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 김만중(김만중 1637∼1692)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소설가로 예학의 대가 김장생의 손자이고 숙종의 장인인 광성부원군의 아우로서 인경왕후의 숙부이다. 서포의 어머니는 흔히 맹자 어머니와 비유되곤 하는데 김만중은 병자호란 때 순절한 김익겸의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의 남다를 가정교육에 힘입어 성장했다. 그의 어머니는 생활이 어려워지자 베 짜고 수놓아 생계를 이어갔으나 학업에 방해가 될까 봐 어린 자식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그는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 수찬 등을 역임하고 암행어사로 활동한다. 그러나 임금 앞에서 직언도 불사하는 강직성으로 관직을 삭탈당하고 김金 씨 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벌을 받기도 했다. 이후 예조참의로 복귀하여 대사헌을 거쳐 대제학에까지 오르는 등 황금기를 맞았으나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비시키고 장희빈을 세우려 하자 이를 반대하다 남해에 유배당한다. 유배지에서 숙종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쓴 것이 사씨남정기 다. 그의 사상과 문학은 주희의 논리를 비판하거나 불교적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한 점 등에서 사상의 진보성을 찾아볼 수 있다. 김시습의 금오신화 이후 허균의 뒤를 이어 소설문학의 거장으로 나타난 그는 우리 문학사에 획기적인 전기를 가져왔다. 소설을 천시했던 조선시대에 소설의 가치를 인식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문학은 마땅히 한글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여 이후 국문소설의 황금시대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특히 모친을 위로하기 위해 순수한 우리말로 유배지에서 쓴 구운몽 같은 국문소설의 창작은 조선후기 실학파문학의 중요한 이정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