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당나귀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 매직하우스 | 2007년 12월 20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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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로마시대에 쓰여진 작품으로 2000년 동안 전세계 문학인을 매료시킨 최고의 소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보다 더 생생하고 관능적인 신화의 세계가 펼쳐진다 『황금당나귀』는 세계 최고(最古)의 소설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이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작품은 가치를 높여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작품을 재미있게 읽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최고(最古)의 소설에 대한 호기심보다 고루하고 어려울 것이며, 대단한 의미를 찾아야 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다보면 그런 마음이 그저 편견이었으며 괜한 부담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실질적인 모태가 되었으며, 재미있는 신화적 에피소드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사랑을 이야기 할 때면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쿠피도와 프쉬케의 사랑이야기 또한 이 작품에 등장한다. 이밖에도 기본 줄거리 안에 포함되어 있는 10개의 액자소설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담긴 에피소드들은 품위 있는 것에서 익살스러운 것, 방탕한 것, 소름 끼치는 것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망라하고 있다. 이는 당대의 숨겨져 있던 진실과 삶을 낱낱이 보여준다. 재미있고 때로는 음란하기조차 한 에피소드들을 거침없는 소설적 문체로 표현하여 수세기에 걸쳐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아왔다. 프랑스의 작가 플로베르는 "나는 이 작품이 너무나 눈부셔 현기증을 느낀다. 이 작품은 고대 그리스와 기독교적인 것들을 한데 아우르고 있으며, 이 속에 담긴 장면과 사건들은 현대적 감각으로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여기에 감미로운 향기와 오줌 냄새가 뒤섞여 있으며, 동물의 본성이 신비성과 하나가 되어 있다"라고 이 작품을 평가하고 있다. 고전문학의 신화(전설)가 된 액자소설의 전형 황금당나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이다. 그리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소설은 바로 『황금당나귀』이다. 이 작품은 현대소설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이 들어 있는 액자소설의 형태가 사용된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액자소설의 전형을 만들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10개의 액자소설에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부터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그리고 대중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쿠피도와 프쉬케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쿠피도와 프쉬케의 불멸의 사랑 『황금당나귀』에는 「쿠피도와 프쉬케」라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최초로 삽입된 작품이다. 프쉬케는 유한한 목숨을 가진 인간에서 쿠피도와의 사랑으로 인해 불멸의 신으로 승화한다. 이 이야기는 ‘애욕’이란 진정한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사랑에는 영혼이 존재해야만 불멸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 이는 플라톤 철학의 뉘앙스를 풍긴다. 에로스는 그리스어의 ‘에란(εραω)’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말은 나를 위해 남을 필요로 하는 사랑을 뜻하는 것으로, 일방적인 사랑이라는 느낌을 준다. 일방적인 사랑만이 존재했던 그리스 시대에 쿠피도와 프쉬케의 서로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행복한 결실을 맺는 사랑은 예외적이다. 일방적인 사랑을 의미하던 이 에로스는 현대에 이르면서 정신과 육체가 함께 있고 두 사람 상호간의 사랑을 존중하는 세계로 변한다. 줄거리 루키우스는 마법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을 갖다가 결국 마법 때문에 당나귀로 변한다. 인간의 지성은 그대로인 채 당나귀의 모습을 하게 된 루키우스는 몇 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온갖 고통과 수모를 겪게 된다. 그러나 한 가지 위안을 삼는 것은 인간의 모습이었다면 알 수 없었을 일들을 보고 듣고 겪음으로써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루키우스는 그저 당나귀일 뿐이다. 때문에 그가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도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게다가 당나귀의 큰 귀로 인해 먼 곳에서 나는 말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루키우스는 인간세계의 숨겨진 한 단면을 볼 수 있게 된다. 