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고요한 바람이 부는 황량한 황궁에 황자가 돌아왔다.
“황위를 원한 적 없사옵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하나였다.
저를 윤아, 하고 불러 주던 목소리.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게 손을 내밀어 준 한 사람.
“제게 한 걸음만, 다가와 주세요.”
황좌에 오르고 싶은 당신께 나는 전부를 바칠 수 있었다.
하늘을 갈기갈기 찢어 내어 드릴 수 있었다.
당신이 나를 떠났을 때도 내겐 여전히 당신뿐이었다.
“가장 슬프고 비참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폐하께서 저를 차게 보실 때도, 가시 돋친 말에 찔렸을 때도 아닙니다.
제가 폐하의 앞에서 영원히 을일 것을 깨달았을 때.
냉정한 말에도 잠깐 스친 눈길에 무너지는 내가, 의미 없는 다정함에 흔들리는 이 마음이, 미워하려 그만두려 아무리 노력해 봐도 되지 않는 걸 깨달은 그 결국에……
누이의 앞에서 영원히 을일 것을 알았어.”
*
시린 바람이 부는 황궁의 중심엔 반아가 있었다.
“더는 다가오지 마십시오.”
참혹한 기억을 끌어안고 처절한 걸음을 내딛으며 하늘을 갈망했다.
그 고통을 버티게 한 것은 한 사람이었다.
황자로 태어나 결국 내 앞을 가로막게 될 한 사람.
“네가 돌아오길 바랐다. 네가 돌아오지 않길…… 빌었어.”
끝없이 주변을 서성이며 다가오려는 너를 밀어내야 했다.
말간 눈에 슬픔이 차올라 애타게 손을 뻗는 너를 스쳐 가야 했다.
연정을 말하며 무너지는 너를, 잡고 싶었다.
‘네가 내겐, 봄이었다.
시린 바람만 부는 황궁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계절이었다.
너를 다시 만난 후로 황궁엔 잊었던 비단 꽃이 피었다. 노을이 쏟아져 내렸다.
윤아. 내 생 가장 행복했던 시절아.
나의 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