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 원칙, 신뢰라는 말을 경계하라!
민주주의가 사망하는 시기는 언제인가?
그것은 민주주의의 주인인 시민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있다. 마치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병에 걸린 사람처럼, 민주주의는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 책은 그 과정과 이유, 대안을 밝히고 있다.
—애스트라 테일러Astra Taylor, 다큐멘터리 <지젝!(ZIZEK!)>의 감독
이 책은 저항의 세대를 위한 책, 광장을 메운 시민을 위한 책이다. 지금까지 소위 진보적인 정치학자라는 사람들은 그저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잠식해가는 과정만을 충격적으로 묘사하며 비판을 가할 뿐이었다. 그러나 호모 폴리티쿠스에 대한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승리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까지 와버렸고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거의 없다. 이 책, 《민주주의 살해하기》는 자유, 평등, 연대 의식을 비롯한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저자가 외치는 최후의 지원 요청이다.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오늘날 신자유주의를 인정하는 이는, 오직 그릇된 신념을 지니고 있는 사람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코스타스 두지나스 Costas Douzinas, 버크벡 대학 인문학 교수 겸 부총장
미셸 푸코의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 대한 치밀한 연구로 시작하는 이 책 속에서,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소위‘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은밀한 잠식, 그것도 근대에 걸쳐 오늘날까지 자유민주주의의 속을 비워내고 있는‘신자유주의’의 은밀한 잠식에 대해 명쾌하게 밝혀낸다. 이를 위해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이론 체계를 논리적, 심층적으로 규명하는 한편, 기업의 예시를 정치와 교육, 법치 그리고 국가 성장과 국민의 복지에까지 적용해버리는 신자유주의의 현황을 파헤쳐낸다. 신자유주의 비판에 새로운 지평을 제공하는, 오늘날 꼭 읽어야 할 강력하면서도 잊히지 않는 책이다.
—버나드 하코트 Bernard E. Harcourt, 컬럼비아 대학교 법학, 정치학과 교수
신자유주의가 대중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바꾸고 나중에는 대중의 삶과 사회적 모습까지 지배해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지극히 비민주적인 삶의 방식을 자연스레 강요받게 되었는지, 어떻게 점점 사라져가는 정치적 상상력과 실천을 되살릴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레이몬드 게스Raymond Geuss, 캠브리지 대학 철학과 명예교수
저자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날카롭고 열정적인 분석을 통해 오늘날 정치가 위기를 맞게 된 경위를 큰 그림으로 밝혀낸다.
—존 클라크John Clarke, 개방대학 사회정치학과 명예교수
우리 시대에 가장 기승을 떨치며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정치 이론인 신자유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평서. 더 많은 사람이 읽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정치를 더 열정적으로 지켜내자.
—레이너 포스트 Rainer Forst, 프랑크푸르트 대학 정치학과 교수
《민주주의 살해하기》는 모든 것을 경제적인 것으로 만들며, 정부와 자치단체 학교 같은 공공 기관에서부터, 참여와 연대 그리고 민주주의 그 자체까지 잠식해 들어가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분석한다.
—제이미 펙 Jamie Peck,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경제지리학과 교수
우리 시대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명확한 진단!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최후의 지원 요청
갖은 정치 담론을 민생이라는 말로 피해가며, 복지 문제를 재정 상황 악화와 국가 성장률 신장이라는 문제로 얼버무리고, 정치적 위기 상황마다 국가 안보를 끌고 나오는 보수의 행동은 무엇에 기반하고 있을까? 저자는 이를 신자유주의의 기본 속성이라고 고발한다.
알랭 바디우를 비롯한 석학들이 꾸준히 주장하듯 신자유주의, 자유민주주의는 정치라기보다는 경제적인 개념이다. 그 배후에는 경제가 정치를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경향성이 숨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는 부를 과도하게 많이 가진 집단이 계속해서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이 될 뿐이며, 그 결과 이들 신자유주의자들은 계속해서 정치 제도를 변질시키고 선거 과정을 왜곡시킨다는 것이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던, 그리고 벌어지고 있는 현실들이다.