『황금당나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아풀레이우스의 『황금당나귀』는 영적 성장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한 젊은이가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내면 적인 성장과 나름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 혹은 교양소설이라 불리는 장르는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같은 근대소설에 와서 확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맥락에서 『황금당나귀』를 근대적인 의미의 성장소설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굳이 그런 분류를 따르지 않는다면 분명히 『황금당나귀』는 성장소설에 속한다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2세기 초 로마에 살았던 한 사제가 서사시도 아니고 근대소설도 아닌 특이한 이야기구조를 통해 놀라운 메시지를 남겼다는 사실이다. 루키우스라 불리는 주인공이자 화자는 귀족출신의 젊은이로 여행길에 나섰다가 갖가지 기이하고도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되며 나중에는 이집트의 이시스와 오시리스비의에 입문하게 된다. 결국 그는 그 체험들을 통해 영적으로 눈 이 뜨인 성숙한 인격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루키우스는 여행길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을 통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듣게 되는데, 그 이야기들이 또 하나하나의 훌륭한 소설들이 되어, 『황금당나귀』는 이야기 속에 또 이야기가 들어있는 중층적인 액자구조를 하고 있어 그 형식상으로도 매우 신선함을 준다.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인 소설 속의 소설은 단연 ‘쿠피도와 프시케’의 이야기일 것이다. ‘쿠피도와 프시케’ 이야기는 당나귀로 변신한 주인공 루키우스가 겪게 되는 시련을 통한 영혼의 정화과정과 맞물리게 되면서 이 작품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잘 전해주고 있다. 우선 루키우스는 엿보아서는 안 되는 마법의 신비를 호기심에 못 이겨(남편을 보지 말라는 약속을 어긴 프시케처럼) 들여다본 죄로 당나귀로 변하는 벌을 받는다. 그전에 그는 유숙하고 있던 하숙집 하녀와 방종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는 어떤 계기로든지 필히 영혼의 정화 내지는 성숙의 길을 걸어야 하는 운명에 있었던 것이다. 동물의 몸으로 변신했을망정 인간으로서의 의식과 마음은 그대로 가지고 있는 루키우스의 운명이야말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갖고 있는 역설적인 면(영혼이 육체라는 옷을 입게 되는 충격적인 상황)에 대한 강력한 알레고리인 것으로 보인다. 하여튼 루키우스는 당나귀로 변신하고 나서 겪게 되는 비참하고도 기괴한 상황 속에서도 주의 깊은 관찰력과 경청 능력을 잃지 않음으로써, 평범한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교훈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귀가 되었던 루키우스는 어두운 형체를 벗어버린 후에 이시스 신비의 세 등급 모두에 입문했다. 그는 입문을 이야기하면서, 그가 신전 내에서 죽음의 경계에 다가갔다고 말한다. 이 ‘제 2의 죽음’은 입문과정에서 거치게 되는 고전적 단계이다. 그의 경험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는 신비주의 문헌에서 자정의 태양(The Midnight Sun) 이라고 부르는 것을 경험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루키우스는 경외감에 젖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난 죽음의 바로 앞까지 가서 페르세포네의 문지방에 한발을 내디뎠습니다. 아직 돌아올 수는 있었으나 모든 요소(물, 불, 바람, 흙)에 정신을 빼앗겼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나는 대낮처럼 환히 빛나는 태양을 보았습니다. 난 지하세계의 신들과 하늘나라의 신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향해 참배했습니다.’ 영적 세계로의 이러한 여행은 입문의 가장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루키우스는 그때 다른 놀라운 신비와 계시를 보았으나 그것들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한다.” - 마크 헤드슬, [젤라토르]上

저자소개

로마시대에 쓰여진 작품으로 2000년 동안 전세계 문학인을 매료시킨 최고의 소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보다 더 생생하고 관능적인 신화의 세계가 펼쳐진다 『황금당나귀』는 세계 최고(最古)의 소설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이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작품은 가치를 높여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작품을 재미있게 읽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최고(最古)의 소설에 대한 호기심보다 고루하고 어려울 것이며, 대단한 의미를 찾아야 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다보면 그런 마음이 그저 편견이었으며 괜한 부담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실질적인 모태가 되었으며, 재미있는 신화적 에피소드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사랑을 이야기 할 때면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쿠피도와 프쉬케의 사랑이야기 또한 이 작품에 등장한다. 이밖에도 기본 줄거리 안에 포함되어 있는 10개의 액자소설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담긴 에피소드들은 품위 있는 것에서 익살스러운 것, 방탕한 것, 소름 끼치는 것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망라하고 있다. 이는 당대의 숨겨져 있던 진실과 삶을 낱낱이 보여준다. 재미있고 때로는 음란하기조차 한 에피소드들을 거침없는 소설적 문체로 표현하여 수세기에 걸쳐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아왔다. 