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아내를 찾지 못하겠다면
만들어내면 되는 것 아닌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여성을 개조하려 했던 영국 작가
여성 혐오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실화
이 책은 신붓감을 고르고 고르다가 마땅치 않자 소녀 둘을 입양해 자기 취향에 맞게 키운 한 남자를 치밀하게 추적해가는 논픽션이다. 때는 계몽주의가 싹튼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당시 남자가 소녀들을 입양했던 고아원은 지금도 건재하며, 2013년 이 책을 펴낸 작가는 고아원의 서류들을 뒤쫓는 데서 집필 작업을 시작했다.
이 책 저변에 흐르는 감정은 "여성 혐오"다. 남성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외모를 가꿀 줄만 알지 검소함의 미덕은 알지 못한다는 게 주인공 남자가 여성에 대해 가진 생각이었다. 당시는 자유와 인권에 대한 진보적 사고방식이 출현하던 시기이고, 주인공 역시 사회 사상적 측면에서는 진보적 행보를 보이지만, 여성관만큼은 18세기 시대 규범에 비춰봐도 어이없을 정도로 낡았었다.
당시 사회를 뒤흔들 만큼 시대착오적·반인륜적 행각을 벌인 인물은 바로 토머스 데이(1748~1789)다. 그는 대단한 재산을 상속받은 영국 상류층 출신이지만, 자신이 속한 계층의 속물(?)들과 달리 법학을 전공하지 않고 철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차림새는 수수함의 극치를 보이다 못해 머리 빗질도 잘 하지 않았다. 돈은 많았지만 작은 오두막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재산은 빈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는 당대 루소와도 교류했고 노예해방에도 기여했으며 저명한 문학작품을 남기기도 했지만, 여성에 대한 그의 관념은 위험으로 치달았다.
토머스 데이에게 입양돼 그의 사고관에 맞춰 길러지는 여성 중 한 명은 사브리나다. 이 책은 데이의 삶을 뒤쫓는 한편, 사브리나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담아낸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장자크 루소, 이래즈머스 다윈, 애나 수어드 등 당시 사회 사상과 과학, 문학 등을 주도한 이들이 이너서클 멤버들로 등장한다. 따라서 이 책은 여성 혐오의 연대기를 추적하는 역사서이면서 동시에 계몽주의의 시행착오, 뼈저린 실패담을 밝힘으로써 진보 사상의 낭비를 들춰내며, 관념적 사상이 현실을 얼마나 왜곡시키고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되돌아보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