다른 한편 신자유주의자들은 인간의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바꾸어버린다. 이들에게 인간은 일을 하는 노동자이며, 생산성과 그 대가인 월급으로만 평가되는 존재다. 저자는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이러한 말들이 실제로는 신자유주의자들이 끊임없이 왜곡하고 악용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노동시간, 최저임금, 여느 노사문제에서 우리는 이런 일들을 흔히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적인 합리주의 - 정부 정책이든, 일터이든, 법조계나 교육계 그리고 문화계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에는 보편화되어버렸다 - 는 사람들과 사물을 경제적 인간이라는 이미지로 재구성한다. 이러한 합리성이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를 경제적인 관점으로 전환해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책에서 저자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진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인적 자본이라는 말 속으로 흡수되어버렸고, 정의에 대한 담론들은 성장률, 국가 신용, 재정 환경이라는 말에 고개를 숙여버렸다. 그리고 자유라는 가치는 인적 자본의 가치 증가라는 말에 얹혀서만 사용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평등이라는 말은 시장 경쟁이라는 말에 묻혀 자취도 희미해졌다. “국가의 권력은 국민에서 나온다”라는 국민주권이라는 말은 이제 쓰기조차 민망하다. “자유민주적”인 가치의 실현이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하물며 “민주적”인 가치,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가치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저자인 브라운은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정치제도를 파괴하는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민의 안전과 경제 발전에 대해 어떻게 그릇된 비전을 제시하는지 조망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압력으로 생긴 법률, 정치적 의제, 관료제, 교육계 등을 면밀히 분석하여, 지금까지 우리가 속고 있던 진실 위에 새로운 상식을 제시하고 있다. 민주주의에는 분명 미래가 있다. 그러나 이 미래에는 우리 자신의 의식의 전환과 집요한 투쟁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가장 진보적인 정권조차 민주주의를 살해할 수 있다
그것도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는 동안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양성 평등을 말하는 지도자가 이를 통한 일자리 해소를 이야기하고, 복지를 부르짖는 지도자가 이를 통한 경제 성장을 이야기할 때, “내 아내, 엄마, 딸이 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 또 …… 가정 폭력이라는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을 때”, 최저 임금을 인상해서 “정직한 노동에 정직한 대가를 지급할 때”, 쇠락한 공업 도시를 재건할 때, “저임금 근로자 커플이 결혼하는 데 장애가 되는 금융 제제를 없애고 자녀를 가지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펼쳐서” 경제 성장을 이루어내겠다고 공언할 때, 이른바 ‘공정한 기회’와 ‘정의로운 결과’를 부르짖으며 누구나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지도자의 외침 속에서 이미 죽음을 코앞에 둔 민주주의의 비명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인류의 오랜 역사 동안 민주주의는 숱한 공격을 받아왔으며, 그때마다 살아남았다. 때로는 시민 혁명의 이름으로, 때로는 봉기나 궐기, 온건하게는 선거와 투표를 행사하며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지켜냈으며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오늘날 민주주의는 서서히 살해당하고 있지만 가해자는 결코 민주주의를 공격하지 않으며 오히려 민주주의가 유일한 가치라고 소리 높여 부르짖는다.
가장 진보적인 정권조차 민주주의를 살해할 수 있다. 심지어 살해하는 당사자들도, 그것을 지켜보고 있을 우리들 시민조차도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알아채지 못하며 이들의 행동에 신뢰의 눈길과 열렬한 박수만을 보내고 만다.
우리는 평등해야 할까, 아니면 평등한 가운데 경쟁해야 할까?
교환이 경쟁으로, 목적이 수단으로 바뀌는 기막힌 현실을 경계하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를 위해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자유민주주의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분석한다. 그리고 다시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 속에 신자유주의라는 모호한 개념이 섞여 들어가는 과정을 꼼꼼히 성찰한다. 엄밀히 말하면 민주주의는 살해당한 적이 없다. 다만 민주주의의 개념 자체가 바뀌었을 뿐이다. 그와 함께 민주주의라는 개념의 핵심인 민중Demos도 이름만 민중일 뿐, 이전과는 다른 무엇으로 바뀌어간다. 민주주의는 해체될 수 있다. 바로 민주주의의 주인인 민중을 무력화하는 방법을 통해서다. 이 책의 원제인 Undoing the Demos가 의미하는 바이기도 하다.
민중이 호모 폴리티쿠스이던 시대의 더 나은 삶이란 주로 정치적인 면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자유와 평등을 비롯한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의 가치가 주로 이것에 관계된다. 반면 호모 폴리티쿠스를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대체한 뒤, 더 나은 삶은 주로 경제적인 면의 향상을 의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의미조차 변질시킨 지금, 더 나은 삶은 자신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삶, 소위 인적자본의 가치를 높이는 삶으로 변질되고 만다. 주된 가치이던 교환은 이제 경쟁으로 대치된다. 이와 함께 “만민은 평등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이상은 “만민은 평등한 가운데 경쟁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의 이상으로 변질되고 만다.
희망을 갖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최후의 지원 요청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어원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민중Demos이 지배하는Kratia 체제를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머물러 있게 만드는 핵심이다. 민중이 무력화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성공적으로 해체된다. 무력화된 민중은 민주주의가 해체되었다는 사실도,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도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는 민중을 공격한다. 우리가 민주주의에 대해 갖고 있는 상식과 함께 민주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갖고 있어야 할 기본 소양을 해체해내며,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의 모습까지 고스란히 재구성해낸다. 이른바 민주 국가의 가면을 뒤집어 쓴 신자유주의 국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민주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민중은 민중이라는 이름만 남은 신자유주의의 부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남성도 여성도 아무것도 없이 지극히 평등하지만, 스스로 업그레이드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서글픈 부품으로. 그리고 현 상황을 당연시하며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지키려고까지 하는 안쓰러운 부품으로.
하지만 이렇듯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저자는 우리 사회를 향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저자는 분석하고, 비판하고, 다시 분석하며, 나름의 결론을 제시해낸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시작해 푸코를 거쳐 아감벤과 지젝을 통과한 결론은 역시나 희망이라는 두 글자로 요약된다. 이유는 명쾌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희망이 없으면 미래조차 사라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를 조직하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빠르고, 복잡하고, 서로 얽히고설킨 그리고 제어 불가능해 보이는 힘에 굴복하고 싶은 유혹에 의해 좌파의 어려움은 심화되고 있다. 보편화된 신자유주의 의식에 구멍을 내야 하는, 그 자체로 이미 어려운 기획과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맞선, 실천 가능한 그럴듯한 대안의 개발이라는 과제를 부여받은 좌파는 이런 문명의 절망과도 맞서야 한다. 삼중고에 직면한 우리들 좌파에게 주어진 임무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고 어떤 즉각적인 보상도 약속되지 않고 성공하리라는 보장조차도 없다. 하지만 그런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이 정의롭고 지속가능하고 살 만한 미래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제공하겠는가?
- 저자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