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작곡가. 역사상 최고의 작곡가로 지목되는 고전파 음악의 완성자ㆍ낭만파음악의 창시자. 본 태생으로 소년 시대부터 본의 궁정에 음악가로 있었는데 빈에서 온 귀족 발트슈타인(F. Waldstein) 백작의 추천으로 빈에 유학하여 하이든에게 배웠다. 처음엔 피아니스트로 빈의 음악계ㆍ사교계에서 활약하고 1795년 3개의 피아노 중주곡을 처녀 출판하여 인정 받아 명성을 얻고 많은 귀족으로부터 장학금을 얻었으며 전도가 양양하였다. 그러나 1798년부터 청력(廳力)이 감퇴되고 또 실연을 당하자 고민하여 유서를 쓰기까지 했다. 그러나 음악을 사랑하는 강한 의지가 그를 죽음에서 건졌다. 그는 귀가 먹어가는 데다가 자의식이 강하여 신경질이 많았고 예의를 지키지 않았으며 누구의 간섭도 받으려 하지 않아서 많은 오해와 일화가 남아 있다. 음악가에게 가장 귀중한 청력을 잃었으면서도 그의 작곡 활동은 더욱 활발해지고 사교계를 떠나 오직 창작에만 진력하였다. 33세 때 쓴 《영웅 교향곡》은 나폴레옹에게 헌사하려던 것으로 웅대한 구상과 강렬한 생명력은 청춘을 압도하는 탁월한 예술가의 혼의 기록으로서 그의 필생의 대작이었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종신 통령이 되려 하여 그 세속적 태도에 영웅의 이미지가 사라지자 분개하여 헌사할 것을 취소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의 중기는 형식상 하이든ㆍ모차르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30세 전후의 초기에 비해 고뇌ㆍ투쟁ㆍ비창ㆍ승리 등을 연상시키는 심각한 걸작들 즉 교향곡 《운명》ㆍ《전원(1808)》 피아노 소나타 《비창(悲槍)》ㆍ《월광곡》ㆍ《열정(1805)》 피아노 협주곡 《황제(1909)》 가극 《피델리오 Fidelio(1814)》 등을 계속 발표하였다. 프랑스 혁명으로 후원자이던 귀족들도 몰락 하자 그의 만년은 고생이 계속되었으며 무게와 표현의 강렬도를 더하여 낭만주의의 경향이 힘차게 나타나다가 완전히 청력을 잃은 뒤로는 홀로의 고독한 세계에 틀어박혀 일반인에게는 이해되기 어려울 만큼 명상적인 작품을 쓰고 있었다. 1827년 3월 24일 그는 격렬한 뇌우(雷雨)가 쏟아지는 가운데 쓸쓸하게 57년의 생애를 독신으로 마쳤다. 그는 하이든과 모차르트에 의해 거의 완성된 고전주의 음악 형식을 더욱 강한 개성을 발휘 결정적인 것으로 하였으며 음악을 단순한 오락과 취미에서 끌어올려 계시(啓示)로 만드는데 성공 그 희유의 천재성을 나타내었으며 수다한 숭배자와 음악가를 낳게 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피아노 9곡 피아노 소나타 32곡 협주곡 실내악 서곡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