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킨드레드 딕 (Philip Kindred Dick, 1928 - 1982)은 미국 출신의 SF 소설가이다. 딕은 권위주의적 정부, 독점적인 거대 기업 등이 지배하는 세계를 배경으로 사회적, 철학적, 존재론적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초현실주의적이고 미래주의적인 경향 때문에 그의 소설은 영화의 원작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블레이드 런너", "토탈 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 "페이 첵", "스캐너 다클리" 등이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다.
말년의 작품들은 작가 자신의 경험, 약물 중독, 심신 쇠약, 신경증 등의 경험을 반영한 주인공들을 통해서 형이상학적이고, 존재론적인 테마를 다루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초현실적이고 비논리적인 설정 속에서, 자아 정체성의 혼란, 선과 악의 혼동, 도덕의 붕괴, 기술과 인간의 융합 등을 다루는 전위적인 성격을 가진다. 또한 작가 자신의 의식을 따르는 듯한 불명확한 플롯, 환각과 현실의 모호한 구분, 죽음과 삶의 의도적 혼선과 병치하여 진행시키는 특징을 가진다. 기승전결의 명쾌한 스토리 구조를 가지는 다른 SF 작가들과는 차별성을 가지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견 난해하고 이해하기 힘든 구조와 요소들을 몰입감 있게 엮어내는 데서 그의 천재성을 발휘된다고 할 수 있다.
"높은 성의 사나이"의 경우에는, SF와 대체 역사 소설 쟝르의 연계로, 1963년 휴고상을 수상하였고, "흘러라 나의 눈물아. 경찰관이 말했다"의 경우, 자신이 유명하지 않은 평행 우주 속에 던져진 유명 인사의 이야기로, 1975년 캠벨상을 수상하였다.
딕은 1928년, 시카고에서, 농무부 소속 공무원인 아버지와 어미니 사이에서,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났다. 그러나 6주 정도 미숙아였던 쌍둥이 중, 여동생은 생후 6주만에 사망하게 되고, 이 여동생의 기억은 그의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유령 쌍둥이"의 모티브로 재현된다.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딕은, 그곳에서 부모의 파경을 맞고, 어머니를 따라서, 워싱턴 DC로 잠시 이주한 후, 10살 때 샌프란시스코 지역으로 돌아 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UC 버클리로 진학한 딕은 철학, 역사학, 심리학 등의 다양한 강의를 들으면서, 훗날 독특한 세계관을 구성하는 사상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플라톤 등의 저서를 통해, 현실 세계의 확실성을 의심하게 되고, 세계의 존재는 인간의 내적 지각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관념론적 세계관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관념론적 관점은 그의 소설 속에서 혼란된 자아 정체성, 기억의 왜곡과 경험의 불확실성, 죽음과 삶의 병존성, 현실과 환상의 혼재라는 모티브로 재현된다. 대학 중퇴 후, 딕은 1952년까지 지역 레코드 가게에서 일을 계속하지만, 그 사이 발표한 단편 "태양계 복권" 이후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딕은 평생에 걸쳐서 재정적인 문제에 시달리게 된다. 예를 들어, 1950년대 중반, 그는 자신의 수입이, 도서관 연체료조차 낼 수 없는 수준이라는 언급을 한 바 있다. 또한 작가로서의 명망을 쌓은 1980년대 출판된 책에서도, 자신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준 로버트 하인라인 (영미권 3대 SF 작가, 스타쉽 트루퍼스의 작가)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등, 재정적으로는 불안정한 생활을 했다.
1970년대부터 딕은 마취제에 의한 부작용과 환각, 환청 등에 시달리고, 그러한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된 약물에 중독되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그는 환각 속에서 자신에게 지혜를 주는 핑크 색 빛이라든가 유대 예언자인 엘리야와의 대화, 신약 성서 중 사도 행전의 줄거리와 자신의 삶을 혼동하는 등 여러 가지 신비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은 "발리스", "흘러라 나의 눈물아. 경찰관이 말했다" 등에 반영되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높은 성의 사나이" (1962),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1968), "유빅" (1969), "흘러라 나의 눈물아. 경찰관이 말했다" (1974), "스캐너 다클리" (1977), "발리스" (1980) 등이 있다.
1982년, 캘리포니아주 산타 애나에서 거주하던 딕은 시야 상실 증상 이후 하루 만에 뇌졸증으로 쓰러진 직후 뇌사 상태에 빠졌다. 5일 후 생명 유지 장치가 제거되고 바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아버지에 의해서 콜로라도로 옮겨져, 태어난 직후 죽은 쌍둥이 여동생 바로 옆에 묻혔다. 그의 여동생이 묻힐 당시, 이미 그녀의 묘비에 "필립 킨드레드 딕"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