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G. 웰즈 (본명 허버트 조지 웰즈, 1866 - 1946)은 소설, 역사학, 정치학, 사회 비평 등 다방면에서 활동을 한 유명한 문필가이다. 특히 그는, 쥘 베른, 휴고 겐스백과 함께 SF 소설의 창시자로 일컬어 진다. 1866년, 영국 켄트주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잡화점의 위치가 좋지 않아서, 잡화점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던 웰즈의 아버지는 크리켓 선수로서 불안정적인 부수입을 거두었다. 여덟 살에 다리가 부러져 침대에서만 지내야 하는 시기가 그의 작가로서의 경력을 결정지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도서관에서 빌려다 준 책을 읽으면서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 속으로 빠져들던 웰즈는 글쓰기에 대한 욕구 또한 기르게 되었다. 11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허벅지에 큰 부상을 입게 되고, 웰즈의 집안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 빠진다. 그로 인해서, 이후 약 10년 동안 웰즈는 견습 선생으로 영국 각지의 학교를 돌아 다니게 되었다. 견습 시간 동안 뛰어난 라틴어 실력과 과학 분야에서의 우수함으로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경제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처지가 계속되었지만, 영국 내 다양한 사립 학교들을 돌아 다니면서 보조 교사와 학생 관리를 한 경험은, 웰즈의 지적 욕구를 자극하고, 다양한 최신 학문을 접함으로써 일종의 "교양적 소양"을 쌓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1880년 생물학 학사를 받은 뒤, 웰즈는 최초의 책을 출판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생물학 교재였다. 그 후 1890년대 초반 이모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게 되면서, 웰즈의 문필력이 본격적으로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다. 타임머신 The Time Machine (1895), 투명 인간 The Invisible Man (1897), 화성 침공 The War of the Worlds (1898)이 이 시기의 웰즈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사실 이 당시에는 SF 라는 쟝르가 존재하지 않았고, 웰즈의 소설들은 "과학 공상 소설 Scientific Romances"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웰즈가 위대한 점은 아직 쟝르 개념이 미비한 상태에서, 당시의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했다는 점일 것이다. 예를 들어, 자유로워진 세계 The World Set Free (1914)에서 웰즈는 당시에는 개념만 알려져 있던 방사능에 대해 상당히 정교한 미래 예측을 했다. 당시에는 방사성 물질이 방사능을 배출하며, 그 총량이 매우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배출 속도가 너무 느려서 그런 핵 에너지는 쓸모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웰즈는 소설 속에서 이러한 핵 반응을 가속화하는 발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당시의 고성능 폭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파괴력을 가지고 "세상이 끝날 때까지" 폭발을 계속하는 폭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훗날 웰즈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20세기 초반의 사람들에게 전쟁의 신속성이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다는 것은 명확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 손 위에서 원자 폭탄이 터질 때까지 그러한 경향을 직시하지는 못했다." 그의 논픽션 베스트셀러인 "과학과 기계의 발전이 인간의 삶과 사유에 미친 반작용에 대한 예측 Anticipations of the Reaction of Mechanical and Scientific Progress upon Human Life and Thought (1901)에서 웰즈는 몇 가지 잘못된 예측을 하기도 했지만 (그는 비행기와 잠수함이 실제적 용도를 가지지 못할 것이라고 봤다), 아주 많은 경우 놀랄 만큼 정확한 예측을 기술했다. 예를 들어, 도시의 확장에 따른 교외 지구의 성립과 기차, 자동차 등의 발전, 성적 자유의 확대에 따른 남성과 여성의 도덕적 관념의 변화, 독일 군국주의의 실패, 유럽 연합의 창립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작가로서의 기반을 굳힘에 따라, 웰즈는 첫 부인인 이자벨과 이혼하고 에이미 C. 로빈스와 1894년 결혼한다. 이 결혼 생활이 흥미로운 점은 부인의 동의 하에 웰즈가 많은 여성들과 교제 (성적인 측면을 포함하여)를 계속했다는 점이다. 그 여성들의 목록에는 당대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 소설가, 작가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교제의 결과로 1명의 딸과 아들이 혼외 자식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말년에 들어 서면서, 웰즈는 페비안 사회주의, 공산주의적 계급론, 세계정부론, 흑인 민권론, 시온주의 등 다양한 갈래에서 나온 사상에 심취한 글을 쓰는 데 집중하게 되었다. 그 결과, 그의 글은 대부분의 동시대인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되었다. 그와 평생에 걸친 친분을 유지했던 조지 오웰이 표현한 바에 따르면, "현대 세계를 이해하기에 웰즈는 너무나도 제정신이었다" 말년 내내 그를 괴롭히던 당뇨병에 대한 반작용으로 당뇨병 협회(현재까지 영국에서 가장 큰 당뇨병 환자 기구)를 창립하기도 한 웰즈는, 1946년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1941년의 글에서 "내가 말했잖아. 당신들은 엄청난 바보라고!"가 자신에게 걸 맞는 묘비명이라고 쓴 적이 있었지만, 가족의 뜻에 따라서 화장되어 남부 잉글랜드 해안에 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