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죽이는데 형(形)이 필요합니까?”
악몽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검은 바람이 지나가면 그 궤적을 따라 피 안개가 허공을 덮었다.
머리에 맨 덕지덕지 얼룩이 진 낡은 천.
허리춤에 달린 주방에서나 쓸 법한 넓은 채도(菜刀).
등 뒤로 넘긴 군데군데 해진 검은색 피풍.
겉보기엔 그저 낭인(浪人)처럼 보이는 한 남자.
그에게서 잊혀진 멸왕(滅王)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싸우는 사람이 있어 외치길, 새로 태어난 멸천멸왕(滅天滅王)을 찾으라 하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