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하는 동물’이 되어 버린 인간과
그들이 잃어버린 세계에 관한 가장 통렬하고 아름다운 성찰
『인간의 조건』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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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마사 마사키의 책을 찾아 읽게 된 계기. 이 책을 전후로 철학서를 읽는 방법이 바뀌었다.”
“입문서이지만 ‘정독’하기에 최적의 책. 독일어 판본까지 살피며 『인간의 조건』을 쉽게 풀어 썼다.”
“대학 시절 친절한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것 같은 상세한 설명. 아렌트 생각의 윤곽이 드러난다.”
◎ 도서 소개
저녁 무렵 함께 읽어 내려간 『인간의 조건』
아렌트 사유의 정수를 한 줄씩 풀어 쓴,
원전에 가장 가까운 해설서
한나 아렌트 정치사상을 이해하는 출발점, 『인간의 조건』은 정치철학의 틀을 뛰어넘어 사회학, 법학, 역사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 영감을 불어넣었고, 그 속에 담긴 아렌트의 사유와 ‘세계 사랑’의 정신은 수많은 문필가들에 의해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다.
나카마사 마사키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 역작을 가장 정중한 방법으로 독해한다. 아렌트가 의도한 사소한 말장난부터 참조한 문헌에 대한 상세한 해설까지, 영어와 독일어, 일본어 판본을 비교하며 읽는 가운데 독자들은 문장 사이사이에서 되살아나는 사상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노동, 작업, 활동, 그리고 세계 소외와 자유의 문제를 다룬 가장 힘찬 밑그림, 이제 『인간의 조건』을 펼칠 시간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활동이란 무엇인가?
지금, 『인간의 조건』을 읽어야 하는 이유
한나 아렌트의 대표작으로 주로 거론되는 것은 『전체주의의 기원』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으로, 각각 정치사가로서, 그리고 저널리스트로서 아렌트의 면모를 세상에 드러낸 작품이다. 두 저서 사이에 출간된 『인간의 조건』은 아렌트 개인의 학문적 경력뿐 아니라 정치사상사 면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짐에도 두 책에 비해 대중적인 조명을 덜 받은 것이 사실이다. 아렌트가 왜 20세기 대표적인 정치철학자로 손꼽히는지, 아렌트의 정치 이론이 어떠한 전통과 사유의 자장 안에서 꽃피었는지, 그리고 아렌트 사상을 꿰뚫는 ‘정치적인 것’에 대한 강조가 어떤 함의를 갖는지 알고 싶다면 가장 먼저 참조해야 할 책이 『인간의 조건』이다. 무엇보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격동의 시대를 살아 냈으며, 현대사회가 가장 짙은 그림자를 드리울 때 가장 아름다운 사유를 펼쳤던 사상가로서 아렌트를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인간의 조건』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텍스트다.
이 역작을 여섯 차례로 나눠 함께 읽어 내려간 결과를 책으로 엮었다. 직장인, 연구자 할 것 없이 인문적 교양에 목마른 일반인들이 5개월에 걸친 강독 수업을 함께 했다. 이 수업을 이끈 나카마사 마사키는 아렌트의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칸트 정치철학 강의』를 일본 독자들에게 번역, 소개한 아렌트 권위자이다. 『인간의 조건』 1장을 함께 읽은 후 청중과 나눈 질의응답 시간에서 밝혔듯, 나카마사 마사키는 『인간의 조건』을 독일의 철학적 전통 안에 자리 잡은 ‘교양주의humanitas’의 문맥 안에서 읽는다. 『인간의 조건』을 둘러싼 정치적 선입견을 걷어 내면서 동시에 학술적인 도그마에 갇히지 않으려는 시도이다. 『인간의 조건』은 좌-우파 이데올로기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에 출간되었고, 일찍이 저작의 중요성을 알아본 이들에 의해 아렌트는 ‘권력에 맞선 투사’이면서 동시에 ‘반공 투사’가 되어야 했다. 나카마사 마사키는 불가피하게 감내해야 했던 시대적 오해에서 『인간의 조건』을 구출해, 말 그대로 “허심탄회하게 읽으려” 한다. 그의 균형 잡힌 해설 속에서 우리는 현대사회의 소외 문제에 천착하면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을 궁구하려 한 한 사상가의 노고를 마주하게 된다.
