된다는 이론과 철학 자체를 버려야 한다. 경쟁보다는 공생과 상생이, 즉 팀워크가 더 큰 시너지를 낸다는 생각으로 전환해야 한다. 경쟁에 대한 숭배는 순전히 승자독식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경쟁으로 이익을 보는 이들은 사회의 극소수이고, 따라서 불평등은 심화된다. 경쟁 안에 갖은 술수와 편법이 동원되며 부조리와 불공정이 똬리를 튼다. 경쟁 숭배와 승자독식 때문에 지대추구에 열중하게 된다. 교육에서도 지대추구 행위가 사라지면 승자독식의 발판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진다. 경쟁이 없으니 함께 어울려 사는 공동의 삶이 중시되고 삶의 여유가 생긴다. 그 여유에서 창의성이 온다.
또한 연줄에 얽매이는 적폐를 청산하려면 홀로 서는, 고독한 개인이 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불의에 대해 “노(no)”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든 나와 내 가족만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지대추구 행위는 결국 사회를 병들게 한다. 나의 선입견, 나의 고정관념, 나의 상식, 나의 믿음에 대해 항상 의심해봐야 한다. 개인의 실수를 줄이고 또 줄이면, 곧 사회와 국가의 실수가 줄어드는 것이다. 일상에서 나의 공고한 것들을 깨뜨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내 주장조차 틀릴 수 있다는 겸양의 미덕, 타인에게 귀 기울이는 습관. 바로 건전한 의사소통에 기반을 둔, 건전한 민주사회의 모습이다. 우리 안의 적폐청산이야말로 특혜국가를 넘어 공정국가로, 상식과 정의의 시대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수십 년간 쌓여온 우리 안팎의 적폐를 생생히 복기한 뒤 어떻게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갈 것인가. 《대한민국의 정의를 묻다》는 그 질문과 고민에 대한 하나의 지침이다.
◎ 본문 중에서
나는 박근혜 정권을 조직범죄(organized crime) 폭력집단으로 본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총수들도 그렇게 본다. 왜일까? 그들이 한 행태가 조직범죄 폭력집단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범죄란 여러 사람이 한 지도자 또는 지도 집단의 지시하에 위법행위로 돈과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말하며, 그런 범죄집단을 범죄조직 또는 조직폭력배라고 한다. 박근혜와 최순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재벌총수들은 모두 조폭두목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과 이익을 탐했다. 그것도 매우 조직적으로, 그리고 매우 교활하게.
― [다소 긴 서론] 순실증을 앓는 그대에게, 20쪽
대한민국에서 삼성의 힘은 거의 절대적이다. 그런데 그 힘은 단순히 그 기업이 가진 사업의 결과로 취해진 것만은 아니다. 삼성에게 막강한 힘을 부여한 것은 바로 정치다. 그 정치의 힘으로 삼성은 독점적 지위를 갖고 사업을 키울 수 있었으며, 총수는 재산을 맘껏 불릴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재산이 많다고 해도 그렇게 문어발식으로 확장된 전 계열사를 소유할 정도의 지분을 갖기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순환출자라는 편법을 동원, 작은 지분으로 전 계열사를 휘하에 두며 황제경영을 할 수 있었다.
― [Chapter 01] 지대추구 행위: 불로소득의 다른 이름, 42~43쪽
물론 이런 사악한 기업의 법률자문과 변호를 맡는 자체가 큰 문제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다. 이러한 일에 휩싸일 때, 관리·감독·제재·대처 등이 바로 정부가 할 일인데, 이 모두를 담당하는 모든 주무부처의 컨트롤 타워 기능을 청와대가 한다. 그런데 거기에 이해 당사자라 할 수 있는(기업의 법률대리인이기에) 김앤장 관련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는 사실은 앞의 문제를 크게 능가할 뿐만 아니라, 차원이 다른 중요한 문제를 드러낸다. 정의의 문제다. 한마디로 공정하지 못하다. 정의롭지 못하고, 부조리하고 불평등하다. 엄정 중립으로, 아니 피해자인 국민의 편에 서 있어야 할 정부와 청와대가 국민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짓으로 삼천포로 빠질 개연성이 높아지기에 그렇다. 그것은 정부와 정치의 정체성의 물음으로 우리를 이끈다. 과연 누구의 정부이며 누구의 청와대인가.
― [Chapter 02] 지대추구 행위자들의 전략, 64쪽
오로지 성공만이 한껏 치켜세워지는 곳의 삶은 온통 성공에 대한 집착만이 있을 뿐, 인간다운 삶이란 없다. 인간다운 삶은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있는 곳이다. 그러한 신뢰의 바탕 위에서 모든 일들이 가능하다. 심지어 다분히 이익추구적인 행위인 사업과 경영조차 신뢰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신뢰는 이익실현에서도 밑바탕이 된다. 생각해보라. 어떻게 신뢰 없이 계약이 성사될 수 있는지를. 그래서 신뢰는 한 사회의 효율성, 경제의 효율성을 증대한다. 그러나 승자독식, 그리고 이기적인 지대추구 행위가 만연한 사회는 신뢰를 금 가게 하고, 신뢰가 금 간 사회는 효율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바로 “한번 금 간 신뢰는 되돌리기 무척 어렵다(Trust shaken is not easily gained back)”는 서양의 오래된 금언이다. 지대추구 행위와 승자독식은 바로 이런 불행한 환경의 씨앗이 된다.
