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제3편. ‘3조선’ 분립시대
제1장. ‘3조선’ 총론 15
1. ‘3조선’은 ‘신조선’, ‘불조선’, ‘말조선’이다
2. ‘한자’와 ‘이두문’에 의한 혼동으로써 ‘3조선’은 잘못 알려졌다
제2장. ‘3조선’의 위치와 범위 17
1. ‘한(韓)’은 왕이란 뜻이다
2. 전쟁의 세상에 고정된 국경은 없는 법이다
제3장. 기록상 ‘3조선’을 구별할 조건 19
1. ‘3조선’은 역사적으로 재조명되어야 한다
2. ‘중국’의 ‘역사서’들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다
3. 각종 사료를 종합하여 ‘3조선’의 역사를 구성하다
제4장. ‘3조선’ 분립의 시초 23
1. 기원전 4세기경에 ‘3조선’이 분립했다
2. ‘3조선’의 후손들
3. ‘3조선’이 분립한 뒤에는 ‘신한’이 셋이 되었다
제5장. ‘3조선’ 분립 후의 ‘신조선’ 27
1. ‘신조선’의 왕 ‘모갑’이 ‘불리지’의 옛 땅을 회복하다
2. ‘연’나라의 장군 ‘진개’가 ‘조선’을 침략하다
3. ‘진개’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신뢰할 수 없다
4. ‘연’나라의 장성과 ‘진’나라의 장성
5. ‘장량’이 ‘조선’에 구원을 청하다
6. ‘조선’과 ‘진시황’과 ‘만리장성’
7. ‘조선’과 ‘흉노’
8. ‘흉노’가 ‘조선’을 침략하다
제6장. ‘3조선’ 분립 후의 ‘불조선’ 33
1. ‘불조선’과 ‘신조선’이 잃어버린 영토
2. ‘진’과 ‘조선’의 경계는 ‘패수(헌우란)’다
3. ‘대단군’의 ‘왕검성’은 세 곳이었다
제7장. ‘3조선’ 분립 뒤의 ‘말조선’ 37
1. ‘말조선’의 국호를 ‘말한’으로 고치다
2. ‘마한’은 ‘백제’가 아니다
3. ‘신라’의 ‘마립간’은 ‘말한’을 왕의 호칭으로 사용한 것이다
4. ‘북삼한’과 ‘남삼한’을 분별되어야 한다
5. ‘낙랑 25국’은 ‘낙랑군 25현’이 아니다
6. ‘삼한’의 여러 나라들
제8장. ‘3조선’ 붕괴의 원인과 결과 45
1. ‘3조선’이 한꺼번에 무너져버린 까닭
2. ‘3조선’의 파탄 이후 ‘쟁웅(爭雄)’ 시대가 되다
제4편. 열국(列國)의 쟁웅(爭雄) 시대
제1장. 열국의 연대 49
1. ‘고구려’의 연대
2. ‘신라’가 ‘고구려’의 연대를 축소했다
3. 연대뿐만 아니라 국경도 축소했다
4. 연대만이 아니라 국경도 축소했다
5. ‘부여’의 국경
6. ‘한’나라 ‘4군’의 국경
7. ‘낙랑국’의 국경
제2장. 열국의 분립 55
1. ‘해부루’가 ‘동부여’를 세우다
2. ‘해모수’가 ‘북부여’를 세우다
3. ‘옥저’는 ‘동부여’의 다른 이름이다
4. ‘북부여’의 역사
5. ‘해모수’의 아들 ‘추모(주몽)’가 ‘고구려’를 건국하다
6. ‘추모’가 태어난 사연
7. ‘주몽’이 아니라 ‘추모’라고 읽어야 한다
8. ‘추모’가 ‘졸본부여’로 가서 ‘소서노’와 결혼하고 ‘고구려’를 세 우다
9. ‘동부여’를 두려워 한 ‘추모왕’의 아들 ‘유류왕’
10. ‘동부여’의 침략을 물리친 왕자 ‘주류’
11. ‘동부여’를 무력으로 평정한 ‘대주류왕(주류)’
12. ‘대주류왕’이 ‘낙랑국’을 멸망시키다
13. ‘소서노’가 ‘백제’를 건국하다
14. ‘소서노’가 죽은 후 ‘백제’가 ‘동’과 ‘서’로 나뉘다
15. ‘비류’가 죽자 두 ‘백제’는 다시 하나가 되었다
16. ‘백제’의 ‘온조’가 ‘마한’을 점령하다
제3장. ‘한무제(漢武帝)’의 침략 75
1. 야심만만한 ‘한무제’
2. ‘한무제’가 침략한 ‘조선’은 둘이다
3. ‘한무제’가 침략한 ‘조선’은 ‘동부여’다
4. ‘동부여’는 ‘강릉’이 아니다
5. 9년의 혈전 이후 ‘한무제’가 패배하다
