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운명은 언제나 짓궂다.
그것은 너와 나를, 인간과 도깨비를, 이별과 재회를,
우리의 모든 것을 장난처럼 어지럽혔다.
스치듯 흘려보냈다.
아무것도 담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던 내가
너를 잡을 수는 없었으니까.
몇 번이나 그렇게 놓쳐 버린 너를
몇 번이나 등 뒤로 흘려보낸 너를
몇 번이고 다시 내게 되돌린 세상.
“어쩌다 한 번 생각났다고 했지.
나는 어쩌다 한 번 너를 잊었다.”
인간 세상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도깨비.
질서를 수호하고 부자연을 징벌하는 사우차, 강요한.
나를 정의하는 말들이 힘을 잃고 부서진다.
나의 사방을 막고, 나의 모든 것을 흐려 놓고
이제는 나를 지키겠다는 인간 따위가
나는 기가 막히고, 그리고 또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