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여기서 끝내기로 하죠.”
“무슨 말인지 잘 못 들었어.”
“한국말도 몰라요? 오늘 이후로 선배 얼굴 다시는 안 보겠다는 뜻이에요. 나 유학 가요. 그동안 선배가 나한테 물심양면으로 애써 준 거 모두 고마웠어요. 그래서 제 보답으로 선배에게 하룻밤을 권한 거고요. 부족하다면 몇 번 더 해드릴 수도 있어요. 하긴 시체처럼 뻣뻣한 몸뚱이 안기가 썩 좋지는 않겠네요. 선배보다 더 좋은 후원자가 생겨서 학교 그만두고 내일 당장 파리로 갑니다. 아무래도 성공하려면 큰물이 낫겠죠? 그동안 감사했어요. 좋은 여자 만나서 행복하세요.”
“거짓말 하지 마. 내가 널 한두 해 봤어? 잔 떨림 하나로도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아.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뜬금없이 유학이라니? 나 혼자만의 일방통행인 감정이라고는 말 못할 텐데?”
“그래서요? 인간은 변덕스런 동물이에요. 특히 나처럼 궁지에 몰린 인간은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쪽을 따라가요. 구질구질하게 맘 떠난 여자 붙잡지 말아요, 선배. 다시 볼 일은 없을 테니 여기서 안녕하죠.”
발췌글
“여기서 자고 가. 아니다, 네가 불편하지? 잠깐만, 내가 집까지 데려다 줄게.”
“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 여기서 끝내기로 하죠, 성혁 선배.”
벌거벗은 채 침대에서 내려와 바지를 꿰어 입던 그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방금 사랑을 나누었던 흔적은 한 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무슨 말인지 잘 못 들었어.”
막 문 쪽으로 돌아서는 그녀의 팔을 거친 힘으로 움켜쥐고 흔들었다.
어깨를 비틀어 팔을 뺀 유이는 능글맞은 미소를 담은 채 고개를 돌려 그를 피했다. 바닥에 얼어붙은 남자를 두고 가차 없이 갈 길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