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기>
창망(蒼茫)한 동해(東海) 가운데 물에 잠길 듯 위태로이
떠 있는 섬이 하나 있다.
꽈르르릉―!
억겁(億劫)을 통해 거센 소용돌이로 외계와 격리된 절해
고도(絶海孤島), 안계를 가리는 짙은 해무로 인해 숙련된
사공이라 할지라도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하늘마저 가리
운 안개를 뚫고 들어가면 그 섬을 볼 수 있다. 귀역(鬼域),
초목이 없는 바위산, 금수도 살지 못할 황폐한 땅만이 전부
이다.
한데 그 황폐한 땅 위, 대경이(大驚異)의 인공물(人工物)
이 하나 서 있지 않은가!
거대한 궁전.
강철의 동장철벽(銅牆鐵壁)이 절해고도에 우뚝 서 있다.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아름드리 기둥, 천여 명이 동시에 선
다 해도 좁아 보지지 않는 거대한 지붕, 그 아래 선다면 누
구라도 왜소함을 느낄 것이다.
멀리서 본다면 거대한 코끼리 한 마리가 서 있는 듯, 아
니 섬 자체가 건물로 이루어진 듯하다. 백팔 개의 철주로
떠받들어진 궁전의 입구 또한 거대한 철문으로 이루어져 있
다. 언제나 꽉 닫혀 있는 녹슨 철문, 그 위에는 역시 붉은
녹이 슨 강철편액(强鐵扁額)이 을씨년스럽게 걸려 있다. 성
상(星霜)의 유수함을 말해주는 녹과 이끼로 뒤덮인 편액.
거기 다섯 자의 글씨가 묻혀 있었다.
< 태양이화궁(太陽離火宮) >
아무도 봐주지 않는 현판, 들이치는 해풍에 부대껴 부식
을 거듭했으리라. 기이하게도 문은 밖에서 잠겨 있다. 거대
한 강철의 빗장은 걸린 이후 단 한 번도 벗겨지지 않은 듯
푸른빛의 녹으로 뒤덮여 있다.
문 바로 아래에는 인골(人骨) 한 무더기가 있었다. 흐트
러진 염주(念珠) 알, 썩은 가사(袈裟), 녹슨 계도(戒刀)와
선장(禪杖), 방편산……. 문 밖에서 죽은 사람 모두가 승려
(僧侶)인 것이 이상했다.
문 위, 금강지(金剛指)로 쓴 글이 남아 있었다.
< 살계(殺戒)를 금할 수 없어 군마(群魔)의 괴수(怪首)
열 명을 영원히 가두려 한다. >
첫머리가 매우 을씨년스러웠다. 그 아래로 희미하게 드러
난 글 씨가 또 있다.
< 십대천마(十大天魔)는 만고(萬古)에 드문 아수라(阿修
羅)의 무리!
여기 제석천(帝釋天)의 힘을 빈 팔대기승(八大奇僧)이 있
어 십대천마를 생포했도다.
천하가 피로 씻긴 지 십여 성상(星霜)이 아니었던가.
대자대비한 세존(世尊)은 결국 정도(正道)를 밝히었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