프랑스의 작가 플로베르는 "나는 이 작품이 너무나 눈부셔 현기증을 느낀다. 이 작품은 고대 그리스와 기독교적인 것들을 한데 아우르고 있으며, 이 속에 담긴 장면과 사건들은 현대적 감각으로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여기에 감미로운 향기와 오줌 냄새가 뒤섞여 있으며, 동물의 본성이 신비성과 하나가 되어 있다"라고 이 작품을 평가하고 있다. 고전문학의 신화(전설)가 된 액자소설의 전형 황금당나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이다. 그리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소설은 바로 『황금당나귀』이다. 이 작품은 현대소설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이 들어 있는 액자소설의 형태가 사용된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액자소설의 전형을 만들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10개의 액자소설에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부터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그리고 대중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쿠피도와 프쉬케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쿠피도와 프쉬케의 불멸의 사랑 『황금당나귀』에는 「쿠피도와 프쉬케」라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최초로 삽입된 작품이다. 프쉬케는 유한한 목숨을 가진 인간에서 쿠피도와의 사랑으로 인해 불멸의 신으로 승화한다. 이 이야기는 ‘애욕’이란 진정한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사랑에는 영혼이 존재해야만 불멸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 이는 플라톤 철학의 뉘앙스를 풍긴다. 에로스는 그리스어의 ‘에란(εραω)’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말은 나를 위해 남을 필요로 하는 사랑을 뜻하는 것으로, 일방적인 사랑이라는 느낌을 준다. 일방적인 사랑만이 존재했던 그리스 시대에 쿠피도와 프쉬케의 서로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행복한 결실을 맺는 사랑은 예외적이다. 일방적인 사랑을 의미하던 이 에로스는 현대에 이르면서 정신과 육체가 함께 있고 두 사람 상호간의 사랑을 존중하는 세계로 변한다. 줄거리 루키우스는 마법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을 갖다가 결국 마법 때문에 당나귀로 변한다. 인간의 지성은 그대로인 채 당나귀의 모습을 하게 된 루키우스는 몇 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온갖 고통과 수모를 겪게 된다. 그러나 한 가지 위안을 삼는 것은 인간의 모습이었다면 알 수 없었을 일들을 보고 듣고 겪음으로써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루키우스는 그저 당나귀일 뿐이다. 때문에 그가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도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게다가 당나귀의 큰 귀로 인해 먼 곳에서 나는 말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루키우스는 인간세계의 숨겨진 한 단면을 볼 수 있게 된다. 『황금당나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아풀레이우스의 『황금당나귀』는 영적 성장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한 젊은이가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내면 적인 성장과 나름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 혹은 교양소설이라 불리는 장르는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같은 근대소설에 와서 확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맥락에서 『황금당나귀』를 근대적인 의미의 성장소설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굳이 그런 분류를 따르지 않는다면 분명히 『황금당나귀』는 성장소설에 속한다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2세기 초 로마에 살았던 한 사제가 서사시도 아니고 근대소설도 아닌 특이한 이야기구조를 통해 놀라운 메시지를 남겼다는 사실이다. 루키우스라 불리는 주인공이자 화자는 귀족출신의 젊은이로 여행길에 나섰다가 갖가지 기이하고도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되며 나중에는 이집트의 이시스와 오시리스비의에 입문하게 된다. 결국 그는 그 체험들을 통해 영적으로 눈 이 뜨인 성숙한 인격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루키우스는 여행길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을 통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듣게 되는데, 그 이야기들이 또 하나하나의 훌륭한 소설들이 되어, 『황금당나귀』는 이야기 속에 또 이야기가 들어있는 중층적인 액자구조를 하고 있어 그 형식상으로도 매우 신선함을 준다.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인 소설 속의 소설은 단연 ‘쿠피도와 프시케’의 이야기일 것이다. ‘쿠피도와 프시케’ 이야기는 당나귀로 변신한 주인공 루키우스가 겪게 되는 시련을 통한 영혼의 정화과정과 맞물리게 되면서 이 작품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잘 전해주고 있다. 우선 루키우스는 엿보아서는 안 되는 마법의 신비를 호기심에 못 이겨(남편을 보지 말라는 약속을 어긴 프시케처럼) 들여다본 죄로 당나귀로 변하는 벌을 받는다. 그전에 그는 유숙하고 있던 하숙집 하녀와 방종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는 어떤 계기로든지 필히 영혼의 정화 내지는 성숙의 길을 걸어야 하는 운명에 있었던 것이다. 