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율도활빈자. 正律道活貧者.』
법과 도를 바르게 세워 가난한 이들을 살게 하라
1469년, 조선.
홍일동의 딸 율도는 3년째 인왕산 깊은 곳에 숨어 있었다.
“저 매. 얼마면 팔겠느냐.”
열세 살의 여름, 매를 사랑하는 소년을 만나기까지.
“내 이름은 아무다. 아. 무.”
“내 이름은 홍…… 그러니까…… 그냥 홍이다, 홍이.”
홍이의 벗 아무, 아무의 벗 홍이.
반가의 여식 율도가 아닌, 사내아이 홍이로서 생전 처음 사귄 벗.
나라의 연못 서지(西池)에서 연꽃을 따 주었을 때도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아무를 예쁨받는 얼자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말이다, 홍아.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다.”
세조왕의 손자이자 주상의 조카인 자을산군 이혈.
조선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왕족의 아명을 알 리 없으니.
그리고 겨울.
삭풍과 함께 닥쳐온 위험이 율도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을 때,
할매를 잃은 율도가 의지할 곳은 오직 한 군데뿐이었다.
언젠가 산속에서 만난, 이 세상 사람 같지 않던 귀인.
아무와 홍이, 그리고 귀인.
천안 삼거리의 청등(靑燈) 세 개 걸린 주막.
뒤얽힌 두 갈래의 인연이 붉게 타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