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十九回 兄逼弟曹植賦詩 姪陷叔劉封伏法 복법 형벌(刑罰)을 받아 죽임을 당(當)함 삼국지 79 80회 한문 원문 및 한글번역 각주 해석 제칠십구회 현핍제조식부시 질함숙유봉복법. 삼국연의 제 79회 형이 아우인 조식을 핍박해 시부를 짓게 하며 조카가 숙부인 관우를 죽게한 유봉을 법에 엎드리어 형벌을 받게 하다. #21371 說曹丕聞曹彰提兵而來,驚問衆官; 각설조비문조창제병이래 경문중관. 각설하고 조비는 조창이 병사를 일으키고 옴을 보고 놀라서 여러 관리에게 물었다. 一人挺身而出,願往折服 折服[zh eacute f uacute ] 1.내심 복종하다. 신복(信服)하다. 탄복하다. 2.설복하다. 설득하다. 납득시키다. 之。 일인정신이출 원왕절복지. 한 사람이 몸을 빼서 나오며 원하길 그를 절복하러 간다고 했다. 衆視其人,乃諫議大夫賈逵 賈逵(한길 규 #12193 -총12획 ku iacute ) 자는 양도(梁道) 174~228 하동 양릉 출신청렴한 인품으로 조조의 인정을 받아 예주자사(豫州刺史)가 되었다. 부하를 다스림에 엄격한 태도로 임하여 추호도 사(私)를 두지 않고 범법자는 가차없이 파면하였다. 남쪽의 오(吳)나라에 대한 방벽을 굳게 하고 관할지의 수리사업에 주력하였다. 가후거(賈侯渠)라는 운하는 그가 건설한 것이다. 也。 중시기인 내간의대부가규야. 여럿이 그 사람을 보니 간의대부인 가규였다. 曹丕大喜, #21363 命賈逵前往。 조비대희 즉명가규전왕. 조비가 크게 기뻐서 곧 가규를 앞서 가게 했다. 逵領命出城,迎見曹彰。 규령명출성 영견조창. 가규가 명령을 따라서 성을 나와서 조창을 맞이하여 보았다. 彰問曰:「先王璽綬 璽(도장 새 #12127 -총19획 x #464 )綬(인끈 수 #12151 -총14획 sho #768 u) 安在?」 창문왈 선생새수안재? 조창이 묻고 말하길 “선왕의 옥새와 인수는 어디에 있는가?” 逵正色而言曰:「家有長子,國有儲君 저군 ①왕세자(王世子) ②황태자(皇太子) ,先王璽綬,非君侯之所宜問也。」 규정색이언왈 가유장자 국유저군 선왕새수 비군후지소의문야. 가규가 정색하며 말하길 “집에는 장자가 있고 나라에 왕세자가 있으니 군후께서 물음이 의당치 않습니다.” 彰默然無語,乃與賈逵同入城。 창묵연무어 내여가규동입성. 조창이 침묵하여 말이 없으니 가규와 함께 성에 들어왔다. 至宮門前,逵問曰:「君侯此來,欲奔喪耶?欲爭位耶?」 지궁문전 규문왈 군후차래 욕분상야? 욕쟁위야? 궁문앞에 이르러서 가규가 말했다. “군후께서 이번에 옴은 상례를 치르려고 합니까? 왕위를 쟁취하기 위해서입니까?” 彰曰:「吾來奔喪,別無異心。」 창왈 오래분상 별무이심. 조창이 말하길 “내가 상례를 위해 오며 따로 다른 마음이 없소.” 逵曰:「 #26082 無異心,何故帶兵入城?」 규왈 기무이심 하고대병입성? 가규가 말하길 “이미 다른 마음이 없는데 어떤 이유로 병사를 데리고 성에 들어오십니까?” 彰 #21363 時叱退左右將士,隻身 隻身 홀몸. 배우자나 형제가 없는 사람 入內,拜見曹丕。 창즉시질퇴좌우장사 척신입내 배현조비. 조창은 즉시 좌우의 장사를 꾸짖어 물리고 홀몸으로 안에 들어가며 조비를 알현하였다. 兄弟二人,相抱大哭。 형제이인 상포대곡. 형제 두 사람은 서로 얼싸안고 크게 통곡하였다. 曹彰將本部軍馬盡交與曹丕。 조창장본부군마진교여조비. 조창의 본부 군마는 모두 조비에게 주었다. 丕令彰回 #37154 陵 #37154 陵[Y #257 nl iacute ng] 옌링. (허난(河南)성에 있는 지명) 自守,彰拜辭而去。 비령창회언릉자수 창배사이거. 조비는 조창을 언릉에 돌아가 스스로 지키게 하니 조창은 떠난다는 말을 하며 갔다. 於是曹丕安居王位,改建安二十五年爲延康元年。 어시조비안거왕위 개건안이십오년위연강원년. 이에 조비는 편안하게 왕위에 있으니 건안 25년을 연강 원년[220년]으로 바꾸었다. 封賈 #35425 爲太尉,華歆爲相國,王朗爲御史大夫。 봉가후위태위 화흠위상국 왕랑위어사대부. 조비는 가후를 태위로 봉하며 화흠을 상국으로 삼고 왕랑을 어사대부로 삼았다. 大小官僚,盡皆陞賞。 대소관료 진개승상. 대소의 관료들은 모두 승진과 상을 받았다. 諡曹操曰武王,葬於 #37172 郡高陵 高陵 사례주(司隷州) 좌풍익군(左馮翊郡)에 속하는 현(縣)의 명칭이다.성터는 원래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고릉(古陵)에 위치해 있었다. #37172 郡 지금의 하북성 임장현(臨 #28467 縣) 서북 。 시조조왈무왕 장어업군고릉. 조조의 시호를 무왕으로 하며 업군의 고릉에 장례를 지냈다. 令于禁董治陵事。 령우금동치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