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기>
제 1 장 나를 버린 나
1
검(劍).
그것은 새파란 광채가 일렁이는 짧은 단검(短劍)이었다.
여인(女人).
일신에는 마치 눈처럼 희디흰 백의(白衣)를 걸친 아름다운 용모의 소부인(少婦人)이었다.
백의소부인의 용모는 진정 아름다웠다. 정갈하게 쪽진 머리와 가을 하늘처럼 맑고 신선한 광채로 조용히 일렁이는 두 눈, 두 뺨은 하늘 한 구석을 소리없이 적시는 노을처럼 붉디 붉고, 주사빛 붉은 입술은 탐나도록 농염(濃艶)하니 천향(天香)의 미색(美色)이라고나 할까?
보석(寶石)이 그 희귀성으로 가치가 있듯, 이러한 여인은 천만 인이 섞여 사는 인세(人世)에서도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미인(美
人)이 아니다.
여인(女人)은 지금 흰 백포(白布)로 검을 닦고 있었다.
여인의 옆에는 이제 겨우 다섯 살 쯤 되어 보이는 소동(少童)과 기이한 형태의 화초(花草)가 심어져 있는 화분(花盆)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화분의 화초는 인간과 심령(心靈)이 통한다는 영초(靈草)인 심령초(心靈草)였다. 하나 이미 심령초는 그 푸르름을 잃고 시들어 있었다.
한 자루 단검과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소부인, 그리고 시들어 버린 영초와 천진난만한 소동.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이 하나의 방 안에 함께 자리해 있었다.
방 안은 조용했다. 이따금 검을 닦는 손길을 멈추고 하늘을 우러르는 여인의 작은 동작만이 침묵을 깰 뿐이다.
그러는 그녀의 두 눈은 담뿍 애수(哀愁)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한 노인(老人)이 방문 앞에 부복한 채 석고상마냥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숨소리조차 미약해 어찌보면 노인이 방문 앞에 있다는 그 존재조차 망각할 정도였다.
(……)
여인은 말이 없다. 소동도, 노인 또한 침묵을 고수했다.
질식할 듯한 정적 속에 시간은 물 흐르듯 흘렀다.
이윽고, 서편 하늘 한 구석이 빨갛게 젖어 오르는가 싶더니 밤의 여운(餘韻)을 타고 둥실 달이 떠오른다.
은빛 월광(月光)이 대지를 어루만지자 비로소 여인은 나직한 탄식을 터뜨렸다.
"그래…… 인간이란 어차피 혼자인 것을 ……"
밑도 끝도 없는 중얼거림이었으나 그 한 마디 속에는 이 여인이 지니고 있는 온갖 회한(悔恨)과 아픔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래서인지 여인의 추수같은 두 눈엔 어느덧 뿌연 물안개가 내려앉고 있었다.
"린아(麟兒)……"
"네, 어머니."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명심하여 듣겠습니다, 어머니."
소동의 목소리는 장내의 무거운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티없이 맑고 또랑또랑했다. 뿐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