『인간의 조건』은 두 번 쓰였다
아렌트를 가장 ‘아렌트답게’ 읽는 법
한편으로 『인간의 조건』은 아렌트의 저작 가운데에서도 난해하기로 손꼽히는 책이다.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부터 출발하는 어원학적 고찰과 사이사이 뿌려 놓은 문학적 수사들은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독자들을 번번이 좌절시킨다. 나카마사 마사키는 그 이유를 아렌트의 독일적 사고, 정확히는 독일의 철학적 ‘교양’에 뿌리를 둔 아렌트의 사유 습관에서 찾는다. 아렌트가 영어로 The Human Condition(1958)을 쓰고, 2년 뒤 독일어판 Vita Activa(1960)를 썼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독일어판이 분량도 많고 언어에도 리듬감이 있지만, 일본이나 국내 독자들에게 알려진 것은 영어 판본이다.
나카마사 마사키는 집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겨난 두 언어 사이의 긴장감을 오히려 『인간의 조건』을 더 철저하게 이해하기 위한 해석의 도구로 삼는다. 이를테면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아렌트가 제시한 ‘노동labor’과 ‘작업work’의 구분은 처음에 영어권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이를 독일어 ‘Arbeit’와 ‘Herstellen’에 대응시키면 별 차이 없는 두 단어를 전혀 다른 뜻으로 개념화한 아렌트의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처럼 독일어판을 경유해 읽으면 『인간의 조건』은 더 풍부한 텍스트가 된다. 나카마사 마사키는 ‘인간의 조건’이라는 표제의 뜻을 풀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노동, 작업, 활동, 세계와 세계 소외,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등 아렌트의 핵심 개념들을 그것의 어원뿐 아니라 영어, 독일어, 일본식 번역어를 빠짐없이 비교해 설명함으로써 아렌트를 가장 ‘아렌트답게’ 읽어 내려간다. 그 과정에서 아렌트가 곳곳에 숨겨 놓은 언어적 수수께끼를 푸는 재미는 덤이다.
엄격한 분석과 폭넓은 해석으로 드러나는
아렌트 사유의 독창적인 면모
아렌트는 ‘노동하는 동물’의 승리로 끝이 나 버린 근대사회를 비판하려는 의도로 『인간의 조건』을 집필했다. ‘정치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으로 대체되고, ‘공적인 것’에 대해 ‘사적인 것’이 우위를 점하고, 활동을 정점으로 한 전통적 위계가 노동 중심으로 전도되면서 인간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조건, 즉 세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능력을 잃게 되었다는 통찰이다. 문명 비판론으로까지 읽히는 이 대담한 주장을 밀고 나가는 과정에서 아렌트는 아리스토텔레스, 세네카, 마키아벨리, 갈릴레이, 데카르트, 루소, 로크, 베버, 그리고 마르크스까지 서양 철학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이들의 텍스트를 의욕적으로 끌어온다.
나카마사 마사키는 수많은 인용문 속에서 독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각각의 논평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위대한 프로젝트에서 어떠한 의미와 위치를 점하는지 친절하게 표지판을 달아 준다. 그 과정에서 독자들은 “작은 규모의 마르크스 연구”에서 출발한 이 저작이 어떻게 ‘인간의 조건’이라는 표제를 달게 되었는지, 갈릴레이의 망원경과 스푸트니크 위성과 인간이 경험하게 된 세계 소외가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아리스토텔레스의 ‘zōon politikon(정치적 동물)’을 ‘animal socialis(사회적 동물)’로 옮긴 세네카의 오역이 갖는 상징성은 무엇이며 데카르트적 자아가 어떻게 인간의 능력을 축소시키고 세계를 무너뜨리는 데 기여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나카마사 마사키의 노력이 진정 빛을 발하는 부분은 아렌트의 사유가 빚지고 있는 철학적 전통뿐 아니라 아렌트의 사유에 영향을 받은 현대 철학의 새로운 전통으로까지 『인간의 조건』의 해석을 확장하고 있는 대목이다. 특히 하이데거에서 아도르노로 (매끈하진 않지만) 이어지는 독일 철학 전통에서 아렌트가 누구와 어떻게 대화하는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사이의 철학적 논쟁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현대 영미 철학에서 아렌트의 사유가 어떠한 시사점을 갖는지, 샌델의 ‘공통선’이 아렌트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공유하면서도 결국 엇갈리는 주장으로 귀결된 이유는 무엇인지 등이 『인간의 조건』에 대한 한 편의 긴 주석 중간중간 부록처럼 소개되고 있다. 『인간의 조건』을 중심으로 과거와 당대, 그리고 현재의 사유들이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아렌트 사유의 독창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일반인을 위한 고전 강독
