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1398년 7월 이방원 주도의 1차 왕자의 난으로 이어졌다. 이방원은 최대 정적 정도전과 이복동생 방석을 처형시켰다. 사랑하는 막내아들과 최고의 심복 정도전을 잃은 태조의 마음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반면 이방원은 한순간에 권력을 쥐었다. 결국 태조는 아들과 인연을 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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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회가 성리학을 이념화해야 한다고 믿었던 이다. 이런 인수대비에게 왕인 남편의 행동을 투기하고 손찌검까지 하는 며느리는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고부 갈등’은 왕비의 폐출과 사사라는 극단적인 선례를 남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