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게, 와트슨. 인생이라는 것은 인간의 머리로는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묘한 것 같아. 만일 우리가 지금 서로의 손을 잡고 저 창문으로 빠져나가 이 대도시 위를 날아다니며, 여기저기 지붕을 살며시 벗겨내고, 그 밑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야릇한 인생극을 볼 수 있다고 하면 과연 어떨까? 거기에 비하면, 소설 같은 건 줄거리가 단순하고 결과도 뻔하거든."
홈즈는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열린 커튼 사이로 어둡고 흐린 런던 거리를 내려다 보았다. 그러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라, 저기 저 아가씨는 나를 찾아오는 손님이구먼."
홈즈의 어깨 너머로 내려다보니, 길 저쪽 보도위에 몸집이 큰 젊은 여인이 보기 에도 푹신한 모피 목도리를 두르고, 붉은 깃이 달린 폭 넓은 챙 모자를 쓰고 서있었다.
여인은 화려하게 차려입은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장갑의 단추를 매만지다가는 주저하는 기색으로 이쪽 창을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는 마침내 마음을 정한 듯, 곧장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곧 현관의 초인종이 울렸다.
홈즈는 담배 꽁초를 벽난로 불 속에 던져 넣으며 말했다.
"저런 모습은 전에도 본 일이 있네. 길거리에 서서 망설이는 것은 반드시 애정 문제로 찾아오는 손님이지. 상의는 하고 싶지만, 사연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상대방이 이해해줄지 자신이 없는 걸세. 하지만 애정문제에도 두 가지 경우가 있네. 남자에게 당한 여자라면 주저하기는 커녕, 초인종이 끈이 끊어져라 잡아당기고는 뛰어들기 마련이지.
그런 점을 감안해 볼 때 오늘의 상담은 애정문제이기는 하지만, 저 아가씨는 남자를 원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 난처한 입장에 빠져 있는 것 같군. 어쨌거나 본인이 온 것 같으니 직접 들어 보세."
홈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크 소리가 나고 사환이 들어왔다.
"메어리 서덜랜드라는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홈즈는 서덜랜드양을 맞아들여서 팔걸이 의자를 권하고는 날카로운 눈으로 관찰 하며 말했다.
"아주 열심히 타자기를 치시는 모양인데, 눈이 근시여서 피로가 심할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몹시 피곤했지요. 하지만 이제는 자판을 눈여겨보지 않고도 칠 수가 있답니다......"
서덜랜드 양은 무심코 말하다가, 문득 얼굴빛이 달라지며, 홈즈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어머, 홈즈씨!! 벌써 저에 대한 일을 들어 아시는 모양이네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홈즈는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모든 것을 아는 것이 내 직업입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그냥 보아넘기는 것도, 나는 세심히 관찰하는 훈련을 쌓아둔 덕분에 알 수가 있죠.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면 아가씨는 나에게 상의하러 오지도 않았겠지요."
"실은 에서리지 부인의 소개를 받고 찾아왔습니다. 에서리지씨가 행방 불명이 되어 경찰에서조차 어디에서 죽은 모양이라고 포기했을 때, 선생님이 쉽게 찾아 주셨다더군요. 저, 홈즈 씨, 저도 꼭 좀 도와 주셔야겠어요. 저는 부자는 아니지만 타이피스트로서 버는 수입 외에도 유산으로 한 해에 100파운드씩 들어오므로, 호즈머 에인절 씨의 행방만 찾아주시면 섭섭치 않게 사례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경황없이 상의하러 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홈즈가 양쪽 손가락을 깍지 끼고서 천장을 바라보며 물어보자, 서덜랜드 양의 얼굴에 다시 한번 놀라운 표정이 스쳤다.
"맞아요. 저, 정말 정신없이 뛰쳐나왔어요. 실은 윈디벵크 씨가-----이분은 저의 아버지에요----너무나 태평하게 계시는 바람에 제가 화가 나서 이렇게 달려온 거예요. 사람이 자취를 감추었는데도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선생님께 상의 해 볼 생각도 않는 거예요.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그저 말로만 걱정하지 말라니, 참을 수가 있어야죠."
홈즈가 물었다.
"지금 아버지라고 했는데, 성이 다른 걸 보니 양아버지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