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감상, 첫 단추를 뀁니다
뭐든 시작이 어렵습니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처음의 그 한 걸음이 왜 그리 떨어지지 않는지.
종종 지인들에게 이런 얘기를 듣곤 합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가서 보면 참 좋은데, 뭐가 뭔지 모르겠으니 좀 알고 보면 좋겠다고요. 가서 그냥 그림만 보고 좋다고 할 때면, 좋아하면 됐지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고 호기롭게 굴다가도 문득문득 그림 곳곳에 숨은 이야기가 듣고 싶어집니다. 좋다면 뭐가 좋은지, 나쁘다면 뭐가 나쁜 건지 알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지나가던 관람객이 말하는 소소한 지식이라도 들으면 눈이 번쩍 뜨이곤 하지요.
이종수 선생은 바로 그런 작은 지식부터 시작해 동양화를 알아 가 보자고 말합니다. 이미 상냥하고 세심한 글로 이미 많은 독자에게 옛 그림 이야기를 건네 왔던 저자는 이번에는 아주 처음, 옛 그림을 처음 보던 초심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동양화를 낯설어하는 사람에게 눈높이를 맞춰 조곤조곤 그림 보는 법을 설명합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듯이 한 폭의 그림에서 한 걸음씩 제대로 나아가 보자는 제안입니다. 화가는 독자 여러분이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이름인 겸재 정선이고, 작품은 그가 그린 그림 「만폭동」입니다.
겸재 정선이 금강산의 만폭동을 그린 이 그림은 진경산수화를 완성한 작품으로 이름이 높지만, 동양화를 잘 모르는 이에게는 그저 검은 부분은 먹이요, 하얀 부분은 종이일 뿐입니다. 이 그림 어디에 큰 가치가 있는지, 어디부터 보아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는지 알기란 쉽지 않죠. 그래서 저자는 저자의 발걸음과 눈길을 멈추게 한 이 그림 「만폭동」을 같이 보자고 권하며, 우선 가장 간단한 작품 설명인 명제표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명제표에 적힌 화가 이름, 그림 제목, 제작 시기, 바탕 재료와 도구, 크기 그리고 형태까지 쉽고 간단해 보이는 항목에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뽑아냅니다.
저자의 차근하고 쉬운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조선의 산수화와 동양화의 상식이 내 것이 됩니다. 이제 미술관에 가서 눈을 끄는 산수화가 있으면 잠시 그 앞에 서서 고개를 쭉 빼고 유심히 들여다볼 것 같은 기분도 들고요. 저자는 이 작은 발걸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걸음을 뗀 독자에게 다음 그림 여행지로 삼을 만한 그림 열 점도 꼽아 줍니다. 이 그림들은 모두 조선을 대표하는 훌륭한 그림인바, 책을 읽은 독자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갔을 때 옛 그림을 주마간산 격이 아니라 찬찬히 제대로 맛보고 싶은 분께 권합니다. 저자의 말처럼 두어 시간짜리 수업이라 생각하고 읽고 나면, 동양화가 문득 성큼 눈앞에 다가와 있음을 깨닫게 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