6. ‘한무제’의 패배를 ‘사기’에 기록하지 않은 ‘사마천’
7. ‘한무제’가 뇌물로써 다시 ‘조선’을 침략하여 ‘한4군’을 설치하 다
8. ‘한무제’가 재물로써 매수하여 ‘위만조선’을 멸망시켰다
9. ‘한4군’의 위치는 지금의 ‘요동반도’에서 찾아야 한다
10. 지명의 같고 다름을 구별하지 못 하는 탓에, ‘한4군’의 위치 에 대해 온갖 주장이 분분하다
11. 역사적 기록의 진위를 분별하지 못 하는 탓에, ‘한4군’의 위 치에 대해 온갖 주장이 분분하다
제4장. ‘계립령(鷄立嶺)’ 이남의 두 새 나라 91
1. ‘계립령’ 이남은 지금의 ‘경상남북도’의 총칭이다
2. ‘김수로’의 6형제가 여섯 ‘가라’를 건국하다
3. ‘신라’가 건국되다
4. ‘박혁거세’와 ‘석탈해’와 ‘김알지’
5. 마땅한 ‘고대사’의 원본이 없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6. ‘고구려사’나 ‘백제사’처럼 ‘신라사’도 완벽하지 못 하다
7. ‘사량부’의 ‘박혁거세’가 여섯 곳의 자치부를 통일하여 ‘신라’를 건국했다
제5편. ‘고구려’ 전성시대
제1장. 1세기 초 ‘고구려’의 국력발전과 그 원인 103
1. 1세기 이후 ‘고구려’와 ‘북부여’ 이외의 열국들은 쇠미해졌다
2. ‘중국’의 ‘정전제’는 ‘고구려’의 ‘균전제’를 모방한 것이다
3. ‘균전제’와 ‘정전제’의 차이
4. ‘왕망’이 ‘신’나라를 세우다
5. ‘왕망’에게 ‘흉노’가 대항하다
6. ‘고구려현’과 ‘왕망’의 패망
7. 사대주의자 ‘김부식’에 대하여
8. ‘왕망’이 패망한 까닭
9. ‘고구려’와 ‘한’나라 사이에 위치한 ‘선비족’
10. ‘선비족’의 상황
제2장. ‘태조왕(太祖王)’과 ‘차대왕(次大王)’의 ‘문화적 정치[文治]’ 115
1. ‘태조왕’의 계보
2. ‘차대왕’의 계보
3. ‘고구려’의 ‘선인’ 제도
4. ‘고구려’의 관료제도
5. ‘중국’의 ‘고대서’에는 ‘고구려’의 관직에 대하여 잘못 번역한 것들이 있다
제3장. ‘태조왕’과 ‘차대왕’이 ‘한족’을 몰아내고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다 123
1. ‘한’나라가 부강하여 주변국들을 침략하다
2.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한’나라가 패하다
3. ‘고구려’가 ‘요동’ 땅을 회복하고서 ‘환도성’을 쌓다
제4장. ‘차대왕’이 왕위를 차지하다 127
1. 서자 ‘수성(차대왕)’이 왕위를 물려받지 못 해 불만을 갖다
2. ‘태조왕’이 ‘수성’에게 왕위를 물려주다
3. ‘삼국사기’의 역사 기술에 대한 비판
제5장. ‘차대왕’이 피살되고 ‘명림답부’가 전권을 휘두르다 133
1. ‘차대왕’이 ‘선인’ ‘명림답부’에게 살해당하다
2. ‘차대왕’이 피살된 까닭
3. ‘명림답부’와 ‘차대왕’에 관한 사실(史實)을 각 역사서들이 다 르게 기술하고 있다
제6장. ‘고국천왕’과 ‘을파소’ 141
1. ‘고국천왕’이 ‘을파소’를 등용하다
2. ‘을파소’가 어진 정치를 하다
3. ‘고국천왕’에 관한 ‘삼국사기’의 두 가지 오류
제6편. ‘고구려’의 쇠퇴와 ‘북부여’의 멸망
제1장. ‘고구려’가 ‘중국’에게 패배하다 147
1. ‘고국천왕’이 죽고 둘째 아우 ‘연우’가 즉위하다
2. ‘한’나라의 ‘공손도’에게 ‘요동’을 빼앗기다
3. ‘고구려’와 ‘중국’의 ‘위촉오’ ‘3국’ 시대
4. ‘삼국사기’가 ‘중국’의 역사서를 베끼면서 내용을 변조하는 까 닭
5. ‘유주자사’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략하다
6. ‘중국’의 ‘상내약외(詳內略外)’의 역사 서술 방식
