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예술적 놀이
아무래도 사는 일은 죽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삶은 예술적이고 죽음은 미학적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이것은 일종의 선시禪詩다.
선시이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시 속 화자는 산을 산이라고 했다가 이내 산이 아니라고 했다가 다시 산이라고 한다.
언뜻 살피면 이러한 표현은 지극히 비논리적이다.
시 속 화자가 지칭하는 산이기도 하고 동시에 산이 아니기도 한 대상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산이었다가 산이 아니었다가 다시 산이 되는 대상 역시 그러하다. 그 대상이 물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시는 미학이나 예술철학의 정체성을 아주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우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는 과학의 단계다.
관찰과 실험으로써 검증된 실제의 현실만을 현실인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서는 오직 실제적인 현실만을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으로써 드러나는 세계는 지극히 현상적이며 표면적이다. 인간존재가 감각하는 현실세계는 대부분 이러한 단계에 있다.
다음으로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는 철학의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표면적인 현상 이면의 본질을 사유한다. 겉이나 바깥으로 드러나는 현상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심하고 부정하며 회의하고 비판함으로써 참된 진리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는 예술의 단계다.
이 단계에서 미학과 예술철학이 작동한다. 이는 긍정과 부정을 모두 넘어서서 긍정과 부정이 동시적으로 작동하는 가장 위대한 긍정의 단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첫 줄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와 마지막 줄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는 그 문자적 형태만 동일할 뿐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만약 첫 줄과 마지막 줄을 동일한 의미로 이해한다면 그는 아직 철학을 시작하지 않은(못 한) 것이다.
마지막 줄의 의미를 체험적으로 인식하게 된 상태에서는 이제 어떠한 삶의 상황 안에서라도 노닐 수 있게 된다.
바로 소요유逍遙遊의 상태에 접어든 것이다.
장자의 예술철학은 이러한 소요유의 상태를 지향한다. 따라서 장자의 예술철학은 곧 소요유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장자莊子(BC369~BC289)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2천 3백여 년 전 고대 중국에 살았던 철학자다.
그 시대는 일명 전국戰國시대다.
전국시대는 온 나라가 전쟁을 하는 시대라는 의미다. 그런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장자는 철학을 한 것이다.
장자의 고향은 송宋나라의 몽읍蒙邑이다.
몽읍은 현재의 하남성 상구현 부근이다. 그의 본명은 주周다. 그래서 장자를 장주莊周라고도 지칭한다.
장주는 잠시 옻나무 재배지인 칠원漆園의 관리자로서 일했다.
하지만 칠원에서의 칠원리漆園吏 생활 이후 평생 벼슬길에는 나서지 않았다.
장자의 저작으로 알려진 텍스트 장자는 원래 52편이었다.
그런데 많은 고대의 텍스트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그가 직접 저술했는지의 여부를 명확히 확인할 방법은 없다.
현존하는 33편은 진대晉代 곽상郭象의 편집본이다. 그래서 위진남북조시대의 곽상이 편집한 판본을 흔히 통행본으로 인식한다.
곽상이 편집한 장자 33편은 내편內篇 7편과 외편外篇 15편과 잡편雜篇 1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내편 7편은 장자가 직접 저술한 진작眞作으로서의 원형에 가까우며 외편 15편과 잡편 11편은 후대의 후학들에 의해 저술된 위작僞作이나 가작假作인 것으로 판단한다.
이 텍스트는 장자의 비극미학과 감성미학을 먼저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아가 장자라는 텍스트를 노닐듯이 살핌으로써 이를 통해 어떤 예술철학의 모습을 그려 보이고자 한다. 그것이 곧 장자의 철학이다.
장자의 미학은 사유思惟의 미학이며 장자의 예술철학 역시 사유의 예술철학이다.
이러한 사유들은 다양한 사유방식을 통해 예술적인 행위(체험)로써 표현된다. 그러한 실천적 표현은 예술가적인 인간존재의 삶 그 자체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생성해 낸다.
그것이 바로 가장 위대한 긍정을 지향하는 소요유로써 그려내는 삶 자체로서의 예술작품이다.
철학은 모두를 위한 학문이다.
그러나 철학함은 오직 지금 여기에서 철학하고 있는 자만을 위해 작동한다.
장자의 철학은 소요유逍遙遊라는 예술철학적인 정신성의 지평 위에서 작동한다.
소요유는 삶 그 자체를 오롯이 시인하고서 그것을 예술가적인 변화로써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실현해내는 일이다.
또한 소요유는 철학함으로써 예술함을 실현해내는 일이기도 하다. 이는 가장 철저한 인식으로서의 정신(마음)을 작동시키기 위해 철학함을 선택하는 일이다.
곧 이미 예술함을 선택했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역사 안에서 소요유의 예술정신은 현재에 이르도록 흔히 체념이나 초월의 정서로서 분별되곤 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두 편의 시를 통해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체념의 정서를 드러낸 조광조趙光祖의 ‘전라도 화순에서의 귀양살이’[綾城謫中]라는 시를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화살 맞은 새와 같은 나의 신세 누가 가여워 해줄까.[誰憐身似傷弓鳥]
말을 잃은 노인의 마음만 같아 저절로 웃음 짓네.[自笑心同失馬翁]
원숭이와 학은 내가 돌이키지 않는다고 성을 낸다네.[猿鶴定嗔吾不返]
이미 엎어진 독 안에서 벗어나기 어려움을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豈知難出覆盆中]
조광조는 중종반정中宗反正 이후 조선의 변혁을 선도한 개혁가이며 사상가이다.
