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누구에게나 친절한 해오 호텔의 부사장 오수완.
하지만 자신의 영역에 쉽게 낯선 이를 들이지 않는 그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스물두 살의 어린 임시 비서 윤채이.
“내가 윤채이 씨를 뭘 보고 믿어야 하는데?”
더럽히고 싶다는 심술맞은 마음이 들 만큼 파릇한 얼굴이
자꾸만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녀를 볼 때마다 느끼는 이 기시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정답은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다만,
“이제야 기억이 났어, 주정뱅이 꼬맹이.”
그에게는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이 배어 나오던 그날의 기억이
“제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저도 누군지 모르는 그런 사람이에요.”
그녀에게는 절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을 뿐이다.
10년 전 여름, 모든 것이 온전했던 시절 우연히 맺어진 악연은
먼 길을 돌아 단 하나의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2권
3대째 이어지는 한식당 ‘뜨락’은 누군가에겐 시골 외갓집처럼 푸근했고,
또 누군가에겐 자유로웠던 어린 날의 추억과 같았다.
해오 호텔 부사장과 뜨락 조리장의 무남독녀 따님이 만난 건,
그렇기에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여긴 내 세계예요. 오빠가 내 세계 안으로 들어온 거예요.”
어둠에 잠겨 있어도 채이의 집은 온기를 품고 있었다.
수완이 꿈꿨던 것은 그가 자란 차가운 집이 아니라, 이런 따뜻한 집이었다.
하지만 그 집에서의 미래를 꿈꾸기엔 두 사람이 사는 세계는 여전히 멀기만 했다.
“내가 스스로 네 것이 되기로 결심했으면 난 너한테만 충성할 거야.”
그가 오래전부터 꿈꿔 온 야망조차 그녀 앞에선 하찮았으나,
“오빠 가족에게는 오빠가 그 형 몫만큼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잖아요.
나 때문에…… 혹시라도 나 때문에 그게 망가지면 안 돼요.”
그녀는 자신으로 인해 그가 무엇도 잃지 않기를 원했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반짝이던 별 하나.
남자는 자신에게 쏟아져 내리는 그 별을 잡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