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주도권을 둘러싼 글로벌 기업들의 치열한 전쟁 기록
PC가 막 시장에 자리 잡기 시작한 시절부터 마이크로소프트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왔다. 인텔과 함께 ‘윈텔 진영’을 형성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를 앞세워 애플을 깨부수고 IBM의 단물을 빼먹으며 거의 반세기 동안이나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사실 지금도 PC업계의 윈도우 운영체제 점유율은 90퍼센트에 달하며, 마이크로소프트는 여전히 강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제 사람들의 주된 관심 대상이 아니다. 호시탐탐 새로운 기회를 노리며 산업지형 변화에 촉각을 세우는 사람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닌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바야흐로 PC 이후의 시대, 즉 모바일을 포함한 소비 가전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선(戰線)이 움직인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PC를 중심으로 한 과거 플랫폼의 최강자였다면, 지금은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이 각각 모바일, 검색 광고, 웹, 소셜네트워크 등의 분야에서 플랫폼을 지배하며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의 영역을 빼앗고, 시장 지배적인 플랫폼을 손에 쥐기 위해 격렬한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플랫폼 전쟁으로 세계 비즈니스 지형도는 계속 달라지고 있으며, 좋든 싫든 우리의 일상생활마저 영향받고 있다.
『플랫폼 전쟁(조용호 지음, 21세기북스)』은 이처럼 세계적으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플랫폼 타이탄들의 각축전을 살펴보면서 현재 플랫폼 전쟁이 왜 벌어지고 있으며, 우리들의 일상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설명한다. 십여 년 간 e-비즈니스 컨설팅을 하면서 SKT, 삼성전자 등 많은 기업들의 플랫폼 전략 수립에 참여한 저자는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플랫폼 전쟁의 면면을 살펴보고, 비즈니스를 선도하는 플랫폼 타이탄들이 어떻게 싸워왔는지 마치 전쟁일지처럼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주요 플랫폼 영역에서 최강자로 군림하는 애플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트위터, 페이스북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경쟁자와 대응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지, 각 기업들의 전략적 거점은 무엇인지, 새롭게 떠오르는 참전 기업들은 누가 있는지 등 플랫폼 전쟁 이면에 숨은 이야기를 알려준다. 또한 웹 브라우저와 위치 정보, 광고, 검색, 결제, 커뮤니케이션, 클라우드, TV 등 플랫폼 전쟁의 ‘주요 전선’들에서 경쟁자의 영토를 빼앗고 전쟁의 승기를 잡기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는 플랫폼 타이탄들의 교전 기록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미래에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이번『플랫폼 전쟁(개정증보판)』에서는 2011년 이후에 신흥 플랫폼 강자로 떠오른 기업들을 조명함과 동시에, 스티브 잡스 타계 이후 애플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분석을 6장에 추가했다. 또한 독자들의 질문에 답변한 Q&A와, 책에 미처 담지 못한 저자의 글을 스마트폰으로 바로 볼 수 있도록 QR코드 리스트도 같이 실었다.
과연 대한민국에서도 제2의 애플이 나올 수 있을까?
플랫폼 전쟁은 결국 타이탄들 사이에 권력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파워게임이다. 그렇다면 플랫폼 전쟁의 최종 승자는 누가 될 수 있을까? 혁신과 파괴의 상징인 구글은 검색 광고와 지도, 동영상, 모바일이라는 중요한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지만, 소셜 부문에서 유독 힘을 쓰지 못한다.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이미 플랫폼 전쟁에서 다른 경쟁자들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듯하지만, 마찬가지로 취약한 부분이 있다. ‘페이스북 커넥트’로 모든 웹을 페이스북에 연결시키고 ‘오픈 그래프’로 개인들의 행동을 구조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페이스북은 엄청난 회원 수와 축적된 데이터를 무기로 구글을 넘어서는 인공지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바일 플랫폼에서 자존심을 구기면서 주춤한 상황이지만, 페이스북이라는 든든한 원군을 등에 업고 인터넷 전화의 강자 스카이프를 인수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 중이다.
이 책에서는 클라우드와 브라우저, 소비 가전에서 우위를 점하고 미디어 서비스와 애플리케이션에서 앞서나가는 기업이 있다면, 바로 그 기업이 앞으로 열릴 한 세대를 지배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현재로서는 애플이 이에 가장 가까운 기업이다. 애플의 TV 사업에 대한 관심과 취약 부분인 클라우드에 대한 어마어마한 투자로 미루어 향후 모바일 웹에서 저력을 보여줄 수 있을 듯하다.
전 세계에 열병처럼 퍼지는 플랫폼 전쟁의 영향권에서 국내 기업 역시 벗어날 수 없다. 소비 가전의 강자인 삼성전자와 LG전자에게는 소비 가전과 웹이 연결되는 지금의 모바일 혁명이 큰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SKT, LG U+ 등 국내 유수의 통신업체들도 탈통신을 외치며, 플랫폼을 주력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뿐만 아니라 금융, 광고, 문화 산업 및 공공기관에서도 앞다퉈 플랫폼 사업에 뛰어들면서, 이제 플랫폼 전쟁은 누구도 외면할 수 없고,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미국 중심의 플랫폼 리더십 체계에서 한국의 역할이 무엇일지 고민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트위터, 페이팔과 어깨를 나란히 할 한국의 플랫폼 강소기업은 왜 아직까지 없는 것일까? 저자는 현재의 대기업 중심 구도에서 조금 더 다양성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불과 수년 만에 신생 회사에서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는 한국형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양한 기업들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로 실리콘 밸리의 독특한 기업 환경과 국내의 투자 환경의 차이에서 찾는다. 과거 닷컴 붐에 덴 아픈 기억 때문일까?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제공하고, 신생 회사에 대한 투자가 선순환을 이루는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는 실리콘밸리에 비해 국내는 신생 기업에 대한 투자 환경이 척박하고 투자자들 역시 소극적이다. 한국의 규제 정책 역시 토종 글로벌 플랫폼 기업이 생겨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국내 규제 정책은 제한 요소가 많아 진입 장벽이 높으며, 이로 인해 플랫폼의 주요 장점 중 하나인 규모의 경제 확보에 방해가 된다.
이제 겨우 중반전에 접어든 플랫폼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점점 플랫폼 기업 의존도가 커지는 비즈니스 환경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단기간의 성장만을 바라보는 근시안적인 시각이 아니라 먼 미래를 염두에 둔 거시적 접근이 필요하다. 플랫폼은 그 구축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한번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성과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만큼 이미 플랫폼을 선점한 기업들은 새로 진입하는 도전자들에 비해 훨씬 유리한 입장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플랫폼의 강자들은 계속 얼굴이 바뀌어왔고, 아직까지 누구에게나 기회는 열려 있다. 전쟁에서 마지막에 살아남기 위한 신중하면서도 적극적인 도전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