하지만 그러한 혁명적 개혁을 수용할 수 없었던 기존의 집단권력이 모의한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의해 현재의 전라도 화순 땅인 능주綾州로 유배되어 한 달 만에 사약을 받고서 사형을 당한다.
이 시에는 그러한 입세간入世間의 상황 속에서 이미 삶을 체념하고서 자기의 내면으로 깊숙이 침잠한 채 죽음의 상황을 노래하고 있는 그의 심리상태가 잘 드러나 있다.
조광조는 실로 독실한 유학자다.
그런데 대부분의 유학자들이 집단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이후에는 노장철학의 정서에 귀의한다는 것은 동아시아문화권의 역사 안에서는 아주 익숙한 현상이다.
특히 ‘스스로·저절로 웃음 짓는 마음’[自笑心]이라는 표현에는 장자철학의 소요유逍遙遊에서 이르는 생시生視 개념이 잘 드러나 있다.
다음은 한산寒山의 ‘장자가 이야기하는 죽음’[莊子說送終]이라는 시다. 한산 역시 여기에서 장자의 입을 빌어 죽음의 상황에 대한 체념을 노래하고 있다.
장자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네.[莊子說送終]
그는 하늘과 땅을 관으로 삼겠다고 했다네.[天地爲棺椁]
나도 이제 돌아가야 할 때가 있을 것이네.[吾歸此有時]
결국 한 번은 갈대로 엮은 박 위에 눕게 될 것이네.[唯須一番箔]
무릇 죽음이란 어린 파리조차도 두려워하는 것이라네.[死將喂靑蠅]
그러니 조문할 때 하얀 학처럼 너무 조아리지는 말게.[吊不勞白鶴]
백이와 숙제처럼 수양산에서 굶어죽음으로써 자기를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네.[餓著首陽山]
그러나 삶을 살피고서 죽음 역시 살펴야만 편안할 수 있을 것이네.[生廉死亦樂]
한산은 당唐나라 때의 승려이자 시인이다. 그가 천태산天臺山의 한암寒岩이라는 바위굴속에 은둔하며 살았던 탓에 한산이라고 불린다.
그는 현실세계로부터 일탈한 채 고립과 은둔의 출세간出世間의 상황에 머물렀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에 드러나는 정서는 지극히 비판적이며 초월적이다.
불교가 처음 중국에 유입되던 시절부터 대체로 불교철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역사 안에서 지극히 초월적인 소요유의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이 시에서 역시 삶을 살피고서 죽음 역시 살펴야 한다는 대목에 장자철학의 소요유逍遙遊에서 이르는 상망相忘 개념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런데 장자의 철학에서 소요유의 예술정신은 인간존재의 살아냄이라는 삶의 과정 자체와 따로 떼어진 상태의 어떤 무엇이 아니다.
장자가 이르는 예술적인 상황은 예술가적인 인간존재의 삶의 현실 그 자체다.
따라서 위의 두 편의 시에 표현된 체념이나 초월의 정서보다는 천지자연 안에서 스스로·저절로 그러하는 초연超然이라는 정서에 보다 근접한다.
이는 입세간入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이라는 비동시적인 상황의 시중적時中的 ‘사이’[間]에서 동시적으로 머물 수 있을 때 가능한 경지다.
조광조의 경우처럼 입세간의 상황에서 체념한다거나 또는 한산의 경우처럼 출세간의 상황에서 초월하는 것이 아니다.
소요유는 삶으로부터 죽음에 이르는 모든 과정의 ‘사이’에서 노닐 수 있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요유는 곧 온갖 굴레와 갖은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이다. 그리고서는 그러한 자유와 해방으로부터도 초연해짐이다.
이러한 과정은 지극히 미학적이며 예술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소요유를 실천하고 실현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존재의 모습은 지극히 예술가적이다.
후대에 소요유의 예술정신은 다소 극단화되어 방종이나 와해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소요유의 자유와 해방이 극단적인 방종이나 와해적인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장자의 예술철학이 이르는 자유와 해방은 현실세계의 온갖 부득이함까지도 죄 수용하는 소요유의 깨달음과 실천이다.
이로써 실현되는 삶 자체로서의 예술은 소요유에 대한 철학적인 깨달음과 예술적인 실천을 통한 물아일체로써 가장 위대한 긍정을 지향하는 살아냄 그 자체다.
장자에는 장자 스스로의 철학적(인문학적)인 물음에 대한 답변이 이미 내재되어 있다. 그러한 장자의 대답을 발견하는 일은 이제 독자의 몫이다.
그런데 그 대답은 획일적으로 규정되어서 이미 결정된 정답이 아니다. 때문에 아마도 각 독자는 소요유에 대하여 각자 저마다의 답변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게 저마다의 대답을 갖게 되었다면 그것이야말로 소요유의 노닒으로써 장자의 예술철학에 다가서는 올바른 독법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