동물의 몸으로 변신했을망정 인간으로서의 의식과 마음은 그대로 가지고 있는 루키우스의 운명이야말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갖고 있는 역설적인 면(영혼이 육체라는 옷을 입게 되는 충격적인 상황)에 대한 강력한 알레고리인 것으로 보인다. 하여튼 루키우스는 당나귀로 변신하고 나서 겪게 되는 비참하고도 기괴한 상황 속에서도 주의 깊은 관찰력과 경청 능력을 잃지 않음으로써, 평범한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교훈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귀가 되었던 루키우스는 어두운 형체를 벗어버린 후에 이시스 신비의 세 등급 모두에 입문했다. 그는 입문을 이야기하면서, 그가 신전 내에서 죽음의 경계에 다가갔다고 말한다. 이 ‘제 2의 죽음’은 입문과정에서 거치게 되는 고전적 단계이다. 그의 경험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는 신비주의 문헌에서 자정의 태양(The Midnight Sun) 이라고 부르는 것을 경험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루키우스는 경외감에 젖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난 죽음의 바로 앞까지 가서 페르세포네의 문지방에 한발을 내디뎠습니다. 아직 돌아올 수는 있었으나 모든 요소(물, 불, 바람, 흙)에 정신을 빼앗겼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나는 대낮처럼 환히 빛나는 태양을 보았습니다. 난 지하세계의 신들과 하늘나라의 신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향해 참배했습니다.’ 영적 세계로의 이러한 여행은 입문의 가장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루키우스는 그때 다른 놀라운 신비와 계시를 보았으나 그것들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한다.” - 마크 헤드슬, [젤라토르]上

목차소개

로마시대에 쓰여진 작품으로 2000년 동안 전세계 문학인을 매료시킨 최고의 소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보다 더 생생하고 관능적인 신화의 세계가 펼쳐진다 『황금당나귀』는 세계 최고(最古)의 소설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이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작품은 가치를 높여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작품을 재미있게 읽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최고(最古)의 소설에 대한 호기심보다 고루하고 어려울 것이며, 대단한 의미를 찾아야 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다보면 그런 마음이 그저 편견이었으며 괜한 부담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실질적인 모태가 되었으며, 재미있는 신화적 에피소드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사랑을 이야기 할 때면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쿠피도와 프쉬케의 사랑이야기 또한 이 작품에 등장한다. 이밖에도 기본 줄거리 안에 포함되어 있는 10개의 액자소설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담긴 에피소드들은 품위 있는 것에서 익살스러운 것, 방탕한 것, 소름 끼치는 것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망라하고 있다. 이는 당대의 숨겨져 있던 진실과 삶을 낱낱이 보여준다. 재미있고 때로는 음란하기조차 한 에피소드들을 거침없는 소설적 문체로 표현하여 수세기에 걸쳐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아왔다. 프랑스의 작가 플로베르는 "나는 이 작품이 너무나 눈부셔 현기증을 느낀다. 이 작품은 고대 그리스와 기독교적인 것들을 한데 아우르고 있으며, 이 속에 담긴 장면과 사건들은 현대적 감각으로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여기에 감미로운 향기와 오줌 냄새가 뒤섞여 있으며, 동물의 본성이 신비성과 하나가 되어 있다"라고 이 작품을 평가하고 있다. 고전문학의 신화(전설)가 된 액자소설의 전형 황금당나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이다. 그리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소설은 바로 『황금당나귀』이다. 이 작품은 현대소설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이 들어 있는 액자소설의 형태가 사용된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액자소설의 전형을 만들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10개의 액자소설에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부터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그리고 대중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쿠피도와 프쉬케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쿠피도와 프쉬케의 불멸의 사랑 『황금당나귀』에는 「쿠피도와 프쉬케」라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최초로 삽입된 작품이다. 프쉬케는 유한한 목숨을 가진 인간에서 쿠피도와의 사랑으로 인해 불멸의 신으로 승화한다. 이 이야기는 ‘애욕’이란 진정한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사랑에는 영혼이 존재해야만 불멸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 이는 플라톤 철학의 뉘앙스를 풍긴다. 에로스는 그리스어의 ‘에란(εραω)’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말은 나를 위해 남을 필요로 하는 사랑을 뜻하는 것으로, 일방적인 사랑이라는 느낌을 준다. 