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은 1850년 1월 17일 러시아 타간로크에서 태어났다. 체호프의 문학적인 명성은 주로 그의 단편 소설에 의한 것이었으며 주로 20대 초반에 집필된 초기 희곡들은 잘 기억되지 않는다. 드라마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1896년이 되어서였으며 그가 죽기 8년 전에 그는 4편의 희곡을 완성했는데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 자매 벚꽃동산 이다. 갈매기 초연은 무대 밖에서 거의 비웃음을 샀는데 그것은 무디고 상상력이 부족하며 일종의 극적 긴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오늘날까지 러시아에서 살아남은 비판적인 암류). 체호프의 새로운 형태의 드라마는 플롯 전개 및 사건 대신에 점점 성격 묘사 세부사항 및 상징주의를 강조하게 되었고 수용된다. 체호프는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사내 극작가가 되었는데 이 극장은 그의 친구인 블라디미르 다브첸코가 설립한 것이었다. 이 시기 중에 작가는 극장의 주요 여배우 중에 한 명인 올가와 사랑에 빠져서 1901년에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 체호프는 1898년 폐결핵 진단을 받고 마지막 2편의 희곡을 집필했다. 벚꽃동산은 1901년 초반부에서 1903년 후반부까지의 기간에 걸쳐 집필되었는데 이 시기는 의사가 강요하여 작가가 병들어가는 폐를 살리려고 아내와 친구와 떨어져 얄타의 섬에서 요양한 기간이었다. 체호프는 그의 44세 생일인 1904년 1월 17일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벚꽃동산 의 초연 경축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날 밤은 또한 그의 문학 25주기를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병이 들고 죽어가는 체호프의 모습은 이제 그는 말기에 있었으며 축하받을 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는 남은 생의 몇 개월을 모스크바에서 보냈으며 결국 벚꽃동산 의 마지막 출간 며칠 후인 같은 해 7월 1일에 폐결핵으로 숨을 거두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