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1799 - 1837)은 러시아의 낭만주의 작가이자, "가장 위대한 러시아 시인", "현대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등의 평가를 받는 작가이다. 러시아의 방언 등을 그대로 구사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드라마와 로맨스, 풍자 등이 혼합된 스타일을 확립하여 근현대 러시아 문학의 독특한 기풍을 만들어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모스크바 출신의 푸시킨은, 15살에 첫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왕립 라이시엄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이미 문단에서 자신만의 인지도를 확보했다. 이후 푸시킨은 사회 개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문학계와 예술계 내의 급진주의자들의 정서와 주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1820년대 초반, 과격한 정치적, 사회적 주장 등으로 인해서, 그는 왕실의 요주의 대상이 되었고, 그 결과, 남부 러시아로 도피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는 정부의 검열 및 출판 및 여행 금지 대상이 되어 자유로운 작품 활동이 제약되었다. 그 당시의 그의 작품 중 "보리스 고두노프"의 경우, 세계적인 걸작으로 인정받았지만, 출간에 몇 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당시 그가 유일하게 출간할 수 있었던 작품은, 연재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이었다. 그 소설은, 1825년부터 1832년까지 잡지를 통해서 연재되었다.
1831년 푸시킨은, 모스크바 사교계에서 인기를 누리던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결혼했다. 그러나 그녀의 미모와 인기는 오히려 그들의 결혼 생활을 위기에 빠뜨리게 되었다. 러시아 황제인 니콜라스 역시 그녀에게 애정을 보였고, 프랑스 황실 귀족 조지 단테 역시 몇 년 동안 나탈리아에게 구애하고, 그녀 역시 그를 배척하지 않는 등 사교계에서 스캔들을 일으켰다.
1837년, 상황을 견디지 못한 푸시킨은 조지 단테에게 결투를 신청했고, 그 결투에서 중상을 입고, 며칠 후 사망했다. 그가 죽은 후, 폭동을 우려한 정부는, 그의 장례식 규모를 아주 작게 제한했고, 초대장을 가진 사람만 참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모스크바 공립 묘지, 어머니의 묘지 곁에 묻혔다.
푸시킨의 낭만주의적 작품들 중 가장 유명한 것들은, 자유와 개인적 해방에 대한 찬양의 노래들이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낭송되고 읽히고 있다. 그의 간결하고 근대적인 집필 스타일은 근현대 러시아 시 문학의 전범으로 자리 잡았으며, 많은 희곡과 발레, 노래, 영화, 기악곡 등에 영감을 불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