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 종루(鐘樓)와 보신각종은 어떠한 역사적 발단이 있었나?
이 책은 《조선의 궁술(弓術)》의 저자인 국어학자 이중화의 단편 기고문으로 1934년 창간 이래 ‘진단학보(震檀學報)’ 6호 <종루와 보신각종>을 해제한 것이다.
종루(鐘樓)는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화재 등 뜻밖의 온갖 수난을 겪은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문화재로 현재 보신각 건물은 1979년 지었으며 동서 5칸의 2층 누각으로 만들어졌다.
보물 제2호인 보신각종은 이 글 본문에서『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유사(攸司)에게 큰 종을 주조하여 도시 한가운데 종각을 만들고 종을 달았다고 한 것처럼 처음에 각(閣)을 건조했던 것을 세종 때(1450)에 층루(層樓)(누각)로 구조를 다시 구축해 그 위에 종을 달게 됨에 따라 누(樓)는 드디어 ‘종루(鐘樓)’라고 부르게 되었다.
따라서 동국여지승람 한성부 궁실조(宮室條)에 ‘鐘樓在雲從街我太祖四年建閣 世宗朝改構爲層樓 東西五間 南北四間 懸鐘鼓以警晨昏’ ‘운종가 종루는 태조 4년에 만들어졌으며 동서 5칸, 남북 4칸에 새벽과 황혼의 주의를 알리는 종을 매달음’이라고 하였다.
현재 옛 보신각 동종(舊普信閣 銅鍾)은 보물 제2호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하고 있으며, 보신각 터(普信閣 터)는 보통 ‘종각’으로 호칭하는데 시도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