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커트너 (Henry Kuttner, 1915년 4월 7일 - 1958년 2월 4일)은 미국의 SF, 판타지, 호러 소설가이다. 부인인 C. L. 무어와 공동 작업을 한 작품들로 유명하며, 195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커트너는 1915년 캘리포니아 LA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독일계 이민자의 자식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영국계였다. 그의 할아버지는 독일에서 이민을 온 이후, 샌프란시스코에서 서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이른 죽음으로 커트너는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내야 했고, 제대로 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삼촌이 운영하던, 문학 에이전시에서 일하면서 글쓰기를 배운 커트너는 1936년 "무덤가의 쥐들 The Graveyard Rats"를 첫 작품으로 "이상한 이야기들 Weird Tales" 잡지를 통해서 데뷰했다.
커트너의 작품 대부분은 부인인 C. L. 무어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서 창작되었다. 그들은 "루이스 파젯 Lewis Padgett"이라는 필명을 주로 사용해서 공동의 작품을 출간했다. 커트너와 무어는 당시 "러브크래프트 클럽"이라는 일종의 작가 모임을 통해서 만난 후, 바로 결혼하고 공동 작업을 시작했다. 그 둘이 공동 작업을 한 이유는, 우선, 커트너의 작업 속도가 월등히 빨랐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둘의 성향과 스타일이 너무나 유사해서 하나의 주제와 모티브를 정한 후에는 한 사람처럼 작품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커트너와 무어의 친구였던 드 캠프에 따르면 둘 사이의 공동 작업의 밀도가 엄청나게 강해서,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면 두 사람은 서로 어느 부분을 썼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한 사람이 쓰다가 만 문단 또는 문장까지도 다른 사람이 완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즉, 한 사람이 하나의 소설을 시작하고 중간에 멈추면 다른 사람이 그 작품이 꽂혀 있는 타이프라이터 앞에 앉아서 작품을 끝내는 것이 가능했다고 한다. 어떤 점에서, 무어와 커트너의 작품은 각자의 이름으로 발간된 경우도, 정확하게 한 사람의 작품이라는 것이 구분하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단, 커트너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시리즈인 "갤리거 Gallegher 시리즈"는 무어의 증언에 의하면, 커트너 혼자서 작업한 작품이 맞다고 한다.
커트너는 그 자신의 작품뿐만 아니라 후대의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으로도 유명하다. 커트너 이전까지의 SF들이 대부분 기술적인 주제에 집중한 반면, 커트너를 기점으로 인간성과 감성의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탄생했고, 그것이 SF 쟝르를 안착시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SF 작가인 마리언 브래들리 같은 경우에는 작품 하나를 커트너에게 헌정하기도 했고, 휴고 상과 네뷸라 상의 단골 수상자인 로저 젤라즈니도 자신의 작품에 남은 커트너의 영향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다. 리처드 메이슨은 "나는 전설이다 I Am Legent"를 커트너에게 헌정하면서, 그의 격려와 도움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또한 레이 브래드버리에 의하면, 그의 첫 공포 소설인 "양초 The Candle"의 첫 300 단어를 커트너가 직접 썼다고 한다.
러브크래프트와 클라크 스미스의 친구였던 커트너는 그들이 만들어낸 크쿨루 신화 Cthulhu Mythos의 세계관에 기반한 소설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크랄리츠의 비밀 The Secret of Kralitz", "영혼들의 부활절 The Easter of Souls", "세일럼의 공포 The Salem Horror" 등이 크쿨루 신화에 기반한 작품들이다. 또한, 크툴루 신화 속 존재 중 로드 Lod, 보르바도스 Vorvadoss, 니옥타 Nyogtha 등이 커트너에 의해서 창조된 것들이다. 이런 점에서 커트너는 지금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크쿨투 신화 세계관의 주요 작업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무어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서 1940년대와 1950년대를 활발히 활동한 커트너는 석사 학위를 받기 위해서 1950년 남 캘리포니아 대학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 무어와 같이 입학한다. 그리고 1954년 학사 학위를 수여 받고, 대학원 과정에 진학한다. 그러나, 1958년 갑작스러운 심장 마비로,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짧은 생애를 마친다. 참고로, 커트너의 죽음 이후, C. L. 무어도 작품 활동의 속도가 현격하게 떨어지고, 공동 작품을 뛰어 넘는 작품을 내놓지 못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 중 "밈지는 보로고브스였다 Mimsy Were the Borogoves"의 주요 모티브와 줄거리가 2007년 "마지막 밈지 The Last Mimzy"라는 영화에서 사용되기도 했다.