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인 랜드 (Ayn Rand, 1905 - 1982, 본명 알리사 지노프예브나 로젠바움)은 러시아 출신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사상가이다. 그녀는 객관주의라 불리는 사상 체계의 창시자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파운틴 헤드" (1943), "아틀라스" (1957) 등으로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후, 죽기까지 랜드는 자신의 객관주의 사상을 옹호하는 기고문과 에세이에 열정을 기울였고, 객관주의를 위한 신문과 잡지를 운영했다. 객관주의란, 개인의 이성을 극단적으로 신뢰하고, 종교나 믿음에 근거한 삶을 부정하는 사상이다. 윤리학적으로, 또는 사회학적으로는, 이타주의를 거부하고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주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 랜드는 국가주의, 전체주의, 집단주의, 무정부주의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자유 방임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를 선호했다. 그녀의 사상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개인의 자율성과 권리에 대한 강조이다. 랜드의 객관주의는 정통 사상으로 학계에서 인정 받지 못했으나, 그녀와 그녀를 추종한 그룹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미국 보수주의와 자유 방임주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1905년 페테르부르크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랜드는, 약사이자 사업가인 아버지와 가정 주부인 어머니 사이의 첫째 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약사로서의 사업 운영에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여 커다란 약국과 그 약국이 있는 건물을 소유한 사업가였다. 랜드는 학교 입학 후, 학교 교과 과정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 하고, 소설 창작과 친구들과의 정치적 토론을 즐겨 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 랜드 가족의 사업체는 압류 대상이 되고, 생명의 위협까지 느낀 그녀의 가족은 급히 크림 반도로 이주하게 된다. 그곳에서 고등 학교를 마친 랜드는 다시 페테로그라드 (페테르부르크의 당시 명칭)로 돌아 와서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랜드는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서 여자의 대학 입학이 허용된 첫 혜택을 받은 세대였다. 대학에서 사회 교육학과 역사를 전공한 랜드는 국립 영화 학교에서 잠시 공부하고, 영화 작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한다. 이때, 랜드는 자신의 필명을 히브리어로 "눈 eyes"을 뜻하는 "아인"과 원래 성인 "로젠바움"의 단축형인 "랜드"로 정하게 된다. 1925년 미국을 방문한 랜드는 미국의 생활과 문화에 깊이 심취하여, 미국에서 거주하면서 영화 작가로서의 살겠다는 결심을 했다. 시카고와 뉴욕에서 여러 직업을 거친 후, 할리우드에서 랜드는 세실 드밀의 영화 작가로서 일하게 된다. 그 후, 그녀의 작품인 "붉은 전당포", "1월 16일의 밤" 등이 연극과 영화로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치면서 할리우드에 자리를 잡고, 당시 신인 배우였던 프랭크 오코너와의 결혼 했다. 2년 후 랜드는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다. 1940년대에 들어 서면서, 랜드는 정치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시작해서,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이던 웬덜 윌키의 캠페인에서 상근 조직원으로 일하기도 하고, 헨리 헤즐릿, 루드비히 폰 미세 등 당시의 자유주의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사상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녀의 첫 번째 상업적인 성공작은 "파운틴헤드" (1943)였다.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그녀의 철학적 성향이 깊이 묻어 있는 소설로서, 유럽과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로서 랜드는 경제적인 안정과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이 소설은 1949년 영화화되어 상영되었지만, 랜드는 그 영화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51년 뉴욕으로 이주한 랜드는 그녀의 사상을 흠모하는 일련의 추종자들을 거느리게 되는데, 그들은 반어적 의미에서 "집단 The Collectives"이라고 불리었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훗날 미국 사회와 문화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포함되었는데, 가장 탁월한 미국 연방 준비 은행장으로 평가 받는 앨런 그린스펀, "자긍심"이라는 개념을 현대 심리학에 도입한 나타니엘 브랜든, 랜드의 공식적인 계승자, 레오나드 페이코프 등이 그들이다. 그녀의 최고의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아틀라스 Atlas Shrugged"는 1957년 발표되어,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등극한다. 1991년 미국 국회 도서관에서 북클럽 회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랜드의 "아틀라스"는 성경에 이어 두 번째로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책"으로 꼽히기도 했다. "아틀라스"는 출간부터 2013년까지 총 2900만부가 팔린 것으로 집계된다. "아틀라스" 이후 랜드는 소설가로서의 경력을 끝내고 대중적인 사상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하게 되는 일종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1958년, 랜드의 추종자 중 한 명인 나타니엘 브랜든은 객관주의 운동을 홍보하기 위해 나타니엘 브랜든 협회를 결성하고 본격적으로 랜드의 사상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후 60년와 70년대를 거치면서, 랜드는 대중 강연, 신문 및 잡지 기고, 사상 에세이 출간, 객관주의 잡지 및 뉴스레터 발행 등을 통해서 그녀의 객관주의 운동을 열정적으로 전파했다. 그리고 당대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주의적 후보들을 지지하는 글 등을 기고하는 등 정치적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74년 랜드는 폐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은 후, 급격한 건강 악화를 겪게 되고, 거의 대부분의 공적인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랜드는 1982년 심장 발작으로 뉴욕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앨런 그린스펀 등을 포함한 저명 인사들이 참석했다. 그녀의 장례식 당시, 약 2미터 크기의 미국 달러 모양($)의 화환이 장식되었다고 한다. 랜드의 유언에 따라서 그녀의 공식적인 계승자로 레오나드 페이코프가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