― [Chapter 03] 승자독식, 72~73쪽
삼성의 이건희와 이재용이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를 통해 편법증여하고 경영권을 승계하며 기업을 지배하는 편법의 요지는, 비상장기업을 이용해 주식을 헐값에 사고팔아 부당이득을 올린 것이다. 이로써 이재용은 44억 원을 가지고 약 9조원의 초갑부로 등극했다. 낸 세금은 달랑 16억 원뿐이다. 또한 그것으로 3대에 걸친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쥐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세금이나 제대로 내고 기업을 승계, 지배하게 되었다면 누가 뭐라 하랴. 삼성의 고용 법조인과 세무인들은 법망을 피해 이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데 자신들이 쌓은 지식과 잔꾀를 풀가동했고, 우리나라 법망은 이들이 이런 농단을 할 수 있도록 허술했으며, 정부와 법조계는 이들에게 한없이 관대했다. 그러나 그러한 행정과 사법당국의 관대가 가진 자에게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못 배우고 없는 자들에게도 똑같이 주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불행의 씨앗이다. 정의와 불공정, 부조리와 불평등이라는 불행의 씨앗인 것이다.
― [Chapter 05] 재벌개혁, 117~118쪽
사회학자 바우만은 “탐욕에는 유익한 점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탐욕은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않으며, 누구의 탐욕이건 유익하지 않다”라고 일갈한다(Bauman, 2013: 90-91). 멀리 갈 것도 없이 박근혜·최순실과 이재용을 보라. 그들의 끝없는 탐욕으로 결국 어느 누구도 유익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자신들조차도. 많은 사람들이 추운 겨울 광화문광장으로 나가 매서운 바람을 맞아야 했으며, 자신들은 쇠고랑을 차야 했다.
― [Chapter 06] 정치개혁, 173쪽
정경유착으로 인해 시장질서를 교란하고 정의로운 사회구현을 방해하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사회악이다. 그 주체들의 최종 목표는 바로 민주주의의 파괴다. 그런 의미에서 “부자들의 주된 관심사는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데 있다”는 주장은 충분히 옳다(Milanovic, 2016: 200). 따라서 재벌대기업과, 그들과 한패가 된 권력자들은 민주주의의 방해꾼들로서 공공의 적이다. 그들은 지대를 독식하지 못하게 하는 민주주의를 몹시 혐오한다. 그들이 원하는 세상은 돈으로 돌아가는 세상이다. 법도 없고 정의도 없으며 합리성도 결여된 그런 세상이다. 민주주의하에서는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상황이다. 돈으로 돌아가는 세상, 돈으로 돌아가는 정치는 그들의 잇속을 가장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세상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가 바로 금권정치다.
― [Chapter 06] 정치개혁, 181쪽
관료제는 국민을 위해 공무원 조직이 사용할 수단이지만 관료제가 고착되면 그 조직 자체가 목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를 두고 조직사회학에서 ‘목적의 전치’라고 한다.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리는 기이한 현상, 그것이 바로 목적의 전치다. 즉 사법부라는 조직의 존재 이유는 곧 국민을 위해서인데, 사법부가 관료화하면 국민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사법부의 존재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게 되면 피해자는 국민이 된다. 이 목적의 전치 현상은 검찰에도 적용되고 검찰 조직의 목적의 전치 현상도 묵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보다 사법부의 목적전치 현상을 절대로 용인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사법부가 최종판단을 내리는 판관의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아무리 잘못한다고 해도 그 잘잘못을 법원에서 가리는 것이니, 사법부야말로 국민을 보호할 최후의 보루다.
― [Chapter 07] 사법부와 정치개혁, 206~207쪽
미디어는 사람들의 내면심리 깊숙한 곳으로 침투해 신념이나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것을 고정관념으로 바꾸어버린다. 그렇게 형성된 고정관념은 마치 카메라의 “렌즈”와 같아서, 그것을 통해서만 사람들은 사물과 현상을 인식한다(Mills, 1956: 313). 그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도, 보려고도, 듣지도 않으려 한다. 오직 그 렌즈만으로 사물과 현상을 보고 듣는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일종의 ‘확증편향’이다.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한 의심은 전혀 발동하지 않는다.
― [Chapter 08] 언론과 교육개혁, 226~227쪽
만일 지위와 소득 결정에 학력이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면, 즉 가방끈 긴 사람이 노동시장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고 승승장구할 수 있다면 교육에 대한 수요가 과잉될 수밖에 없다. 즉 학력사회가 ‘학력과잉사회’로 변모한다. 교육에 대한 수요가 흘러넘치는 세태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 전반, 특히 노동시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회적으로 교육에 대한 과잉투자가 일어나고 결국 특정 직종이 불필요한 과잉학력을 지닌 이들로 채워진다. 이를 ‘추돌현상(bumping)’이라 한다.
― [Chapter 08] 언론과 교육개혁, 254쪽
허쉬맨과 로스차일드는 후진국의 열악한 경제 상황을 터널 속 두 차선에 줄 지어 서 있는 자동차들의 정체현상으로 설명한다. 막 정체가 시작된 터널 속 자동차의 운전자들처럼, 다른 차선의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곧 자신들의 차선의 차도 움직일 것이라는 기대로 정체를 기꺼이 참는다. 이와 같이 후진국에서 국민들은 경제발전 초기에는 불평등한 분배가 곧 개선되리라 믿고 인내한다. 하지만, 터널 속 다른 차선의 차는 계속해서 이동하는데 자신의 차선만 계속 정체해 있다면 불만이 폭발하듯, 소득에 있어서의 불평등이 시간이 지나도 개선 기미가 전혀 없고 양극화만 갈수록 심화된다면 사회적 불만이 표출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회적 불안정성은 악화된다(Hirschman and Rothschild, 1973: 545).
― [Chapter 09] 소득불평등, 2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