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 석담(石潭), 우재(愚齋)이며 아명은 현룡(見龍),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조선 중기 예술가로 유명한 신사임당과 이원수의 아들이며, 그 자신이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사람으로 유명한 조선 중기의 정치가이자 학자이다. 본명은 이이(李珥), 호는 율곡(栗谷). 오천원권 지폐의 모델이다. 신사임당의 초상이 오만원권 지폐의 도안에 쓰이면서, 이 모자는 한국 최초의 모자 지폐 인물이 되었다. 반면 아버지인 이원수와는 썩 사이가 좋지 않았던 듯하다. 그가 남긴 기록 중 그의 아버지에 대한 별다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며, 실제로 이이와 그 형제들은 아버지와 상당히 자주 싸웠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원수 때만 해도 가세가 썩 좋지 않아, 자기들보다 가세가 강했던 신사임당과 결혼했는데 그 신사임당이 워낙 엄청난 인물이었던 데다가 그 아들까지 아버지의 능력을 한참 뛰어넘는 존재였으니 이원수 본인이 질투와 소외감을 느껴서 그랬을 듯하다.
붕당정치에서 서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통한다. 오랫동안 유학자의 면모만 부각되어 왔지만, 사실 정치가로서도 영향력이 컸다. 물론 생전에 그의 정책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사후 조선에서 거론된 수많은 정책과 개혁론은 그의 사상과 정책에 뿌리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