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중 삼국지 삼국연의 117회 118회 예시문 第一百十七回 鄧士載 #20599 渡 度(법도 도 #12084 -총9획 du duo)의 원문은 渡(건널 도 #12116 -총12획 du)이다. 陰平 諸葛瞻戰死綿竹 제일백십칠회 등사재투도음평 제갈첨전사면죽. 삼국연의 제 117회 등사재[등애]는 몰래 음평을 건너 가고 제갈첨은 면죽에서 전사하다. #21371 說輔國大將軍董厥 董厥 공습 204~ 의양 태생 촉(蜀)의 장수이자 문사(文士)로 관직은 승상영사(丞相令史)였다. 공명(孔明)을 따라 남만평정에 참가했고 중원정벌 시 내정에서 활약했다. 공명 사후에 강유와 함께 검각을 수비하나 패배하고 마음에 병을 얻어 사망한다. ,聞魏兵十餘路入境,乃引二萬兵守住劍閣; 각설보국대장군동궐 문위병십여로입경 내인이만병수주검각. 각설하고 보국대장군인 동궐은 위나라 병사가 10여길로 국경에 들어옴을 보고 이만 병사로 검각을 지키러 인솔했다. 當日望塵頭大起,疑是魏兵,急引軍把住關口。 당일망진두대기 의시위병 급인군파주관구. 당일 먼지가 크게 일어나서 위나라 병사임이 의심되어 급히 군사를 인솔하고 관문의 입구를 지켰다. 董厥自臨軍前視之,乃姜維、廖化、張翼也。 동궐자임군전시지 내강유 요화 장익야. 동궐이 스스로 군앞에 임해서 보니 강유 요화 장익이었다. 厥大喜,接入關上,禮畢,哭訴後主黃皓之事。 궐대희 접입관상 예필 곡소후주황호지사. 동궐이 크게 기뻐서 관문앞에 접하게 하며 예의를 마치고 후주와 황호의 일을 통곡하며 하소연하였다. 維曰:“公勿憂慮。若有維在,必不容魏來 #21534 蜀也。且守劍閣,徐圖退敵之計。” 유왈 공물우려. 약유유재 필불용위래탄촉야. 차수검각 서도퇴적지계. 강유가 말했다. “공께서는 우려하지 마십시오. 만약 제가 있으면 반드시 위나라가 촉을 병탄을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또 검각을 지키면서 서서히 적을 물리칠 계책을 도모해봅시다.” 厥曰:“此關雖然可守,爭奈 爭奈 어떻게 할 수 없는 어찌하여 成都無人; #20504 爲敵人所襲,大勢瓦解矣。” 궐왈 차관수연가수 쟁나성도무인. 당위적인소습 대세와해의. 동궐이 말했다. “이 관문은 비록 지킬 수 있지만 성도에 사람이 없습니다. 혹시 적이 습격함에 대세가 와해될까 염려됩니다.” 維曰:“成都山險地峻,非可易取,不必憂也。” 유왈 성도산험지준 비가이취 불필우야. 강유가 말했다. “성도는 산이 험하며 땅이 험준하니 쉽게 취할 수 없으니 반드시 우려하지 마십시오.” 正言間,忽報諸葛 #32210 領兵殺至關下,維大怒,急引五千兵殺下關來,直撞入魏陣中,左衝右突,殺得諸葛 #32210 大敗而走,退數十里下寨,魏軍死者無數。 정언간 홀보제갈서령병살지관하 유대노 급인오천병살래관래 직당입위진중 좌충우돌 살득제갈서대패이주 티ㅗ수십리하채 위군사자무수. 바로 말하는 사이에 갑자기 제갈서가 병사를 인솔하고 관문 아래에 이름을 보고를 받으니 강유가 크게 분노하여 급히 오천 병사를 인솔하고 관문에 내려와서 직접 위나라 진영에 치고 들어가서 좌충우돌하니 제갈서는 크게 패배하여 달아나며 수십리를 퇴각하여 영채를 세우며 위나라병사는 무수히 죽었다. 蜀兵 #25654 #25654 (닿을 빼앗다 창 #12095 -총13획 qi #462 ng qi #257 ng qiang) 了許多馬匹器械,維收兵回關。 촉병창료허다마필기계 유수병회관. 촉나라 병사가 허다한 마필과 무기를 강유는 병사를 거두어 관에 돌아왔다. #21371 說鐘會離劍閣二十里下寨,諸葛 #32210 自來伏罪 伏罪[fuzui] 자기 죄(과)를 인정하다. →服罪(fuzui) 。 각설종회리검각이십리하채 제갈서자래복죄. 각설하고 종회는 검각에서 20리를 떨어져 영채를 세우며 제갈서가 스스로 죄를 복종하려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