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문득 떠오르는 이가 있다.
― 안녕하세요? 저…… 이다경이라고 합니다.
조용하면서도 묘하게 경계심이 느껴지는 말투가 어쩐지 진희와 닮았다.
‘잘 지내고 있나?’
여름방학이 끝남과 동시에 사라져 버렸던 친구, 이진희.
“너 그때 진희 좋아했지?
진희 아플 때마다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이 정민이 너였잖아.”
잠들어 있던 진희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여자를 만난 가을,
단풍은 더 붉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일을 맡기고 싶다는 문자 속에 큼지막하게 보이는 이름, 하정민.
순간 심장이 크게 두근거렸다.
“이다경 역자님이시죠? 하정민입니다.”
단정한 외모의 그가 머쓱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릴 때마다
문득 기억 속 앳된 얼굴이 스치며 지나갔다.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역자님을 만나면서 특별한 사람이 떠올랐어요.”
지루한 자신의 침묵을 묵묵히 견뎌 주고
호의를 베풀며 조금씩 다가오는 그에게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눈 감으면, 살랑
그날의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