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니 잡던 기억도 추억이 될까?
잡아도 잡아도 사라지지 않던 초강력 기생충,
머릿니의 기억을 더듬다!
60년대 이후 산업화 시대 우리네 삶과 생활을 뒤돌아본다.
함께 추억을 나누고, 어른과 어린이가 소통하는 그림책 <이야기별사탕>
시대가 바뀔수록 생활 모습은 달라진다. 지금의 모습과 10년 전의 모습이 다른 것처럼, 아이들의 생활도 달라지고, 부모 세대의 생활도 점점 변화한다. 각각의 세대는 저마다의 시대와 생활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추억하는 바도 다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옛날 옛날에~, 엄마 아빠가 어렸을 적에~’ 하고 이야기를 하는 대상이나 모습은 우리가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와 또 많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흔히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달라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현재가 과거가 되어가면서, 현재의 모습들이 모여 역사가 된다. 나와 우리 이웃이 살아온 모습을 복원하고, 추억하는 것은 사람들 간의 관계를 잇고, 세대를 있는 잇는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개개인마다의 역사를 쓰는 것이 아닐까? 30대든, 40대든 아니면 더 나가서 5, 60대든 어른들의 어린 시절은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 줄 ‘새로운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그것이 비록 호랑이 담배피던 정말 옛날이야기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어른들이 유년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역사의 한 부분으로 기록될 생활사에 대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하나의 소통이다. 이 소통은 아이들의 성장에 꼭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다음 세대, 또 다음 세대의 모습들을 기록하는 어린이를 위한 책이 필요하다. <이야기별사탕>은 60년대 이후 산업화 시대의 우리네 생활모습을 배경으로, 나와 가족, 우리 이웃의 삶과 이야기를 담은 부모와 함께 읽고 소통하는 생활문화 그림책이다. <이야기별사탕>에서는 내가 살던 우리 동네 골목, 각각의 집에서 있었던, 또는 있었을 법한 이야기를 통해 이웃의 모습을 돌아보고 추억을 기록하고자 한다.
아홉 식구 대가족의 겨울밤 ‘이’ 잡는 이야기
60년대 혹은 70년대 시골, 도시의 변두리는 농가들이 많았다. 가을 추수를 마치면 서서히 농한기에 들어선다. 초겨울이면 북풍한설이 몰아치고 해도 짧아져 바깥 활동이 줄어들지만 딱히 집에서 별로 할 것이 없다. 지금처럼 즐길거리가 많지 않았고, 가족들은 오로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해 무료한 시간을 보냈던 시절이다. 이도 모든 집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텔레비전은 비교적 귀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겨울밤이면 집집마다 행사처럼 치르던 일이 있었으니 바로 이잡기다. 기생충의 하나인 ‘이’란 놈에게 얼마나 모질게 시달렸던지 당시에 사람들은 이를 쇠심줄같다고 했다. 사람들을 괴롭히던 기생충은 이뿐 만은 아니다. 몸과 머리에는 이가 득실거렸고, 뱃속에서는 회충이며 촌충, 십이지장충이 우글거렸다. 그야말로 사람들은 안팎으로 기생충에 시달리던 시절이다.
뱃속에 이미 생긴 기생충이야 먹는 약이 아니고서는 어쩔 도리가 없지만, 이라는 놈은 잡는 방법이 다양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참빗으로 머리를 빗어 내어 이를 머리로부터 분리해 내는 것이다. 분리된 이는 손가락으로 눌러 죽이거나, 모아서 불에 태웠다. 옷에 있는 이는 옷을 벗어 털어내면 된다. 솥에 옷을 삶는 것도 방법이다. 머릿니가 살 수 있는 환경을 없애려고 여자 아이들은 단발머리를, 남자아이들은 머리를 빡빡 깎기도 했다. 가장 강력한 방법은 머리에 DDT라고 하는 화학약품을 뿌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사람의 건강을 해친다고 알려져 언제부턴가 추억의 한 페이지로 사라졌다.
이야기별사탕 일곱 번째 이야기 『머릿니 전성시대』는 전형적인 70년대 시골의 한 대가족의 이잡기 추억을 그렸다. 위에 열거한 다양한 이잡기 노하우들이 그림책에 망라하여 나온다. 하지만 머릿니에만 초점을 맞추고 이 그림책을 보면 재미없다.『머릿니 전성시대』를 재미있게 보는 팁은 그 당시 대가족의 삶의 모습니다. 우선 6남매에 부모님, 할머니까지 3대가 어울려 사는 대가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핵가족에서 더 나아가 나홀로가정이 늘어가는 요즘, 시끌벅적하며 하루도 조용하던 날 없던 대가족 시대의 단면을 그림책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은 작은 즐거움이다. 그 안에서 가족 간 그리고 형제자매간의 정과 사랑을 느끼는 것은 덤과도 같은 기쁨이다.
이잡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소품들은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겨울의 추위를 덜어줄 화로가 등장한다. 아궁이에서 나무로 불을 때서 난방을 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아궁이에서 숯을 화로에 담아 실내에서 그 온기로 추위를 모면했다. 물론 화로 위에서 옷을 털면 이들은 화형을 당하는 꼴이었으니 이들에게는 정말 무서운 도구가 아닐 수 없었으리라. 참빗과 얼레빗은 이를 잡기 위한 전문도구나 다름없다. 이 두 빗이 없었다면 깨알보다 작은 이들을 어떻게 훑어내서 잡았을까 싶다.
이들은 어디서 옮아오는 걸까? 가장 의심이 가는 곳은 학교다. 당시에 교실 하나에 학생 5~60명은 다반사였다. 작은 교실에 이리 많은 아이들이 옴닥옴닥 모여 생활했으니 학교 교실이야말로 온갖 전염병, 기생충을 옮기고 옮아오는 원천지라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급기야 이를 퇴치하기 위하여 화학약품까지 동원된다. 허연 밀가루와 비슷한 DDT를 머리며 온 몸에 뿌리던 장면은 나이 지긋한 어른들에게는 역시나 추억의 사진과 같은 장면이다.
그렇다면 위생과 건강상태가 좋아진 오늘날 사람들은 이로부터 해방되었을까? 예전처럼 창궐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불행하게도 이는 뜨문뜨문 등장한다고 한다. 역시 어린이들에게서 발견된다. 유치원에서 간혹 학교에서 이를 옮아온다고 한다. 물론 이제 머릿니의 전성시대는 막을 내렸다. 과거의 이에 얽힌 추억은 구태여 되풀이하고 싶은 역사는 아니다. 다만 3~40년 전의 우리의 모습을 상기해보고, 지금의 삶과 비교하고 즐겁게 얘기할 수 있는 세대 간 소통의 소재로서는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
주인공은 아홉 식구 대가족의 다섯째 여자 아이다. 위로는 언니와 오빠들이 있고, 아래로 여동생이 있다. 추운 겨울이 찾아오고 저녁때가 되면 식구들은 이잡기에 여념이 없다. 머리에 사는 머릿니, 몸에 사는 몸니! 하지만 털어내고, 태우고, 삶고, 콕콕 집어 눌러 죽여도 결코 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장난꾸러기 오빠들은 이를 가지고 이싸움 하며 놀기도 한다. 과연 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막내의 말대로 배꼽에서? 이제는 더는 나타나지 않겠지 안심하다가 겨울 무렵 어김없이 이는 등장한다. 부잣집이든 가난한 집이든 누구나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 이잡기 이야기 속에 담긴 가족애와 형제애를 느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