일방적인 사랑만이 존재했던 그리스 시대에 쿠피도와 프쉬케의 서로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행복한 결실을 맺는 사랑은 예외적이다. 일방적인 사랑을 의미하던 이 에로스는 현대에 이르면서 정신과 육체가 함께 있고 두 사람 상호간의 사랑을 존중하는 세계로 변한다. 줄거리 루키우스는 마법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을 갖다가 결국 마법 때문에 당나귀로 변한다. 인간의 지성은 그대로인 채 당나귀의 모습을 하게 된 루키우스는 몇 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온갖 고통과 수모를 겪게 된다. 그러나 한 가지 위안을 삼는 것은 인간의 모습이었다면 알 수 없었을 일들을 보고 듣고 겪음으로써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루키우스는 그저 당나귀일 뿐이다. 때문에 그가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도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게다가 당나귀의 큰 귀로 인해 먼 곳에서 나는 말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루키우스는 인간세계의 숨겨진 한 단면을 볼 수 있게 된다. 『황금당나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아풀레이우스의 『황금당나귀』는 영적 성장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한 젊은이가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내면 적인 성장과 나름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 혹은 교양소설이라 불리는 장르는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같은 근대소설에 와서 확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맥락에서 『황금당나귀』를 근대적인 의미의 성장소설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굳이 그런 분류를 따르지 않는다면 분명히 『황금당나귀』는 성장소설에 속한다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2세기 초 로마에 살았던 한 사제가 서사시도 아니고 근대소설도 아닌 특이한 이야기구조를 통해 놀라운 메시지를 남겼다는 사실이다. 루키우스라 불리는 주인공이자 화자는 귀족출신의 젊은이로 여행길에 나섰다가 갖가지 기이하고도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되며 나중에는 이집트의 이시스와 오시리스비의에 입문하게 된다. 결국 그는 그 체험들을 통해 영적으로 눈 이 뜨인 성숙한 인격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루키우스는 여행길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을 통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듣게 되는데, 그 이야기들이 또 하나하나의 훌륭한 소설들이 되어, 『황금당나귀』는 이야기 속에 또 이야기가 들어있는 중층적인 액자구조를 하고 있어 그 형식상으로도 매우 신선함을 준다.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인 소설 속의 소설은 단연 ‘쿠피도와 프시케’의 이야기일 것이다. ‘쿠피도와 프시케’ 이야기는 당나귀로 변신한 주인공 루키우스가 겪게 되는 시련을 통한 영혼의 정화과정과 맞물리게 되면서 이 작품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잘 전해주고 있다. 우선 루키우스는 엿보아서는 안 되는 마법의 신비를 호기심에 못 이겨(남편을 보지 말라는 약속을 어긴 프시케처럼) 들여다본 죄로 당나귀로 변하는 벌을 받는다. 그전에 그는 유숙하고 있던 하숙집 하녀와 방종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는 어떤 계기로든지 필히 영혼의 정화 내지는 성숙의 길을 걸어야 하는 운명에 있었던 것이다. 동물의 몸으로 변신했을망정 인간으로서의 의식과 마음은 그대로 가지고 있는 루키우스의 운명이야말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갖고 있는 역설적인 면(영혼이 육체라는 옷을 입게 되는 충격적인 상황)에 대한 강력한 알레고리인 것으로 보인다. 하여튼 루키우스는 당나귀로 변신하고 나서 겪게 되는 비참하고도 기괴한 상황 속에서도 주의 깊은 관찰력과 경청 능력을 잃지 않음으로써, 평범한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교훈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귀가 되었던 루키우스는 어두운 형체를 벗어버린 후에 이시스 신비의 세 등급 모두에 입문했다. 그는 입문을 이야기하면서, 그가 신전 내에서 죽음의 경계에 다가갔다고 말한다. 이 ‘제 2의 죽음’은 입문과정에서 거치게 되는 고전적 단계이다. 그의 경험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는 신비주의 문헌에서 자정의 태양(The Midnight Sun) 이라고 부르는 것을 경험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루키우스는 경외감에 젖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난 죽음의 바로 앞까지 가서 페르세포네의 문지방에 한발을 내디뎠습니다. 아직 돌아올 수는 있었으나 모든 요소(물, 불, 바람, 흙)에 정신을 빼앗겼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나는 대낮처럼 환히 빛나는 태양을 보았습니다. 난 지하세계의 신들과 하늘나라의 신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향해 참배했습니다.’ 영적 세계로의 이러한 여행은 입문의 가장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루키우스는 그때 다른 놀라운 신비와 계시를 보았으나 그것들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한다.” - 마크 헤드슬, [젤라토르]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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