7. ‘고구려’ ‘동천왕’의 ‘평양 천도’
제2장. ‘고구려’와 ‘선비족’의 전쟁 157
1. ‘가비능’이 암살된 후 ‘선비’가 쇠약해지다
2. ‘선비’의 ‘모용외’가 ‘창려’에서 웅거하다
3. ‘북부여’의 전성시대를 이끈 ‘위구태왕’
4. ‘선비’의 ‘모용외’가 침략하자 ‘북부여’의 ‘의려왕’이 자결했다
5. ‘예’의 반란을 진압한 ‘안국군’이 사형당하다
6. ‘모용외’의 침략을 ‘고노자’가 막아내다
7. 교만한 ‘봉상왕’을 ‘신가’ ‘창조리’ 등이 탄핵하다
8. ‘봉상왕’이 탄핵되고 ‘미천왕’ ‘을불’이 왕위에 오르다
9. ‘미천왕’에 관한 역사
10. ‘미천왕’이 죽고 ‘고국원왕’이 왕위를 잇다
11. ‘선비’ ‘모용황’이 ‘고구려’를 침략하다
12. ‘고구려’가 가장 쇠퇴해진 시기를 맞다
제7편.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의 충돌
제1장. ‘고구려’와 ‘백제’의 유래 173
1. ‘고구려’의 ‘고추모’와 ‘백제’의 ‘소서노’
2. ‘고구려’가 쇠퇴하자 각 나라들이 독립을 시도했다
3. ‘백제’가 강성해지기 시작하다
4. ‘고구려’의 남진(南進) 정책에 따라 ‘백제’와 충돌하게 되다
제2장. ‘백제’의 융성과 ‘고구려’의 쇠퇴 177
1.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침략하자 ‘백제’의 ‘근구수왕’이 나아가 싸웠다
2. ‘백제’의 ‘근구수왕’이 승리하여 ‘대동강’까지 영토를 확장하다
3. ‘백제’에게 패배하여 ‘고구려’가 ‘국내성’으로 환도(還都)하다
4. ‘근초고왕’이 ‘고구려’의 ‘평양’을 빼앗다
5. ‘백제’가 ‘중국’ 대륙 동부에서 넓은 땅을 차지하다
6. ‘중국’ 역사가들이 ‘백제’ ‘근구수왕’의 ‘중국’ 점령 사실을 대부 분 삭제해버렸다
7. ‘일본사’는 거의 ‘근구수왕’의 ‘백제사’를 흉내 낸 것이다
제3장. ‘광개토대왕’의 북진정책과 ‘선비’ 정복 185
1. ‘근구수왕’ 이후 ‘백제’가 점차 쇠약해졌다
2.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옛 영토를 회복하기 시작하다
3. ‘삼국사기’의 연대가 불명확하므로 잘 분별하여야 한다
4. ‘광개토대왕’이 ‘중국’의 ‘감숙성’ 서부까지 원정하다
5. ‘백제’의 속국이던 ‘왜’가 ‘백제’를 침범하다
6. ‘고구려’와 ‘신라’가 한편이 되고, ‘백제’와 ‘왜’가 한편이 되다
7. ‘광개토왕’은 늘 북쪽의 영토 확장을 목적하였다
8. ‘진서’ 이외에 ‘광개토대왕’에 관한 기록이 없는 까닭
9. ‘광개토대왕’ 비문에 ‘선비’ 정벌에 대한 문구가 없는 까닭
제4장. ‘장수태왕’의 남진정책과 ‘백제’의 천도 193
1. ‘장수태왕’의 ‘북수남진주의’
2. ‘장수왕’이 여러 나라를 이용하여 ‘위’나라를 견제하다
3. ‘장수왕’은 전략가가 아니라 음모가였다
4.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점령하다
제8편. 남방 여러 나라와 ‘고구려’의 공수동맹
제1장. 네 나라의 연합군과 ‘고구려’의 퇴각 201
1. ‘백제’와 ‘신라’의 관계
2. ‘백제’와 ‘신라’가 동맹을 맺다
3. ‘신라’, ‘백제’, ‘임나’, ‘아라’가 동맹하여 ‘고구려’에 항거하다
4. 남방 네 나라의 동맹이 40년 동안 지속되다
제2장. ‘백제’의 ‘위’나라 격퇴와 해외 식민지 획득 207
1. ‘백제’의 ‘동성대왕’이 즉위하다
2. ‘위’나라가 ‘백제’를 침략하다
3. ‘백제’ ‘동성왕’이 해외 식민지의 터를 닦다
4. ‘동성왕’ 때의 해외 식민지를 ‘성왕’ 때에 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