lecture+text 시리즈를 펴내며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을 읽는 시간》은 아르테가 소개하는 일반인을 위한 고전 강독 시리즈, ‘lecture+text’의 첫 번째 책이다. 시리즈 로고의 타이포가 갖는 의미 그대로, 원전original text과 원전에 대한 해설lecture을 책 한 권에 담았다. 독자들에게 스스로 고전을 읽을 수 있는 힘을 불어넣고 그 방법을 안내하려는 의도로 기획된 이 시리즈는 ‘해석’보다는 ‘해설’에 무게중심을 두고, 사상가들의 복잡한 사유의 결을 훼손하지 않는 가운데 고전을 더 깊고 풍요롭게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해 줄 것이다. 기획 의도를 반영해 본문 꾸밈새는 원전을 풍부하게 인용하면서 해설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성했고, 꼭 짚고 넘어가야 할 핵심 개념과 설명은 해설 사이사이 도해처럼 수록했다. 입말을 살린 문장과 말미에 실은 청중과 강연자의 질의응답은 강의 현장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 책 속에서
“『인간의 조건』을 읽는 제 관점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확실하게 정하지 않고 될수록 허심탄회하게 읽으려고 합니다. …… 오늘의 강의처럼 아렌트의 텍스트를 자세하게 들여다보면서 그녀의 논의에 배경을 이루는 철학적이고 교양주의적인 문맥을 찬찬히 살펴보고 싶습니다. 물론 그러려면 불가피하게 저 자신의 선입견이 작용하겠지만, 일방적인 견강부회, 단정하기만은 피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아렌트는 ‘노동’에 대해서 마르크스주의와 대립하는 견해를 제시하는 반면, 마르크스가 전개한 소외론의 논의와 문제의식에는 꽤 공감을 표합니다. 아렌트는 인간 본래의 모습에 비추어 소외에 대해 깊이 사유했습니다.”
“우리는 ‘정치’를 ‘지배/피지배’의 관계로 파악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렌트가 상정한 ‘정치’의 원형, 즉 폴리스의 정치에는 그런 관계는 없고 ‘공적 영역’에 등장해 ‘활동’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만 있을 뿐입니다. 반대로 생명 유지를 위한 ‘필연성’으로 인해 지배/피지배 관계에 있는 ‘집’의 영역은 불평등의 영역입니다.”
“아렌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사생활privacy’에는 그런 긍정적인 의미가 없었고, 오히려 결여를 나타내는 부정적인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어원을 통해 고찰합니다. (…) 한마디로 ‘privacy’는 결여한 상태였습니다. 무엇을 결여했느냐 하면, 공적 성격을 결여하고 있었습니다.”
“「제3장 노동」은 (…) 마르크스의 ‘노동’ 개념 비판이 주제입니다. 아렌트는 그것을 정면에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 폴리스의 ‘노동’을 규정하는 것에서 시작해 그것이 어떻게 변질되었고,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 더듬어 갑니다.”
“근대인이 부를 획득하려는 욕구의 본질은 ‘사물’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자기를 재생산하려는 ‘생명life’에 있다는 것이 아렌트의 분석입니다. 자기 증식하는 ‘생명’이 사물에 내구성을 부여하고 시민에게 아이덴티티를 부여함으로써 서사를 계속 이야기할 수 있는 ‘공통 세계’를 짓밟아 부서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대량 소비사회에서는 상품으로 산 물건을 금방 소비해 버리고 새로운 물건을 구입하는 것을 미덕이라고 칭찬했습니다. (…) 그렇게 되면 내구성을 갖고 존재하는 ‘사물’들로 이루어진 ‘공통 세계’ 안에서 다른 시민과 리얼리티 감각을 공유하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그뿐 아니라 (…) 우리가 지속적으로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세계’는 이미 찾아볼 수 없어집니다.”
“아렌트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생물학적 삶에만 관심을 두고, 그것을 중심으로 사회가 움직이기에 이른 까닭은 무엇이냐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 아렌트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배경을 이루는 작업과 노동의 균형 변화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이 아무개라고 자신의 독특함을 현전하는 타자들을 향해 두드러지게 내보임으로써 새로운 것을 산출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자유의 원리principle of freedom’입니다. 아렌트가 보기에 각 ‘인간’을 둘러싼 ‘시작’은 ‘자유’를 함의합니다.”
“아렌트는 ‘권력’과 ‘폭력violence’을 구별합니다. ‘폭력’이 물질적이고 그것을 위한 도구를 저장할 수 있는 반면, ‘권력’은 ‘언어’와 결부되어 ‘출현의 공간’을 지키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치에서는 타자에게 보이고 들리는 것이야말로 중요합니다.”
“근대에 들어와 (…) ‘생명 과정-노동’이 인간의 생활 전체를 지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서 ‘생명’과 결부된 ‘활동적 생활’이라고 불리는 것은 “‘노동하는 동물’의 승리”입니다. 근대인은 내세를 잃어버린 대가로 ‘세계’를 획득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에 되던져졌을 따름이라고 서술한 것입니다. 내부 지향적인 내성을 통해 찾아낸 것은 무언가 고상한 것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